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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30)화 (230/394)

230화

 가장 넓고 자리가 넉넉한 응접실에서 아테나 측에서 준비해 준 브런치로 아침 식사를 한 우리는 클로에에게 미국 레드 마켓으로 가는 방법을 전해 들었다.

“서쪽으로 네 블록만 넘어가면 골목 구석에 폐쇄된 지하철 입구가 보일 거예요.”

“그럼 막혀 있지 않나요?”

“막혀 있긴 하는데, 잘 찾아보면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비닐 밑에 숨겨져 있어요. 일반인들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히 조치해 둔 거죠.”

“그 정도면 우리끼리도 충분히 찾을 만하겠네요.”

“맞아요. 막상 가 보면 더 쉬워요. 지하철 내부로 들어가면 붉은 표지판이 있을 거예요. 그 바로 아래 벽이 레드 마켓 입구예요.”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조심해서 다녀와요.”

손을 살랑살랑 흔든 클로에는 곧 응접실을 나갔다. 클로에와 인사를 마친 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럼 이제 레드 마켓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틈새 시간을 활용해서 태블릿PC로 일을 하는 천사연과 우서혁, 하태헌. 소파에 거의 눕듯이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박건호. 여우를 안은 채로 쿠키를 먹고 있는 민아린, 그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는 권정한. 마지막으로 내게 조각 케이크가 올려진 접시를 밀어 주는 김우진까지.

사람들의 모습을 한 명씩 찬찬히 살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얼굴을 좀 가리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천사연이 고개를 들었다.

“가린다고 가려질 외모가 아닐 텐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요.”

오늘따라 유독 반짝반짝 빛이 나는 천사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천사연뿐만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였다.

저 얼굴에 선글라스나 마스크 좀 낀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 게다가 하나같이 키도 커서 어설프게 가렸다가는 시선만 더 집중될 텐데.

“흠… 체인징 아이템 남는 거 없습니까, 마스터?”

“고려해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경매에 풀린 게 없더군요.”

잠시간 고민하던 박건호가 묻자 우서혁이 대신 대답했다. 천사연과 우서혁은 이미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나 보군.

“어떡하죠? 저번 클럽처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만 갈까요?”

“아니.”

민아린의 말에 고개를 저은 천사연이 몸을 일으켰다.

“이수진이 우리 쪽에 넘어온 이상, 프라우스 신도단도 미국과 관련된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팀을 나눠 봤자 위험 부담만 더 커지겠지.”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왕 다 같이 미국으로 왔으니 최대한 흩어지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천사연의 의견에 동의하며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레드 마켓을 찾아갈 방법이라면…….

“공중으로 가죠.”

역시 이것뿐이다. 그 제안을 들은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서로 손을 잡고 하늘 높이 날아오릅시다.”

“로맨틱하군.”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그야 좀 묘하게 들리기는 하는데… 아무튼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태블릿PC를 종료한 하태헌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 수가 꽤 많은데 버틸 수 있는 건가?”

“먼 거리도 아니고 네 블록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제법 나쁘지 않은 계획인 것 같은데, 어째 응접실 분위기는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민아린도 눈만 깜빡일 뿐 아무런 호응도 해 주지 않았다. 자신감 엄청 깎이네.

“그렇게 별로입니까…?”

머쓱한 마음에 목덜미를 쓸어 만지자 우서혁이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의견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다만…….”

말끝을 흐린 우서혁 대신 박건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다, 한이결.”

걱정된다고? 흠… 하긴. 나야 바람 능력이 있으니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꽤 높이 날아야 하니까.

이제야 다들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모두에게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설마 여러분들을 떨어트리겠습니까? 지금은 몸 상태도 좋아서 능력이 불안정할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제 계획대로 합시다.”

“이결 씨…….”

“그런 부분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됐다.”

“……?”

무언가 설명하려던 박건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 뭐야, 대체.

***

서로 손을 잡은 채로 하늘로 올라간 우리는 곧장 서쪽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클로에가 말한 지하철 입구는 높은 곳에서도 한눈에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것도 다 눈속임인가?’

마치 공사를 중간에 멈춘 것처럼 각종 철물과 커다란 비닐 같은 게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래로 내려왔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내 손을 잡고 있던 김우진과 민아린을 제외한 모두가 불쾌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내팽개치듯 거칠게 놓았다. 이런 쪽으로는 정말 친해지지 않는구나, 이 사람들…….

“들어가 보죠.”

설명대로 입구를 가리고 있는 지저분한 비닐을 치워 내자 지하로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이 드러났다.

“으음, 엄청 어둡네요….”

내 옆에서 지하철 안쪽을 살펴본 민아린이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야 어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보이니 상관없었지만, 민아린처럼 비공격형 능력자는 일반인과 똑같아서 이대로 들어가는 건 불안할 거다.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손잡아 드릴게요.”

“앗, 좋아요! 고마워요.”

조용히 나와 민아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사연과 박건호, 김우진이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나도.”

“나, 나도…….”

“…….”

너네는 어차피 잘 보여서 필요 없잖아.

“장난 그만 치고 들어갑시다. 천사연 마스터, 앞장서 주시죠.”

“나를 이런 위험한 곳에서 앞장서게 하다니…….”

“헛소리하지 마시고요. 다음은 하태헌 씨.”

천사연을 시작으로 하태헌과 박건호, 우서혁, 김우진을 줄줄이 지하로 집어넣은 나는 마지막으로 민아린의 손을 잡고 권정한을 돌아봤다.

“뭐 해?”

“네?”

“손잡아. 우리도 가야지.”

빈손을 내밀며 말하자 잠시간 당황하던 권정한이 이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 왔다.

비공격형 능력자가 민아린과 권정한 둘뿐이라 다행이다.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을 텐데, 여기까지 날아오는 그 잠깐 동안 서로 손을 좀 잡았다고 저렇게 질색하는 놈들한테 어떻게 믿고 맡기겠어.

‘하태헌이나 우서혁은 어른스러우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순순히 내 손을 잡은 채로 뒤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권정한은 어딘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단 끝까지 무사히 도착하자 넓은 복도가 나타났다. 희미한 전등이 곳곳을 밝히고 있는 복도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처럼 으스스했다.

차분하게 내부를 둘러보던 나는 곧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붉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표지판을 발견한 민아린이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찾기 쉽네요.”

“여기에 레드 마켓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표지판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를 테니까요.”

“아, 그렇군요.”

한국 레드 마켓을 찾아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벽을 향해 손을 뻗자, 벽이 물처럼 크게 일렁이며 내 손을 집어삼켰다. 그 상태로 멈추지 않고 몸을 모두 밀어 넣었다. 어두웠던 공간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레드 마켓 내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양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짙었던 한국의 레드 마켓과 달리 미국의 레드 마켓은 좀 더 도시적이고 다양한 기계 장치들이 설치된 게 보였다.

“여우, 투명화 써서 숨어.”

피이익!

혹시 모르니 여우는 투명화로 모습을 숨기는 게 좋겠다. 내 말에 여우가 밝은 울음소리를 내며 스르륵 사라졌다.

“오, 미국 레드 마켓은 처음 와 보는데 제법 크군.”

뒤따라서 안으로 들어온 박건호에게 민아린이 물었다.

“엇, 팀장님은 미국에서 살다 오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레드 마켓은 올 일이 딱히 없었습니다.”

박건호가 미국에서 살다 왔다고? 그래서 매번 굿모닝인지 뭔지 그딴 인사나 날리는 거였나.

“일단 한 바퀴 돌아보죠.”

우리가 본격적으로 레드 마켓에 진입하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들 능력자인 데다 비공식적인 장소라 그런지 눈길만 조금 줄 뿐, 과한 관심은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레드 마켓 자체를 처음 와 보는 민아린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한 씨, 이거 엄청 낙지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근데 몬스터래요.”

“신기하네요.”

기다란 통에 담긴 채로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오징어 형태의 몬스터를 발견한 민아린이 눈을 반짝이며 권정한과 수다를 떨었다.

김우진도 별다른 말 없이 꿋꿋하게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리저리 돌아가는 고개를 보아하니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길 양옆으로 쭉 이어진 부스마다 진열한 아이템이나 몬스터가 각기 달라서 이곳에 처음 와 본 민아린이나 권정한, 김우진에게는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이결 씨, 이결 씨. 이것 봐요.”

그렇게 30분 정도 돌아다닌 그때였다. 민아린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부스에 진열된 아이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무 예쁘지 않아요?”

옅은 주홍빛 보석이 박힌 브로치였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거로 보아 평범한 액세서리인 모양이다.

‘갖고 싶은 건가?’

이 정도라면 레드 마켓에 온 기념으로 사 줘도 괜찮지 않을까. 민아린은 나를 위해서 여기까지 와 줬는데.

“사 줄게요, 민아린 씨.”

“와아, 진짜요? 평생 간직할게요!”

평생까지야…. 아트 인벤토리에 넣어 놨던 지갑을 꺼내는데, 뒤에서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던 박건호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그런데 한이결, 여긴 미국인데. 환전 같은 거 안 하지 않았나?”

“아.”

그러고 보니까 돈을 안 바꿨구나. 평범하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왔으면 공항에서 환전했을 텐데, 공간 이동을 이용한 터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지갑을 든 채로 굳은 나를 본 박건호와 천사연, 권정한이 킥킥거리며 비웃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자기들도 환전 안 했으면서.

“여기 있습니다.”

한 걸음 물러선 채로 우리가 하는 꼴을 지켜보던 우서혁이 결국 나를 대신해서 브로치값을 계산해 줬다. 역시 우서혁이다. 환전도 미리 하고 준비성이 철저하네.

머쓱하게 웃으며 지갑을 닫는 내게 민아린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이결 씨!”

“네, 뭐… 제가 산 건 아니지만…….”

나는 우서혁에게 슬쩍 붙은 다음에 소리 낮춰 귓속말했다.

“나중에 갚을게요, 우서혁 씨.”

“…괜찮습니다.”

“큭… 크…….”

우서혁 옆에서 그걸 같이 들은 천사연이 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기 시작했다. 재수 없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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