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제작자인 루젤과 루크의 시선에는 최가영의 날개가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루젤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분은… 아무래도 마약이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맞습니다. 프라우스 신도단에 소속된 닥터라는 남자에게 강제로 실험을 당했습니다.”
“닥터? 설마 인체 실험을 했다는 건가요?”
“네. S급 이상의 제작자로 추측됩니다. 한번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좋아요. 하지만 옷 위로는 봐도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최가영 씨라고 했나요?”
루젤의 말에 최가영이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저는 로헌 길드 소속 제작자 루젤이라고 해요. 등을 제대로 살펴보고 싶은데, 잠깐 욕실에 들어가서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최가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방금 만난 상대에게 등을 보여야 하니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함께 욕실로 들어간 최가영과 루젤은 얼마 가지 않아 금방 돌아왔다.
“흠… 일단 확인은 했어요.”
“어떻습니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떼어 낼 수 있기는 해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루젤을 바라보던 최가영이 그 대답에 안심했다.
“근데 문제가 좀 복잡하네요.”
“복잡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저 혼자만으로는 힘들어요. 루크는 당연히 도와줘야 하고, 외과의와 힐러도 있어야 해요. 날개를 떼어 내는 과정이 쉽지 않을 테니까.”
“외과의…….”
힐러까지는 민아린이 있으니 가능하지만, 의사는 좀 어려운데. 아무나 부를 수도 없고.
난감해진 내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던 최가영이 상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민아린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그래도 제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잖아요. 수술을 진행해 줄 믿음직한 의사는 이제부터 수소문해서 찾아보면 되는 거고.”
그 말에 루젤도 입꼬리를 시원스럽게 끌어 올렸다.
“맞아요. 고칠 수 있는 문제니까 벌써 낙담하지 말아요. 그리고 어차피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에요.”
루젤이 자기 옆에 서 있는 최가영의 어깨를 확 끌어당기며 설명을 이었다.
“으앗.”
“자, 지금도 봐요. 힘이 하나도 없잖아요. 지금 상태로 그런 큰 수술을 했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할 거예요.”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요.”
생각해 보면 최가영은 닥터에게 잡혀 있을 때도 자주 굶은 것 같았지. 최가영을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대했으니 식사를 챙겨 줬을 리가 없다.
“최소한 닷새 정도는 안정을 취하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해요.”
“좋습니다. 그럼 그동안 의사를 찾아보죠. 그리고.”
나는 목덜미를 한 번 가볍게 쓸어 만진 후에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인벤토리에서 나온 술병이 손바닥 위로 생겨났다.
“이전 회의 때 말씀드린 그 술입니다.”
클럽에서 겨우 얻어 온 마약이 담긴 술. 나는 그것을 루젤에게 넘겼다.
나와 최가영처럼 한 번만 마신 상태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두 번 이상 마시거나 다른 마약과 섞인다면 중독이 더욱 강해진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부산 또한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확인을 못 하고 있을 뿐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건 다 모였다. 이제 남은 건 루젤과 루크가 힘을 합쳐서 중화제나 해독제를 만드는 일뿐이었다.
내 말뜻을 알아들은 루젤이 진지한 얼굴로 술병을 허리에 차고 있는 인벤토리 가방에 집어넣었다.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볼게요.”
그 심각성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건 루젤과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각오가 담긴 대답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로헌으로 돌아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진행 상황은 하태헌 부마스터를 통해 중간마다 알려 드리죠.”
나와 얘기를 끝낸 루젤이 최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가영 씨,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건강 챙겨 두세요. 식사도 빼먹지 말고 꼭 하시고.”
“그, 그럴게요.”
“좋아. 루크! 이제 그만 가자. 그럼 한이결 능력자, 곧 연락드릴게요.”
“두 분 다 와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머뭇거리던 루크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병실을 나서는 루젤의 뒤를 후다닥 쫓아갔다.
루젤과 루크가 떠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최가영에게 말했다.
“어차피 날개 제거 수술도 해야 하니까 여기서 계속 지내세요. 집에는 연락하셨습니까?”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 그건 아직…….”
“걱정하고 있을 가족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금 당장 연락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실종되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 가족에게 연락한다면 분명 이래저래 소란이 생길 게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날개에 관한 정보가 새어 나갈 확률도 높을 거고.
무엇보다 우리가 프라우스 신도단을 저지하기 위해 클럽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최소한 날개를 제거한 다음에 연락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리고 닥터나 마약 관련된 내용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자칫하다간 또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닥터를 포함한 프라우스 신도단은 이미 최가영에게 관심이 떨어진 거로 보이지만 이 정도 거짓말은 해 놔야 겁을 먹고 말하고 다니지 않겠지.
내 예상대로 최가영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제일 중요한 문제들은 일단 어느 정도 해결을 봤다.
나는 슬슬 떨리기 시작하는 손에 억지로 힘을 줘서 주먹을 쥐었다. 깨어났을 때부터 아슬아슬하던 몸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루젤 말처럼 최가영 씨는 휴식이 필요하니까 이만 물러가죠.”
굳이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려 주고 싶진 않아서 돌려 말하자 눈치 빠른 민아린이 곧장 동의했다.
“맞아요. 시간도 벌써 9시가 넘었으니까요. 최가영 씨, 제가 내일 한 번 더 들러서 상태를 봐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최가영을 두고 우리는 복도로 빠져나왔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하태헌이 입을 열었다.
“나도 이만 길드로 돌아가 봐야겠군.”
그러고 보니 하태헌은 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느라고 오늘 새벽부터 온종일 레퀴엠에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미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집이 아니라 로헌으로 가시는 겁니까?”
“처리할 일이 조금 남아 있다.”
멀뚱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 흘겨본 하태헌이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오늘 고생했다. 이만하고 방으로 돌아가서 쉬도록 해.”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하겠다.”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하태헌은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하태헌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민아린이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이결 씨도 피곤하시죠? 어서 방으로 가요.”
“아니, 전 괜찮…….”
“안 돼요! 약 기운이 사라진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어느새 김우진도 합세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앞은 김우진, 뒤는 민아린에게 질질 끌려서 23층으로 올라온 나는 그대로 방 안에 밀어 넣어졌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바로 올게요! 그때까지 다른 짓 말고 푹 쉬셔야 해요.”
옆에 있으면 내가 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김우진도 방에 들어오지 않고 현관에 서서 말했다.
“나도 위층 방에 가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달려올 테니까 연락해, 한이결.”
조용히 뒤를 따라와 흥미롭다는 얼굴로 구경하던 박건호가 팔짱을 끼며 옆에 서 있는 천사연에게 물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끝인가?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마스터?”
“한이결 씨도 휴식이 필요하니 이만 물러나는 게 좋겠군요.”
우서혁의 말에 천사연의 검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조용히 나를 살핀 그가 이내 대답했다.
“그래. 내일 마저 하도록 하지.”
“아, 잠시…….”
나는 미련 없이 방을 떠나가려는 천사연의 팔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이결 씨?”
“한이결?”
놀란 민아린과 김우진이 나를 불렀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어차피 한번 잡은 거 그냥 지금 말하는 게 낫다.
“천사연 마스터. 저한테 잠깐 시간 좀 내시죠.”
“음?”
“다른 분들은 이만 가셔도 됩니다. 천사연 마스터와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
내가 먼저 천사연을 붙잡은 상황이 꽤 의외였는지 우서혁 또한 드물게 놀란 표정을 했다. 잠시간 내게 잡힌 팔을 응시하던 천사연이 답했다.
“30분 정도라면 상관없을 것 같군. 우서혁, 알아서 일 마무리하고 퇴근하도록.”
“…알겠습니다.”
천사연의 명령에 빠르게 무표정으로 돌아온 우서혁이 묵례를 했다. 그 뒤로 묘한 눈빛을 한 박건호가 보였다.
“이결 씨…….”
“괜찮습니다. 내일 봬요, 민아린 씨. 김우진 너도.”
상대가 천사연이라 걱정되지만 차마 막을 수 없어 보이는 민아린과 김우진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한 나는 천사연만 방에 들이고 현관문을 닫았다.
‘아, 정신없어.’
피곤함이 깃든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몸을 돌렸다. 그새 천사연은 거실로 가서 소파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여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이익!
혼자 방을 지키는 동안 제법 심심했는지 여우가 빠르게 달려왔다. 칭얼거리는 여우를 품에 안아 주며 천사연에게 말했다.
“뭐 해? 앉아.”
주변 눈치 보여서 계속 존댓말을 쓰다가 평소대로 반말하니까 훨씬 편하네.
“……그럴까.”
잠깐의 침묵 끝에 담담히 대답한 천사연이 옅게 웃었다. 그 모습에 어째 머쓱해진 나는 급히 주방으로 이동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방에 천사연과 단둘이 있는 건 엄청 오랜만이잖아?
김우진이 예전에 사 뒀던 녹차 티백을 찬물이 담긴 잔에 대충 던져 넣은 나는 목덜미를 쓸어 만졌다.
‘좀 어색한데.’
아니, 근데 왜 어색한 거지? 저 자식이랑 나랑 어색하고 말고 할 관계인가?
안 되겠다. 본론만 끝내면 바로 내보내야겠다. 프라우스 신도단 관계자인 닥터에 대해서 뭘 아는지 바로 물어보자.
웬일로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천사연에게 다가가 녹차 티백이 담긴 물 잔을 건넸다.
“자, 마셔.”
“…….”
순순히 받아 든 천사연은 잔에 담긴 내용물을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뭐야.”
“아무것도.”
고개를 살짝 저은 천사연이 별다른 말 없이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냥 물맛만 나는군. 녹차를 넣은 것 맞나?”
물맛만 난다고? 천사연이 내게 잔을 다시 내밀었다. 그것을 받자 이번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피익!
한층 가까워진 SS급의 기운에 여우가 질색하며 맞은편 소파로 도망쳤다.
자연스럽게 천사연 옆에 앉게 된 나는 일단 물 잔에 든 것부터 마셨다. 진짜 물맛만 나네.
“찬물에 티백을 담가서 그런 것 같은데.”
“그래?”
“따듯한 거로 다시 가져다줘?”
“아니. 이거로도 충분해.”
그렇다면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던 나는 문득 허리를 안아 오는 천사연의 팔을 느끼고 눈가를 좁혔다.
이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