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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29)화 (229/394)

229화

58. 레드 마켓

“오랜만이에요, 다들. 잘 지냈나요?”

제이크의 손을 붙잡고 응접실 안으로 끌고 온 클로에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보내왔다. 제이크는 질질 끌려오는 와중에도 천사연을 계속해서 노려봤다.

“우리 마스터께서 오기 싫다고 어찌나 생떼를 쓰던지. 설득하느라고 늦었네요.”

클로에가 한숨을 폭 내쉬며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자 제이크가 벌컥 화를 냈다.

“생떼라니…! 그냥 오기 싫었을 뿐이야.”

“그게 생떼예요.”

천사연 맞은편 소파에 제이크를 억지로 앉힌 클로에가 자신도 옆에 앉으며 나와 천사연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더 반갑네요. 이쪽은 알고 계시겠지만 제이크예요. 제 남편이자 우리 아테나 길드의 마스터죠.”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제이크가 클로에의 눈총을 받고 입을 열었다.

“…제이크라고 불러라.”

“한이결입니다.”

“알고 있다.”

생김새에 맞지 않게 애처럼 입술을 삐죽인 제이크가 하태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로헌의 하태헌 부마스터.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군.”

“예. 저도 반갑습니다.”

둘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슬쩍 눈을 굴려서 옆에 앉아 있는 천사연을 살폈다.

‘천사연하고는… 인사 안 하나?’

어딘가 묘해진 분위기를 느낀 클로에가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리며 미안한 기색으로 얘기했다.

“제가 그동안 제이크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엄청 많이 얘기했거든요.”

“그래. 특히 한이결 능력자, 그쪽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강남 사건과 관련해서 질릴 정도로 들었다. 바람 능력 활용을 굉장히 잘하더군.”

“아…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조금 당황한 내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설마 그때 일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일단 대표 몇 명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쉬러 가시는 게 어떤가요? 바로 아래층을 모두 비웠으니 각자 게스트룸 하나씩 쓰시면 될 것 같아요.”

클로에의 말에 천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

“복도로 나가면 수행원이 안내해 줄 거예요.”

대표 몇 명만 남는 거라면… 아무래도 천사연과 하태헌이 남아야겠지? 내가 없어도 천사연이 알아서 다 설명해 줄 테니 걱정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천사연이 내 손을 잡아 왔다.

“한이결. 너도 남아.”

“예?”

“우서혁, 직원들 데리고 게스트룸으로 가. 따로 연락하기 전까지 각자 짐 풀고 쉬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이결 씨. 이따 봐요.”

북적거리던 사람들이 한 차례 빠져나가자 응접실 내부가 한결 여유가 생겼다. 직원이 준비해 준 차를 한 모금 마신 클로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레퀴엠에서 정식으로 방문 요청을 보내와서 놀랐어요.”

“죄송합니다. 도움이 필요해서요.”

“한이결 능력자의 부탁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저번에 약속도 했으니까. 그보다…….”

나를 응시하는 클로에의 눈동자에서 아주 짧은 순간 빛이 반짝였다.

“그간 많은 일이 있으셨나 보네요. 기운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어요.”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한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웃었다. 그러자 클로에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자신의 기운이 달라졌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군요.”

“운 좋게 알게 됐습니다.”

지금의 나는 한이결의 기운과 내 기운이 합쳐져서 검은색에 가까운 상태였다. 클로에가 한국에서 떠나기 전보다 색이 훨씬 짙어졌을 테니 저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 옆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던 하태헌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뜻입니까?”

“아, 이건…….”

하태헌이 묻는 말에 나는 뒤늦게 낭패감이 들었다. 이런, 실수했다.

클로에에게 미리 설명을 들었을 게 뻔한 천사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하태헌은 달랐다.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 줘야 하지? 내가 난감해하는 것을 눈치챈 클로에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이결 능력자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기운의 색이 좀 더 짙어져서 그래요. 하태헌 부마스터, 혹시 제 능력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예.”

“원래 기운을 자주 쓰거나 수련을 열심히 하는 능력자는 기운의 색이 조금씩 짙어진답니다. 한이결 능력자도 저번보다 기운의 색이 훨씬 좋아졌거든요.”

“그렇군요.”

거짓이 조금 섞인 적절한 답변에 하태헌은 별 의심 없이 수긍했다.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다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웬만하면 숨기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은 말해 봤자 쓸 만한 곳도 없으니까.

“사실 할 얘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한이결 능력자?”

“네?”

“어깨에 무언가 하얀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게 뭔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아. 나는 투명화를 한 채로 어깨 위에 조용히 올라앉아 있는 여우를 불렀다.

“여우.”

피익!

내 부름을 들은 여우가 신이 난 울음소리를 내며 투명화를 풀었다. 여우가 나타나자 클로에와 제이크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클로에 부마스터는 그렇다 치고… 제이크 마스터는 외모랑 달리 솔직한 타입이네.’

자신에게 향한 호감을 알아챈 여우가 피익, 픽 울며 클로에 주변을 살랑살랑 날아다녔다. 웃기게도 비슷한 관심을 보이는 제이크 곁으로는 조금도 다가가지 않았다. 같은 SS급인데… 역시 수컷인가?

“너무 예쁘네요. 이름이 여우인가요? 평범한 동물 같지는 않군요.”

“듣기로 전투력이나 공격성이 낮은 하급 몬스터를 길들이는 전문 능력자들이 있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분양받은 건가?”

“음… 비슷합니다.”

여우의 정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애매했는데 제이크가 먼저 그럴싸한 핑계를 대 줬다. 오늘 이래저래 운이 좋네.

“이제 슬슬 일 얘기를 하지.”

여우를 쓰다듬는 클로에를 심드렁히 바라보던 천사연이 입을 열었다.

“클로에 부마스터. 요즘 한창 시끄러운 프라우스 신도단이 에디를 납치했던 이들과 동일하다는 내용을 이전에 전달했었는데.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지. 우리도 전달받은 이후부터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있어.”

“신도단에 소속된 주요 인물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레드 마켓에서 지내고 있던 제작자도 실종됐고.”

이어진 설명에 클로에와 제이크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클로에는 약간 겁먹은 에드워드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알려 줘.”

우리는 클로에와 제이크, 에드워드에게 한국에서 벌어진 마약 사건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닥터라는 신도단 일원을 알게 된 것과, 그가 실종된 제작자와 함께 있는 것 같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보통 일이 아니네. 왜 이 먼 미국까지 왔는지 이제 이해했어.”

심각한 표정으로 입가를 매만지는 클로에에게 말했다.

“저희는 신도단이 여기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지 알아내려고 합니다. 그걸 도와주셨으면 해요.”

“흠…….”

아테나가 협력을 해 줘야 새로운 단서를 찾아낼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땅이 워낙에 넓은 데다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좋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프라우스 신도단을 잡기 위해서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죠. 그럼 내일 바로 레드 마켓에 가 볼 건가요?”

“일단 그럴 예정입니다. 리웨이 제작자가 실종된 지 오래돼서 뭔가를 발견하긴 어렵겠지만요.”

“저어…….”

내 말에 지금껏 얌전히 듣기만 하던 에드워드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예?”

“제가 그럴 때 쓰기 좋은 아이템을 몇 개 갖고 있어서요. 잘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신도단에서 정말로 제작자들을 납치해 가고 있다면 레드 마켓에도 아직 일당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아요.”

“저, 전 괜찮아요. 호신용 아이템도 많이 챙겨 갈게요.”

좋게 거절했지만 내 생각보다 에드워드는 끈질겼다. 나는 말려 달라는 의미를 담아 클로에를 바라봤다.

“에디, 진정해. 한이결 능력자의 말이 맞아. 아무 정보 없이 가는 건 위험해.”

“그건…….”

“하지만 한이결 능력자, 에디의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사라진 지 몇 달이 넘은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면 에디의 아이템이 필요할 거예요.”

울상을 지었던 에드워드가 이어진 클로에의 얘기에 활짝 웃었다.

“그러니 팀원분들과 일단 레드 마켓에 먼저 가 보고, 큰 문제 없으면 에드워드랑 한 번 더 가 보는 건 어때요?”

“음…….”

“처음 갈 때보다야 위험성도 낮을 거고 에디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죠. 괜찮은 방법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면 확실히 좋긴 한데. 나는 어떻게 할 거냐는 뜻으로 천사연과 하태헌을 번갈아 바라봤다.

“일단 내일 다녀와 보고 다시 얘기하지.”

애초에 에드워드를 잘 알지 못하는 하태헌은 별 관심 없다는 태도라 천사연이 대신 답했다.

“네에! 내일 꼭 말씀 주세요.”

에드워드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치며 작은 두 손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하긴. 나이만 조금 어릴 뿐이지 에드워드는 예전부터 세계를 돌아다니며 봉사하고 사람을 돕는 뛰어난 제작자였다. 실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겠지.

“알겠어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세 분도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할 테니까. 내일 레드 마켓에 가려면 지금이라도 빨리 쉬어야죠.”

일부러 시차를 생각해서 새벽 일찍 출발한 터라 미국인 이곳은 이제 막 밤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짐을 정리하면 바로 잘 시간이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자주 보게 될 텐데 벌써 기대되네요. 아까 먼저 가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수행원이 아래층 방을 안내해 줄 거예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미소 짓고 있는 클로에와 에드워드, 뚱한 표정의 제이크와 인사를 나눈 우리는 응접실을 나와 수행원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옆에 나란히 걷는 천사연의 팔을 잡고 소리 낮춰 물었다.

“천사연 마스터. 혹시 제이크 마스터와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글쎄.”

“시치미 떼지 마시죠. 딱 봐도 사이 나빠 보이던데.”

같이 가던 하태헌도 내심 궁금했는지 천사연에게 시선을 보냈다. 우리를 바라보던 천사연이 고개를 슬쩍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마 나와 클로에 부마스터의 사이를 의심해서 그런 거겠지.”

“예? 의심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경악하며 물었다.

“클로에 부마스터와 제이크 마스터는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설마…….”

나는 천사연이 연애 같지도 않은 연애를 어마어마하게 했다는 우서혁의 증언을 떠올렸다.

이 미친 새끼가? 급히 천사연과 거리를 벌렸다. 하태헌은 이미 말할 것도 없이 천사연을 쓰레기로 단정 지은 눈빛이었다.

그런 나와 하태헌을 응시하던 천사연이 눈썹 한쪽을 치켜세웠다. 얼굴은 웃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기분 나쁜 기색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오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오해라고.”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천사연이라 영 믿음이 안 갔다. 나와 하태헌은 조금씩 천사연의 곁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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