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레드 마켓을 한 바퀴 둘러본 우리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리웨이와 관련된 흔적은 아무것도 없네요.”
“제작자 남매의 말대로라면 납치된 지 몇 달이 넘었으니 어쩔 수 없군.”
하태헌의 말을 들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에드워드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는데.
“마지막으로 여기 사람들한테 물어볼까요? 리웨이 제작자에 대해서요.”
“한번 해 보죠.”
민아린이 얘기한 대로 우리는 인벤토리 가방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을 찾아 들어갔다. 리웨이는 공간을 다루는 제작 능력자. 같은 공간 능력자인 인벤토리 제작자라면 뭐라도 더 알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실례합니다.”
“어서 오쇼.”
하태헌과 둘이서 함께 나무 문발을 들치며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주인이 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고개를 들었다. 담배 냄새 장난 아니네.
“뭐 좀 여쭤보겠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주인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혹시 리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작자를 알고 있습니까?”
“리웨이? 리웨이…….”
굵은 손으로 수염을 긁으며 고민하던 주인이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리웨이 공간 제어 능력자를 말하는 거라면 당연히 알고 있지. 유명한 제작자 아니오?”
역시 이곳에 리웨이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모르는 건가. 나는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인벤토리를 팔던 다른 제작자에 대해서는 뭐 아시는 거 있습니까? 검고 동그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늙은 제작자입니다.”
“크흠… 나이 든 인벤토리 제작자라.”
이번에는 뭔가 떠올랐는지 주인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오늘내일하는 늙은이 한 명 떠오르긴 하는데. 그쪽 말대로 둥글고 작은 선글라스를 낀 노인네였지.”
그 설명에 나는 하태헌과 시선을 맞췄다. 예전에 한국의 레드 마켓에서 만난 리웨이의 겉모습과 완벽히 일치했다.
“혹시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언제쯤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가만 보자…. 3개월? 4개월 전쯤? 오랫동안 못 봤지. 우리 가게 뒤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그 노인네 가게가 나오니까 한번 가 봐.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졌지만.”
리웨이가 납치되기 전에 있었던 장소라. 제법 나쁘지 않은 정보였다.
흔쾌히 도움을 준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가게를 빠져나온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리웨이 제작자가 장사하던 곳을 알아냈어요. 바로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마 한국의 레드 마켓에서 했던 것처럼 인벤토리 가방을 팔면서 평범한 제작자 행세를 하고 있었겠지.
프라우스 신도단이 어떻게 리웨이의 정체를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레드 마켓에 숨어 있는 상대를 굳이 찾아서 잡아갈 정도니 여간 일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레드 마켓 깊은 곳으로 들어간 우리는 곧 가게 주인이 설명해 준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일 뿐, 다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여기일 텐데… 아무것도 없네요.”
“흐음…….”
리웨이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땅을 바라보며 입가를 매만지던 천사연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다시 오도록 하지. 아무래도 에드워드가 가진 아이템이 필요할 것 같군.”
“역시 그렇습니까?”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거다.”
대답하는 천사연의 표정도 나처럼 그늘이 져 있었다. 그도 에드워드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 상황이 불편한 것이다.
결국 에드워드를 끌어들여야 하는 건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
“저는 좋아요. 맡겨 주세요!”
다음 날, 우리에게 요청을 받은 에드워드는 기쁜 표정으로 힘차게 외쳤다. 번거로운 데다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니 나로서는 더욱 미안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오히려 제 도움이 필요 없을까 봐 걱정했거든요. 도울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아요.”
에드워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행동이 어쩐지 강아지 같아서 나는 결국 픽 웃으며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줬다.
“에디가 동행하게 됐으니 안전에 더욱 신경 써야겠군.”
천사연의 말에 우서혁이 품에서 작은 반지를 꺼내 들었다. 우서혁뿐만 아니라 박건호와 김우진, 권정한, 민아린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뭡니까?”
“일회용 무효화 아이템입니다. 이전에 마스터께서 나눠 주셨습니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보석이 박힌 반지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반지를 관심 있게 들여다본 에드워드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엇, 천사연 씨. 이거 혹시 제가 예전에 만들어 드린 그 반지인가요?”
“그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주 필요한 아이템이지. 에디, 너도 레드 마켓에 따라올 거라면 무효화 아이템 한두 개 정도는 착용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뭔가 했더니 에드워드가 만든 아이템이었구나. 그보다 천사연이 길드원한테 보호 아이템도 챙겨 줬을 줄이야…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걱정하지 마세요.”
천사연의 얘기에 에드워드가 미소를 지으며 착용하고 있던 팔찌와 목걸이를 옷 너머로 꺼내서 보여 줬다.
“5분 정도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투명화 아이템이랑 무효화 아이템이에요. 여러분께 민폐가 되면 안 되니까 미리 준비했어요.”
“투명화와 무효화라. 괜찮군.”
최종적으로 클로에의 동의를 받아 낸 우리는 더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어제 했던 그대로 하늘을 날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다들 불쾌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에드워드에게 내 옆자리를 양보한 김우진도 찝찝한 기색으로 우서혁의 손을 잡았다.
“여우. 부탁한다.”
피익!
나는 아예 여우도 에드워드 곁에 붙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에드워드 한 명 정도는 여우가 잘 지켜 주겠지.
하늘 높이 날아서 폐쇄된 지하철 입구로 찾아간 우리는 어제 다시 덮어 놨던 비닐 덮개를 치우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에드워드 씨는 능력으로 아이템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는 건가요?”
레드 마켓으로 향하며 에드워드와 소소하게 수다를 떨던 민아린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자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요. 누나는 상대방의 기운을 볼 수 있는 능력이고 저는 아이템이 가진 효능을 알 수 있어요. 제작된 아이템이면 재료와 제작 방식도 확인할 수 있고요.”
“대단하네요. 혹시 S급이신가요?”
“헤헤, 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전에 에드워드와 함께 사마엘에게 끌려갔을 때 능력 관련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제작자보다는 감별사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S급이니 제법 귀한 능력이고.
‘어? 잠깐만. 감별도 가능하다면…….’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나는 급히 레드 마켓에 들어가기 전에 에드워드를 붙잡았다.
“한이결 씨?”
“에드워드 씨. 혹시 아이템 하나만 봐 주실 수 있습니까?”
다소 갑작스러운 부탁에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럼요. 뭔데요?”
“하태헌 씨, 저번에 그 검 말인데요.”
내 말에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챈 하태헌이 순순히 인벤토리에서 SS급 검을 꺼내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검에 꽂혀 들었다.
“게이트에서 구해 낸 SS급 검입니다. 아직 측정을 거치기 전이라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몰라서요.”
“와, 멋있네요. 1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괜찮나요?”
“네. 편하게 봐 주세요.”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하태헌과 에드워드는 전등 불빛 아래로 이동했다. 검이 무게가 좀 나가는 터라 하태헌이 계속 들고 있어 줘야 했다.
진지하게 검을 살피는 에드워드를 흐뭇하게 보는데, 어딘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건호가 입을 열었다.
“하태헌 부마스터가 저런 검을 얻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한이결, 어떻게 알고 있었지?”
모두가 있는 앞에서 검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고 결정한 순간부터 예상한 질문이었다. 나는 모른 척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하태헌 씨가 말해 주셨으니까 알고 있죠.”
“흠… 하태헌 부마스터가 말해 줬다?”
“네. 다만 어떻게 구하셨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답한 것 같은데, 나를 응시하는 모두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어째서지?
“한이결 씨, 확인 끝났어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검을 파악해 낸 에드워드와 하태헌이 돌아왔다. 에드워드는 어딘가 상기된 얼굴을 하고는 검을 가리켰다.
“역시 SS급이에요. 느껴지는 기운이 대단한데요? 그리고 특별한 힘이 있어요.”
“특별한 능력이요?”
“이 검은 상대방이 가진 능력을 없앨 수 있습니다.”
능력을 없앨 수 있다고? 상상도 못 한 설명에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확히는 심장에 있는 기운을 끊어 내는 힘이에요. 능력자의 기운은 심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니 그걸 끊어 내면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심장에 있는 기운을 망가뜨린다는 뜻인가. 폭주로 인해 기운이 망가져서 능력을 쓰지 못하게 된 강승건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 외에 공격은 불가능한 건가?”
하태헌의 질문에 에드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른 검과 마찬가지로 공격은 가능해요. 검이 가진 특별한 힘이 발동되는 건 상대방의 심장을 꿰뚫은 순간뿐입니다.”
“그게 발동 조건이군.”
“네. 이 검에 심장이 뚫리면 기운이 모조리 끊겨서 능력이 사라져요. 하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검은 기운만 끊어 낼 뿐이니까.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면 목이나 다른 곳을 베셔야 해요.”
다시 한번 검을 바라보는 에드워드의 두 눈동자에서 빛 가루가 반짝였다. 클로에가 능력을 사용했을 때와 무척 흡사했다.
“저는 검보다 등급이 낮은 S급이라서 이 검이 가진 속성 같은 건 세세하게 알 수 없어요. 다른 능력이 더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크고요. 나중에 측정 전문 능력자에게 제대로 측정을 받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도록 하지. 확인해 줘서 고맙군.”
“아니에요. 저도 이런 멋있는 아이템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는 천사연이 검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얘는 또 왜 이래?
‘설마… 부러운 건가?’
하태헌이 다시 인벤토리에 넣을 때까지 천사연은 계속해서 검을 바라봤다.
‘아니, 자기는 S급 검이랑 SS급 검을 두 개나 갖고 있으면서 대체 왜 부러워하는 거야?’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부러워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기분까지 저조해 보이는 천사연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