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허억……!”
정신 지배를 끊어 내자마자 기운이 강하게 흔들리며 심장에 뻐근한 통증이 번져 갔다. 헛숨을 들이켜며 비틀거리는 내 몸을 하태헌이 급히 부축했다.
“시팔… 이게 뭔 상황이야?”
사마엘의 능력으로 강제로 움직였던 신도단이 모조리 기절하자 남아 있는 이들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운은 S급 두 명, A급이 세 명, 나머지는 B급들. 이 정도면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나는 하태헌에게 기댄 채로 천사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천사연이 결국 한숨과 함께 살짝 웃으며 검 끝을 들어 올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촤악,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베어 내자 붉은 피가 쏟아져 흐르며 곧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천사연의 검은 눈동자에 붉은빛이 아른거렸다.
“우리 이결이가 판을 만들어 줬으니 신나게 놀아 줘야겠지.”
우서혁의 몸집이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겉에 입고 있던 새하얀 셔츠가 무참히 찢어지며 거대한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그래야 한이결 능력자도 섭섭하지 않겠죠.”
짙은 미소를 지은 박건호가 손가락을 튕기며 쇠구슬을 적진을 향해 빠르게 날려 보냈다.
콰앙, 기절한 이들을 피해 신도단에게 정확히 내리꽂힌 쇠구슬이 강하게 폭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천사연과 우서혁, 김우진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 허리를 붙잡은 채로 하태헌도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전에 내가 줬던 SS급 검이었다.
“여길… 지켜 주세요, 하태헌 씨.”
“걱정하지 마라.”
내 부탁에 하태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나와 하태헌 곁에는 전투할 수 없는 민아린과 에드워드, 권정한이 함께 있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을 천사연을 포함한 네 명이 최대한 상대해 주고 있다고는 해도 한두 명 정도는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하태헌이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했다.
하태헌을 믿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심장에 휘몰아치는 기운에 집중했다. 개입 능력이 제힘을 발휘했으니 이제는 한이결의 바람 능력이 필요했다.
거칠게 흔들리는 내 기운 사이로 한이결의 기운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함께 뒤섞여 온몸에 퍼져 나갔다.
한이결의 몸에 들어온 후부터 지금껏 쉴 새 없이 사용해 온 바람 능력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많은 양의 바람을 내보내서 싸우고 있는 천사연과 박건호, 김우진, 우서혁의 몸에 휘감았다.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가 바르르 떨렸다.
내 바람을 곧바로 알아챈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한층 더 높였다.
“끄아아악!”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천사연이 휘두른 검에 A급 능력자의 어깨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바닥에 내리꽂히는 단검을 가볍게 피해 낸 박건호가 뛰어다니며 뿌려 둔 쇠구슬을 모조리 터뜨리자 신도단 여럿이 폭발에 휩싸여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아아…!”
우서혁이 내 바람을 타고 공간 제약 없이 허공을 날아올라 적을 낚아채 커다란 발톱을 박아 넣고 찢었다.
상대방의 창끝을 허리를 꺾어 피한 김우진이 돌려 차기로 적을 넘어트리자 분신이 양 허벅지와 어깨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신도단이 누구 한 명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속속 무너졌다. 안 그래도 실력 격차가 큰 상태에서 공중을 날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니 상대는 반격조차 쉽사리 하지 못했다.
“하하, 시팔…. 개판이네, 아주.”
마지막 남은 신도단이 쓰러지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닥터가 욕설을 뱉어 냈다.
나는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서 닥터의 행동에 집중했다. 그가 또다시 아이템을 사용해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천사연 또한 닥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재미없구만. 좀 더 피 튀기는 살벌한 상황을 기대했는데.”
끼릭, 끼릭. 방독면에 끼워진 나사를 대충 손으로 돌리며 한탄하던 닥터가 이내 걸치고 있던 시꺼먼 점퍼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니까 좀 더 재미 좀 보게 해 달라고.”
“……!”
저번처럼 이동 아이템을 꺼낸 줄 알고 어깨를 흠칫 떨었던 나는 이내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붉은 버튼이 달린 작은 기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덜컹! 닥터가 붉은 버튼을 누르자마자 위에서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동시에 위험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건 뭐지?’
몬스터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사람이 가진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살기는… 대체 뭐지?
쿠웅, 쿵! 어둠 너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차례대로 떨어져 내렸다. 2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의 그것들은 사람도 몬스터도 아닌 기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헉……!”
능력을 사용한 상태로 닥터가 불러낸 존재들을 본 에드워드가 헛숨을 들이켜며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몬스터와 사람을 융합시켰어요! 어,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가…….”
몬스터와 사람의 융합. 에드워드의 말에 클럽에서 구해 냈던 최가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에 커다란 흰 날개를 달았던 최가영. 분명 C급 자가 치유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융합에 성공하고도 죽지 않았다고 닥터가 설명했었지. 그런 존재가 최가영 말고도 또 있었다고?
“몬스터와 융합하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변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침착하게 닥터가 불러낸 것들의 외관을 살폈다. 저것들과 사람의 공통점은 두 다리로 서 있다는 점뿐이었다. 머리에 돋아난 뿔이나 송곳니가 달린 이빨, 보라색 피부 등 도저히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최가영은 저러지 않았는데.
“…단순히 신체 두어 개만 붙인 게 아니라 거의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상태라서 그래요.”
“잡아먹혔다고요?”
“보통은 몬스터 핏속에 들어 있는 독성 때문에 사람이 버티지 못하고 죽겠지만, 등급이 높은 능력자라면 버틸 수 있어요. 그렇게 천천히 온몸이 모두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는 거죠.”
“하지만 어차피 몬스터가 된다면 굳이 사람과 융합할 필요가…….”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빛으로 찬란하게 차올랐다. 속이 좋지 않은지 식은땀을 흘리고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끝까지 능력을 사용한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A급 능력자 신체에 C급 몬스터가 융합되는 걸 노린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렇게 되면 몬스터의 포악한 성질과 사람의 이성이 모두 사라져서… 제작자의 명령만 들을 거예요.”
에드워드가 얼굴을 처참히 일그러뜨리며 설명을 이었다.
“본인이 원해서 저런 실험을 받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분명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텐데.”
“…….”
“살아 있는 생명체를 융합하는 짓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금지된 행위예요. 그런데 어떻게 저런…….”
쿠구궁!
에드워드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공간이 크게 흔들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끼기긱, 쇠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위에서 커다란 생명체가 마지막으로 떨어졌다.
“크륵, 크윽….”
닥터 앞에 우뚝 선 생명체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온 피부가 짙은 보라색이며 등에는 날카로운 뼈가 날개처럼 돋아나 있었다.
오른팔은 붉은 핏줄이 부풀어 올라 비정상적으로 거대했고, 오른쪽 어깨와 가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붉은 눈 수십 개가 박혀 있었다.
머리에 솟아난 두꺼운 뿔과 시뻘건 눈동자, 뾰족한 이빨과 검은 타액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을 본 나는 경악했다.
“저건…….”
“네놈들하고는 구면이겠군.”
취익, 방독면을 재차 매만진 닥터가 눈꼬리를 휘어 비릿하게 웃으며 제 앞에 서 있는 그것을 가리켰다.
“S급 신체는 쓸모가 많거든. 구하기 어려워서 이것저것 다 붙여 넣다 보니까 좀 번잡해졌지만… 어쩔 수 없지. 네놈들 죽이기에는 아주 충분할 거다.”
몬스터와의 융합으로 겉모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는 분명 강승건이었다. 그제야 강승건의 아버지인 강철우 의원이 무언가에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럼 역시… 강승건이 제 손으로 친부를 죽인 것이 확실한가. 그들이 가진 이동 아이템을 사용한다면 강철우 의원의 집 안으로 강승건을 이동시키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
‘하지만 천사연을 통해서 강철우 의원의 시체를 본 엘로힘은 분명… 강승건에게 이성이 남아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성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강철우 의원이 죽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융합을 시도했던 건가?’
그래서 끝내 저 상태가 되어 버린 거고? 닥터의 역겨움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이결.”
나와 마찬가지로 강승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천사연이 나를 불렀다.
그의 주변에 떨어진 붉은 피에서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뜨거운 열기가 훅 퍼져 나갔다. 피가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에드워드를 지켜. 그리고 김우진은 분신과 함께 한이결 곁에 있도록.”
김우진이 천사연의 명령대로 분신과 함께 뒤로 물러서 내 곁으로 왔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더라도 상황을 이해한 하태헌이 빈자리를 대신 채웠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천사연이 검을 고쳐 잡았다. 검 끝에 매달린 핏방울이 뚝 떨어졌다.
“저들은 이제 구할 수 없겠지.”
그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신도단을 지나쳐 정면에 있는 융합된 생명체로 이동했다. 나는 천사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도단은 정신 지배를 당하지 않은 상대라 해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선에서 끝냈다. 하지만 저 존재들은…….
“죽여야겠군.”
천사연이 차마 잇지 못한 말을 하태헌이 대신했다. 나는 에드워드를 등 뒤로 보냈다.
“보지 마세요.”
체격이 커져서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면 끔찍한 광경으로부터 에드워드를 온전히 가려 줄 수 있었다.
나는 멈추었던 바람을 다시 끌어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내 바람을 몸에 두르고 뛰쳐나가는 천사연과 하태헌, 박건호, 우서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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