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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12)화 (212/394)

212화 

“어머, 여기 클럽 VIP룸은 처음 와 보는데. 엄청 좋네요.”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하는 말에 나는 룸 내부를 살펴봤다.

중앙에 커다란 소파와 둥근 테이블이 보였다. 그 옆에는 스탠딩 바가 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침대와 작은 스파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가 호텔 방인지 클럽 내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테이블 위에 장미꽃과 함께 놓여 있는 와인 병을 들어 올린 여자가 이어 물었다.

“그런데 다른 두 분은 들어오지 않아도 되겠어요? 저랑 같이 온 애들이랑 분위기도 좋던데.”

룸 천장을 세세히 살핀 나는 CCTV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빙긋 웃었다.

“명색이 경호원인데 나를 두고 여자랑 놀게 하겠어? 당연히 문 앞에서 얌전히 기다려야지.”

“저런. 불쌍해라.”

천장에 CCTV는 없다 해도 방 곳곳에 숨겨 놓은 감시 카메라가 즐비할 거다. 그래도 VIP룸 주변은 관계자 외에 일반인은 없어 보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바로 여자를 붙잡을지 말지 갈등하던 나는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번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약이 담긴 술을 얻어 내는 것. 굳이 무리해서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내가 소파에 앉자 자연스럽게 옆으로 온 여자가 와인 잔에 붉은 와인을 따랐다.

“그런데… 이름은 언제 알려 줄 거예요?”

“네가 먼저 말하면.”

“이름 한번 비싸네요. 좋아요. 전 이수진이에요.”

어차피 가명일 테니 이름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다만, 정보를 얻기 위해 서로 어느 정도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권세현.”

“한국 이름이네요?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많이들 오해하지.”

“권씨라… 권씨 중에 당신처럼 등급이 높은 사람은 별로 없는데. 혹시 산정 물산 쪽이에요? 아니면… 대우 기업 쪽?”

이수진의 말이 너무 웃겨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한테 관심이 많네.”

“미안해요.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떡해?”

“상관없어. 나도 궁금한 게 있으니까.”

“저한테요?”

내게 와인이 담긴 잔을 쥐여 준 이수진이 과하게 몸을 밀착했다.

아까 샴페인은 내가 땄으니 상관없지만, 이번 와인은 상대의 손을 거친 터라 마시지 않고 그저 잔만 살살 흔들었다.

“사실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여기 온 거라.”

“우리 도련님께서 가지려는 게 뭐길래 여기까지 직접 오신 걸까.”

시치미를 떼는 이수진의 행동에 나는 기가 막히는 척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연기력 좋네. 좀 역겨울 정도로.”

“흐흥,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여기 좋은 거 팔고 있다며?”

그 말에 긴 속눈썹 아래로 보이는 이수진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거라… 글쎄요.”

“그만하자, 응? 네가 바람 잡으려고 접근한 거 다 눈치챘으니까.”

와인을 마시는 척만 한 나는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고 이수진의 어깨 위로 팔을 올렸다.

“흐음. 언제부터 알고 있던 거죠?”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 해 놓고, 무슨.”

이수진이 바로 맞췄다는 얼굴로 빙긋 웃었다. 그럼 그렇지.

“적당히 튕기고 나한테 팔아. 처음부터 그러려고 판 벌인 거잖아.”

“오해가 있네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건 진심이에요. 우리가 가진 게 좀 많거든.”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정보를 더 뱉으라는 뜻이었다. 마치 고민하는 것처럼 소파를 손가락으로 잠시간 툭툭 두드린 나는 곧 입을 열었다.

“일주일 전에 좋은 곳에서 모임을 했는데. 아는 놈이 개 한 마리를 끌고 왔더라고.”

“개요?”

“정신 나간 개새끼 한 마리였지. 뭘 처먹었는지 내내 빌빌거리면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던데.”

그때를 떠올리는 척 킥킥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겁을 집어먹고 비명을 지르다가 그다음에는 아프다고 별 지랄을 다 떨던데. 제법 볼만했어. 덕분에 분위기도 좋았고.”

“아아…….”

잠자코 내 설명을 듣던 이수진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개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여기서 술 하나를 샀다던데. 효과가 아주 괜찮더군.”

“뭔지 알겠네요.”

“내가 그 술이 좀 필요한데.”

설마 그딴 새끼한테도 판 걸 나한테 안 팔진 않겠지. 자신만만하게 바라보자 이수진이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뭐… 정확히 알고 오셨네요. 그 술은 우리가 파는 게 맞아요.”

“가져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이수진이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줄 수 없어요. 당신의 신원이 좀 더 확실했다면 또 다르겠지만.”

“이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은데. 내 얘기는 다 들어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뺀다고?”

“그게 이곳 룰이에요. 우리도 머리라는 걸 달고 있답니다. 당신이 아주 잘생긴 경찰 오빠일 수도 있는데, 뭘 믿고 주겠어요?”

쯧. 대놓고 혀를 찬 나는 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후회할 텐데.”

내 협박에도 이수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도 쓸 만한 뒷배 정도는 있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방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모양이다.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어쩔까. 그냥 뒤집어엎어야 하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박건호와 우서혁이 도와준다면 해 볼 만할 텐데.

‘아니야.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위험이 너무 커.’

클럽에 일반인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싸움이 커지거나 거칠어진다면 분명 피해가 갈 텐데.

심지어 지상 건물도 아니고 지하 아닌가. 어디 하나 구조물이 잘못 망가져서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이해한다는 웃음을 지은 이수진이 제 어깨에 올려진 내 팔을 쓰다듬었다. 주황색 조명에 그녀의 붉은 손톱이 매끈하게 빛났다.

“표정 봐. 술이 그렇게나 필요한가요?”

“기껏 시간 내서 왔는데 좆같은 말만 들으면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지 않나.”

“흐음. 그럼 제가 제안 하나 할까요?”

제안? 눈썹을 치켜세우며 시선을 돌리자 이수진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하며 속삭였다.

“사실 우리가 이번에 새 제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새 제품이라…….”

“세현 씨가 찾고 있는 술보다 훨씬 뛰어나요. 아직은 좀 불안정하지만.”

“하려는 말이 뭐지?”

“그걸 마셔 주면 답례로 술을 드리죠. 테스트 진행 중인 신제품이든 원래 찾고 있던 제품이든 상관없이.”

“…….”

머릿속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술… 즉, 마약을 얻으려면 마약을 먹으라는 건가. 복잡한 심경을 숨기고 어이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금 그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거절하셔도 저야 상관없죠.”

“내가 어느 집안 새끼인지 모르니 줄 수 없다면서,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지 궁금하네.”

“어머, 까칠하셔라.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요. 그저 조심하자는 거지.”

“그러니까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냐고.”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으며 따져 묻자 이수진이 내게 붙였던 몸을 바로 하며 다리를 꼬았다.

“사실은 말이죠… 능력자가 필요하거든요. 정확히는 세현 씨처럼 등급이 높은 능력자요.”

“아하. 튼튼한 실험체가 필요하시다?”

“툭 까놓고 대화해 볼까요? 저는 B급이에요.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 세현 씨는 B급 이상… 적어도 A급은 되는 것 같은데. 맞죠?”

테이블 아래에서 익숙하게 담뱃갑을 찾아 든 이수진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우린 A급 수준의 테스터를 구하고 있어요. 세현 씨와의 만남이 행운처럼 여겨질 만큼 꽤 급하게. 그러니까 테스트에 참여해 주면 아주 감사하겠어요. 하나 드릴까요?”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인 이수진이 매캐한 연기를 훅 뿜어내며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 마약이 들어간 담배일지도 모르니 고개를 저어 거절하자 그녀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경계심이 너무 강한 거 아니에요? 이거 평범한 담배 맞아요.”

“됐고. 그러다가 정말로 내가 경찰 끄나풀이면 어쩌려고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사실 그것도 상관없어요.”

그림같이 예쁘게 웃은 이수진이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한 군데서 오래 장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돈 좀 벌린다고 쓸데없이 미적거리다가 씹창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

“그리고 마시면 아마 하루 동안은 꼼짝도 못 할걸요? 아 참, 봤다고 했지? 개새끼 한 마리. 이번 건 아마 그거보다 더할지도?”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게 새로 개발한 마약을 먹이는 게 진짜 목적이었군.

이런 흐름이라면 굉장히 좋지 않았다. 마약을 얻을 방법이랍시고 이 여자가 내세운 거지 같은 제안보다 그 뒤에 한 말이 더 중요했다.

‘마약을 본격적으로 푼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장소를 옮긴다고?’

내가 짐작하고 있던 기간보다 훨씬 짧았다. 오늘이 아니면 프라우스 신도단 놈들을 놓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아까보다 더한 부담감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여러 갈래로 뻗어져 가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술병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봤다.

‘마약…….’

왜 나는 이 좆같은 것과 매번 엮이는 걸까. 한번 죽고 다른 이의 몸에 들어왔는데도 엮이다니, 이쯤이면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씁쓸한 한숨을 삼켜 내며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이수진이 짤막해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고민을 끝낸 나는 입을 열었다.

“좋아. 마실 테니까 술이나 내놔.”

일부러 무성의하게 대답하자 이수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했다.

“어머. 분명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야 준다며?”

“흐응.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정말 괜찮겠어요?”

“그깟 마약 좀 먹는다고 안 뒤져. 정 개 같으면 다른 마약도 같이 좀 하지, 뭐.”

“자신감이 대단하시네.”

입가를 가리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는 이수진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근데 순순히 마실 생각은 없는데?”

“……네?”

“몇 가지 조건이 있어. 그걸 들어줘야 마실 마음이 들 것 같네.”

조건이라는 단어에 웃음기가 온데간데없어진 이수진이 차가운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술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세현 씨?”

“필요하지. 근데 웃기잖아. 그쪽 말 들어 보면 나 같은 높은 등급의 실험체를 구하는 게 어지간히 어려운 모양인데,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지?”

“…….”

“조건을 거절하면 나도 더 귀찮게 안 하고 미련 없이 술 포기할 거고.”

딱딱하게 굳은 이수진을 향해 나는 환하게 웃었다.

“결정해. 어떻게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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