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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18)화 (218/394)

218화 

“하, 한이결.”

권정한이 부탁할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김우진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니 걱정되는 모양이다.

“괜찮아.”

권정한을 쫓아 이수진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멈춘 권정한이 나를 두고 혼자 걸어가 이수진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어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눈을 깜빡이는 이수진의 상태를 살핀 권정한이 내 곁으로 돌아왔다.

“…자기, 생긴 게 많이 달라졌네?”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서 나와 권정한,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본 이수진이 비웃음을 지으며 이죽거렸다.

“그땐 아이템을 좀 썼었죠.”

“지금 모습이 더 내 취향인데? 난 화려한 건 좀 별로거든.”

“그것참 고맙네요.”

지금 이 상태도 내 진짜 모습은 아닌데.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보려는 이수진의 노력이 가상했지만,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은 터라 권정한에게 눈짓을 했다.

“시작할게요.”

권정한의 말에 이수진이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바싹 굳혔다. 권정한이 어떤 식으로 능력을 쓸지는 나도 모르는 터라 잠자코 지켜봤다.

“자, 이수진 씨.”

“…….”

“그리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처음은 이명수 때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권정한의 능력이 발동되자 이수진의 치켜 올라갔던 눈꼬리가 조금씩 내려오며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어떻습니까? 기분이 제법 나쁘지 않죠?”

“헛소리…….”

“그럼 이제 여기에 집중해 주세요.”

권정한이 내 뒤로 와서 한쪽 팔로 허리를 감싸 왔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는 사이에 권정한이 입을 열었다.

“이수진 씨, 이분 귀엽지 않나요?”

“…….”

능력 없이 그냥 하는 말에 이수진이 짜게 식은 눈으로 나와 권정한을 바라봤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하네.

“권정한…….”

“하하, 장난이에요. 진짜로 할게요.”

내가 노려보자 웃음을 터뜨린 권정한이 이번에는 제대로 능력을 사용했다.

“이수진 씨, ‘이 사람을 아주 괜찮은 남자라고 여기세요.’ 당신의 취향에 딱 맞는 그런 상대이지 않나요?”

이수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흐려졌다. 나를 향한 눈빛이 어딘가 몽롱한 기운이 감돌고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음?”

“……왜?”

잠시간 이수진을 응시하던 권정한이 내게 몸을 더 붙이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보다 반응이 빨라서요.”

“빠르다고?”

“저 사람, 원래부터 형한테 관심이 있었나 본데요?”

관심? 여기서 관심은 당연히 그런 쪽 관심을 말하는 거겠지?

잠시간 이수진과 있었던 일들을 쭉 떠올려 본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뭐, 일이 쉬워지면 우리야 좋죠.”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권정한이 멈췄던 능력을 다시 이어 나갔다.

“좀 더 감정에 집중해 볼까요? ‘이 사람을 사랑하고 신뢰하세요.’ 믿는 겁니다.”

“으윽…….”

이수진의 얼굴이 방금보다 훨씬 더 붉게 물들었다. 나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데다 부끄러운 것처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제야 나는 권정한이 어떤 방식으로 이수진의 감정을 움직이려는 건지 알아채고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모르는 상대를 사랑하도록 만든다니… 새삼 느끼지만 정말 무서운 능력이었다.

“저기, 권정한….”

“네?”

자꾸만 손을 잡아 오고 몸을 밀착하는 권정한을 슬쩍 밀어냈다.

“그만 좀 붙어.”

“하지만요, 형.”

모른 척 억지로 나를 껴안은 권정한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능력 부작용 아시잖아요. 저 여자가 형을 사랑하도록 만들었으니, 저도 지금은…….”

“…….”

끝까지 듣지 않아도 뒷말을 알 수 있었다. 내 떨떠름한 시선에 권정한이 눈꼬리를 휘어 미소 지었다.

“아무튼, 기본적인 작업은 끝났어요. 대화하다가 막히면 능력을 더 쓰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충분해요.”

“알겠어.”

가짜로 심은 사랑을 이용하려니 영 찝찝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으니. 나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이수진 씨.”

“으, 응? 왜, 왜?”

내 부름에 이수진이 화들짝 놀라며 내게 힐끔 시선을 보냈다. 아까의 까칠하고 예민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당신과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 좀 알고 싶습니다.”

“프… 프라우스 신도단?”

“잠깐만요, 형.”

여태 나를 껴안고 있던 권정한이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복잡해져요.”

“복잡해진다고?”

“네. 저 여자는 지금 형을 사랑해서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 난 상태예요. 그러니까 차라리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이수진이 대화에 끼어든 권정한을 도끼눈을 뜨고서 노려봤다.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질투심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도와 달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고민 끝에 다시 말했다.

“이수진 씨, 저는 프라우스 신도단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뭐? 프라우스 신도단한테? 그러고 보니 너… 바람 능력을 썼지? 설마 그들이 찾는 바람 능력자가…….”

“네. 저 맞아요. 그래서 당신이 저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서 좀 알려 주세요.”

나는 혹시 몰라 덧붙였다.

“설마 저를 죽게 내버려 둘 건 아니죠?”

일부러 상처 입은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자 이수진이 눈을 크게 뜨고는 몹시 당황했다. 식은땀까지 흘릴 정도로 초조해하던 그녀는 곧 더듬더듬 입술을 뗐다.

“그들이 찾는 ‘바람 능력자’가 너인 줄은… 난 정말 몰랐어. 너를 찾는 일에는 아무 관련도 없었고. 애초에 마약 건만 맡으면 됐거든.”

“마약을 퍼뜨리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겁니까?”

“맞아. 그들이 내게 준 미션이야. 성공하면 ‘그분’을 만나게 해 준다고 해서…….”

이수진의 설명에 D45 구역에서 만난 인형술사 아벨이 떠올랐다.

-그분이 네게 선물을 주신 거야. 다른 인간들은 갖지도 못할 성스러운 축복을 받아 놓고, 지금!

천사연을 향한 광기 어린 외침.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하던 천사연의 태도. 그 모든 것을 차근차근 기억해 낸 나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이 말한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세요.”

“…나도 많이 아는 건 아니야. 부모님이 더 잘 아실걸.”

한참을 망설이던 이수진은 천천히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프라우스 신도단이 접근한 상대는 이수진이 아닌 그녀의 부모였다.

C급 능력자인 이수진의 부모는 애매한 능력으로 자주 차별을 당했고, 그건 주사기 같은 가벼운 물건을 겨우 들어 올릴 수 있는 약한 염동력을 가진 이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염동 능력을 가졌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다가 끝에는 고작 그 정도 힘이 다냐고 비웃고 깔보더라. 상대가 누구든 마찬가지였어.”

그런 수모를 겪어 온 이수진의 가족에겐 능력자는 진화된 개체라 여기는 프라우스 신도단의 교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난 얼마 가지 않아 프라우스 신도단이 여러모로 수상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지만… 부모님은 아니더라.”

이수진의 설득에도 부모의 태도는 아주 강경했다. 딸을 한국으로 보내면 ‘그분’을 만나게 해 준다는 말에 이수진을 곧장 내쫓을 정도로 부모는 프라우스 신도단에 푹 빠졌다.

“다 버리고 도망칠까 했지만… 결국 한국행을 선택했지.”

“한국으로 와서는요?”

“…대단한 건 안 했어. 명령대로 따랐을 뿐이니까. 돈으로 사람을 모아서 술을 퍼뜨리고 클럽에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거. 그게 다야.”

“저한테는 마약이 담긴 술 말고도 많은 것을 팔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니라… 닥터가 판 거야. 실제로 대부분은 닥터를 찾아온 사람들이고. 평범한 마약부터 몬스터 체액 같은 것들. 솔직히 자세히는 몰라. 관심 없었거든.”

닥터…….

역시 프라우스 신도단과 제대로 엮인 놈은 닥터인가. 그때 어떻게든 도망치는 걸 막았어야 했는데.

겨우 잡아 온 이수진도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혀를 차며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닥터는 언제 만난 겁니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주소가 적힌 데로 가니까 그 클럽 건물이었고… 닥터는 내가 오기 전부터 그곳에서 연구하고 있었어.”

이수진이 왔을 때는 이미 날개 달린 여자의 연구를 끝내고 마약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제일 많이 퍼뜨린 마약은 처음 만들어서 그런지 B급 이상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제품을 만들었고, 때마침 찾아온 테스터인 내게 먹이려던 것이다.

“주사기에 담긴 것도 마찬가지야. 저기… 그, 그때는 내가… 미, 미…….”

이수진은 내게 주사기를 꽂았던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어차피 진심이 아니니 듣고 싶지 않았다.

“됐고, 닥터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건 없어요?”

내 냉담한 태도에 상심한 그녀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확실히 아는 건 아닌데…….”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까?”

“아마 미국일 거야.”

“미국?”

“미국에서 무언가를 대대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몇 번이고 말했어. 어차피 네가 오지 않았더라도 다음 달이면 한국을 뜨고 미국으로 갔을 거야.”

무언가를 대대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마약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꽤 쓸 만한… 공간 제어 능력자까지 데려왔으니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잠깐만, 공간 제어 능력자? 언제부터 데려온 건데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다급한 질문에 이수진은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야. 애초에 난 닥터, 그 좆같은 새끼랑 엮이고 싶지도 않았어. 그 새끼가 마약을 만들 때 심심하다고 제멋대로 떠들어 댄 얘기일 뿐이고… 믿는 건 네 자유지.”

미국. 쓸 만한 공간 제어 능력자. 조각난 단서들 위로 루크의 부탁이 덮어졌다.

-그분도 저희와 같은 제작자인데…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루젤과 루크 남매에게 4개월 전에 연락을 남기고 사라진 리웨이 제작자. 하필 그가 사라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있던 장소가 미국 레드 마켓인 점이 무척이나 걸렸다.

‘설마 프라우스 신도단이 리웨이를 끌고 간 건가?’

사마엘이 가진 정신 지배 능력에 당해서 강제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면?

‘…리웨이뿐만 아니라 다른 제작 능력자들도 납치당했을 가능성이 크겠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얘기를 끝낸 이수진은 머리가 아픈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때요, 형? 능력을 더 쓸까요?”

“아니. 여기까지 하자.”

일단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얻어 낸 정보를 정리하고 계획을 새로 세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특히 닥터라는 신도단의 정보는 실험체였던 사람을 찾아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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