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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58)화 (258/394)

258화

“이… 좆만 한 새끼가, 시팔…….”

얼굴을 가격당한 충격으로 박석재가 잭나이프를 놓치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제대로 맞았는지 콧대가 부러져 코피가 쏟아져 내렸고 광대가 붉게 부어올랐다.

“혀, 형님!”

“끄악!”

박석재를 따라 운전자로 따라온 네 명이 급히 한이결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김우진에게 모조리 가로막혔다. 빠르고 간결한 몸놀림으로 네 명을 상대하는 김우진을 확인한 한이결이 느리게 손을 폈다.

날카로운 검날에 손바닥이 깊게 베여 핏물이 쉬지 않고 솟구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와 피가 섞이는 걸 응시하던 한이결이 반대편 손으로 잭나이프를 쥐었다.

“저를 너무 무시하시네, 석재 형님. 제가 옆에 있는데 그런 수가 통할 것 같습니까?”

쓰게 웃은 한이결이 권세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뭐?”

“배신자입니다. 죽일까요?”

담담하게 나온 말에 권세현의 눈꺼풀이 잠깐 떨렸다. 그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자 주변은 빗소리만 가득 채워졌다.

모두 처리된 경성과 사청화, 김우진에게 제압당한 운전자 네 명. 여기저기 찢어지고 멍든 얼굴을 하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동주와 한이결을 바라보는 그의 사람들. 마지막으로 초조한 기색으로 도망칠 구석을 찾는 박석재를 본 권세현이 쥐어짜 내듯 대답했다.

“…아니. 제압해.”

그 말에 한이결이 잠시간 권세현과 시선을 맞추었다. 마치 ‘후회하지 않겠냐’고 묻는 듯한 그 표정에 권세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박석재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도 굳이 쫓지 않던 한이결은 가게 직원들에게 티 나지 않도록 기운을 조금 끌어 올려 옅은 바람을 만들어 냈다.

촤아악, 바람이 발목을 잡아 묶자 중심을 잃은 박석재가 질척한 땅 위를 길게 미끄러지며 처참하게 넘어졌다. 이마를 정통으로 땅에 부딪힌 그가 곧장 일어서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동안 느긋하게 걸어간 한이결이 그의 등을 밟았다. 그리고,

“으, 끄아아악! 아악!”

잭나이프가 허공을 갈라 박석재의 오른손 중앙을 그대로 꿰뚫었다. 손을 관통해서 바닥에 강하게 꽂힌 잭나이프에 박석재가 고통이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흙탕물에 붉은 핏물이 번져 나갔다.

어느새 비는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쏟아졌다. 침묵이 내려앉은 공사장엔 빗소리만이 강하게 울려 퍼졌다.

“하…….”

허탈함이 담긴 실소를 지은 한이결이 멀쩡한 손으로 잔뜩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마를 지나가는 흰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한이결.”

차마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 권세현이 먼저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비를 뚫고 가까이 걸어오는 권세현에게로 시선을 돌린 한이결이 미소를 띤 상태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명령대로 제압했습니다.”

“……그래.”

“배신자도 잡고 경성도 일단은 정리가 됐네요.”

“그렇네.”

“아까 차에서 분명 그러셨죠?”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다른 것을 좀 해 보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하듯이 여행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해 보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냐고.

“고민해 보겠다고 하셨잖아요.”

조곤조곤하게 다정히 흘러나오는 음성에 권세현이 두 눈을 깜빡였다.

“꼭 제대로 해 보세요, 그 고민. 지금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가을비가, 제 앞에 있는 한이결이, 그가 하는 말이. 모든 게 어딘가 아득하게 꿈처럼 느껴졌다.

“사장님, 너무 재미없게 살아서 앞으로 뭘 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꽤 재밌어질 것 같거든요.”

“…….”

“과거는 이제 묻어 두고요.”

아, 권세현은 가슴속에서 꾸역꾸역 크기를 키워 나갔던 무언가가 탁 터지는 동시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래. 그랬다. 그래서 자신이 ‘어비스’에서 봐 왔던 한이결과는 다른 것이었다.

확신이 드는 그 순간에 권세현의 기분은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바닥 깊은 곳까지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기쁨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이 해일처럼 몰려와 제 몸을 덮쳤다.

혼란으로 제정신을 차리기 힘든 강렬한 감각에 심호흡한 권세현은 억눌린 목소리를 하고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럴게.”

무엇 하나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권세현이 한이결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고민해 볼게…….”

***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내 손을 본 민아린이 어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쳐 오겠다고 선포를 하고 간 사람을 혼낼 수도 없고.”

“제가 언제 그런 선포를 했나요…….”

“다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최대한 조심해 보겠다고 말한 것 같…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사과하자 민아린이 그제야 미간을 폈다.

“그래도 기본적인 치료가 잘되어 있네요. 상처에 빗물이 들어가서 좀 걱정했는데.”

“네. 소독도 마쳤고 방수 밴드도 붙어 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동주가 씩씩거리며 해 준 치료였다. 겁도 없이 잭나이프를 맨손으로 잡냐느니, 그러다가 손가락 날아가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냐느니, 어마어마하게 잔소리를 해 댔지.

밴드를 떼어 내자 날에 베인 상처가 드러났다. 피는 어느 정도 멈춰서 더는 흐르지 않았지만, 워낙 깊게 베여 핏물이 조금씩 새어 나왔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피익, 픽…….

피 냄새가 나자 내 허벅지 위에서 몸을 바싹 붙이고 있던 여우가 낑낑거리며 코끝을 움찔거렸다.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민아린에게 물었다.

“그럼 바로 능력을 쓸 수 있습니까?”

제일 길고 깊게 베인 손바닥 중앙과 위아래로 자잘하게 찢어진 상처를 꼼꼼히 살핀 민아린이 안도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이 정도는 해도 돼요.”

즉시 내 손바닥 위로 자신의 손을 올린 민아린이 능력을 사용했다. 새하얀 빛과 함께 통증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1분이 지난 후에 다시 드러난 손바닥은 상처가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매번 신세를 지네요. 감사해요, 민아린 씨.”

“평생 신세 져도 되니까 아픈 거 참지 말고 꼭 저한테 말해 주세요.”

“하하…….”

평생이라니. 어째 장난이 아니라 진심 같은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색하게 웃고만 있자 마침 씻고 나온 박건호가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로 다가왔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이 정도입니다, 민아린 힐러. 나이프를 휘두른 남자와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조금만 늦었으면 베인 거로 안 끝났을 겁니다.”

“날을 잡는 거로는 부족하고… 아예 손바닥으로 막아야 했겠죠.”

박건호의 말에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박석재 손바닥을 잭나이프로 꿰뚫은 것처럼 내 손바닥도 똑같은 처지가 됐을 거다.

그렇게 해서라도 권세현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러고 보니 한이결. 박석재라고 했던가? 그 남자가 갖고 있던 잭나이프를 받아 온 거로 아는데.”

“맞습니다.”

나는 따로 챙겨 놨던 잭나이프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환한 불빛 아래에서 자세히 보니 보통 잭나이프보다 날이 크고 길었다.

‘이런 거로 명치가 찔렸으니 죽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잭나이프를 괜히 두 개씩 들고 다닐 리가 없으니 과거에 나를 죽였던 무기도 같은 것이 분명했다.

-네가 가지고 가.

박석재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꽂았던 잭나이프를 뽑은 권세현이 내게 내밀었다. 굳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만한 것도 아니라서 조용히 받아 뒀다.

“박석재와는 꽤 가까운 사이로 보이던데. 괜찮은 건가?”

박건호는 나와 시선을 맞춘 채로 물었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챈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네. 괜찮을 겁니다.”

비에 흠뻑 젖어서 씻으러 갔던 이들이 차례로 돌아왔다. 내 손이 모두 치료된 것을 확인한 우서혁이 입을 열었다.

“큰 문제 없이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만,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공간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늦어질 것 같습니다.”

확실히… 권세현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일을 정리했으니 이제는 슬슬 공간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 뒤로도 출구를 몇 번 더 찾아갔던 거로 아는데… 뭔가 알아낸 게 없습니까?”

매일같이 가게로 출근을 하는 나와 달리 이틀에 한 번씩 출근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에드워드와 짝을 맞춰 출구를 보러 가고는 했다. 그러니 에드워드가 뭔가를 더 발견했다면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질문해 본 건데, 다들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에드워드 제작자도 상심이 커 보이더군.”

“저…….”

박건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호텔 방문이 열리며 에드워드가 작은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새벽 5시가 되어 가는 늦은 시간이라 에드워드의 등장이 제법 의외였다.

“에드워드 씨, 벌써 일어나신 겁니까?”

“오늘 중요한 일을 하신다고 하셔서 걱정돼서요.”

쪼르르 방 안으로 들어온 에드워드가 헤헤 웃으며 우리를 둘러봤다.

“다친 곳 없어 보여서 다행이에요.”

에드워드가 오기 전에 민아린에게 치료를 받아 두길 잘했네. 몬스터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과 싸우러 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심으로 걱정해 준 에드워드가 고마웠다.

마주 웃어 주는 내게 가까이 걸어오던 에드워드가 돌연 눈을 크게 뜨더니 어깨를 흠칫 떨었다.

“에드워드 씨?”

“어… 잠깐만요, 그거…….”

순식간에 달라진 분위기에 놀란 내게 에드워드가 굳은 얼굴을 하고서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한이결 씨. 지금 갖고 계신 거… 뭐예요?”

갖고 있는 거? 잭나이프를 말하는 건가?

“이번에 우연히 얻게 된 잭나이프입니다.”

나는 에드워드가 다치지 않도록 접어서 건네줬다. 복잡한 표정으로 그걸 받아 든 에드워드의 두 눈동자가 곧 빛무리로 환하게 차올랐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잭나이프를 살펴본 에드워드가 내게 말했다.

“…이거 필요하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시간을 들여서 더 분석해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아무래도 출구와 관련이 있는 물건 같아요.”

“예?”

나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에드워드 손에 올려진 잭나이프로 꽂혔다. 박석재가 갖고 있던 잭나이프가 출구와 관련이 있다고?

‘대체 왜?’

박석재는 그저 한 명의 배신자일 뿐인데. 혼란으로 엉켜 가는 머릿속에서 나는 문득 며칠 전에 에드워드가 내게 했던 부탁을 떠올렸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게 주인분 한 번만 더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권세현을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던 에드워드. 본래라면 권세현을 죽였을 잭나이프.

“…….”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서늘해진 공기를 느끼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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