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57. 불길한 징조
강철우 의원 자택 앞은 이미 경찰차와 구급차,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천사연과 하태헌이 도착하자 대기 중이던 관리 본부 직원이 둘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태헌아.”
하태헌보다 먼저 연락을 받고 도착해 있던 이주하가 뒤를 돌아봤다. 그 옆에는 홍시아와 제이나 길드 부마스터인 김나율도 함께였다.
“으응? 웬일이야? 둘이 같이 있었어?”
천사연과 하태헌이 나란히 들어오자 홍시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질문을 깔끔하게 무시한 천사연이 어수선한 집 안을 둘러봤다.
“최미진 센터장은 어디 있지?”
“여기 있어요.”
지친 얼굴로 안쪽 방에서 직원들과 함께 걸어 나온 최미진이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해요. 위에서 압박이 심하게 들어와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네요.”
압박이라. 정치인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실을 알게 된 고위직 관리들이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내라고 만만한 길드 관리 본부를 닦달한 거겠지. 뻔한 내용이었다.
홍시아가 이해한다는 뜻을 담아 대답했다.
“아무리 바빠도 센터장만 하겠어?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살인 사건이라니.”
“직접 보면서 설명하는 게 빠르겠죠. 이쪽으로 오세요.”
최미진이 앞장서서 향한 곳은 2층에 있는 가장 큰 서재였다. 서재 내부에는 이미 역겨운 피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다.
“윽, 어마어마하네요.”
책장 아래에 쓰러진 채로 죽어 있는 강철우의 시체를 본 김나율이 질색하며 입과 코를 가렸다. 천천히 시체를 살핀 천사연이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천사연뿐만 아니라 게이트를 들락거리며 많은 시체를 봐 온 이들은 이상한 점을 단번에 알아챘다. 심각한 표정으로 시체를 바라본 이주하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능력에 당했길래 시체가 이런 모습인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능력자가 아니라…….”
“몬스터에게 당한 것 같아.”
이주하가 차마 끝맺지 못한 말을 홍시아가 이었다. 하태헌은 조용히 홍시아의 의견에 동의했다.
시체의 상태는 처참했다. 무언가 두껍고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쭉 찢어진 살점이 온몸에 가득했으며 안면과 심장, 허벅지에는 거대한 짐승 송곳니에 꿰뚫린 자국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천사연은 팔짱을 끼며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강철우 의원을 상대로 분노를 쏟아 낸 것처럼 보이는군.’
그만큼 거친 흔적들이었다. 여러모로 평범한 사건은 아니다. 설마 이것도 프라우스 신도단의 작품인가?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몬스터에 관한 그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최미진이 들고 있던 서류를 천사연에게 넘겼다. 빠르게 종이를 넘겨서 내용을 살핀 천사연은 이주하에게 넘겨줬다.
“확실히 그렇군.”
이 근방에서 감지된 몬스터의 기운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로 큰 상처를 남길 정도면 몸집이 꽤 있을 텐데, 그랬다면 침입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알아챘을 것이다.
“으음, 복잡하네. 서류에 적힌 대로라면 몬스터가 저지른 짓은 아니긴 한데.”
서류를 읽은 홍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김나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신체 변형 능력자 아닐까요?”
“뭐,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지. 확실한 건 감식 능력자가 현장을 다녀가는 게 빠를 거야.”
“이미 다녀갔습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을 짧게 비빈 최미진이 피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만약 범인의 능력 예상 범위가 좁혀지면 그건 그거대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윗선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릴지 모르는 일이라서요.”
범인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강제로 불러들여서 조사하거나 그런 능력자를 보호하는 길드에 여러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여간 재수 없는 정치인 새끼들. 꼭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만 관심 폭발이지, 아주.”
덧붙이는 설명 없이도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들은 홍시아가 대놓고 욕설을 뱉어 냈고 이주하는 얼굴을 굳혔다.
본래라면 길드 관리 본부가 그 사이에서 조율하며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되어 줬겠지만, 테러로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상자가 나온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해 주기가 힘들었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습격 한 번으로 잃은 게 너무 많아.’
관리 본부를 다시 세우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정치인 심부름이나 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니. 답답한 마음에 최미진은 분노를 억지로 삼켜 내며 입술을 짓씹었다.
조용히 서서 그런 최미진을 응시하던 천사연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더 시체를 확인했다. 서재 바닥에 웅덩이가 진 검붉은 핏물 위로 천사연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불안한 감각. 천사연은 최근에 있었던 사건들을 차근차근 되짚어 봤다.
D45 구역에서 새로운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아벨의 습격으로 인한 폭탄 테러가 일차적으로 터졌다. 그 후로 얼마 가지 않아 길드 관리 본부에서 두 번째 테러가 벌어졌었지.
-그렇게 무섭게 노려볼 것 없어. 이번에는 싸울 생각 없으니까.
사마엘을 마주쳤던 때가 바로 어제처럼 선명했다. 어깨를 으쓱이며 더러워진 장갑을 벗어 던지는 사마엘을 떠올리던 천사연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
-우리 착한 동생은 항상 나를 못 믿었지. 참 슬퍼.
애초에 프라우스 신도단은 무엇을 노리고 길드 관리 본부를 무너뜨린 거지?
자신들의 존재를 가장 시끄러운 방식으로 세상에 알리고 마약을 더욱 쉽게 퍼뜨리기 위해서.
‘그다음은…….’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살짝 창백해진 천사연이 떨리는 숨을 작게 내쉰 그 순간이었다.
“센터장님, 감식 능력자가 결과를 보내왔습니다.”
본부 직원이 황급히 달려와 최미진에게 서류를 건넸다. 즉시 받아 들고 내용을 읽은 최미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크게 당황했다.
“무슨, 어떻게 이런…….”
“최미진 센터장? 왜 그래?”
“현장 지문 감식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이게….”
“용의자가 뜬 거야?”
“그…….”
홍시아의 물음에 대답을 망설이던 최미진이 곧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강승건 능력자입니다.”
“뭐?”
“강승건 능력자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천사연이 예상한 이름이었다.
***
천사연이 하태헌과 함께 강철우 의원의 자택으로 떠난 지 3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천사연을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어딘가에서 흘러온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피이익!
내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던 여우가 고개를 들고 길게 울었다.
“한이결, 이것 좀 마셔.”
김우진이 초코 우유가 담긴 머그잔을 내밀었다. 노을이 져서 주홍빛으로 가득 차오른 하늘에서 시선을 돌려 머그잔을 받았다.
“고맙다.”
“아예 씻고 편하게 쉬지, 왜 이러고 있어.”
“조금 이따가. 아직 할 게 남아서.”
때마침 옆에 놔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우서혁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우서혁 씨.”
[마스터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우서혁에게 천사연이 돌아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따로 부탁했었다.
‘솔직히 이렇게 순순히 해 줄 거라고는 기대 안 했는데…….’
평소 우서혁의 성격을 따져 보면 천사연 몰래 알려 주는 건 힘들다고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좀 의외였다. 뭐… 나야 편하지.
“어디 계시는지 알려 주시면 제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한이결 씨. 죄송합니다만 나중에 만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마스터께서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만나도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우서혁의 말에 천천히 오늘 하루 봐 왔던 천사연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아까 회의할 때도 기분이 나빠 보였지.’
아무래도 강철우 의원 자택에서 무언가 일이 더 생긴 모양이다.
“정말로 무슨 문제가 생긴 거라면 더욱 만나 봐야겠습니다.”
[…….]
“괜찮으니까 알려 주세요. 천사연 마스터, 어디 있습니까?”
단호한 목소리로 재차 물으니 우서혁이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서혁 씨.”
통화를 끝내고 곧장 거실 베란다 창문으로 향했다. 내 뒤를 졸졸 따라온 김우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냥 내일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A급 청각으로 통화 내용을 무리 없이 들은 김우진이 내 손을 잡아 왔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초코 우유는 다녀와서 마실게. 이따 보자.”
기운을 사용해서 바람을 만들어 내자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대로 길드 건물 가장 위까지 올라가자 정원이 있는 널따란 옥상이 펼쳐졌다.
해가 온전히 지고 검푸른 색으로 변한 하늘 아래로 옥상 난간 가까이에 서 있는 천사연이 보였다.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살랑였다. 생각에 잠긴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 저편을 응시하던 천사연이 곧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담배?’
천사연이 담배를 꺼내는 것은 첫 만남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라 감회가 새로웠다.
웬일로 담배를 피우려는 거지? 역시 뭔가 일이 있었던 게 확실하다.
나는 바람의 힘을 줄여서 아래로 빠르게 이동했다. 난간에 발을 딛고 서자 담배를 막 입에 문 천사연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한이결?”
“어.”
평소라면 진작에 내 존재를 알아채고도 남았을 천사연이 이토록 멍한 상태라니…. 설마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천사연. 괜찮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천사연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꿈에서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도 꼭 지금과 같았는데.
‘D45 구역과 길드 관리 본부가 프라우스 신도단의 테러를 받았던 시기였지.’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내 질문에 픽 웃으며 담배를 다시 집어넣은 천사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피워도 상관없는데.”
“됐어. 그보다 무슨 용건이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죽어도 말 안 하겠다 이거냐.
삐죽하게 솟아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본래 목적을 꺼냈다.
“해독제는 잘 전달했냐? 강철우 의원은 어떻게 된 거고?”
“최미진에게 전했다. 그보다 강철우 시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챘군.”
“그래. 타이밍이 너무 이상하잖아.”
난간에 걸터앉으며 말하자 천사연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살해당한 건 확실해. 시체에 남은 상처는 마치 몬스터가 물어뜯어 놓은 흔적 같더군.”
게이트가 아닌 현실에서 몬스터에게 사망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게이트 폭주로 빠져나와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몬스터나, 재료가 되고 나서도 자기 멋대로 꿈틀거리는 몬스터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호 인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 한해서다. 강철우 의원이 그렇게 쉽게 죽었을 리가 없는데.
“강철우 의원이 사망 직전에 서재에 놔둔 릴리프 장식에서 강승건의 지문이 나왔다.”
“강승건? 관리 본부 테러 때 끌려간 그 강승건?”
“그래. 장식에서 나온 지문은 강철우 의원과 강승건뿐이고.”
이게 사실이라면, 강승건은 제 손으로 부모를 살해했다는 건가? 그보다 강승건은 폭주로 모든 능력을 잃었을 텐데,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프라우스 신도단에게 끌려간 강승건과 강철우 의원의 시체에 남아 있던 흔적. 최가영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몬스터 날개.
‘강승건의 신체에 몬스터를 융합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