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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14화 (314/394)
  • 314화

    김우진의 그 묘한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다친 곳이 없다면 다행입니다.”

    결국 어색하게 한마디 하며 김우진을 놔주었다. 천사연이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는 터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셰드 님!”

    소란을 듣고 달려온 민아린과 병사들 또한 방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머쓱하게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본 민아린이 경악하며 외쳤다.

    “얼굴이……!”

    얼굴? 나는 그제야 핏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화살에 스쳤나 보다.

    고개를 내리니 볼과 마찬가지로 왼쪽 어깨도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유난히 어깨가 자주 다친단 말이지.’

    옷을 또 갈아입게 생겼네. 한숨을 내쉬며 모두에게 설명했다.

    “마녀의 수하가 갑작스럽게 습격을 해 왔습니다. 건너편 지붕에서 셰드 님을 노리고 화살을 쏘더군요. 지금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뭐, 뭐라고? 셰드 님, 괜찮으십니까?”

    복잡한 눈을 하고서 나를 보던 김우진이 병사의 외침에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어. 난 괜찮아.”

    “부상이 있으시면 즉시 치료를…….”

    “아니. 다친 곳은 없어. 이 자가 나를 지켜 줬다.”

    김우진의 말에 방으로 몰려온 병사들과 민아린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이건 별로 달갑지 않은 관심인데. 더군다나 지금은 내가 김우진을 구해 줬다는 사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마녀의 수하들이 이곳을 노렸다는 건 위치가 완전히 발각됐다는 뜻입니다. 당장 야밤에 적들이 공격해 올지도 모릅니다.”

    맞은편 지붕에서 김우진의 뒤통수를 정확히 노리고 활을 쐈으니 여기에 우리가 있다는 건 물론이고, 이 방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도 다 파악해 둔 게 틀림없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제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턱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대충 손등으로 닦아 낸 나는 김우진에게 말했다.

    “제가 했던 제안, 아직 기억하시죠? 마녀의 수하들과 싸울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

    “더는 머뭇거릴 여유 없습니다. 상대가 먼저 습격해 오기 전에 우리가 저택으로 가야 해요.”

    내게 목숨이 구해져서 그런지, 김우진은 경계심을 많이 누그러트린 상태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같은 의견이다.”

    “하지만 셰드 님, 수상한 자들과 함께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수상한 자들이 아니다. 마녀와 한패였으면 나를 굳이 살릴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병사의 만류에도 단호히 대답한 김우진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덧붙여 말했다.

    “다만 의심스러운 건 여전하니까 넌 내 곁에 있어라.”

    “예? 저요?”

    멍청하게 되묻자 김우진이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로 변명을 늘어놨다.

    “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혹시 모르니까.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상시 옆에 있도록.”

    “그건 굳이 셰드 님 옆이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어야 문제가 생겨도 바로 파악하지. 이건 안전과 신뢰 문제니까 양보할 수 없다.”

    “…….”

    아니, 그런 소리를 얼굴을 붉히면서 해 봐야 이상하게 들리기만 하는데.

    방 안에 들어와 있던 팀원과 병사들의 시선이 나와 김우진에게로 쏠린 게 절로 느껴졌다.

    ‘김우진이 내게 경계심을 풀도록 노린 건 사실이지만.’

    설마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이야. 괜히 뻘쭘해진 나는 이마를 긁적이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출발은 언제 하실 겁니까?”

    “내일 오전에. 밤에 이동하는 건 무리니까 보초병을 여럿 세워 두고 오늘은 버텨 보는 게 낫겠어.”

    “그럼 그전까지는 제 동료들과 있겠습니다.”

    천사연과 따로 할 얘기도 있는 터라 계속 김우진 곁에 있는 건 힘들었다. 내 말을 들은 김우진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은근히 시무룩한 티를 내는 김우진의 모습에 다들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바라봤다. 미치겠네, 정말.

    엉망이 된 방을 병사들이 대신 정리해 주는 동안 나는 민아린에게 상처를 치료받았다. 치료실을 찾아온 천사연이 뒤따라온 박건호와 우서혁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그 짧은 사이에 아주 제대로 꼬셔 냈군.”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억울해서 곧장 반박했지만 천사연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을 한 번에 꼬시다니. 대단한데?”

    “조용히 하시죠.”

    박건호까지 끼어들어서 놀려 댔다. 그래도 잘됐다. 어차피 박건호한테도 물어볼 질문이 있었으니까.

    “그쪽은 애초에 목적이 도시에 들어오는 거라고 하셨죠? 저희 때문에 억지로 끌려왔을 뿐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까보다 분위기가 좋아졌으니까 잘만 설명하면 그쪽은 보내 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 내쫓는 건가?”

    “그게 아니라…….”

    우리를 적이라고 의심하고 병사부터 움직인 김우진도 문제였지만,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은 박건호도 문제였다.

    일단 도시까지만 합류하겠다고 했으니 다시 설득을 해야 하는데.

    “저희는 당장 내일부터 마녀와 싸워야 합니다. 그쪽은 실력도 좋으니 가능하면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요.”

    “음.”

    입가를 매만지며 잠시 고민한 박건호가 씩 웃었다.

    “나쁘지 않지. 네가 약속 하나만 해 준다면.”

    “약속이요?”

    “도시에서 동료를 모두 찾으면 내 일을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네가 가진 바람 능력이 탐나거든. 서로서로 돕자는 거지.”

    “따로 목적지가 있다고 하셨었죠. 그게 지금 말하는 일입니까?”

    “이해가 빠르군.”

    그가 팔짱을 끼며 느긋하게 벽에 기대섰다.

    “내 이름은 로엘드. 서쪽 바다 끝에 있는 왕국에서 왔다. 이 도시 너머에 숲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잠들어 있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잠들어 있는 공주…라고요?”

    “앗, 그 얘기는 저도 알아요.”

    당황한 나를 두고 민아린이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마녀의 저주를 받은 숲을 말씀하시는 거죠? 오래전에 저주를 받은 공주가 숲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그 공주를 구해 주면 앞으로 있을 이 왕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박건호의 정체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동화에 나오는 왕자였을 줄이야.

    ‘그보다 이유가 너무 현실적인 거 아니야?’

    공주나 아이들이 들으면 눈물 흘리겠네. 뭐, 저런 이유가 아니면 굳이 타국의 왕자가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긴 하겠지만.

    “그럼 그쪽도 이 싸움에 참여하는 게 이득인 거 아닙니까? 공주에게 저주를 건 마녀가 이 도시를 차지한 마녀와 동일인일 수도 있잖아요.”

    “똑똑하네. 이래서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군. 계속 그쪽이라고 불리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그새 헛소리하는 박건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일단 그 문제는 도시부터 해결하고 다시 생각하죠. 이곳에 있는 마녀를 처리하면 그 숲에도 변화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지.”

    이로써 총 세 개의 동화가 나왔다.

    천사연은 라푼젤, 우서혁과 민아린은 여러 증거를 총합해 봤을 때 빨강 모자의 주인공과 늑대일 것이다. 박건호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고.

    ‘그럼 김우진은 뭐지?’

    마녀에게 쫓겨난 백작가 후계자라니. 이런 동화는 듣도 보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김우진은 신데렐라 동화에서도 주요 인물이 아닌 노예였으니…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경우인가? 우서혁도 평범한 보좌 역할이었고.

    ‘아직 만나지 못한 하태헌과 권정한은 어떤 역할인지 봐야 확실해지겠어.’

    이 공간은 마치 어린애가 만들어 낸 것처럼 규칙 따위는 보이지 않고 온통 제멋대로였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추측해도 소용없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만큼 까다롭고 복잡했다.

    “천사연. 김우진의 태도로 보면 저택의 병사들도 데려갈 듯한데, 그걸 막을 방법이 있을까?”

    “글쎄. 그건 힘들어 보이는군.”

    그들은 모두 평범한 미술관 관람객이었으니 아벨 인형과의 전투가 벌어질 장소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제대로 싸울지도 모르겠고.

    자신을 병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데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김우진도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이니 무작정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지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

    “역시 그런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 바람 능력과 천사연이 함께 해 준다면 웬만한 인형은 바로 죽일 수 있었으니 최대한 지키는 방향으로 싸워 보는 수밖에.

    ‘최악의 상황이 오면… 개입 능력을 써야 할지도 모르니 미리 각오해 놔야겠어.’

    이번 공간에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온 건 우리 책임이었다. 그러니 누군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개입 능력을 쓸 생각이었다.

    “마리아 님도 괜찮으시면 같이 가 주실 수 있습니까?”

    “좋아요. 사실 저도 신경 쓰이던 참이었어요.”

    민아린이 함께 해 준다면 사상자가 나올 위험은 현저히 줄어든다. 역시 민아린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이 됐다.

    ***

    다음 날, 김우진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이 출전 준비를 끝내고 모였다. 다행히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김우진에게 따로 말했다.

    “저택에서 마녀의 수하들을 마주치게 되면 병사들은 후방에 두고 저와 제 동료들이 앞장서서 싸우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뭐?”

    내 제안을 들은 김우진이 예상대로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설명을 해 놔야 했다.

    “우린 모두 선택받은 자이고 실력도 좋으니 앞서서 싸우는 편이 괜한 피해를 내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너와 네 동료들은 위험해질 텐데. 상관없는 건가?”

    “네. 오히려 다들 반길 겁니다.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싸울 수 있으니까요.”

    김우진이 넘어오도록 열심히 회유하자 잠자코 내 말을 듣던 김우진이 갑자기 귀를 붉히고는 쑥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 병사들을 이 정도로 걱정해 주다니.”

    “예?”

    “그대는 참… 크흠, 다정한 것 같군.”

    “……예?”

    “알겠다. 나도 병사들이 염려스럽던 참이었으니까. 병사들은 후방에 배치하도록 하지.”

    “…….”

    뭐지? 김우진이 방금 어마어마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됐으니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무언가 기대하는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나를 응시하는 김우진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다가 결국 힘겹게 대답했다.

    “역시 셰드 님,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군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급히 칭찬해 주자 김우진이 수줍게 웃었다. 아, 진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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