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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42)화 (242/394)

242화

 “그래도 열이 좀 떨어져서 다행이에요, 이결 씨.”

피이익, 픽!

민아린이 죽을 가져오며 하는 말에 나는 칭얼거리는 여우를 안아 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게 해서. 다들 놀랐겠네요.”

“당연히 놀랐죠.”

“그래도 좀 나아졌으니까 내일은 다시 일하러 가겠습니다.”

침대 옆 협탁에 죽 그릇을 내려 준 민아린이 나를 째려봤다.

“좀 나아졌다뇨? 아직도 열이 높은데. 이삼 일은 푹 쉬어야죠.”

“하지만 제가 안 가면 그만큼 자리가 비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이결 씨. 자꾸 이러시면 저도 더는 참지 않겠어요.”

“네, 네?”

생각지도 못한 선언에 나는 어깨를 움찔 굳히며 민아린에게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아린은 싸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계속 이렇게 본인 몸을 챙기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간호를 우리 마스터께 부탁드리겠어요.”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묻자 민아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스터께 이결 씨 간호를 맡길 거라고요. 천사연 마스터요.”

천사연이 내 간호를 한다고? 나는 민아린이 내게 해 준 일들을 천사연으로 덧씌워서 생각해 봤다.

내 이마에 해열 시트를 붙여 주는 천사연… 죽을 가져다주는 천사연…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혼내는 천사연…….

‘미친, 너무 싫어.’

나를 향해 싸한 미소를 지으며 죽이 담긴 숟가락을 들이미는 천사연을 상상하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민아린을 향해 절박하게 매달렸다.

“자, 잠깐만요. 민아린 씨. 그것만은 제발…….”

“싫어요. 저도 마음 단단하게 먹었어요.”

“안 됩니다!”

“뭐가 안 돼?”

마침 방으로 들어온 박건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박건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갈 준비는 끝난 겁니까?”

“그래. 몸 상태는 어떻지?”

박건호의 질문에 나 대신 민아린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직 좋지 않아요. 열도 남아 있고 기침도 계속하네요.”

“이런. 그래도 열이 좀 떨어져서 다행이군.”

“열은 해열제를 잘 챙겨 먹으면 괜찮아지겠지만… 기침은 약국에서 파는 약으로는 쉽게 낫지 않아서 걱정이네요. 병원을 갈 수가 없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저도 일반인보다 건강한 A급인데요.”

어색하게 웃으며 한 마디 하자 민아린이 다시 한번 나를 째려봤다. 아이고, 이번에는 진짜 엄청나게 화났나 보다.

“평범한 A급은 애초에 감기에 안 걸릴 텐데.”

박건호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협탁에 놨던 죽 그릇을 내게 내밀었다.

“죽 먹으면 약 먹고 잠이나 더 자. 부탁한 대로 일은 내가 대신 잘하고 올 테니.”

“으음…….”

나는 열이 높아서 하루 넘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휴무일은 지나서 다시 일을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일하는 게 여러모로 무리였다. 게다가 기침이 자꾸 나와서 서빙 같은 건 하지 못할 거고. 어쩔 수 없이 대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오늘 출근해야 하는 천사연과 우서혁, 권정한은 제외하고…….’

사람 상대로 낯을 가리는 김우진은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 하태헌은 권세현과 최대한 엮이지 않는 게 나을 테니… 결국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박건호 하나였다.

“부탁드립니다, 박건호 팀장님.”

죽 그릇을 받으며 말하자 박건호가 어딘가 쓰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은 채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래, 쉬고 있도록.”

방을 나가는 박건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죽을 한 숟갈 떠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온종일 자느라고 속이 비어 있었지만, 이상하게 입맛은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삼켰다.

아프다고 내가 할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맡겨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회복해야 했다. 내가 열심히 죽을 먹자 민아린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진 씨가 사 온 죽인데 어때요? 맛있어요?”

“네. 괜찮네요.”

“우진 씨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고 얼마나 아쉬워하셨는데요. 이결 씨가 맛있게 먹었다고 꼭 전해 줄게요.”

현재 김우진과 하태헌은 에드워드와 함께 공간 탐색을 위해 호텔 밖으로 외출해 있었다. 나를 빼고 모두가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걸 깨닫자 침대에 앉아서 죽이나 먹고 있는 내 처지가 더욱 창피해졌다. 역시… 빨리 회복해야겠다.

***

“그렇게 됐으니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권세현은 당당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박건호를 불편한 얼굴로 바라봤다.

종잇장처럼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던 예쁘장한 한이결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큰 체구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인상의 남자가 채웠다.

“음, 그러니까 이름이…….”

“박건호입니다, 사장님.”

“사장님 아닙니다. 관리인으로 불러 주십시오.”

이미 몇 번이고 했던 내용을 다시 말한 권세현이 잠시 머뭇거린 끝에 물었다.

“한이결은… 좀 어떻습니까?”

“아직 열이 좀 남아 있습니다만, 며칠 더 쉬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병원은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고민하던 권세현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 다이스에서 오른편 길로 쭉 올라가면 가까운 곳에 큰 병원이 있습니다. 상태가 안 좋은 거라면 거기라도 가 보는 게 좋아 보입니다.”

묘한 표정으로 그 말을 듣던 박건호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라. 알아 두도록 하겠습니다.”

어딘가 선을 긋는 느낌에 시선을 피하며 목덜미를 쓸어 만진 권세현이 이어 말했다.

“이제 나가 보셔도 됩니다.”

“시키실 일 없습니까?”

“예.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아래층에서 애들 도와주십시오.”

“흠… 한이결은 이곳에 꽤 오래 있던데. 혹시 제가 불편하십니까?”

“…….”

사무실 내부 공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하는 시선으로 박건호를 노려보던 권세현이 단호하게 답했다.

“예. 그러니까 나가시죠.”

그대로 사무실에서 쫓겨난 박건호는 이마를 긁적이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1층 홀로 나온 박건호를 반겨 주는 것은 행주를 든 채로 테이블을 닦고 있는 천사연이었다.

“오, 마스터. 생각보다 꽤 성실히 일하십니다?”

다른 팀이었던 박건호는 천사연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네 건달처럼 껄렁거리며 걸어온 박건호를 돌아본 천사연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그러는 박건호 팀장은 아주 여유롭군. 놀러 왔나?”

“저 한이결 대타로 온 거 잊으셨습니까? 청소가 제 본업이 아닌데요.”

“딱 봐도 그 본업은 해 보지도 못하고 쫓겨난 것 같은데. 테이블이나 닦도록.”

눈치도 빠르셔라. 천사연이 들고 있던 행주를 박건호에게 휙 던졌다.

“어디 가십니까?”

“신경 꺼.”

그러기에는… 계단을 오르는 천사연이 무척이나 눈에 밟혔다. 천사연이 하던 테이블 닦기를 대신 마무리한 박건호가 바에서 영업 준비를 하는 우서혁에게 다가갔다.

“이봐, 우서혁 비서.”

“말씀하십시오.”

“마스터가 언제부터 저런 거지?”

천사연이 언제부터 권세현의 사무실을 들락거렸냐는 뜻이었다. 그 무성의한 질문에 우서혁은 잠시간 눈을 깜빡이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자주 가셨습니다.”

“…한이결은?”

“글쎄요.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긴 했지만…….”

설명을 멈춘 우서혁은 저번 주를 떠올렸다. 천사연이 3층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층으로 내려온 한이결은 평소보다 더 희게 질려 있었다.

그 얼굴을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억지로 웃는 한이결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술을 한 잔 만들어 주는 작은 위로뿐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괜찮아 보이더군요.”

“허…….”

고개를 돌려 계단을 다시 살핀 박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찝찝한 기색인 박건호를 이해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서혁이 먼저 말문을 꺼내려던 그때였다.

“동주 형님!”

뒷문으로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갔던 직원 중 한 명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고동주가 2층에서 그 외침을 듣고 내려왔다.

“뭐야?”

“그 새끼들이 또 왔습니다.”

“그 새끼들?”

“경성 놈들이요.”

직원은 고동주만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낮춰 얘기했지만, S급인 박건호와 우서혁은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경성?’

뜨거운 숨을 훅 내뱉은 고동주가 욕설을 중얼거렸다.

“형님 알아채지 못하게 빨리 쫓아내야겠구만.”

“애들 불러 모을까요?”

“됐다. 그쪽도 보는 눈이 있어서 몰려오진 못했을 게 뻔한데.”

앞장서는 고동주의 뒤를 직원이 쫓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박건호와 우서혁도 슬쩍 따라갔다.

전면이 유리로 된 다이스 홀 입구 근처로 가자 고동주 맞은편에 서 있는 낯선 남자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큰 덩치의 남자가 다섯 명이나 모이자 고동주가 기세에서 밀려 보일 지경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욕설과 고함이 오갔다. 상대편 남자들이 어깨를 밀치고 위협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반면, 고동주는 문 앞에 서서 꿋꿋하게 버티기만 했다.

“뭐예요?”

상황이 길어지자 2층에 올라가 있던 권정한도 내려와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유리 바깥을 살폈다.

“싸움이 붙은 것 같군.”

“그보다는 영역 다툼에 가까워 보입니다.”

“우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여기 정말로 그런 술집 맞나 보네요. 조폭들이 운영하는 술집.”

흥미로운 건 박건호와 우서혁도 마찬가지였다. 조폭들의 영역 다툼이라니.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아닌가.

“하지만 고동주라는 저 사람은 싸울 의향이 없어 보이는군.”

“뭐… 상대가 가게 밖에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근처에 서성거리는 거로는 쫓아낼 명분이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고동주 앞에 있던 남자가 보란 듯이 가래침을 땅바닥에 뱉으며 양손으로 고동주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던 고동주의 몸이 크게 휘청인 그 순간, 권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동주.”

어느새 홀로 내려온 권세현의 뒤에는 옅은 미소를 띤 천사연도 함께였다. 마치 권세현의 비서라도 되는 듯한 그 모습에 박건호의 미간이 다시 구겨졌다.

“혀, 형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게 뭐가 중요해.”

고동주의 곁으로 걸어가며 심드렁히 대답한 권세현이 턱을 살짝 치켜들고 가게 앞 상황을 쭉 훑어봤다.

“뭐야, 형씨. 그쪽이 여기 주인이야?”

“…….”

온 팔에 지저분한 문신을 두른 남자를 한심하게 응시하던 권세현이 질문을 무시하며 고동주에게 말했다.

“애들 불러서 대충 쫓아내.”

“예? 하지만…….”

“곧 오픈 시간이니까 귀찮은 상황은 만들지 말고.”

“그,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랬다가 괜히 그분이…….”

“상관없어.”

권세현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긴 내 소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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