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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208)화 (208/394)

208화 

쓸 만한 정보는 다 얻어 냈으니 이명수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처리를 앞두고 고민하던 나는 천사연에게 물었다.

“최미진 센터장에게 따로 말해서 넘기는 건 어때?”

“흐음.”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처리만. 어차피 관리 본부에 넘길 만한 짓을 한 건 맞잖아.”

내 제안에 입가를 매만지던 천사연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이대로 내버려 둬도 상관없긴 하다만, 네 말대로 적당히 이유를 만들어서 그냥 넘겨 버리는 게 낫긴 하겠군.”

“괜히 우리가 붙잡고 있다가 타이밍 놓치면 상황만 더 복잡해져. 얻을 것도 더 없으니까 깔끔하게 치우고 할 일 하자.”

어차피 이명수는 프라우스 신도단과 연관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저 돈으로 고용된 잡일꾼 중 하나였으니.

내 말대로 천사연은 이명수에게 폭행 혐의를 씌운 뒤, 최미진을 통해 관리 본부로 넘겨 버렸다. 실제로 김우진이 다쳤으니 딱히 거짓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정보를 하태헌에게 전달했다. 프라우스 신도단이 벌인 일이 확실해졌다는 내 말에 하태헌은 복잡한 숨을 내쉬었다.

[마스터께 전달하지.]

“아, 하태헌 씨.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생각하던 것을 얘기했다.

“…가능할까요?”

[확답은 못 주겠군. 그래도 최대한 설득해 보도록 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이틀 뒤에 찾아가겠다.]

통화를 끝낸 나는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했다.

***

이틀 뒤, 하태헌이 레퀴엠을 세 번째로 방문했다. 다만 이번에 모이는 장소는 내 방이 아닌 회의실이었다.

내가 족쇄를 풀었다는 사실을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하태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우리가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우서혁이 빔 프로젝터를 켜고 커다란 스크린 앞으로 나갔다.

“논현동에 있는 에이튼 클럽의 외부 사진입니다.”

우서혁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스크린에 사진 하나가 띄워졌다. 새까만 외벽에 A라고 쓰여 있는 클럽 건물은 규모가 꽤 크다는 말대로 제법 화려했다.

“약 3천 명 정도 수용 가능하며 메인 스테이지, VIP룸, 시크릿 룸이 모두 층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내부 사진입니다.”

이어서 스크린에 사진이 바뀌며 룸 사진이 여러 개 나타났다. VIP룸이 가장 크고 그다음이 시크릿 룸이었으며, 각 층은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서혁의 설명을 듣던 박건호가 입을 열었다.

“술을 얻으려면 클럽 내부로 직접 들어가서 찾는 편이 좋겠군.”

그렇겠지. 나는 박건호의 의견에 동의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합니다.”

“문제는 술을 구할 방법인가?”

“이명수의 진술대로라면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한 사람의 수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걸 노려 보죠.”

민아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병에 담긴 술인지도 모르고, 그쪽이 아무 절차 없이 과연 순순히 팔아 줄까요?”

“맞아요. 그리고 술을 구해서 해독제를 만든다 해도 결국 마약을 퍼뜨리는 일당을 잡아들이지 않으면 끝이 없을 것 같네요.”

민아린뿐만 아니라 권정한도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 역시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군.

팔짱을 낀 채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천사연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나온 문제들은 이번처럼 밖에 돌아다니는 놈을 잡아서 얻을 만한 정보가 아니니 직접 클럽으로 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한 번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마스터.”

“그래. 한 번에 성공한다면 물론 좋겠다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천사연의 말에 우서혁이 스크린에 비치는 사진을 바꿨다.

“열흘 뒤에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연다고 합니다. 다른 때보다 사람이 몰리고 어수선할 테니, 이때를 노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열흘 뒤라. 적당하긴 하군.”

스크린에 열흘 뒤 열리는 파티 관련 안내문이 적힌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는 잠시간 그걸 바라보다 천사연에게 제안했다.

“우서혁 씨 말씀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파티 전에 한 번쯤은 미리 가서 내부 구조나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해 둬야겠네요.”

“그렇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니 얼굴이 여러 번 알려진 인원은 제외해야겠군.”

천사연과 하태헌, 김우진을 뜻하는 얘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비전투 인원도 제외해야 합니다.”

민아린과 권정한도 갈 수 없다. 그러면 남는 사람은.

“우서혁, 박건호. 둘이 한 팀이 되어서 한번 둘러보고 오도록.”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천사연의 명령에 박건호는 짙게 웃었고 우서혁은 옅은 한숨과 함께 알겠다고 대답했다.

“저 목석같은 비서님과 둘이 클럽이라니, 이거 참. 재밌을 것 같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저야말로 박건호 팀장이 목적을 잊고 사고 칠까 봐 두렵습니다.”

“…….”

같은 팀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게 결정 나자마자 싸우냐. 나는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지기 전에 재빨리 중재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하태헌도 와 있는데 싸우면 어떡해? 그걸 또 멀뚱히 구경만 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상했다. 왜 항상 나 혼자만 말리는 건지.

나를 보고 킥킥거리던 박건호가 미소 띤 그대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번 가 보고 상황이 괜찮으면 파티 당일에도 우서혁 비서와 참가하겠습니다. 마약 제조 일당까지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술은 구해 보도록 하죠.”

“아뇨.”

단호하게 끊어 낸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파티 전에 정찰 목적으로 가는 건 괜찮지만, 본격적으로 술을 구하기 위해서 잠입하는 거라면 두 명은 위험합니다.”

박건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다른 계획 있나?”

“제가.”

이명수에게 클럽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이미 마음먹은 일이었다. 각오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함께 가서 술을 가져오겠습니다.”

“…….”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이 뿌려진 것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느새 미소가 사라진 박건호와 그 옆에 앉아 있는 김우진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두 명보다는 세 명이 더 안전할 거고, S급인 두 분보다 낮은 A급인 제가 그놈들에게는 더 만만한 먹잇감으로 보일 겁니다.”

“멈춰, 한이결.”

하태헌이 미간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린 채로 으르렁거렸다.

“그런 장소에 널 보낼 것 같나?”

“하태헌 씨.”

“내 의견도 하태헌 부마스터와 같은데.”

천사연의 싸늘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애초에 박건호 팀장과 우서혁 비서를 보내는 이유를 잊었나? 한이결, 넌 얼굴이 알려져서 가 봤자 괜한 소란만 일으킬 거다.”

“저는 천사연 마스터나 하태헌 씨, 김우진과는 다릅니다. 공식적으로 나선 적은 이전에 단 한 번뿐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영상 몇 개입니다.”

“…….”

“스타일을 바꾼다면 클럽 조명 아래에서 저를 알아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천사연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프라우스 신도단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해진 이상, SS급 정신 지배자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최악의 경우, 그 클럽에서 사마엘이나 아벨을 마주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프라우스 신도단 소속 능력자는 수없이 많으니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는 건 저뿐입니다. 그리고 일이 틀어져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주변에 큰 피해 없이 지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람 능력이 필요할 거고요.”

“…….”

“그놈들이 표적으로 삼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마약이 든 술을 구할 수 있습니다.”

클럽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일부러 관심을 끌어 마약을 구해 내야 한다. 위험했지만, 때마침 파티가 열릴 정도로 타이밍이 좋으니 어떻게든 이 기회를 이용해야 했다.

나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표정을 굳힌 이들을 향해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 마약을 가져올 가능성이 제일 큰 건 저 아닙니까?”

어쭙잖게 시도했다가는 괜히 우리 쪽 정보만 새어 나가고 마약은 놓치게 된다. 어차피 할 거라면 각오 단단히 하고 제대로 판을 벌이는 게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마약을 퍼뜨린 놈들이 프라우스 신도단이라는 게 확실해졌으니, 이번에 관련자를 잡아내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하하…….”

싸한 침묵이 내려앉은 회의실 공기 사이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하태헌이 시선을 돌려 천사연을 짜증스럽게 바라봤다.

“너무 노려보는 거 아닌가, 하태헌 부마스터?”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천사연이 무시하면 무시했지, 웃을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터라 조금 놀랐다. 설마 비웃은 건 아닐 테고.

“하…….”

알 수 없는 웃음 끝에 어딘가 허탈한 숨을 길게 내쉰 천사연이 내게 말했다.

“그래. 동행해, 한이결.”

“네? 자, 잠시만요, 마스터!”

“마스터!”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민아린과 김우진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무래도 저 둘은 내 제안이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건 하태헌도 마찬가지인가. 당장이라도 천사연의 멱살을 틀어쥘 것처럼 흉흉한 하태헌의 눈빛을 천사연은 잠자코 받아 냈다.

“물론 진심이지. 그럼 이번엔 내가 묻지, 하태헌 부마스터. 한이결 능력자의 말에 반론할 수 있나?”

“…….”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얘기다. 내가 보기엔 클럽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 때부터 이러려고 벼른 것 같고.”

들켰네. 딱히 대단한 건 아니라서 심드렁히 대꾸했다.

“당연하죠. 몇 번을 따져 봐도 제가 제일 적합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허락해 줄 순 없지.”

끼익, 의자에 몸을 길게 기대며 팔짱을 낀 천사연이 이어 말했다.

“아무리 클럽이 어둡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 가는 건 안 돼. 적어도 체인징이나 환상 아이템을 쓸 것. 그게 조건이다.”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때마침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노크한 수행원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하태헌에게 부탁해서 미리 연락을 넣어 둔 상대가 도착한 것이다.

“들어와도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수행원이 문에서 비켜서며 손님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두 분 다 오랜만입니다.”

카키색 머리카락에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루젤과 커다란 어깨를 좁히고 서 있는 루크.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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