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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57)화 (257/394)

257화

65. 한이결과 권세현

어둠이 깔린 도로를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쉬지 않고 달렸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야경 불빛이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현저히 줄어들었다.

묘한 침묵이 내려앉은 차 안에서 한이결이 시선을 돌려 옆에 앉아 있는 권세현을 불렀다.

“세현 형님.”

“왜?”

조수석에 박석재가 앉아 있어서 평소처럼 부를 수가 없었다. 앞에 앉아 있는 박석재의 부하인 운전자와 박석재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이번 일을 끝내고 나면… 뭐 할 겁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권세현도 고개를 돌려 한이결을 바라봤다. 차 안이 어두워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뭘 뭐 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가게 관리해야지.”

“그리고요?”

“그리고? 그리고… 경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고민해 봐야 하고. 이번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완벽하게 끝낼 수 없으니까.”

잠자코 대답을 듣던 한이결이 픽 웃더니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진짜 시시하네요.”

“원래 시시하게 살았어.”

“시시하게 살았으니까 다른 걸 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차창으로 노란 가로등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난 한이결의 눈동자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함이 어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권세현도 방금과는 달리 조금은 진지한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다른 거라고 해 봤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여행이나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그런 것들 있잖아요. 남들도 다 하는 거.”

“내가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디 있냐.”

“해 볼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조차 안 하는 거잖아요.”

단호한 지적에 권세현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거창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돼요. 쉬는 날에 한강에 바람 쐬러 간다거나 형님이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책을 더 찾아 읽는다거나… 그런 거요.”

한이결은 잊을 만하면 이랬다. 거침없이 제 속내를 파헤치고 아프게 찔러 왔다.

그런 행동이 처음에는 못내 불쾌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으면 그대로 무시했을 텐데 한이결은 그게 안 됐다.

“그래야 살맛이 좀 나지 않겠습니까? 옥상에 올라가서 청승 떠는 건 좀 그만하고요.”

“내가 어지간히도 재미없게 사는 것 같나 보네. 이런 얘기를 다 하고.”

“그러게요. 저도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요. 괜한 참견 같으면 그냥 흘려들어 주세요.”

“뭐야. 실없게.”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님은 매번 볼 때마다 가게에서 일만 하고 있으니까. 흘러가는 시간이 좀 아까울 것 같아서요.”

“별게 다 아깝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권세현은 아까부터 술렁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했다.

그게 가능할까. 다른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게.

“…이번 일이 잘 끝나면 고민해 볼게.”

하지만… 지금껏 그를 믿어서 손해 볼 건 없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고려해 보겠다는 권세현의 답에 한이결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좋네요.”

그 말을 끝으로 한이결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의 동그란 뒤통수를 잠시간 응시하던 권세현도 차창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유리가 조금 젖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비가 오나?’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쏟아지진 않는 듯했다. 박석재가 짧은 헛기침을 했다.

“형님, 이제 도착합니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맞은편에 철판이 높게 세워진 공사장 입구가 나타났다.

“어떡할까요?”

“그대로 안까지 차로 밀고 들어가.”

“예. 계속 들어가.”

운전자가 박석재의 명령을 듣고 속력을 조금 더 높였다. 막힘없이 공사장 내부로 들어간 차가 곧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빗물에 살짝 젖은 흙을 권세현이 밟고 섰다.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먹구름이 넓게 퍼진 흐릿한 하늘과 뿌연 안개로 주변이 회색빛이었다. 뒤이어 차 헤드라이트를 끄지 않은 채로 한이결과 박석재, 운전자가 내렸다.

부우웅, 앞장서서 공사장으로 들어선 차의 뒤를 따라 가게 직원들과 한이결의 사람들이 탄 차가 줄지어 따라왔다. 차가 멈추자마자 헐레벌떡 내린 고동주가 재빨리 권세현의 곁에 붙어 섰다.

“형님.”

“고동주, 저길 봐.”

자신과 다른 차를 타고 온 권세현이 걱정됐는지 몸부터 살피던 고동주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옅은 안개 너머로 천천히 모여들고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저마다 손에는 야구 배트나 쇠파이프, 나이프 같은 무기가 들려 있었다.

“경성 놈들입니다.”

“사청화도 있을 겁니다.”

고동주의 말에 한이결이 걸어오며 덧붙였다. 마치 자신들이 오는 것을 기다린 것처럼 빠르게 모여드는 모습에 권세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습격을 눈치채고 있었군.’

사방에서 적이 몰려와 퇴로를 막았다. 숫자도 자신이나 한이결이 짐작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 정도면 70명이 훌쩍 넘어 보였다.

“제 옆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세요.”

권세현의 곁에 바싹 붙어 선 한이결이 눈짓을 보내자 김우진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이 직원들과 함께 둥근 형태로 대열을 갖췄다. 중앙에는 권세현과 한이결, 박석재, 그리고 김우진과 운전자 넷이 남았다.

“혀, 형님. 숫자가 들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상황을 보던 박석재가 식은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을 관자놀이에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을 한 권세현이 한이결과 시선을 마주한 상태로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래. 괜찮을 거다.”

70명이 넘어가는 적에 비해 권세현 쪽은 직원 23명과 한이결, 그리고 그의 사람 다섯 명. 총 28명이었다.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이길 수 없는 격차라고… 박석재는 생각할 거다.

권세현은 차 헤드라이트에 번뜩이는 칼날을 보고도 여유롭게 서 있는 천사연과 하태헌, 박건호, 우서혁을 차례로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같이 싸워 준다면… 한이결의 말대로 이길 수 있었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두에 나가 있던 고동주의 우렁찬 외침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저번 가게 습격 때보다 엮인 사람 수도 많고 빈 공사장이라는 장소 덕분인지 시작부터 싸움이 제법 격렬했다.

“끅, 크아악!”

“아아악! 파, 팔이…!”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이는 한이결의 사람들이었다.

필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절제된 몸놀림의 우서혁과 어디서 주웠는지 피가 묻은 쇠파이프를 신나게 휘두르는 박건호, 거기에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천사연과 하태헌까지 더해지니 경성과 사청화는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얼굴이나 급소를 얻어맞고 단번에 기절하거나 신체 일부분이 부러져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게 몇 분째 지속되자 자신만만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미친놈들…….”

그 기가 막힌 꼴을 보던 고동주가 코피를 손등으로 대충 비벼 닦으며 중얼거렸다. 가게에서 싸울 때 이미 한번 봐 놓고도 영 믿기지 않았다.

“야이, 시팔! 쫄지 말고 한 번에 덤벼, 병신 새끼들아! 여럿이 덤비라고!”

기세에 밀려 섣불리 덤비지 못하는 제 부하들의 모습에 경성 관리자 중 한 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던 적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며 대열을 변경했다.

가장 많은 상대를 쓰러트린 박건호와 우서혁, 천사연, 하태헌을 노리고 대여섯 명씩 접근을 해 왔다. 단체로 덤벼서 네 명부터 쓰러트리겠다는 속셈이었다.

“형님, 이거 정말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까진 어떻게 버텼지만 이제는…….”

박석재가 아까보다 훨씬 창백해진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권세현은 제 뒤에 있는 박석재와 운전자들을 둘러싼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아니. 난 끼어들지 않을 거다. 지금도 충분해.”

권세현이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한이결의 요청 때문이었다. 직원들이 위험해지지 않는 이상 권세현도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대답을 들은 박석재의 낯빛이 한층 더 나빠졌다. 하지만 권세현은 박석재보다는 한이결에게 더 관심을 집중했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싸움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였다.

으아악! 권세현이 한이결을 살피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우르르 달려드는 경성을 상대로 양손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무기를 가뿐히 피해 낸 하태헌이 발을 휘두르자 적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저 멀리까지 날아가 처박혔고, 뒤통수에 쇠파이프를 갈겼다가 머리 모양대로 구겨진 쇠파이프를 보고 사색이 된 사청화를 우서혁이 심드렁한 얼굴로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천사연이나 박건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열을 갖춰서 단체로 달려들어도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결과는 똑같았다.

“시발…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싸움을 지켜보던 박석재가 땀에 젖은 손바닥을 바지춤에 쓱쓱 닦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어느새 근처를 가득 메웠던 경성과 사청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절하거나 다친 이를 제외하면 제대로 서 있는 숫자가 10명도 채 안 됐다.

끝이 보이는 상황에 권세현은 그제야 잔뜩 굳어 있던 어깨를 조금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뼈가 부러진 상대에 반해 직원들은 다들 큰 부상 없이 비교적 멀쩡했다.

어디로 보나 완벽한 자신들의 승리였다.

“시발, 시발…….”

손톱을 잘근거리며 부릅뜬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박석재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혀, 형님. 죄송합니다.”

“뭐?”

“어, 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시발, 저는…….”

무언가를 쥔 채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 박석재가 순식간에 잭나이프를 빼 들어 권세현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아니, 꽂아 넣으려 했다.

“……!”

옆에서 새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와 잭나이프의 검날 부분을 망설임 없이 움켜쥐었다. 뒤늦게 제 배를 향해 있는 잭나이프를 본 권세현이 헛숨을 들이켜며 주춤 물러섰다.

쏴아아, 빗소리 사이로 박석재가 헐떡이는 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잭나이프를 맨손으로 막아 낸 한이결을 보는 그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검날을 쥔 한이결의 손에서 새빨간 핏물이 흘러나왔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시선으로 잭나이프를 내려다보던 한이결이 허탈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조금은 믿었는데.”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미래가 바뀌고, 권세현이 달라진다 해도 박석재는 변하지 않았다.

“시, 시바알! 이거 당장 놔! 놓… 커억!”

어마어마한 악력에 잭나이프를 뺏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서서 버럭 소리를 지르던 박석재가 한이결의 능숙한 돌려차기에 옆얼굴을 강하게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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