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흐음…….”
웃으며 악수를 하는 내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박석재가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형님이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친구네요.”
“그런가?”
그 말에 권세현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가뜩이나 무겁게 내려앉은 가슴에 짜증까지 더해졌다.
물론 한이결은 외모가 예쁘장하니 권세현과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사실을 다른 사람 입으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박석재, 저 새끼는 본인도 험악한 생김새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이제야 보인다.’
그때 당시에는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조용히 받아들여야 했던 내 상황이.
나는 속으로 쓰게 웃으며 자꾸만 힘이 들어가는 미간을 억지로 폈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는 권세현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올려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 보이나요? 전 우리 세현 형님하고 제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발랄하게 꾸며 낸 목소리로 얘기하자 권세현과 박석재가 나란히 당황했다. 차마 어깨에 올라온 내 팔을 쳐 내지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뜬 권세현을 보며 이어 말했다.
“사실 사정이 있어서 돈이 급한 상황이었는데 형님 덕분에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거라서요. 어찌나 고마운지. 게다가 성격도 잘 맞고요. 그렇죠, 형님?”
평소에 사용하던 사장님 호칭도 집어 던지고 팔에 힘을 주어 그를 은근히 내리눌렀다. A급 힘으로 어깨를 짓눌린 권세현이 나랑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급히 대답했다.
“아, 음. 맞아. 편한 동생이 생긴 기분이야. 그리고 이 녀석이 생긴 건 이래도 은근히 거칠어.”
권세현이 내 뒷머리에 손을 턱 올려서 개 쓰다듬듯 마구 비볐다. 손 움직임에 맞춰서 얼굴이 덜그럭거렸다. 괜히 도와줬나?
“그, 그렇습니까? 뭐, 이렇게 보니까 둘이 정말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박석재의 말에 맞춰서 어색한 웃음을 흘린 내가 은근슬쩍 어깨동무를 풀자 권세현도 기다렸다는 듯이 내 머리에서 손을 뗐다.
“큼…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
머쓱하게 내 곁에서 거리를 벌린 권세현이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박석재도 그제야 용건이 떠올랐는지 트레이에서 제 몫의 커피를 꺼내며 말문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걱정돼서 왔죠. 형님, 어제 욕 좀 보셨다던데.”
“어제? 아아, 경성 말하는 건가?”
“경성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꽤 여럿이 몰려왔다고 하던데… 애들은 좀 어떻습니까?”
“크게 다친 놈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지.”
그쯤에서 박석재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원래라면 눈치 있게 자리를 비켜 줬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모른 척 미소 지은 채로 눈을 깜빡였다.
어차피 주인인 권세현이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박석재도 나를 쫓아낼 수 없다.
“커피 하나 남네. 이건 네가 마셔라.”
오히려 권세현은 내게 남은 아메리카노를 쥐여 줬다.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 무언가를 알아채고 제 곁에 두려는 게 틀림없었다.
‘이럴 때는 좀 편하네.’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건가. 처음으로 발견한 장점이었다.
내친김에 권세현과 나란히 소파에 앉자 결국 박석재도 어영부영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소식은 어쩌다 들은 거지?”
속이 타는지 커피를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켠 박석재가 곧장 대답했다.
“우리 애들이 지나가다 상황을 듣고 저한테 전달했습니다.”
박석재가 관리하는 클럽은 강남에서는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그다지 먼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니 권세현은 그가 관리하는 아랫놈들이 다이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해도 수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경성이 이 가게에 눈독 들인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새삼 놀랄 문제는 아니야.”
“이번처럼 대놓고 습격해 온 건 처음 아닙니까? 그야 형님은 이사님께서 항상 지켜보고 계시니 큰 걱정은 안 드시겠지만…….”
권세현은 눈가가 일순 움찔 떨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지.”
“역시! 어제 이사님께서 도와주신 게 맞았군요.”
이번 일은 타이밍이 엇갈려서 그 남자와 경성은 큰 상관이 없었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권세현이 생각하고 있는 네 명의 배신자 중에는 박석재도 들어가 있다… 이미 이 시점에서 박석재는 충분히 의심스러운 놈이었다. 그러니 굳이 가게 상황을 일일이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요? 상황 마무리는 어떻게 된 겁니까?”
“경성에서 제법 힘이 있는 놈을 잡았어.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파악해 낸 건 아직 없고.”
“그럼 나중에 저한테도 얻어 낸 정보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힘을 보태겠습니다.”
“…힘을 보태겠다?”
권세현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아. 물론 형님과 아래 애들이 쉽게 질 거라고 여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 네 도움은 필요 없어, 박석재.”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낀 박석재가 자세를 다잡고 권세현에게 설명했다.
“제 얘기를 들어 보세요, 형님.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돕겠다는 게 아닙니다.”
“해 봐.”
“사청화라고 불리는 놈들을…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사청화?”
“흑사회에 속한 집단으로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합니다.”
흑사회(黑社會). 중국에서 법을 피해 모여든 범죄 집단을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었다. 흔히 중화권 마피아로 알려진 삼합회(三合會)도 흑사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권세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갑자기 흑사회는 왜?”
“몇 년 전부터 중국에 큰손들이 한국의 땅이나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형님도 잘 아실 겁니다.”
가벼운 주제가 아닌 만큼 박석재의 목소리도 낮고 어두웠다.
“제 짐작대로라면 강남과 관련된 투자에 중국도 끼어든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정확한 시기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 경성 사이에 심상치 않은 놈들이 껴 있다고 제 아래 애들이 보고해 왔습니다.”
“그게 사청화라는 건가?”
“네.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야쿠자 집단보다 위험한 놈들입니다. 아니, 야쿠자보다는… 한구레라고 하죠. 준폭력단과 비슷합니다.”
“한구레…….”
“사청화는 야쿠자나 마피아처럼 법을 따르고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경성을 등에 업고 자기들 멋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있어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인원 파악을 빠르게 하기가 힘듭니다.”
숫자가 많다. 다이스라는 가게 하나를 지킬 정도의 힘을 겨우 가지고 있는 권세현에게는 가장 신경 쓰일 말이었다.
“제가 괜히 끼어들어서 도우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꽤 전부터 이사님의 명령을 받고 경성을 살펴보고 있지 않습니까?”
“흠…….”
팔짱을 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권세현이 잠시간 고민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진 알겠어. 중국 세력이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미리 알려 줘서 고맙고.”
“형님이랑 나 사이에 섭섭하게 무슨 감사 인사는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쇼.”
“받기만 할 수는 없지. 우리가 잡아 둔 경성 놈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면 연락할게. 대신 도움을 받는 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음,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밀어붙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박석재도 한발 물러섰다. 텅 빈 플라스틱 컵을 테이블에 내려 둔 박석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연락 주십쇼, 형님.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왜, 더 쉬다 가지.”
마주 일어선 권세현의 말에 박석재가 픽 웃었다.
“영업 방해는 할 수 없죠. 다음에 술이나 한잔 마셔 주십쇼. 제가 사겠습니다.”
“사도 내가 사야지. 조심해서 가라. 다음에 보자.”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박석재가 사무실을 나갔다. 그제야 긴 한숨을 푹 내쉰 권세현이 복잡한 표정으로 두 눈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괜찮습니까?”
적잖이 피로해 보이는 모습에 내가 묻자 권세현이 눈가를 찌푸린 채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왜 이렇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을 여러 가지 들었으니 그럴 만하죠. 흑사회이니 사청화이니…….”
나와 권세현이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아 얼음이 다 녹고 색이 옅어진 두 잔의 아메리카노가 보였다. 몸을 일으킨 나는 권세현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실장에게 경성 관련된 정보부터 얻어 내야겠지. 사청화라는 놈들이 끼어든 게 사실인지도 확인해 보고.”
“해 본 다음에는요.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권세현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고 앞에 서 있는 나와 시선을 맞췄다.
“경성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이 가게를 빼앗을 때까지. 중국 자본에 투자까지 받은 상태라면 더욱이.”
“…….”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숫자가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당장 오늘, 직원 중 누군가가 놈들에게 끌려갈지도 모르고요.”
“…….”
“그런 문제들로부터 이 가게와 직원을 지킬 자신이 있습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당신은 지키지 못합니다.”
지키지 못한다. 그렇게 단언하자 권세현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지금 한 말이 미래에 대한 정보인가?”
“예. 본인뿐만 아니라 가게도, 믿고 따르는 직원들도 모두 다 지키지 못합니다.”
“설마 박석재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거야? 넌 모르겠지만 박석재는…….”
“박석재는 상관없습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죽기 직전, 그 순간이 떠올랐다.
“박석재의 제안으로는 미래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감정을 참아 내지 못하고 뱉어 낸 말은 열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권세현의 얼굴은 목소리와 달리 무섭도록 차분했다.
“도망치거나 가게를 포기하거나…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나도, 내 애들도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 더는 물러설 곳 없어.”
“…….”
“지킬 수 있어. 내가 반드시 지킬 거야. 어떻게든.”
권세현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짓씹듯 말했다. 그걸 외면하지 않고 모두 받아 내며 천천히 손을 들어 권세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바닥으로 옅은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럼 말하세요.”
“뭐?”
“정말로 지키고 싶으면 말하세요, 저한테.”
아무래도 나는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와서 권세현과 마주쳤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스스로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후회로 끝나 버린 미래를 바꾸고 그걸 직접 지켜볼 기회였다. 만들어진 가짜라 한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이렇게 만나게 된 이상 현실과 다른 바 없는 것 같군.
문득, 사무실 앞에서 들었던 천사연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 뜻이었나.
내 곁에 있는 권세현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느끼는 감정과 판단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은 현실이었다.
“도와 달라고 해요.”
“…….”
“도와줄 테니까… 내게 부탁해, 권세현.”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권세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걸 보며 나는 웃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짓는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