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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09)화 (209/394)

209화

53. 잠입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성 전문 제작자 루젤. 추출 전문 제작자 루크.

하태헌에게 연락을 받고 레퀴엠까지 찾아와 준 둘에게 감사를 담아 인사를 보내자, 루젤이 답례로 내게 윙크를 하며 밝게 웃었다.

“부마스터가 부탁하기도 했지만, 설명을 들어 보니 재밌을 것 같아서 와 봤어요.”

루젤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호쾌했고, 루크는 여전히 낯을 심하게 가리는지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로 나와 악수도 겨우 했다.

둘을 빈자리로 안내한 나는 호기심 어린 기운이 감도는 모두에게 소개했다.

“로헌 소속 합성 전문 제작자 루젤과 무소속 추출 전문 제작자 루크 씨입니다.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가 하태헌 씨에게 따로 부탁을 드려 초대했습니다.”

입가를 매만지며 내 말을 흥미롭게 듣던 천사연이 미소를 지으며 루젤과 루크를 바라봤다.

“합성과 추출이라. 그렇지 않아도 로헌에서 실력 좋은 제작자를 데려갔다는 소식은 들었지. 만나서 반갑군요.”

적당히 상대를 인정해 주면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은 칭찬이었다. 루젤도 눈꼬리를 살짝 접어 웃으며 대답했다.

“레퀴엠 마스터께서 좋은 말씀을 해 주시니, 그저 영광입니다.”

레퀴엠의 대표인 천사연과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눈 것을 확인한 나도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이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모두 관계자니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혹시 하태헌 씨에게 어디까지 설명을 들으셨습니까?”

“음, 합성 마약이 불법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과 요즘 한창 시끄러운 프라우스 신도단이 엮여 있다는 것 정도요.”

그 대답에 나는 하태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팔짱을 낀 채로 무표정하게 있던 하태헌이 나와 잠깐 시선을 맞추다 곧 루젤에게 말했다.

“마약 거래 장소는 클럽으로 밝혀졌다. 마침 열흘 뒤에 그곳에서 파티가 열린다고 하니 직접 가서 마약이 든 술을 빼내 올 계획이고.”

“흐흥, 열흘 뒤면 금방이네요.”

“술을 구해 오면 그걸 좀 맡아 줬으면 좋겠군.”

루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하태헌의 팔을 가볍게 잡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안에 들어간 마약을 파악하고 해독제나 중화제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물론 제작에 필요한 재료나 비용은 모두 지원하겠습니다.”

지원 부분은 이미 로헌에게 확답을 받은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지금 처음 들은 천사연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럼 우리 레퀴엠은 추가로 제작 시설까지 지원해 주도록 하지.”

“지금 경쟁하자는 게 아닌데요…….”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이래, 창피하게. 소리 낮춰 타박하자 천사연이 새침하게 나를 노려보다가 얼굴을 휙 돌렸다.

그 어이없는 행동에 우리를 지켜보던 하태헌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푸핫.”

나와 천사연, 그리고 하태헌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젤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사이가 더 좋아 보여서.”

“예?”

…이게 어디가 사이좋아 보인다는 거지?

“전 당연히 상관없어요. 어차피 로헌 소속이고… 우리 부마스터를 워낙에 존경해서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 말에 예전에 하태헌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루젤이 이전 길드에서 쫓겨나고 난감하던 차에 하태헌의 도움으로 로헌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지.

역시 인성이 괜찮으면 좋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붙는구나. 존경이라. 나도 하태헌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터라 루젤에게 공감이 갔다.

“하지만 루크는 달라요. 이쪽은 무소속이니까. 루크와는 따로 대화하셔야 해요.”

술에서 마약을 추출하려면 루크의 힘이 필요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도 협력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루크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난감한 기색으로 눈치를 살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루크 씨.”

“음… 대신 원하는 게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는 대가가 있다면 당연히 해 줘야지.

“그게 뭡니까?”

“사람을… 한 명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사람이요?”

하지만 이런 내용일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구하기 힘든 제작 재료나 아이템일 줄 알았는데.

“네. 그분도 저희와 같은 제작자인데…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

“혹시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이름은…….”

머뭇거리며 루젤과 시선을 나눈 루크가 이내 대답했다.

“리웨이라고 합니다.”

“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리웨이요? 설마 전에 저랑 얘기했던 그 리웨이 제작자 말입니까?”

“마, 맞습니다.”

리웨이. 최초의 공간 제어 능력자이자 인벤토리 아이템을 만드는 제작자 중 한 명이다.

게이트에서 얻은 사파이어 꼬리나비 날개 4장에 비싼 인벤토리 아이템 가방도 순순히 넘겨주던 리웨이. 아직도 반짝이는 거에 환장하려나.

워낙에 공간 능력으로 여기저기 숨어 다니는 괴짜 같은 상대라 다시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루크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나중에 리웨이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갑자기 사라졌다니.

“리웨이 제작자라면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 그렇긴 한데…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적은 처음입니다.”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던 루젤이 설명을 얹었다.

“저랑 루크는 막 능력을 얻었을 때부터 리웨이랑 좋은 인연을 이어 왔어요. 약간 친할아버지 같은 분이랄까. 그래서 어딜 가든 우리한테는 꼭 연락을 남겼거든요.”

역시 루젤도 루크와 마찬가지로 리웨이와 아는 사이였군.

“무조건 한 달이 차기 전에 전화든 메시지든 간단하게라도 남겨 줬는데, 벌써 4개월이 넘도록 연락 두절 상태예요. 우리로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죠.”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을 때 장소는 어딥니까?”

“미국이에요. 정확히는 미국 레드 마켓이죠.”

미국이라. 나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정리했다. 미국이라면 방법이 있긴 한데.

“알겠습니다.”

나는 고민 끝에 남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마약 건이 해결된다면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어차피 길은 하나였다. 루크 없이는 해독제나 중화제를 만들 수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내 깔끔한 답에 루젤이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다른 분들과 상의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음, 뭐…….”

나는 양옆에 앉아 있는 천사연과 하태헌을 번갈아 살펴봤다. 내 시선에 천사연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하태헌은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가이니, 나도 돕겠다.”

“그럼 나도.”

천사연이 냉큼 따라 말했다. 경쟁하는 게 아니라니까.

“좋아요. 어쨌든 지금은 마약 건이 급하니까.”

루젤이 걸치고 있는 점퍼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카키색 보석이 박힌 넥타이핀이었다.

“이건 부탁하신 아이템이에요. 한이결 능력자에게 전달하려고 한 거, 맞죠?”

그녀가 내게 눈짓을 보내왔다. 바람을 이용해서 넥타이핀을 건네받았다.

“이전에 부마스터께 드렸던 브로치와 검은 뿔테 안경은 불편할 것 같아서 넥타이핀으로 새로 만든 건데, 잘한 선택이었네요.”

“잘 쓰고 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가지셔도 돼요. 하태헌 부마스터께서 선물로 주신다던데.”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라서 하태헌을 돌아보니 그가 눈길을 슬쩍 피했다.

“나는 딱히 쓸모없다. 그러니 한이결, 네가 갖는 게 낫겠지.”

“아니, 저도 어차피 이번 한 번만 쓰면 되는데…….”

“그래도 갖고 있으면 좋을 테니.”

“무슨 아이템인데요, 이결 씨?”

호기심 어린 얼굴로 대화를 듣던 민아린의 질문에 그제야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지 못한 것을 떠올렸다.

“체인징 아이템입니다. 이거로 머리와 눈 색을 바꾸면 들킬 확률이 더 낮아질 것 같아서 따로 부탁드렸습니다.”

“우와, 체인징 아이템이요? 저 실제로 처음 봐요.”

확실히 체인징 아이템은 구하기 힘드니까. 그만큼 비쌀 텐데….

아트 인벤토리도 그렇고. 자꾸만 뭘 사다 주는 하태헌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부마스터 말씀이 맞아요. 웬만한 체인징은 다 넣어 놨으니까 이래저래 쓸 일 많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판값으로 사고 싶었던 재료도 샀으니까 환불은 안 된답니다.”

루젤이 장난처럼 덧붙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넥타이핀을 이리저리 돌려 봤다.

“해 봐요, 이결 씨! 저 구경해 볼래요.”

한번 테스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민아린이 저렇게 원하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넥타이핀을 든 채로 잠시 고민했다. 셔츠를 입고 있긴 해도 넥타이는 매고 있지 않은데…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소매에 끼웠다.

파지직!

그러자 온몸에 찌릿한 번개가 스쳐 지나가더니 시야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도 헐렁해진 것이 느껴졌다.

“어?”

목소리는 또 왜 이래. 머리와 눈 색만 바뀌는 거 아니었어? 손등을 덮는 소매를 내려다보며 당황하는데, 여기저기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이, 이결 씨?”

“하, 한이결……!”

경악한 민아린과 김우진을 선두로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나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오, 이건 또 제법….”

“어떻게 된 건지 당장 설명해라, 루젤 능력자.”

“큭… 크…….”

아주 재밌다는 듯이 빙글거리는 박건호와 피곤한 낯으로 루젤을 노려보는 하태헌, 입가를 가리고 큭큭거리는 천사연을 차례로 보던 나는 섬뜩한 사실을 알아챘다.

‘뭐지?’

왜 다들 키가 커진 거지? 아니, 내가 작아진 건가? 한이결의 몸에 들어오면서 이미 한차례 체구가 작아진 경험을 한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고. 미안해요, 한이결 능력자. 제가 테스트 차원에서 나이 체인징으로 설정해 놓고 깜빡했네요.”

“네……?”

되묻는 목소리는 여전히 어린아이 상태였다. 방금 뭐라고…? 나이?

“그… 이결 씨, 여기요.”

얼굴 절반을 가린 채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김우진 옆에 서서 나를 구경하던 민아린이 품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거울을 받아 들었다.

“……!”

이런 미친…….

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작았고 눈은 이전보다 크고 둥글둥글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조그마한 손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이가 됐군. 그것도 아주 어린아이로.”

친절하게 현실을 짚어 주는 천사연의 말에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핑 돌았다.

예전에 하태헌이 왜 그토록 불만스러워했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됐다. 심지어 모두가 보고 있는데.

충격에 휘청이는 나를 반사적으로 잡아 준 우서혁이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내 모습에 루젤이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테스트 순서가 하필 색 변화, 성별, 나이라서…….”

“괜찮아요, 이결 형. 엄청 귀여워요.”

저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겨우 이성 줄을 잡은 나는 소매에 끼워 둔 넥타이핀을 망설임 없이 빼냈다. 그러자 시야도 다시 높아지고 작아졌던 신체도 돌아왔다.

“아앗, 아쉬워라…!”

“…….”

다시 성인으로 돌아오자 민아린이 눈꼬리를 아래로 축 내리며 대놓고 아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무하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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