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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45)화 (245/394)

245화

62. 혼란

“이야, 사장님. 쉬러 오셨나 봅니다.”

“그 사장님 호칭 좀… 하, 아닙니다.”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박건호의 말을 대충 쳐 낸 권세현이 나를 보며 물었다.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저 말입니까?”

“그래.”

내 팔을 붙잡은 권세현이 박건호에게 말했다.

“먼저 내려가십시오. 한이결과 따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흠… 괜찮나?”

박건호가 권세현이 아닌 나를 보고 물었다. 그 사소한 행동에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렸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야.”

어깨를 으쓱인 박건호가 권세현에게 장난처럼 눈인사를 건네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재수 없다는 기색으로 박건호의 등을 노려보던 권세현이 옥상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간 나는 옥상 문을 닫으며 시선을 들었다.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권세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와 눈을 맞추는 권세현의 얼굴 위로 옅은 푸른빛 그림자가 졌다. 내게 할 부탁이라.

“갑자기 부탁이라니, 당황스럽네요.”

“별로 당황한 거 같지 않은데.”

“저희 사이에 주고받을 건 미래에 대한 정보, 그것뿐일 텐데요.”

부탁이 뭔지 들어 보기 전에 거절부터 하자 권세현이 눈가를 좁혔다.

“새로 거래를 하나 더 하면 되겠네. 원하는 걸 말해. 나도 들어줄 테니까.”

“하아…….”

복잡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람에 흔들려서 이마를 간지럽히는 앞머리를 건성으로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를 너무 믿으시는 거 아닙니까?”

“뭐?”

“저랑 만난 지 뭐 얼마나 됐다고 부탁이니 거래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성가시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하자 권세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믿어? 내가 너를?”

“…….”

“나를 혐오하듯 보는 놈을 어떻게 믿어? 10년을 만났어도 믿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무슨 부탁이건 저는 들어줄 생각 없습니다.”

“기다려. 내 얘기를 끝까지…….”

옥상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나를 권세현이 붙잡아 오던 그때, 어딘가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세현은 모르는 눈치인 걸 보아 A급인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거리가 좀 있는 모양이다.

“잠깐만요. 조용히 해 보세요.”

“……?”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 행동에 권세현이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옥상 난간으로 이동하자 건물 뒷문 근처 골목에 남자 두세 명이 있는 게 보였다.

“뭐지?”

권세현도 나를 따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한밤중인 데다 옥상이라서 그런지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니까, 나쁘지 않…….”

“…다는데. 근데…….”

거리가 좀 있는 데다 상대가 워낙 작게 말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화 내용이 선명하게 들려오지 않았다. 난간에 팔을 걸쳐서 턱을 괸 채로 고민했다.

‘다른 때라면 내버려 뒀겠지만…….’

지금은 경성이 꼬이기 시작한 시기라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가 봅시다.”

“어딜?”

“아래요.”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설명 대신 권세현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그리고 바람 기운을 끌어 올려서 당황한 권세현과 함께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건물 근처는 흘러나오는 조명에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예 골목 구석으로 날아갔다. 잡음이 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며 권세현의 허리를 놔주자 그가 슬쩍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나는 뭐 좋아서 안은 줄 아나…….’

아무튼 지금은 권세현의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벽에 몸을 바싹 붙이고 고개를 내밀자 건물을 보며 떠들고 있는 무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좋아. 이 정도 거리면 권세현에게도 충분히 들릴 거다.

“아, 시팔. 다리 아파 뒤지겠네.”

“몇 시야? 이러다 동트겄다.”

“이거 진짜 의미 있는 거 맞냐?”

예상했던 대로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남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권세현도 얼굴을 굳히고 내 옆에 바싹 붙어 섰다.

칙, 라이터 켜는 소리와 함께 메케한 담배 연기가 코끝에 흘러들어 왔다.

“의미 없으면 새끼야, 뭐 어쩌자고?”

“그냥 좆 까고 가자는 거지.”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네, 이 새끼….”

담배를 입에 문 채로 킬킬거리던 한 명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옆의 남자를 장난스럽게 발로 툭 건드렸다.

“병신아, 그 떡대들이 괜히 돈을 줬겠냐? 호구 새끼들도 아니고. 다 생각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돈부터 던져 준 거 아냐.”

“개 같네. 시팔…….”

“연락이나 넣어 놔. 공돈 생겼는데 한판 뛰어야지.”

남자가 손을 빠르게 휙휙 휘둘렀다. 손짓을 보아하니 아마 도박을 뜻하는 것 같다. 나는 굳은 표정을 한 권세현에게 속삭였다.

“경성에서 고용한 놈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찾아왔다고 하던데.”

“역시 경성도 알고 있었나.”

“당연하죠. 설마 미래에 대한 정보를 대가로 주겠다 해 놓고 경성도 모르겠습니까?”

“까칠하기는.”

까칠 같은 헛소리 하네. 나는 옆에 있는 권세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때렸다.

“윽……!”

“엉? 뭐야?”

나한테 얻어맞은 권세현이 내뱉은 짧은 신음을 들은 남자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봤다. 권세현도 놀라서 급히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뭐야?”

“시발, 기다려 봐.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우리를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미친.’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능력을 쓴다 해도 위로 날아오르기 전에 들킬 기세였다. 나는 급히 권세현과 함께 골목 끝에 있는 버려진 박스 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권세현의 어깨를 눌러 앉히고 그 위에 몸을 겹쳤다.

“저 새끼 왜 저래?”

“몰라.”

“분명 사람 소리가 들렸다니까. 이상하네…….”

다행이다. 어두워서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권세현과 몸을 맞댄 채로 고개를 들었다. 권세현의 어깨 너머, 쌓여 있는 박스 더미 사이의 빈틈으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내 뒷머리를 긁으며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귀신이라도 본 거 아냐?”

“존나 웃기네, 시발. 무서우면 집에나 가라.”

“아, 좆같은 새끼들. 닥쳐라.”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남자를 확인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권세현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제가 뭐 얼마나 아프게 건드렸다고 그걸 못 참아서 소리를 냅니까?”

“이걸 내 탓을 하네. 갑자기 친 사람이 문제지.”

“까칠하다느니 이상한 말씀을 하신 건 사장님인데요?”

나와 권세현이 투닥거리는 사이, 잡담을 몇 마디 더 나누던 남자들이 쭈그리고 있던 다리를 폈다.

“야, 철수하란다.”

“오. 타이밍 좋은데? 바로 땡기러 가자.”

그들을 고용한 경성에서 명령을 내렸는지 남자들이 골목길을 떠나갔다. 인기척이 아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박스 더미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나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난 권세현이 정장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방금까지 남자들이 있었던 자리를 살펴봤다.

“아직 영업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왜 물러선 거지?”

“저쪽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경성에서 고용한 놈들이 다이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지금 처음 알게 됐다.

그저 초반에 견제용으로 사람을 몇 번 보낸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본격적으로 가게를 주시하고 있었던 건가.

“지금은 간 보는 단계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허… 사람을 고용해서 지켜볼 정도라고?”

권세현도 경성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더 지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겠지만…….

“어제 알려 드리지 못한 정보와 오늘 치 정보. 합쳐서 두 가지 모두 지금 말하겠습니다.”

경성과 관련된 얘기를 할 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챈 권세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 뒤에 경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한 번 더 찾아올 겁니다. 저번과 달리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고요. 미리 대비해 두세요.”

“대비라…….”

“그리고 여기서 선정릉 역 방향으로 좀 내려가면 모텔 구역이 있는데… 그중에서 ‘더블 로즈 모텔’이라고 간판이 걸린 건물이 있을 겁니다.”

“모텔? 거긴 왜?”

“망한 지 얼마 안 된 모텔입니다. 현재는 경성이 사용하고 있는 은신처고요.”

다이스에서 거리가 얼마 멀지 않아서 쉽게 오갈 수 있고, 낡은 모텔 건물이라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걸 노린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제 알게 됐으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가 말해 드리는 정보가 확실하다는 건 지난 일주일간 경험하셨고.”

권세현이 눈가를 찌푸리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모텔에는 반드시 믿을 만한 직원을 보내되, 절대 경성 놈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해 두세요.”

“…정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당장 눈앞에 놓인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좋습니다. 일단은 가게로 돌아가죠.”

가까이 붙으라는 손짓을 하자 권세현이 질색하며 다가왔다. 아, 나도 싫다니까.

내려왔을 때와 똑같이 권세현의 허리를 붙잡고 바람으로 몸을 휘감았다. 보는 사람이 없도록 재빨리 날아서 옥상에 도착하자 권세현이 내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한이결의 바람이 얼마나 좋은 능력인지도 모르고 저 자식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아까 못다 한 말을 했다.

“오늘은 쓸 만한 정보를 알려 주긴 했는데… 내일도 그럴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보라는 겁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갑작스러운 사건을 겪고 영 피곤한 듯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르던 권세현이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한이결. 아까 내가 한 부탁은…….”

“안 합니다.”

권세현이 답지 않게 재차 도움을 청해 왔지만, 나로서도 그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문제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미 알고 있잖아요.”

“…….”

“만약 제 능력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온다 해도…….”

문득 벚꽃잎이 흩날리던 꿈이 떠올랐다. 그 사이로 길게 흔들거리던 검은 머리카락도.

“달라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권세현이 누구보다 서글픈 얼굴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

한참 뒤에 힘 빠진 음성으로 간결한 답을 뱉어 낸 권세현이 먼저 몸을 돌렸다.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가는 등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속은 결코 그렇지 못할 거다.

그 또한 나만이 아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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