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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264화 (264/394)
  • 264화

    키에에엑! 케에엑!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은 융합된 존재들이 쿵쿵, 땅을 울리며 거칠게 달려왔다. 가장 먼저 격돌한 것은 맨 왼편에 자리한 우서혁이었다.

    박쥐 날개를 활짝 펼쳐 날아오른 적이 빠른 하강으로 위에서 덮쳐 왔다.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 우서혁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르릉!

    우서혁도 지지 않고 상대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한바탕 땅을 뒹굴었다.

    어깨에 꽂혀 드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에도 입에 문 것을 놓치지 않은 우서혁이 끝내 상대의 상체 절반을 통째로 뜯어냈다. 후드득, 검은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며 비린 냄새가 확 퍼져 나갔다.

    박건호 쪽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수십 개의 가시가 돋아난 여섯 개의 팔로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적을 가까스로 막아 내고 있는 그의 두 팔과 허벅지에 상처가 빠르게 늘어났다.

    능력 특성상 중거리에 특화되어 있는 박건호는 어떻게든 적을 떼어 내야 했다. 불안하게 지켜보던 한이결이 기운을 더 써서 바람으로 도와주려던 그때, 빈틈을 정확하게 캐치한 박건호가 긴 다리로 적의 머리를 정확하게 후려쳤다.

    크륵, 키익!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적이 휙 날아가 바닥에 부딪혔다. 거미처럼 여섯 개의 팔을 허우적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적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쇠구슬이 날아와 폭발했다.

    “헉, 후우…….”

    상대가 죽은 것을 확인한 박건호가 어깨에 박혀 있던 굵은 가시를 이를 악물고 뽑아냈다. 적의 팔에 솟아 있던 가시 중 하나로, 어깨를 내준 덕분에 빈틈을 만들 수 있었다.

    한이결의 바람 능력을 통해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신도단과 달리, 융합된 존재들은 마찬가지로 공중을 날 수 있는 데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어서 상대하기 더욱더 까다로웠다.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는 천사연과 하태헌이 보였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나뒹굴었다. 달려드는 수많은 적을 힘겹게 죽여 가며 닥터와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갔다.

    자신에게 뻗어 오는 몬스터의 팔을 가차 없이 잘라 낸 천사연이 우서혁과 박건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손바닥이 아닌 아래팔을 길게 베어 냈다.

    “천사연…!”

    손바닥보다 많은 양의 피가 튀는 것을 본 한이결이 급히 바람을 더 끌어냈다. 한계까지 사용된 기운에 심장이 욱신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려 바람을 움직였다.

    “으윽!”

    바람이 흘러 나가는 손끝이 덜덜 떨렸다. 우웅, 쉬지 않고 흔들리는 팔찌와 함께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점점 더 강해졌다.

    “크륵, 크르륵!”

    불에 감싸진 피를 적신 채로 검을 휘두르는 천사연에게 가장 뒤에 있던 강승건이 높이 날아올라 사나운 기세로 덤볐다. 예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에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천사연의 뺨에 긁힌 상처가 커다랗게 새겨졌다.

    그걸 본 한이결은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SS급인 천사연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설마 강승건의 몸에 융합된 몬스터가 그만큼 등급이 높은 건가?’

    에드워드는 A급 능력자의 몸에 C급 몬스터의 신체를 융합해서 등급을 높인다고 설명했었다. 그렇다면 몸이 버텨 주기만 한다면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가?

    “큭, 천사연!”

    천사연과 합류하려던 하태헌도 밀려오는 적을 상대하느라 가까이 가지 못했다. 우서혁과 박건호는 부상이 심해서 겨우 버티는 것이 한계였다.

    “이결 형,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대로 가다가는…….”

    한이결이 최대한 바람으로 강승건의 공격을 저지하며 권정한과 김우진에게 대답했다.

    “안 돼. 여기 가만히 있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신계 능력자인 권정한은 나서 봤자 위험하기만 할 뿐이었다. 민아린과 에드워드도 마찬가지였고. 김우진은 한이결이 바람에 집중하는 동안 이곳을 지켜 줄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적은 강제로 실험을 당해 변해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런 존재를 죽여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게 둘 수는 없었다.

    ‘천사연은 그래서 김우진을 내 곁으로 보낸 거겠지.’

    자신이었어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다. 그러니 더더욱 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크르륵, 크…….”

    천사연을 보며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흘린 강승건이 등에 마구잡이로 솟아난 뼈를 움직였다. 바람을 타고 재빠른 몸놀림으로 바닥에 내리꽂히는 날카로운 뼈를 피해 낸 천사연이 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치이이익!

    검날을 타고 흐르던 핏방울이 강승건의 왼쪽 다리에 달라붙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허벅지 살점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강승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붉게 부풀어 오른 오른팔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콰지직, 콰직! 강승건의 오른팔이 내리꽂히는 곳마다 바닥이 충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갈라졌다.

    “하하, 하하하! 죽여, 죽이라고! 쿨럭, 쿨럭…! 죽여 버려, 시팔!”

    폭주한 것처럼 막무가내로 천사연에게 달려드는 강승건의 행동에 닥터가 몇 번이고 소리쳤다.

    “너한테 들어간 귀한 몬스터 신체가 몇 개나 되는 줄 알아? 어떻게든 죽여! 실패하면 네놈의 뇌도 바꿔 버릴 거다!”

    닥터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몬스터의 눈알들이 사방을 살피며 꾸르륵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흘렸다.

    동시에 강승건의 몸짓이 더욱 불안정하고 거칠어졌다. 그걸 알아챈 천사연이 눈가를 좁힌 그 순간이었다.

    “크륵, 천…….”

    가까운 거리에서 강승건이 짐승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의 말을 낮게 뱉어 냈다. 흰자 없이 온통 빨간 눈이 어떠한 감정을 담은 채로 천사연을 응시했다.

    “…….”

    천사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머릿속에 차오르는 복잡한 생각을 냉정하게 끊어 낸 천사연의 검이 유려하게 허공을 갈랐다. 날카로운 검날에 강승건의 오른팔이 통째로 잘렸다. 촤악, 피가 쏟아지며 두꺼운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으으윽, 크륵!”

    강승건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팔에 붙어 있는 눈알들은 잘려 나간 상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깜빡였다. 한바탕 검은 피를 쏟아 낸 강승건의 보랏빛 피부색이 조금씩 옅어졌다.

    “꾸륵, 끅, 나… 나를…….”

    오른팔은 잘리고 왼 다리는 녹아 버린 강승건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강승건이 이길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닥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며 머리에 핏줄이 솟았다.

    “이런 시발, 좆같은 실패작 새끼가! 움직여, 당장 움직여!”

    닥터의 패악에 강승건이 피를 흘리면서도 꿈틀거렸다. 등에 돋아 있는 두툼한 뼈 줄기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닥터가 흥분한 낯으로 재촉했다.

    “그래, 그거야! 방심한 상태일 때 죽…!”

    콰직, 거침없이 뻗어 나간 뾰족한 등뼈 끝이 닥터의 상체 중앙을 꿰뚫었다.

    “…엉? 무슨…….”

    콰직, 콰직! 다른 두 개의 뼈도 연달아 닥터의 어깨와 옆구리에 뚫고 지나갔다. 넋을 놓은 눈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던 닥터가 곧 기침을 뱉어 냈다. 투박한 방독면 아래로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강승건의 바로 앞에 서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천사연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강승건이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예상한 그는 검을 들지 않았다.

    “시팔… 뭔… 쿨럭!”

    새까만 벽에 등을 기댄 채로 피를 토해 내던 닥터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방독면을 풀어내자 그 안에서 피가 울컥 넘쳐흐르며 그의 얼굴 하단 부분이 드러났다.

    그는 코가 뭉개지고 입 주변의 피부가 온통 짓무른 상태였다. 오래전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흉터였다. 코와 입을 지나 목까지 쭉 내려온 흉터는 옷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방독면 없이 말을 하는 닥터의 목소리는 듣기 거슬릴 정도로 거칠었다. 강승건의 뼈에 온몸이 꿰뚫린 채로 그가 손을 움직였다. 아까 사용했던 기계였다.

    “아주 지랄을… 허억, 쿨럭… 내가 순순히… 뒤져 줄 것 같…….”

    중앙에 박힌 붉은 버튼을 누르자 삑 소리가 났다. 그러자 가장 멀리 있던 융합체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폭발했다.

    “……!”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 흩날리는 동시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융합체들의 몸도 똑같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챈 한이결이 급히 바람의 강도를 높이며 외쳤다.

    “피해요!”

    한이결의 바람을 타고 빠르게 박건호에게로 달려간 우서혁이 그의 옷을 낚아채 거리를 벌리자마자 융합체들이 연달아 크게 터졌다. 주위가 금세 메케한 가스 냄새와 불로 가득 차올랐다.

    “쯧…….”

    제 바로 앞에서 터지는 폭발을 능력으로 겨우 막아 낸 하태헌이 혀를 차며 등을 돌려 뛰었다. 그가 천사연의 허리를 붙잡으며 검은 실드를 수십 개 겹쳐서 만들어 냈다.

    “끄으으윽!”

    강승건이 부풀어 오르는 몸을 버티지 못하고 허리를 뒤로 꺾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융합체보다 더 강한 폭발과 함께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찢겨 나가며 그대로 터져 버렸다.

    “으윽……!”

    뜨거운 기운이 확 퍼져 나갔다. 바람으로 어느 정도 막아 내도 살결이 아릿할 정도로 화끈한 공기가 사방으로 덮쳐 왔다.

    콰앙, 쿵! 강승건이 터진 후로도 폭발음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뿌연 연기와 치솟는 불길, 흩날리는 재와 숨이 막혀 오는 메케한 공기 때문에 상황 파악이 쉽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으… 괘, 괜찮아요. 다른 분들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던 민아린과 에드워드의 상태부터 살핀 한이결은 바람으로 불을 힘겹게 치워 내며 외쳤다.

    “천사연! 하태헌 씨!”

    자신의 바람 능력으로는 폭발을 온전히 막아 낼 수 없었어서 그런지 너무 불안했다. 거센 불길에 자꾸만 바람이 밀려 시야를 확보하는 게 어려웠다.

    “팀장님! 우서혁 씨! 어디 있습니까?”

    “한이결, 기다려. 내가 가 볼 테니까…….”

    당장 뛰어나가려고 하는 한이결을 김우진이 막아선 그때였다.

    마치 알처럼 검은 먼지로 된 실드에 감싸진 하태헌과 천사연, 우서혁과 박건호가 나란히 짝을 맞춰 불을 뚫고 돌아왔다. 폭발 속을 빠져나온 하태헌이 손을 휘젓자 먼지가 모두 사라졌다.

    “아이고, 죽겠다.”

    박건호가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우서혁 등에 올라탄 채로 장난처럼 한탄했다. 크릉, 우서혁이 당장 내려오라는 듯이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다들 다친 곳 없습니까?”

    “나랑 우 비서 말고는 없는 것 같군.”

    한이결의 질문에 박건호가 눈짓으로 우서혁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피에 젖은 검은 털 아래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상처를 발견한 민아린이 걱정하며 물었다.

    “제가 좀 봐 드릴까요?”

    “기절할 정도는 아니니까 나중에 해 주십시오. 일단 여기 상황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까.”

    흩날리는 노란 불꽃 사이로 죽어 버린 닥터와 신도단의 시체가 보였다. 융합체들은 모두 터졌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한이결은 씁쓸한 숨을 내쉬었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닥터.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희생자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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