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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27)화 (227/394)

227화

 미국 출발일은 일주일 후로 정해졌다. 더불어 나는 우서혁에게 놀라운 소식도 함께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비행기를 안 탄다고요?”

“특수 아이템으로 제작된 공간 이동 기계를 통해서 워싱턴으로 갈 예정입니다.”

간략한 설명과 함께 우서혁이 들고 있던 서류 중 하나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내 뒤로 민아린과 김우진, 권정한이 옹기종기 몰려들었다.

피익!

내 허벅지 위로 폴짝 뛰어들어 온 여우가 서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글도 읽을 수 있나?

“JS? 아이템 제작 전문 업체입니까?”

“정확히는 전 세계적으로 공간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한이결 씨는 공간 이동을 한 번 경험하신 거로 압니다만, 맞습니까?”

“아.”

그 말에 인천에 있는 굴업도 섬 게이트를 떠올렸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왔을 때 공간 이동을 통해서 인천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었지.

“네. 혹시 그때와 비슷한 겁니까?”

“이번이 규모가 더 크고 전문가들도 상주해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아무래도 거리가 제법 머니까. 서류 첫 장을 넘기자 엄청나게 커다란 기계와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찍힌 사진이 나타났다.

‘이건 좀 신기하네.’

과학과 아이템 제작 능력이 합쳐지니 이런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나 보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도 아니고 그 먼 미국 땅을 한 번에 갈 수 있다니… 대단한데?

내 뒤에서 서류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권정한이 입을 열었다.

“JS 쪽에서 먼저 요청을 했네요. 자기네 서비스를 이용해 달라고. 아무래도 아테나 길드에 간다는 정보가 새어 나갔나 본데요?”

“맞습니다. 어차피 공식 일정이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로헌의 부마스터도 함께 가는 거니 기업 입장에서는 이용해 주면 홍보도 되고 이래저래 이득이긴 하겠네요.”

“천사연 마스터께서 이걸 받아들이셨습니까?”

신기하긴 하다만 안전한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였다. 전 세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서비스라니까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예.”

내 질문을 들은 우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전에 대통령께서 공간 이동으로 뉴욕을 다녀오셨다는 내용을 듣고 승낙하셨습니다.”

“…….”

그러니까… 대통령이 이용했으니 믿고 써 보겠다 이거냐? 진짜 미친놈이네.

어이없어하는 나를 잠시간 바라보던 우서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무엇보다 출발 날짜를 앞당길 수 있었으니 저희로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미국으로 가시려는 것 아닙니까?”

“네? 아, 네. 그렇죠.”

…착각인가? 어쩐지 우서혁이 나를 위해서 이 방법을 알아 온 것처럼 느껴지는데.

얼떨결에 대답하자 아주 옅게 미소 지은 우서혁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서류는 가지셔도 상관없으니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우서혁의 미소에 넋이 나가 미처 인사도 하지 못했다. 정보를 넘겨주고 홀연히 떠나가는 우서혁의 넓은 등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데, 권정한이 정신 차리라는 듯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래도 한결 편해졌네요. 워싱턴까지 가려면 비행시간도 오래 걸리고 중간에 한 번 경유도 해야 해서 귀찮았는데.”

“전 아쉬워요.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기대 많이 했거든요. 비행기를 타야 느낄 수 있는 그런 기분이 있잖아요.”

정말로 아쉬운지 민아린이 드물게 투덜거렸다. 그보다 이건 여행이 아닌데… 뭐, 상관없나.

서류 마지막 장까지 대충 훑어본 나는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아무 말 없이 나만 바라보는 김우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우진,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가 보는 거지?”

“으응.”

김우진이 슬금슬금 다가와 옆에 앉았다.

“해외로 나가 보는 거 자체가 처음인데…….”

“뭐? 진짜?”

“여행 다닐 만한 여건이 안 돼서.”

그제야 예전에 봤던 김우진의 반지하 방을 떠올렸다.

‘지금은 정리하고 나처럼 길드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런 곳에서 혼자 힘들게 살아왔으니 해외는 고사하고 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겠지.

나는 김우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하필 첫 해외여행을 이런 식으로… 아니, 여행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진 씨, 해외 처음 가 보시는구나. 괜찮아요! 저도 워싱턴은 처음이에요. 정한 씨는요?”

“워싱턴이라면 두어 번 가 봤죠.”

“와아. 그럼 정한 씨한테 가이드 부탁해도 될까요? 저 기념관이나 미술관은 꼭 가 보고 싶었거든요.”

“얼마든지요.”

“…….”

신난 민아린과 능청스러운 권정한의 대답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이 아니라니까…….

***

별다른 문제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미국으로 출발하는 당일이 되었다.

“이 정도로 보이지 않는 거면 한국에 없을 확률이 높군.”

강철우 의원 살해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인 강승건은 결국 잡히지 않았다. 천사연이 내린 깔끔한 판단에 나 역시 동의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찝찝한 기분으로 낮게 속삭이자 천사연이 정면을 바라본 채로 입꼬리만 살짝 끌어 올렸다.

“어쩔 수 없지. 뒷일은 최미진 센터장과 로헌 마스터에게 맡기는 수밖에.”

현재 나와 천사연은 길드 건물 정문 앞에서 차가 줄줄이 들어오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공간 이동을 통해서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계가 설치된 천안으로 내려가야 했다.

피익!

여우도 물론 함께 간다. 다만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지금은 투명화를 사용한 상태였다.

‘하태헌은 따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천안에 도착하고 나서야 볼 수 있겠네.’

쨍한 햇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날씨도 좋고, 지난 일주일간 푹 쉬면서 몸 상태도 회복한 참이라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피익, 픽! 나와 마찬가지로 제법 신난 여우가 주변을 날며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기분 좋아 보이는군.”

“조금요.”

“설마 놀러 가는 거로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제가 어린애입니까?”

신난 건 나보다는 민아린과 김우진이었다. 민아린은 이번 일을 여행이라고 아예 결론을 지은 듯 보였고, 김우진은…….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제 내 짐을 대신 정리해 주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살짝 상기된 표정인 데다 평소보다 말수가 늘어난 거로 봐서 생전 처음으로 가 보는 미국이 기대되는 게 확실했다.

어쩔 수 없네.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한 일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주변 관광이라도 잠깐 해야겠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

“슬슬 도착할 시간이군.”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천사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우서혁과 박건호, 김우진이 내렸다. 각자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 날씨 좋은데?”

“마스터. 말씀하신 서류 최종본입니다. 가시면서 확인하십시오.”

손에 선글라스까지 들고 연하늘색 셔츠를 걸친 박건호와 다르게 평소처럼 정장을 입은 우서혁이 들고 온 서류를 천사연에게 넘겼다.

“김우진. 인사는 잘하고 왔어?”

“응.”

김우진은 본래 소속인 물리지원팀 팀장을 만나고 온 참이다. 물리지원팀 팀장이라. 신전에서 지낼 때 봤던 뉴스에서 김우진과 함께 인터뷰하던 그 남자인가?

“물리지원팀에서 너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네.”

“글쎄.”

“친해진 사람은 있어?”

“없어. 다 안 친해.”

내 질문에 심드렁히 대꾸하는 김우진을 보자니 또다시 안쓰러운 마음이 몰려왔다.

애가 좀 냉소적인 면모가 있지만 그래도 착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서 영 아쉬웠다.

나는 김우진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괜찮아, 김우진. 나랑 놀면 되지.”

“……응!”

얌전히 토닥거리는 내 손길을 받던 김우진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녀석… 역시 친구가 필요했구나.

솔직히 나는 겉모습만 동갑이지, 속은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라 완벽한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을 텐데. 그래도 좋아하는 김우진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안녕하세요!”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뒤이어 민아린과 권정한도 늦지 않고 도착했다. 공식 일정이긴 하나 복장은 편하게 입고 와도 괜찮다는 천사연의 배려 덕분인지 둘 다 한결 가벼운 차림새였다.

“모두 모였으면 출발하지.”

민아린과 권정한을 본 천사연이 손짓하자 수행원들이 우르르 다가와 우리가 들고 있는 짐을 차 트렁크에 싣기 시작했다.

사람 수가 워낙 많으니까 차 여러 대에 나눠 타야 할 텐데.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문득 예전 일을 떠올리고 천사연의 팔을 잡아당겼다.

“음?”

내가 끄는 대로 순순히 몸을 붙여 온 천사연이 상체를 숙여 줬다. 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녀석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하고 소리 낮춰 물었다.

“혹시… 저번처럼 나눠서 탈 건 아니지?”

“저번처럼이라면?”

“공항으로 클로에 부마스터 마중 갔을 때 말이야.”

분명 김우진과 권정한이 같이 타고 우서혁은 박건호와 탔던 거로 기억한다. 공항에서 내리고 나서 네 명 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것도.

내 질문이 의외였던지 흐음, 하며 입가를 매만지던 천사연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뭐든 상관없지 않나?”

그 놀리는 듯한 태도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너… 설마 저번에도 일부러 그런 거냐? 사이 안 좋은 거 뻔히 알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시치미를 떼며 어깨를 으쓱인 천사연이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이 같은 차에 탄다면 다른 놈들은 뭐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만.”

“그건 당연히…….”

곧장 대답하려던 나는 그 순간 떠오르는 의문에 멈칫했다.

…잠깐. 이상한데. 왜 천사연이랑 내가 같이 타고 가는 게 당연한 거지?

‘이 녀석이 마스터라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를 두고 천사연이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두셋씩 나눠서 타는 게 좋겠군. 멤버는 마음대로 하고.”

“알겠습니다. 한이결, 나랑 타자.”

“하, 한이결.”

“이결 씨~!”

“형.”

천사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건호가 뒤에서 내 어깨를 끌어안았고 김우진과 민아린, 권정한이 차례로 내게 달라붙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왜들 이러는 거야.

‘그냥 천사연이랑 타는 게 낫겠다….’

순식간에 지쳐서 시들시들해진 나를 사람 틈바구니에서 휙 꺼내 준 천사연이 입을 열었다.

“한이결 능력자는 나와 함께 타고 갈 거니까 포기하도록.”

“예? 치사하십니다, 마스터.”

“이결 씨…….”

“한이결…….”

“형…….”

투덜거리는 박건호 옆에서 민아린과 김우진, 권정한이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양심이 좀 아파졌지만, 천안까지 마음 편히 가고 싶었던 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천사연 마스터와 할 얘기도 있으니 같이 타고 가겠습니다.”

딱 잘라 거절하자 천사연은 짙은 미소를 지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깨가 조금 처졌다.

심지어 투명화한 여우까지 피익… 하며 아쉬운 울음소리를 냈다. 여우로서는 불편한 SS급인 천사연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타고 가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말씀 끝나셨으면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이 웃지 못할 유치한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우서혁이 시간을 확인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걸 듣자 조금 창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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