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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19)화 (219/394)

219화 

이수진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툭 떨구었다. 과한 감정 조절의 여파로 기력이 다한 모양이다.

다시 눈가리개로 이수진의 시야를 가린 권정한이 살짝 피곤한 낯으로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시 능력을 쓰려면 하루 정도는 텀을 두어야 할 것 같아요.”

“괜찮아. 얻을 만한 건 다 얻은 것 같으니까.”

능력의 효과가 사라진 권정한은 아까처럼 과하게 달라붙지 않았다. 이수진을 두고 우리는 훈련실을 빠져나왔다.

“한이결. 네가 구해 온 사람, 바로 만나러 갈 건가?”

“네. 그 편이 나아 보여요.”

하태헌의 질문에 내가 답하자 우서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 사람은 개인 병실에 있습니다. 한이결 씨도 별 탈 없이 깨어나셨으니 그쪽도 지금쯤이면 일어나 있을 거로 예상됩니다.”

“좋네요.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예. 따라오십시오.”

그길로 곧장 병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서 일단 제 팀에 믿을 만한 분께 부탁드리긴 했지만… 그, 등에 날개가 워낙 숨길 만한 크기가 아니라서요. 걱정은 좀 되네요.”

“어쩔 수 없죠.”

애당초 완벽하게 숨기는 게 불가능한 크기였다. 이번에 말이 새어 나가지 않더라도 날개를 계속 달고 있다면 언젠가는 여기저기 퍼질 게 분명했다.

“들어갑시다.”

병실 문을 가볍게 노크를 한 후에 천천히 열었다. 레퀴엠 병실은 나도 몇 번이고 신세를 졌던 터라 여러모로 익숙했다.

“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병실 침대. 그곳에 걸터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돌아봤다.

허리 중반까지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등에 크게 돋아나 있는 날개는 지나치게 하얘서 마치 천사를 연상시켰다.

이수진과 달리 그녀는 프라우스 신도단과 관련이 있지 않은, 그저 휩쓸린 피해자이기 때문에 신상 정보를 굳이 알아내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는 터라 나는 인사를 대신해서 물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그쪽은…….”

내 말에 놀란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뜬 여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안색도 창백한 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마른 몸에 바람으로 잡아 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금세 중심을 되찾은 상대가 허겁지겁 내게 달려왔다.

“감사해요……!”

“네?”

여자가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듯 잡아 오며 울먹거렸다.

“저를 구해 주신 분 맞죠? 그때… 들었어요. 목소리뿐이었지만 분명 당신이에요.”

“그건 맞긴 한데요…….”

좀 난감한데. 나 혼자 구하러 간 것도 아니고. 내게 무작정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대는 어쩐지 대하기 어려웠다.

‘아무나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말 잘하는 천사연이나 박건호가….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싸늘한 천사연의 얼굴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새끼는 왜 또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박건호도… 저 심드렁한 태도는 뭐야. 우서혁은 별로 나서고 싶은 눈치가 아니고. 김우진하고 권정한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은데.

결국 남은 건 민아린뿐이었다.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우리를 구경하던 민아린을 간절하게 바라보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반가운 마음은 알겠지만 좀 진정하세요.”

여자에게 다가간 민아린이 부드럽게 달래며 상대를 침대로 이끌어 앉혔다.

“아직 몸 상태도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잖아요.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대화해요.”

“앗, 네에. 고마워요.”

“저는 레퀴엠 소속 힐러 민아린이라고 합니다. 당신은요?”

“저는… 최가영이라고 해요.”

우물쭈물하며 주변을 살피던 최가영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레퀴엠 길드 건물이라는 건 식사를 가져다줬던 힐러님께 들었어요. 그럼 다른 분들도 다 레퀴엠 소속이신 건가요?”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습니다.”

굳이 하태헌이 로헌이라는 걸 밝힐 필요는 없으니 간략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이름은 들었으니 나도 소개를 해야겠지.

“최가영 씨, 저는 한이결이라고 합니다. 무소속이지만 사정이 있어서 레퀴엠 길드와 함께 일을 하고 있고요.”

그 말에 최가영이 어딘가 멍한 눈을 하고서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떠올리기 괴롭겠지만 어쩌다가 잡혀서 그런 실험을 당했는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실험…….”

최가영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여태껏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날개가 파르르 떨리더니 작게 날갯짓을 했다.

“…제 집은 대전에 있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최가영이 천천히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전에 살던 최가영은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곳을 알아보던 취업 준비생이었다.

능력자로 각성을 하긴 했지만 C급인 데다 능력도 ‘자가 치유’인 탓에 길드가 아닌 평범한 회사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다.

별달리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밤늦게까지 자격증 공부를 한 최가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뒤에야 도서관을 나섰다.

“원래도 사람이 별로 없는 길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아무도 없었고, 그게 참 이상했죠.”

최가영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이미 길 안쪽까지 들어온 이후였다.

3분 정도만 더 가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곳에서 최가영은 프라우스 신도단에게 납치를 당했다.

‘정신계 능력자를 풀어서 사람 접근을 막은 후에 납치했군.’

나는 닥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건 C급이긴 해도 자가 치유 능력이 있어서 살아 있는 거지.

처음부터 최가영의 능력을 알고 납치한 건가. 실험으로 써먹기 위해서.

“읏, 그다음에는…… 끊임없이 아팠어요.”

이전에 겪은 일을 떠올린 최가영이 스스로 어깨를 붙잡으며 몸을 떨었다. 그 불안정한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닥터라는 남자에 대해서도 아는 게 있습니까?”

“…항상 무언가를 만들거나 실험을 했어요.”

창백한 낯으로 고심하던 최가영이 더듬더듬 설명을 이어 갔다.

“기운이 엄청 강해요. 최소 S급…. 그리고 융합 전문 제작자라고 들었어요.”

“융합 전문 제작자? 확실한 겁니까?”

“눈이 가려진 상태라서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그렇게 얘기했어요. 굉장히 어린 여자 목소리였는데…….”

어린 여자 목소리… 그렇다면.

‘아벨일 가능성이 커.’

닥터. 이 남자는 확실히 프라우스 신도단이군. 그것도 사마엘이나 아벨처럼 관련이 꽤 깊은.

‘천사연은 닥터에 대해서 알고 있나?’

주변에 사람이 워낙 많은 데다가 이수진과 최가영을 차례대로 만나느라 그와는 아직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따가 상황을 봐서 천사연과 따로 만나야겠다.

“그 외에 아는 것 더 있습니까?”

“으음, 저 말고도 납치해 온 피해자가 더 있었어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요. 솔직히 말하자면 살아 있는지조차도… 대부분 실험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 같아서…….”

“…….”

“그리고 곧 미국으로 갈 거라고 했어요. 만약 저도 구출받지 못했다면… 미국으로 끌려갔겠죠.”

이수진과 같은 답변이었다. 미국으로 도망갔다는 건 확실해졌군.

루젤과 루크의 부탁도 그렇고. 수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있는 것도 영 마음에 걸렸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무서워요. 하, 한이결 씨.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아무래도 직접 미국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미국에는 이전에 만났던 아테나의 부마스터인 클로에가 있으니 미리 연락을 한번 해 봐야겠다.

“저기… 듣고 계신가요?”

“아, 네. 생각을 좀 하느라.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닌걸요.”

“닥터에 관해서 새로 기억나는 게 생기면 알려 주시겠습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협력을 약속하는 최가영을 바라보다 등에 달린 거대한 날개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저 날개는 어떻게 해야 하지?’

S급 이상 제작자인 닥터가 붙여 놨으니 함부로 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따가 루젤과 루크가 오면 물어봐야겠다. 본인이 원치 않게 몬스터 날개를 달았으니 뗄 수 있으면 떼 줘야겠지.

이왕 구해 온 거 도울 수 있을 만큼 돕는 게 좋겠다. 어차피 마약의 해독제나 중화제를 만들려면…….

“한이결.”

“예?”

루젤과 루크와 만나서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나는 하태헌의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그는 최가영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통화하고 왔는지 핸드폰을 손에 든 채로 내게 말했다.

“루젤 제작자가 방금 막 레퀴엠에 도착했다고 하는군.”

“그렇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천사연에게 물었다.

“여기로 불러도 됩니까?”

“상관없으니 편한 대로 하도록.”

천사연의 뒤에서 가만히 서서 대화를 듣던 우서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도착하는 대로 이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우서혁이 병실을 나가는 것을 본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살피는 최가영에게 말했다.

“최가영 씨, 지금 제작자분들이 오실 겁니다. 날개를 제거할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죠.”

“제, 제거라면…….”

“네. 계속 달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보이는데. 주변 시선도 있고.”

“아…….”

“저도 제작 쪽은 잘 모르니 확답은 못 드립니다만, 만약 제거하는 게 가능하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최가영이 안쓰러워서 돕는다기보다는 쓸데없는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 몸에 몬스터 신체를 이어 붙였다는 사실이 새어 나가게 둘 수는 없다.

천사연과 하태헌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같을 거다. 프라우스 신도단 때문에 가뜩이나 복잡한 지금, 다른 분란 요소는 빠르게 제거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마중을 나갔던 우서혁은 금방 돌아왔다. 우서혁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선 루젤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활짝 웃었다. 그 옆에는 루크도 함께였다.

“어서 오세요.”

“다들 잘 지내셨죠? 한이결 능력자, 클럽 일은 잘 해결했나요?”

“그럼요.”

약간 어색했던 병실 공기는 루젤의 등장으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루젤과 악수한 나는 그녀에게 최가영을 소개했다.

“이쪽은 이번 마약 사건 피해자인 최가영 씨입니다.”

루젤과 루크의 시선이 동시에 최가영의 등으로 향했다. 그들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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