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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297화 (297/394)
  • 297화

    75. 헨젤과 그레텔

    깊은 한숨을 푹 내쉰 나는 혼란스러운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켰다.

    ‘일단 차근차근 정리부터 하자.’

    우리는 프라우스 신도단의 흔적을 쫓아서 데우스 미술관을 찾아갔다. 지하 3층에서 벌어진 경매에 참석한 나와 천사연, 하태헌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미술관 1층과 건물 외부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결국 경매 참석자 세 명을 제외한 팀원들의 연락이 끊겼고… 이어서 우리 세 명도 주황색 장막에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가 됐다는 건데.

    아무래도 여긴 프라우스 신도단이 만들어 낸 공간 속이 틀림없어 보였다.

    미국에서 닥터가 만들어 낸 공간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그곳은 가장 내 기억을 토대로 모든 것이 만들어졌지만 여긴 아무리 봐도 과거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 장소였다.

    “오빠, 어디 아파? 다쳤어?”

    눈썹 끝을 축 내린 채로 나를 바라보는 민아린의 얼굴에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아무래도 정신 지배에 걸린 상태랑 비슷한 거 같은데.’

    나를 자신의 오빠라고 믿고 있는 건가? 이상한 공간에 들어온 거로도 모자라 정신 지배까지 걸렸다니.

    당장 권세현으로 변해서 정신 지배를 끊어 내 주려던 그 순간에 싸한 감각이 뒤에서 느껴졌다.

    ‘안 돼.’

    여긴 프라우스 신도단이 만들어 낸 공간 속이었다. 대놓고 개입 능력을 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주변을 다시 천천히 살폈다.

    민아린은 현재 낡은 셔츠에 기다란 치마 차림이었다. 나 또한 정장 대신 낡은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고. 귀에 꽂혀 있는 이어 피스는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민아린이 했던 말은… 모든 증거를 총합해 본 뒤에 민아린에게 머쓱하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서 말인데, 내 이름 좀 알려 줄래?”

    “이름?”

    고개를 기울인 민아린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헨젤이잖아. 갑자기 이름은 왜?”

    “…….”

    진짜로 헨젤과 그레텔 동화였냐. 그럼 민아린이 헨젤의 동생인 그레텔이 된 건가?

    “그래. 그렇지. 내가 헨젤이지…….”

    “오빠, 오늘따라 너무 이상해.”

    민아린한테 오빠 소리를 계속 들으니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정신 지배를 풀어 주지도 못하는데, 미치겠네.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미안. 이제 움직이자. 집에 가야지.”

    최대한 오빠처럼 보이도록 노력하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사이 하늘이 붉어진 걸 보아하니 조금만 있으면 금방 해가 저물어서 어두워질 게 뻔했다.

    “오빠, 어서. 빵 부스러기를 따라가자. 그럼 집으로 갈 수 있어.”

    민아린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 힘에 순순히 끌려가며 헨젤과 그레텔 내용을 열심히 떠올렸다.

    아마… 빵 부스러기는 새가 먹어서 중간에 끊길 거고, 숲을 헤매다가 마녀가 만든 집을 발견할 텐데. 동화에는 영 관심이 없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설마 마녀가 아벨의 인형인 건 아니겠지?’

    혹시 모르니 바람 능력을 살짝 써 봤다. 다행히 기운도 능력도 멀쩡히 써졌다.

    “오빠… 빵 부스러기가 끊겼어.”

    숲길을 어느 정도 걸었을까, 내 짐작대로 빵 부스러기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새가 먹었나 봐.”

    맞장구를 치는 내 목소리는 딱딱하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 힘들다. 연기는 정말 적성에 안 맞는데.

    “어쩔 수 없지. 일단 계속 가 보자.”

    숲의 밤은 다른 곳보다 빨랐다. 이미 하늘은 붉은 기가 거의 사라지고 짙은 밤이 몰려오고 있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마녀의 집이라도 찾아야 했다. 나야 전투계 A급이니 괜찮았지만 민아린은 이렇게 얇고 낡은 옷으로 숲에서 밤을 보냈다간 몸 상태가 크게 안 좋아질 게 뻔했다.

    “으응.”

    불안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오는 민아린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사연의 집에서 기다리라고 할 걸 그랬다. 내 욕심으로 민아린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죄송해요, 민아린 씨.’

    무슨 일이 있어도 민아린만큼은 안전하게 지켜 내야겠다고 다짐하며 어딘가에 있을 마녀의 집을 찾아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내 예상대로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숲길을 따라 안쪽으로 계속 들어간 우리 앞에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저기 봐. 집이 있어.”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집은 3층으로 이뤄진 커다란 저택이었다. 여기가 마녀의 집인가?

    “뭐지? 달콤한 냄새가 나.”

    나와 함께 집 가까이 걸어간 민아린이 침을 꼴깍 삼켰다.

    ‘마녀의 집은 과자로 만들어졌다고 했던가?’

    창문으로 흘러나온 불빛에 드러난 집 외벽은 정말로 쿠키와 비슷한 모양이었고 달콤한 향이 흘렀다.

    동화에서는 이 집을 먹다가 마녀에게 걸려서 잡혀가던 거로 아는데. 홀린 듯이 손을 뻗는 민아린을 가로막았다.

    “기다려. 함부로 먹으면 안 돼.”

    차라리 마녀를 먼저 찾아서 제압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능력으로 유리를 깨고 진입하는 건 어떨까. 아니면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마녀가 모습을 드러내면 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어쩔까. 일단 창문에서는 마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역시 잠깐 뒤로 물러섰다가 제대로 된 위치가 파악된 후에 내가 먼저 공격을…….

    덜컹, 끼익.

    “……!”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던 그때였다. 저택의 정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마녀? 온몸을 바싹 긴장시키며 다급히 민아린을 등 뒤로 보냈다. 이 정도 거리인데도 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걸 보면 나보다 높은 등급인 게 확실했다.

    “이런.”

    “허…….”

    본능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려 공격하려던 나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허탈한 숨을 뱉어 냈다.

    “천사연?”

    “안녕, 동생.”

    “네가 여기 왜 있어?”

    어리둥절해하는 민아린을 데리고 급히 다가갔다.

    나와 민아린의 차림새를 찬찬히 본 천사연이 그 질문에 싱긋 웃었다.

    “눈을 떠 보니 이 집이더군.”

    “뭐? 그럼 설마 네가 마녀?”

    “글쎄. 일단 나는 남자라서 마녀가 되기는 힘들 거 같은데.”

    “헛소리하지 마. 너 옷은 왜 이래?”

    “그것도 내가 할 말이고.”

    천사연에게 성큼 다가가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붙잡았다.

    흰 셔츠에 바지를 입은 천사연은 처음 보는 검은 로브를 마치 코트처럼 걸치고 있었다. 옷도 그렇고, 역시 천사연이 마녀 역할인 모양이다.

    ‘천사연은 SS급이라 민아린과 달리 제정신인 건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천사연까지 정신 지배에 걸려서 진짜 마녀처럼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했으면 일이 상당히 복잡해졌을 거다.

    “저… 오빠. 아는 분이셔?”

    “흠?”

    짙은 미소를 지은 채로 옷을 붙잡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던 천사연이 민아린의 오빠 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오빠? 둘이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거지?”

    “설명하자면 길어.”

    한숨을 내쉬자 천사연이 저택 문을 좀 더 열어 줬다.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지.”

    저택 내부는 동화 배경답지 않게 굉장히 넓고 화려했다. 쿠키로 되었던 외벽과 달리 내부는 모두 평범한 벽이었다.

    천사연은 우리를 벽난로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있는 것을 발견한 민아린이 눈을 반짝 빛냈다.

    “이거 먹어도 괜찮은 건가?”

    “저런 사소한 부분까지 건들기 힘들 테니 먹어도 상관없을 거다.”

    그렇다면야. 나는 민아린에게 빵 바구니를 밀어 주며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민아린 씨는 지금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야. 자신은 그레텔, 나는 친오빠 헨젤이라고 여기고 있어.”

    “헨젤과 그레텔 동화인가 보군. 그래서 나보고 마녀라고 한 건가?”

    “그래. 아무래도 여긴 사마엘이 만들어 낸 공간인 것 같아.”

    “그건 확신하긴 이르지.”

    천사연이 방구석에 있는 서랍 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 내게로 던졌다. 무심코 받아 든 나는 그것이 망가진 인형인 것을 알아챘다.

    “아벨의 정찰용 인형이다. 이 집에만 세 개가 있더군.”

    정찰용 인형. 그렇다면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느꼈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사마엘뿐만 아니라 아벨도 있다는 뜻이네.

    “그럼 여긴 이제 안전한 건가?”

    안전하다면 권세현으로 변해서 민아린의 정신 지배를 끊어 주고 싶은데.

    내 질문에 담긴 뜻을 바로 이해한 천사연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발견 못 한 인형이 있을 수도 있고, 이 공간 자체를 신도단이 만들어 냈으니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진 않아.”

    아벨이 우리를 보고 있다면 내 개입 능력도 쓸 수 없다. 그럼 민아린은 계속 저 상태로 둘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야 해. 이어 피스도 작동을 안 하니까.”

    “느껴지는 기운이 없는 걸 보면 이 주변엔 우리뿐인데. 상황이 복잡하게 됐군.”

    나는 방 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 닥터가 만들어 낸 공간과 같았지만, 과거가 아닌 동화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왜 하필 동화인 거지?”

    “아마 아벨의 취향일 거다. 카렌. 이 이름을 가진 인형을 기억하나?”

    카렌이라면… 거대한 낫을 휘두르던 여자 인형으로 강승건을 폭주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카렌도 동화에 등장하는 이름이니까. 그것 외에도 이제껏 아벨이 인형에게 붙여 준 이름은 대부분 동화와 관련이 있더군.”

    동화가 단순히 아벨의 취향인 거면 지금 이 상황도 아벨이 만들어 냈다는 건데.

    “대체 뭘 노리고 이런 공간을 만든 건지 모르겠어. 많은 동화중에 헨젤과 그레텔을 고른 이유도.”

    “한이결, 정신 지배에 걸리지 않는 너와 내가 만난 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해.”

    “그게 무슨…….”

    “만약 민아린 힐러처럼 정신 지배에 걸린 세 명이 만났다면 동화 내용을 그대로 따라갔겠지. 마녀는 헨젤과 그레텔 남매를 죽이려고 할거고, 남매는 마녀를 죽이려고 할 거다.”

    “……!”

    이어지는 설명을 듣자 목덜미에 소름이 끼치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사연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사마엘과 아벨은 동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서로를 죽이도록 판을 짜 둔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는 민아린에게 시선을 보냈다. 정신 지배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느껴졌다.

    ‘침착하자.’

    두려움에 바싹 조여드는 가슴 속을 애써 외면하며 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차하면 개입으로 정신 지배를 모두 끊어 낼 수 있다. 그로 인해 신도단에게 내 능력이 들통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찾아봐야겠지.”

    내가 진정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준 천사연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보기엔 이 저택이 가장 수상하군.”

    “내 의견도 같아.”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바로 마녀의 과자 집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남매는 마녀를 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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