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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61)화 (261/394)

261화

66. 갈망한 끝에 다다른 비극은

“결정을 내리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넋을 놓은 채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천사연이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잠시 동안 잭나이프와 나를 번갈아 살피던 에드워드가 씁쓸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 잭나이프는 열쇠예요.”

“열쇠?”

“네. 이 공간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이 열쇠를 사용하는 것이 출구를 가동할 단 하나의 조건이에요.”

잭나이프가 열쇠라고? 하지만…….

‘잭나이프는…….’

끝내 권세현을 죽게 하는 원인이었다. 그게 열쇠라니. 단 하나의 조건이라니.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열쇠는 어떻게 해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싸늘하게 내려앉은 침묵을 뚫고 하태헌이 무거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이 호텔을 포함해서 공간에 모든 것은 선으로 채워져 있어요. 제작자가 만들어 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죠.”

에드워드의 능력은 제작 아이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그의 도움으로 이 공간을 빠져나갈 단서를 찾아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회색 선을 찾아냈고… 그걸 따라가서 출구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출구가 열리는 조건’을 알 수 없어서 나갈 수 없었는데…….”

말을 하던 에드워드가 잠시 멈추고 망설이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한이결 씨가 가져온 이 잭나이프와 가게 주인분을 만나고 나서 확신했어요. 잭나이프와 가게 주인분에게는 선이 보이지 않고 대신 빛이 깃들어 있습니다.”

“빛이라면…….”

“잭나이프 칼날에 깃든 빛과 가게 주인분 몸에 있는 빛이 정확히 맞물려야 해요. 마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워 넣는 것처럼요.”

그 얘기만으로도 피가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온몸을 덮쳐 왔다. 나는 굳은 혀를 움직여서 겨우 말을 꺼냈다.

“몸에 있다는 그 빛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

에드워드가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답했다.

“명치요. 그곳을… 이 잭나이프로 찌르셔야 해요.”

불길한 예감이 정확하게 적중했다. 일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현기증이 일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어지러운 감각을 버텨 내며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인지 명치 부근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왜 갑자기 공간이 무너져 내리는지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건 확실해요.”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으로서는… 30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거예요.”

명치의 통증이 점차 강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잭나이프를 바라봤다.

그 아이와의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며 죽기 직전까지도 후회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권세현만이라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왔다.

죽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그래서 그 아이와의 약속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켜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나는 느릿하게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에드워드 손에 올려진 잭나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식은땀으로 차갑게 식은 손에 억지로 힘을 주자 덜덜 떨리는 것이 선명했다.

‘내게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어.’

시선을 올리자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모두의 얼굴이 보였다. 공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에드워드의 설명을 다들 들었을 텐데, 그 누구도 재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내릴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포기를 하겠어.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굳히자 귓가에 쿵쿵 울리던 심장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몽롱하던 정신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출발하죠.”

“한이결 씨…….”

내가 잭나이프를 가져가자 잔뜩 긴장한 채로 서 있던 에드워드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것을 외면하며 모두에게 단호히 말했다.

“이미 이곳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요.”

프라우스 신도단이 활개를 치고 있을 바깥 상황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라져서 클로에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선택을 내렸다.

“바로 다이스로 가요.”

***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호텔 밖으로 빠져나왔다. 거리는 내가 아까 창문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물이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남자나 여자, 어린아이가 액체로 변해 녹아내리는 것을 보는 일은 정말로 끔찍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라지고 끝나는 겁니까?”

매슥거리는 속을 겨우 억누르며 에드워드에게 묻자 그가 제 또래의 여자아이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 공간의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가짜에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 있지 않은 존재라고는… 할 수 없어요.”

아무리 만들어진 가짜 세계라고 해도 이들에게는 이곳이 현실이었다. 여기서 숨을 쉬며 제 몫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을 무너뜨린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세계가 사라진다. 발밑에 깔린 수많은 생명을 밟으며 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가게가……!”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다이스의 상태를 본 에드워드가 놀라 외쳤다. 건물은 벌써 옥상 부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들어가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어냈다. 평소라면 저마다 인사를 보내오며 시끌벅적했던 가게 안이 지금은 숨이 막혀 올 정도로 조용했다.

덜컹, 쨍그랑!

그때,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떨어트린 박주원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내 옆에서 그 장면을 본 김우진이 짧게 휘청였다.

박주원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하나둘 빠르게 사라졌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우리와 함께 떠들고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던 사람들이며, 권세현을 믿고 따르는 소중한 동생들이었다.

짧게 심호흡을 한 후에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1층 홀 중앙, 그곳에 무릎을 꿇은 채로 사라지고 있는 고동주를 품에 안은 권세현이 보였다.

얼굴 반절이 녹아내린 고동주의 눈동자는 이미 목숨이 끊겨 초점 없이 흐릿했다. 그렇게 남은 몸도 모조리 액체가 되어 흘러내린 고동주는 곧 흔적 없이 사라졌다. 넋을 놓고 그것을 지켜보던 권세현이 창백한 낯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그 앞에 섰다. 쥐고 있는 잭나이프가 너무나도 무거웠고, 아까부터 불편하던 명치는 이제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권세현.”

내 부름을 들은 권세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와 시선을 맞춘 그의 검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는데…….”

이 공간은 내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다. 만약 내가 권세현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뒀다면… 그가 박석재에게 배신당해서 죽는 순간, 출구도 정상적으로 열렸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권세현이 나와 다른 결과를 맞이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가 죽지 않도록 도왔다. 박석재를 막고 잭나이프를 빼앗으며 미래를 바꿨다.

죽어야 할 권세현이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됐으니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당연했다.

권세현은 결국 나처럼 여기서 죽어가겠지. 오히려 내 욕심 때문에 제 소중한 이들이 사라지는 일을 겪게 된 셈이었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

한참을 나만 보던 권세현이 천천히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가 곧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나타난 이후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자주 느꼈고… 분명히 살아 있는데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았지. 예전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하는…….”

거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하던 권세현이 나를 향해 지친 미소를 지었다.

“한이결,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그러니까…….”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권세현에게 넌 만들어진 존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야. 너는… 너는 그저…….

거기까지 생각하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잭나이프를 쥔 손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새하얗게 질렸다.

이 가혹한 현실에서 모든 걸 내던지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못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어. 우리가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야 해, 권세현.”

죽여야 한다는 말에도 권세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눈만 깜빡였다.

“네가 반항을 하거나… 겁을 먹고 도망쳐도 소용없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너를 죽이고 이곳을 나갈 거다.”

잠자코 듣던 권세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네가 살린 목숨이야.”

일정 거리를 두고 나와 마주 선 그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그날 이후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아… 나는 그제야 권세현이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숨이 막혀 오며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아득한 무력감이 덮쳐들었다.

“…….”

어딘가에서 몰려온 한기가 몸을 집어삼켰다. 하아, 내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가 귀에 가득 차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권세현을 죽이기 위해 몇 걸음 다가가는 그 짧은 사이에 몇 번이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권세현의 표정이 점차 슬픈 기색을 담으며 처참히 일그러졌다.

딱딱하게 굳은 팔을 들어 올리자 날카로운 잭나이프 끝이 내 손을 따라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이대로 권세현을 찔러야 한다. 최대한 고통 없이 바로 죽을 수 있도록 망설이지 않아야….

‘싫어…….’

무심코 든 솔직한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헛웃음이 나올 만큼 대책 없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도망쳐 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데.

이를 악물고 권세현을 향해 잭나이프를 휘두르려는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강하게 팔을 잡아 왔다.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손길이었다. 몸이 뒤로 크게 휘청이면서 눈에 가득 차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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