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두 분 얘기 끝나셨으면 이제 그만 레드 마켓으로 들어갑시다.”
천사연의 기분 상태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달래 줄 수는 없으니 일단 해야 할 일부터 하는 게 맞았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지하철 벽을 통해 레드 마켓 내부로 들어온 우리는 리웨이 제작자의 상점이 있던 장소로 다시 찾아갔다.
텅 빈 터를 본 에드워드가 내게 질문을 건네 왔다.
“여기인가요?”
“네. 아마 사라지기 전까지 여기서 인벤토리를 팔았을 겁니다.”
“하루 이상 이곳에서 머무른 게 확실하다면… 이걸 쓰는 게 좋겠네요.”
에드워드가 끼고 있던 반지의 보석을 툭툭 두드리자 작은 목각 인형 하나가 공중에서 툭 떨어졌다.
“이 아이가 여러분이 찾으시는 제작자의 흔적을 쫓아가 줄 거예요. 흔적의 끝까지 도달하면 인벤토리에 자동으로 돌아가요.”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각 인형이 삐거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땅바닥을 더듬더듬하더니 곧 정면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어머, 귀여워라.”
조그마한 게 열심히 빨빨거리고 걸어가는 걸 본 민아린이 눈을 반짝 빛냈다. 여우도 호기심이 샘솟는지 투명화도 풀고는 목각 인형 근처를 날아다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엽기는 한데…….’
워낙에 작아서 아무리 빨리 뛰어도 속도에 한계가 있었다. 저걸 어느 세월에 기다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권정한이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저것보다 더 커다란 놈은 없는 건가요?”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챈 에드워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에. 조금… 작죠? 그래도 얘가 제일 확실해요.”
확실하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힘차게 뛰어가는 목각 인형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목각 인형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레드 마켓 외곽 쪽으로 깊게 들어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자 나는 슬슬 걱정됐다.
“레드 마켓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공간 제어 능력자가 만든 곳이라 관련 능력자가 아니면 알아내기 힘들다는 말은 들은 적 있다.”
내 질문에 옆에 걷던 하태헌이 대답했다. 역시 그런가. 어느새 인기척은 물론이고 소음까지 사라진 주변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흙길만 쭉 이어질 뿐이었다.
“으음, 일단 아직 레드 마켓 내부인 건 맞아요.”
능력을 사용한 에드워드가 근처를 쭉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도 레드 마켓은 자주 와 봤지만 이렇게 깊게 들어와 본 적은 처음이네요.”
“레드 마켓은 출입구가 한 군데이지 않나? 이렇게 계속 걸어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군.”
박건호의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직진만 하는 목각 인형을 내려다봤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은데.’
나는 시선을 돌려서 천사연의 얼굴을 확인했다. 녀석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걸을 뿐이었다.
기분이 나쁜 상태라서 그러는 건지, 나처럼 뭔가를 느끼고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네.
피이익! 피익!
나를 버리고 목각 인형 옆을 알짱거리던 여우가 갑자기 높게 울며 헐레벌떡 내게로 다시 날아왔다. 동시에 아주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지?”
“다른 분들도 방금 느끼셨어요?”
“저도 느꼈습니다.”
모두가 함께 느꼈는지 다른 사람들도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잠시만요.”
무언가를 알아챈 에드워드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두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빛 무리가 가득 차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능력을 강하게 사용한 에드워드가 설명했다.
“방금 공간이 바뀌었어요. 여긴 더 이상 레드 마켓 내부가 아니에요.”
“누군가 능력을 사용해서 바꾼 겁니까?”
“아뇨, 그보다는 레드 마켓 일부분에 다른 공간을 몰래 붙여 둔 경우에 가까워요. 우리가 방금 공간이 이어진 부분을 지나온 거고요.”
“보이는 건 레드 마켓과 차이점이 없는데… 느껴지는 기운은 확실히 다르군.”
하태헌의 말에 나도 시선을 올렸다.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은 미국 레드 마켓이 구현해 낸 하늘과 같았다.
끼긱, 긱.
우리와 함께 멈춰 선 목각 인형이 삐걱거렸다. 목각 인형의 가동을 중지한 에드워드가 물었다.
“흔적은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어떡할까요? 더 들어갈까요?”
“저는 더 따라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위험할 수도 있으니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다. 입가를 만지며 고민하던 천사연이 여기 온 이후로 처음 입을 열었다.
“더 가 보도록 하지. 다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에드워드와 민아린 힐러, 권정한 경호는 미리 조심하는 편이 좋겠군.”
우리는 중앙에 에드워드와 민아린, 권정한을 두고 겉을 둘러싸는 형태로 자리를 바꿨다. 나는 혹시 모르니 도망쳐야 하는 순간을 대비해서 기운을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럼 다시 출발할게요.”
모두 돌발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를 끝낸 것을 확인한 에드워드가 긴장한 얼굴로 목각 인형을 재가동시켰다. 주저앉아 있던 목각 인형이 다시 일어나서 덜걱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따라 안으로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주변이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은하수가 펼쳐져 있던 밤하늘은 그저 새까만 어둠만이 가득해졌고, 연기처럼 몰려온 어둠에 시야까지 좁아졌다.
“하태헌 씨, 혹시 저 건너편이 보입니까?”
“아니. 보이지 않는다.”
“그럼 평범한 어둠은 아니군요.”
SS급인 하태헌의 눈을 가리는 어둠이라면 만들어 낸 가짜가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도 어둠은 연기처럼 소리 없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이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길과 정면뿐이었다. 마치 좁은 골목길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불안해진 나는 천사연의 팔을 붙잡았다.
“에드워드 씨만이라도 돌려보내고 우리끼리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힘들 것 같아요.”
내 말에 답을 해 온 것은 오히려 에드워드였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능력을 쓰고 있는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이미 닫혔어요. 저도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알았네요.”
“확실합니까?”
“네. 저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능력자가 만든 공간이라서 알아채는 게 늦었어요….”
“그럼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아예 없는 겁니까?”
에드워드가 살짝 창백해진 안색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공간 너머로 보이는 제작 회로가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는지 해석할 수가 없어요.”
“그럼 선택은 하나뿐이군. 저 흔적을 따라서 계속 가 보는 수밖에.”
천사연이 내린 결론에 마른침을 삼키며 끝도 없이 이어진 정면을 응시했다.
“…괜찮을까요?”
“최대한 서로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죠.”
겁먹은 민아린의 얼굴을 본 나는 어깨 위에 있는 여우를 그녀에게 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민아린 씨와 에드워드 씨 곁에서 떨어지지 마.”
피익! 내 근심을 알아챘는지 여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곧장 민아린과 에드워드 곁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조금은 안심한 그때였다.
쿠구궁!
갑자기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바닥이 크게 흔들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급히 걸음을 멈춘 나는 땅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아챘다.
“이결 씨!”
민아린의 비명에 정신을 번쩍 들었다. 급히 강한 바람으로 모두를 감싸자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며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바르르 떨렸다.
“으윽, 무슨……!”
분명 능력을 사용했는데도 알 수 없는 힘이 자꾸만 아래로 몸을 끌어당겼다. 바닥은 진작에 사라지고 이제 주변에 남은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꺼먼 어둠뿐이었다.
“공간이 바뀌고 있어요! 바람 능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게……!”
“에드워드 씨!”
에드워드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에드워드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민아린과 여우는 물론이고 박건호와 우서혁, 권정한, 하태헌도 차례로 사라졌다.
“한이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게 손을 뻗던 김우진의 모습까지 없어진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나는 밀려오는 공포에 숨이 막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바람 능력으로 발버둥을 쳐 봤자 주변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몸은 마치 내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한이결이 가진 바람 능력으로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입 능력을……!
“쉬이.”
“허억!”
덜덜 떨리는 내 손을 마주 잡아 오는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천사연이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것을 만들어 낸 모양이군. 이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라니.”
“…천사연?”
“허둥거리지 말고 집중해. 놈들이 준비한 건 이제부터니까.”
손가락이 얽혀 있는 천사연과 내 손이 어둠에 먹혀들어 갔다. 하지만 방금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의 두려움은 없었다.
낮고 부드럽게 말하는 천사연 덕분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조금씩 제 속도로 돌아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기운이…….’
느껴진다. 내 등 뒤에 있는 천사연을 포함해서 모두의 기운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다들 사라지지 않고 곁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윽고 내 몸도 온전히 어둠에 삼켜졌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완연한 어둠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야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른 감각에 의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이었다.
[가장 강한 이의 가장 끔찍한 순간이 재현될 것이다.]
낮고 거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낯선 듯하면서도 어딘가 들어 본 듯한 그 목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공간이 마구 뒤틀리기 시작했다.
“으읏……!”
아까와는 차원이 다르게 묵직한 중력이 몸을 내리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충격을 견뎌 냈다. 눈앞을 가득 채웠던 어둠이 일그러지면서 이내 여러 색으로 번쩍거렸다.
쿠웅!
그 빛 무리가 어떠한 형상을 갖춰 가는 동시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허리로 강하게 부딪혀 왔다. 덜컹,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제대로 충돌한 나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윽……!”
“큭!”
뒤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비명이 하나씩 들려왔다. 급히 몸을 일으켜서 돌아본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모두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급히 물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아야… 깜짝이야.”
피이익, 피익!
“한이결, 괜찮아?”
“한이결!”
테이블 위로 떨어졌던 나와 달리 다행히 소파로 떨어진 민아린과 에드워드, 칭얼거리는 여우, 내게 달려오는 김우진과 하태헌이 보였다. 그 뒤에는 등을 짚은 채로 미간을 찌푸린 박건호와 우서혁, 떨어트린 안경을 줍는 권정한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는 천사연까지 확인한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이다.’
모두 무사해. 나와 마찬가지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은 사람들이 뒤늦게 주변을 살폈다.
“여긴 어디죠?”
“보기에는 고급스러운 술집 같군.”
붉은 가죽 소파와 중앙에 검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천장에 달린 둥근 조명과 깔끔한 벽지를 본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처음 왔다기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였다. 어디서 본 거지? 불안정한 기억에 눈가를 좁히는데, 하태헌이 문 앞을 막아서며 나를 뒤로 보냈다.
“하태헌 씨?”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귀에도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구두 굽 소리가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대충 어림잡아도 6명은 훌쩍 넘는 숫자였다.
“여우. 투명화 쓰고 에드워드한테 붙어.”
피이익, 픽!
나는 급히 민아린과 에드워드, 권정한을 뒤로 보내고 문을 노려봤다.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전투하기에는 여긴 너무 좁은데.’
차라리 뒤에 있는 벽을 능력으로 부숴 버리고 바람으로 도망치는 게 낫겠다. 각오를 끝내자 바람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위협적으로 삐죽거렸다. 곧이어 문이 벌컥 열렸다.
“분명 여기서 소리가…….”
“형님, 정말로 사람이 있습니다!”
“뭐야, 시팔! 웬 새끼들이냐?”
“미친놈들이, 아직 영업 시작도 안 한 가게에 함부로 들어와?”
활짝 열린 문 너머에서 들어서는 덩치 커다란 남자들을 마주한 우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능력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어……?”
그리고 나는, 하태헌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적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무슨… 말도 안 돼. 이건…….
“무슨 소란이야?”
현실감이 사라져서 멍하니 넋을 놓은 그때였다.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문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형님, 잠깐 와 보시겠습니까?”
“수상한 놈들이 침입했습니다.”
“수상한 놈들?”
의아한 듯 묻는 낮은 목소리. 온몸의 피가 발아래로 쭉 빠져나간 것 같은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비켜 봐.”
“예.”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을 뒤로 물리고 앞장서는 그 행동에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쿵쿵,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안 돼. 안 돼. 넌… 너는…….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이마를 반절 드러낸 검은 머리. 경계심이 깃든 눈. 검은 정장.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든 것을 본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권세현, 네가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