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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36)화 (236/394)
  • 236화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권세현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그 소식에 민아린이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이네요. 이거로 그 술집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겠어요.”

    “그래. 필요한 인원수도 나쁘지 않군.”

    호텔에 남아야 하는 에드워드와 민아린, 여우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 한 명은 남아야 했으니 차라리 잘됐다. 매일 권세현을 만나러 가야 하는 나를 제외한 3명이 돌아가면서 출근하기로 했다.

    “일하면서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틈틈이 살펴보도록.”

    천사연의 명령에 씩 웃는 박건호와 더불어 하태헌, 김우진. 이렇게 세 명으로 첫날 출근이 확정됐다.

    손재주가 좋은 김우진과 각성 전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온 하태헌, 능청맞은 성격으로 가게 분위기를 헤아려 줄 박건호까지. 첫 스타트를 끊는 멤버로 아주 제격이었다.

    ***

    다음 날, 가게 오픈 1시간 전까지 오라는 권세현의 말에 따라서 5시쯤 다이스에 도착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동주가 우리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따라와라.”

    고동주가 안내해 준 장소는 1층 안쪽에 있는 탈의실이었다. 포장 비닐에 싸인 새 유니폼과 사물함 열쇠를 넘겨준 고동주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자 사물함을 하나씩 맡아서 사용해라. 갈아입고 홀로 나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려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앞에 나서서 유니폼과 열쇠를 건네받으며 대답하는 나를 고동주가 찝찝한 표정으로 보다가 등을 돌려 나갔다.

    “생각보다 시설이 좋군. 강남에 이 정도 규모의 바라. 돈을 좀 들였겠는데.”

    흥미롭게 탈의실 내부를 살펴보는 박건호에게 비닐에 P라고 적힌 유니폼을 내밀며 얘기했다.

    “아마 주방에 한 명, 서빙에 두 명을 배치할 겁니다. 제일 배우기 쉽고 빠른 일이니까.”

    “흐음. 주방 한 명에 서빙 두 명이면 김우진이 주방을 맡고 나와 하태헌 부마스터가 서빙을 맡으면 되겠군.”

    “한이결, 너는?”

    김우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어제 정해진 대로 여기 주인 옆에서 일하게 되겠지. 별문제 없을 거야.”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서 미소를 지었지만, 김우진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하태헌이 유니폼 비닐을 뜯고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풀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래. 이렇게 넓은 데다 3층이나 되니 샅샅이 살펴보려면 당분간은 얌전히 굴어야겠지. 아, 하태헌 부마스터. 앞으로는 간단하게 하태헌 씨라고 부르려고 합니다만, 어떠십니까?”

    “상관없습니다.”

    박건호의 말에 동의하며 나도 입고 있던 후드 티를 벗었다. 그러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김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급히 내게서 멀어졌다.

    “너도 어서 갈아입어.”

    “으응…….”

    내가 내민 유니폼을 받아 든 김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유니폼인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은 박건호가 거울로 제 모습을 확인했다.

    “셔츠가 좀 끼긴 하는데 가게에서 무상으로 주는 정장치고는 상태는 나쁘지 않군.”

    박건호와 하태헌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었고 김우진은 추가로 검은 허리 앞치마를 맸다. 나는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착용했다.

    옷을 갈아입고 1층 홀로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고동주가 주변 직원들에게 소리 높여 설명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할 신입이다. 자세한 설명은 어제 형님께서 하셨으니 바로 넘어가자고. 김우진이 누구지?”

    “이쪽입니다.”

    내가 옆에 서 있는 김우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대답하자 고동주가 바 안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들어가. 일을 알려 줄 사람이 있을 거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조금 있으면 여기로 최규진이라는 놈이 올 테니 기다리고.”

    고동주의 말을 들으며 나는 홀에 모여 있는 직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방금 언급된 최규진을 포함해서 하나같이 모두 익숙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

    “나를 따라와라.”

    예상했던 대로 되는군. 나는 고동주의 뒤를 쫓아 계단을 오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우진과 하태헌, 박건호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들 이따 봐요.”

    모두 내가 없어도 각자 맡은 바 일을 잘 해내기를 바라며 3층으로 갔다.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고동주는 내게 쉴 새 없이 잔소리했다.

    “형님이 명령하셨으니 안내는 하겠다만,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쓸데없는 짓 할 생각일랑 말아라.”

    “예에.”

    “제대로 들어! 형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그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나는 시선을 내렸다.

    ‘중요한 시기…….’

    그래. 그렇지. 그래서 이 공간이 더욱 불쾌한 것이다.

    “들어가.”

    사무실 문 앞에 선 고동주가 나 대신 노크를 한 후에 턱을 까딱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느리게 밀었다.

    부드럽게 열린 문 너머로 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권세현이 보였다. 문을 닫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권세현의 검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잠시간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하셨던 대로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오. 존댓말?”

    권세현이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나도 지지 않고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고용인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죠.”

    “좋은 마음가짐이네. 앉아.”

    권세현이 손짓한 소파에 가서 앉자 그도 내 맞은편에 앉았다.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경계심과 바짝 세운 허리,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는 두 눈. 마치 거울을 앞에 둔 것처럼 나와 똑같다.

    마찬가지로 내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핀 권세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쪽이 요청한 모든 것을 다 들어줬다. 네 차례인 건 알고 있겠지?”

    “…….”

    “미래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했는데. 그건 결국 미래를 알고 있다는 뜻인가?”

    짐작했던 질문을 들은 나는 잠시간 침묵 끝에 답했다.

    “압니다.”

    “…그건 불가능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권세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었다.

    “그러는 그쪽도 보통 사람이라면 모를 정보를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뜻이지?”

    “하태헌과 천사연. 그 두 사람에 대해서 이미 알잖아요.”

    권세현의 눈가가 일순간 움찔 떨렸다.

    “하태헌뿐만 아니라 천사연도 알고 있겠죠.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알고는 있지만… 같은 사람일 리는…….”

    “같은 사람 맞습니다.”

    나는 권세현을 좀 더 쉽게 이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목적이 없다 해도 그에게는 솔직하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권세현과 만난 우리는 이미 ‘어비스’와는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입 능력을 갖춘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가짜일 뿐인 권세현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럼 너는 정말로… 한이결이라고?”

    “예.”

    “하지만 한이결은…….”

    “죽었죠. 지금은 어쩌다 보니 잘 살아가고 있지만.”

    한이결은 천사연을 지키다가 죽는다. 이전 시간에서는 분명히 그랬지.

    “성격도… 이렇게 재수 없지는 않았는데.”

    “…….”

    어이없다. 누가 누구보고 성격 험담을 하는 거야?

    ‘그리고 진짜 한이결은 나보다 더…….’

    책을 통해 본 한이결을 떠올리던 나는 급히 생각을 멈췄다. 지금은 그런 걸 떠올려 봤자 쓸모없다.

    “제 정체가 뭐든 무슨 상관입니까? 얻어 낼 수 있는 이득에만 집중하는 게 그쪽한테도 좋을 겁니다.”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권세현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 하루에 하나씩 준다고 했던가? 왜 하필 하루에 하나인 거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욕심이 많으시네요.”

    “헛소리하지 말고.”

    “뭐… 그쪽 미래를 알고 있다고 다른 것도 다 아는 건 아니라서요. 그리고 이런 중요한 정보를 막 뿌릴 수는 없습니다.”

    적당한 답변을 내놓자 권세현이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쯤에서 나는 주제를 돌렸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적당히 내 뒤를 따라다녀. 다른 일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따로 시킬 테니까.”

    “간단해서 좋네요.”

    “그리고 퇴근 전에는 그 잘난 미래에 대한 정보를 하나 내놓고 가고. 오늘부터.”

    “마음대로 하시죠.”

    “흠…….”

    순순한 내 태도에 가소롭다는 듯 웃은 권세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바로 출발해.”

    “예?”

    “커피.”

    정장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든 권세현이 카드를 내 앞에 툭 던졌다. 테이블 위로 떨어진 카드는 형광등 불빛에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사 와.”

    “……”

    상상치도 못한 요구를 듣자 모든 생각이 뚝 끊겼다. 커피를… 사 오라고? 지금 나한테 커피 심부름시키는 거야?

    ‘이 새끼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 나를 향해 권세현이 싱긋 미소 지었다.

    “왜? 못 하겠어?”

    “하…….”

    싫으면 당장 꺼져도 상관없다는 그 태도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속을 느끼며 나는 카드를 쥐고 벌떡 일어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사근사근한 말투로 대답한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온갖 욕설을 중얼거리며 1층으로 내려갔다.

    “한이결?”

    “엉? 한이결, 어디 가?”

    홀에서 테이블을 닦고 있는 하태헌이나 의자를 옮기던 박건호가 나를 돌아봤지만 알은체하지 않고 곧장 건물을 나섰다.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대화합시다.

    다이스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는 길을 건너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금방 나온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도착한 내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자 직원이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를 보내왔다.

    “어서 오세요.”

    다행히 매장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카운터로 직행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예.”

    나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활짝 웃으며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세 번 추가해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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