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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55)화 (255/394)

255화

연행당하는 범죄자처럼 양팔이 붙잡힌 채로 호텔 방에 질질 끌려온 나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민아린 앞에 강제로 앉혀졌다.

“이결 씨.”

“네…….”

피이익, 피익! 픽! 피익!

짜증을 담아 쉬지 않고 울어 대는 여우를 품에 안으며 얌전히 대답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자 싸늘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미소를 짓고 있는 천사연과 박건호, 권정한도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내가 변명도 하지 못한 채로 눈치만 보자 민아린이 대놓고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하고 혼낼게요. 모자랑 마스크 벗어 봐요.”

“음…….”

그게 더 무서운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들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심해 보입니까?”

“이결 씨… 정말…….”

답답해 죽겠다는 민아린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고만 있자 곁에서 어쩔 줄 모르며 서 있던 에드워드가 인벤토리에서 작은 거울을 하나 꺼내서 내게 건네줬다.

그걸 고맙게 받아서 직접 얼굴을 확인해 봤다. 아까와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멍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찢어진 상처에는 그새 피가 흘러서 밴드가 붉게 젖어 있었다.

‘개판이긴 하네.’

하긴, 다른 놈도 아니고 유시혁한테 맞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가. 거울을 든 손을 여우가 씩씩거리며 제법 세게 깨물어 왔다.

“보기에는 이래도 별로 아프진 않습니다.”

“그게 지금 이결 씨가 할 소리예요?”

“앗, 죄송합니다.”

역시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민아린이 멍든 내 얼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고 능력을 사용했다. 화악,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며 욱신거리던 고통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다시 거울을 본 나는 평소와 같은 멀끔한 얼굴로 돌아온 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다친 곳을 완벽하게 고쳐 주는 치유 능력은 언제 봐도 최고라니까.

“다른 곳은 괜찮아요?”

“예. 멀쩡합니다.”

“멀쩡하기는.”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천사연이 짜증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불쑥 끼어들었다.

“복부 근처도 꽤 불편해 보이는데.”

“…그럴 리가요.”

하여간 쓸데없이 눈썰미만 좋아서. 아닌 척 발뺌을 했지만 민아린의 눈초리에는 이미 의심이 깃들었다.

“그럼 상의를 좀 들어 보지 그래. 내가 착각한 거면 순순히 사과하지.”

“…….”

천사연의 이어지는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배는 나도 아직 못 봤는데.

‘그래도 한 대만 맞았으니까 얼굴보다는 괜찮지 않을까?’

그냥 붉은 자국 정도만 남아 있고 멀쩡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베이거나 찔린 상처는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머뭇머뭇 입고 있는 셔츠의 밑단 부분을 잡고 배가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

“…….”

그렇게 시퍼런 멍이 넓게 퍼져 있는 복부가 훤히 드러났다.

망했다…. 또다시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건… 생김새를 보아하니 발로 차인 것 같은데.”

“멍이 제법 짙게 든 걸 보면 힘이 꽤 좋아 보입니다.”

“얼굴을 주먹으로 맞은 거로도 모자라 배를 발로 차이기까지 하고… 참 골고루 맞았군.”

배의 상태를 본 박건호와 우서혁, 천사연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남의 몸 보면서 뭐 하는 거야.

“왜 자꾸 맞고 돌아오는 거예요, 이결 씨? 차라리 때려서 고소를 당하세요.”

“아니… 그건 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민아린의 모습에 급히 말을 바꿔서 사과했다.

“그거 좋군. 어차피 고소 비용은 마스터가 내줄 거야.”

“레퀴엠 소속이 된다면 그깟 고소 비용쯤이야 얼마든지.”

“한이결. 로헌도 고소 비용쯤은 충분히 대 줄 수 있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은 언제든 패고 다녀도 된다.”

“뭐라는 겁니까… 고소도 안 당할 거고 길드도 안 갑니다.”

왜 또 이상한 거로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민아린에게 치료를 받아 멀끔해진 배를 보고 옷을 내리며 말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합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누가 때린 건데?”

김우진이 속상한 감정이 짙게 묻어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더는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터라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번에 가게를 찾아왔던… 그 사람이야.”

“손버릇이 굉장히 좋지 않은 남자군.”

박건호가 혀를 차며 한소리를 했다. 손버릇이… 나쁘긴 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저도 순순히 맞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천사연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경성이라고 했던가. 그쪽 상황에 관해서는 새로 알아낸 게 있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려던 얘기였다. 나는 아까 나가서 겪었던 일을 차근차근 꺼냈다.

“짐작했던 대로 경성이 이용하던 모텔 근처에 일당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다이스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닷새 후 이른 새벽에 공사장으로 다시 모인다고 합니다. 몇 명이 모이는지는 모르지만, 어림잡아 60명 정도일 겁니다.”

어제, 실장은 고동주에게 나흘 후에 경성과 사청화가 모일 거라고 실토했었다. 날짜를 따져 보면 그들은 기존 계획을 이틀 뒤로 미뤄서 그대로 진행하려는 속셈이었다.

“가게 주인도 이 내용을 알고 있나?”

“네. 아까 사무실에 들렀을 때 설명했습니다.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 권세현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겁니다.”

내 말에 하태헌이 입가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적으로도 열세인 데다 가게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간 상황만 복잡해질 테니 확실히 선공이 나아 보이는군.”

“맞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자세한 건 내일 출근해서 권세현과 다시 한번 상의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그 사람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래.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겠군.”

어느새 호텔 창밖에는 아침 해가 높게 떠 있었다. 씻으러 욕실로 향하는 내게 민아린이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 다친 곳은 없으신 거죠, 이결 씨? 나중에라도 생기면 꼭 말씀 주셔야 해요.”

“그럴게요.”

웃음과 함께 대답하고 욕실로 들어섰다. 세면대 위 거울로 깨끗해진 한이결의 얼굴이 나타났다. 붙이고 있던 밴드를 떼어 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을 벗었다.

“으음…….”

속옷까지 모두 벗어 낸 나는 왼쪽 골반부터 허벅지로 길게 새겨진 짙은 피멍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유시혁에게 멱살이 잡혀 바닥으로 내던져졌을 때 부딪힌 부위였다.

역시 여기도 멍이 들었구나. 배보다 훨씬 아파서 각오는 했지만… 내 예상보다 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심해져서 난감했지만,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보일 만한 부위가 아닌 터라 그냥 숨겼다. 심지어 민아린은 여자인데.

‘어쩔 수 없지, 뭐.’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닌 척 연기해야겠다. 이런 건 보기에만 아파 보이지, 통증은 하루 이틀만 잘 쉬면 금방 괜찮아진다.

샤워를 끝내고 품이 넉넉한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은 뒤에 욕실을 나온 나는 바로 앞에 서 있는 김우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뭐, 뭐야. 김우진?”

“…….”

“다른 사람들은?”

그새 다들 어디 갔는지 불 꺼진 방에는 김우진 혼자만 남아 있었다.

“…마스터와 팀장님은 에드워드 제작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로헌 부마스터는 약국에. 나머지는 씻거나 자러 갔어.”

“약국? 약국은 왜?”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김우진이 입을 열었다.

“한이결, 솔직하게 말해 줘.”

“어?”

“다리. 아픈 거 맞지?”

이어지는 말에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의자에 일어나서 욕실까지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그 짧은 순간을 보고 알아챈 건가?

“조금 불편하긴 한데, 그냥 삐끗한 거라 딱히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야. 금방 괜찮아질… 읏!”

표정 변화 없이 내 대답을 듣던 김우진이 돌연 내 허벅지를 손으로 잡아 왔다. 골반 바로 아래, 다친 부위를 정확하게 눌러 오는 그 손길에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픈 거 맞잖아.”

“아니, 그렇게 갑자기 누르면… 으…….”

김우진이 또다시 손에 힘을 줘서 허벅지를 꾹 눌렀다. 자비 없는 손길에 눈물이 절로 핑 돌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알았어, 미안. 사과할 테니까 그만 눌러.”

힘에 밀려 내가 휘청이자 김우진이 팔로 허리를 감아 몸을 받쳐 줬다.

“민아린 힐러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위라고 생각해서 로헌 부마스터가 약을 사러 간 거야.”

“…눈치챈 사람이 누구누군데?”

“민아린 힐러는 몰라. 에드워드 제작자도. 다른 사람들은 아마 알 거야.”

그나마 두 명이라도 몰라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김우진이 눈가를 좁히며 딱딱한 말투로 나를 타박했다.

“한이결… 숨기지 말라고 했잖아.”

“이런 부위를 어떻게 말하냐.”

“그럼 더더욱 알려야지. 민아린 힐러에게 치료도 못 받는데, 약도 안 바르고 그대로 두려고?”

“…….”

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을 잘해?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은 나는 시선을 피하며 김우진에게서 몸을 뗐다. 그때 타이밍 좋게도 하태헌이 돌아왔다.

“멍이나 타박상에 바르는 약하고 큰 밴드, 파스와 진통제다.”

“감사합니다.”

약국 마크가 그려진 커다란 흰 봉투에서 약이 끊임없이 나왔다. 당장 필요한 약부터 받아 챙기자 하태헌이 아주 당연하다는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벗어라. 약 발라 줄 테니.”

“예? 아뇨… 부위가 조금 그래서…….”

“상관없으니까 벗어.”

내가 상관있는데요… 심지어 옆에 김우진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걸 들은 김우진이 다급히 외쳤다.

“나도! 나도 해 줄 수 있어.”

“아니. 내가 하겠다.”

“둘 다 필요 없어요.”

고개를 저으며 약을 품에 챙긴 채로 헐레벌떡 욕실로 도망쳤다.

두 놈 다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어서 무서웠다. 닫히는 욕실 문 너머에서 하태헌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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