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남자는 지하 3층에 있습니다.”
우서혁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탄 내게 천사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화났나?”
“저 말입니까?”
“그 표정으로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 김우진이 겁먹을 정도인데.”
김우진이 겁을 먹었다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조금 전 병실에서 만난 김우진을 떠올렸다.
족쇄 푼 걸 보고 놀란 눈치기는 했지만 겁먹은 건 모르겠던데.
“그런 거 아닙니다.”
여러 감정이 뒤섞여 매슥거리는 속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냥, 좀…….”
우서혁에게서 김우진이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심하게 동요했다. 큰 부상이 아닌 데다 박건호와 함께 무사히 길드로 돌아오고 있다는 설명에도 도통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거야…….’
김우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천사연에게 본의 아니게 화풀이를 해 버린 것 같아서 좀 미안했다.
띵, 지하 3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경쾌한 알림 음이 울렸다. 그에 맞춰 짧게 심호흡을 한 나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정신 차리자.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앞장서서 복도를 가로지르는 우서혁의 뒤를 쫓아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쓰지 않는 훈련실이 가득한 지하 3층,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 방에 김우진이 잡아 온 남자가 묶여 있다.
훈련실로 만들어진 곳이니 방음도 좋은 데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내부가 워낙 튼튼해서 걱정 없었다.
“마스터.”
훈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던 박건호가 우리를 돌아봤다. 옆에는 미리 와 있던 권정한도 함께였다.
“아직 기절한 상태인가?”
“예.”
사계 길드가 보내 준 영상에 나온 사람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놓인 의자에 두 팔과 다리가 묶인 남자는 눈이 천으로 가려진 채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우리가 훈련실로 모이자 들고 있던 파일을 펼친 우서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기본적인 신상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를 잡아 온 지 1시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알아냈다고? 우서혁의 일 처리가 빠른 것에 새삼 감탄하며 이어지는 설명을 들었다.
“이름은 이명수. 27세. C급 최면술사입니다. 소속된 길드나 직장은 없습니다.”
C급 최면술사라. 강한 최면은 걸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행동에 간섭은 가능한 수준이다. 김우진이 있던 골목길 근처로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도 이 사람이겠지.
“아직 뭐 건든 것은 없는 거죠?”
“일단은.”
“그럼 깨우기 전에 신체검사 좀 간단하게 합시다.”
남자, 이명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커다란 손이 내 팔을 잡아 왔다.
“왜요?”
천사연이 잡은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박건호였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직접 하려고? 위험할 텐데.”
“위험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좀 살펴보는 게 다인데요.”
별걸 다 걱정하네. 박건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등 뒤로 발소리 여러 개가 우르르 들려왔다.
“…….”
한 명이면 충분하니까 그냥 기다리지, 왜 다들 따라오는 거야.
괜히 말 길게 늘이면 상대가 깰 수도 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결국 이명수를 중심으로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허벅지에 있는 총상은 김우진 선배님 작품이죠? 깔끔하게 뚫렸네요. 치료 안 해도 되나요?”
“지혈은 했고, 이 정도면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 그래도 여름이라서 다행이네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굳이 벗기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이명수의 두 팔과 손, 무릎, 발, 배나 쇄골 부근을 살펴본 나는 마지막으로 목뒤와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흐음… 깔끔하네요.”
패거리로 활동했다면 분명 작게나마 표식이 있을 텐데.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천사연도 눈가를 살짝 좁혔다.
“어쩌면 가장 말단에 속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군. 김우진의 증언을 따져 보면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하는 놈이라고 했으니.”
그런가. 가능성이 없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까, 슬슬 깨울까요?”
“그러지.”
입가를 매만지던 박건호가 한 걸음 다가섰다. 이명수를 직접 깨우기 위해서였지만, 행동은 내가 더 빨랐다.
빠악!
나는 인정사정없이 이명수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그러자 호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퍼뜩 떨렸다.
“오…….”
“와우…….”
“형, 저 사람 머리 깨진 거 아니에요?”
“그러다 다치십니다.”
천사연과 박건호, 권정한이 차례로 감탄을 하는 와중에 우서혁 혼자만 내 손을 걱정해 줬다.
“너무 감정이 실린 거 아닌가?”
“어쨌든 깨웠잖아요.”
천사연의 놀림을 대충 쳐 내며 뒤로 물러섰다.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던 이명수가 부스스 머리를 들었다.
“끄, 으으… 윽… 여기는…….”
고개를 들어도 눈을 가려 놔서 앞을 볼 수는 없었다. 창백하게 질린 채로 마구잡이로 고개를 휘젓던 그는 곧 온몸이 묶인 것을 깨닫고 비명을 내질렀다.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줘! 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 모릅니다. 제발…!”
이명수가 꿈틀거릴 때마다 의자에서 끼긱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권정한.”
“네.”
그 꼴을 잠시간 바라보던 천사연의 부름에 권정한이 미소를 띤 채로 입을 열었다.
“이명수 씨, ‘침착하세요.’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헉…….”
그 말에 버둥거리던 이명수가 갑자기 몸을 축 늘어뜨렸다.
권정한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없었으면 심문하는 데에 시간을 꽤 쏟아야 했을 테니.
“이명수 씨, ‘거부감을 내려놓으세요.’ 어때요, 훨씬 괜찮지 않습니까?”
권정한의 감정 제어 능력은 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됐기 때문에 최대한 타격을 적게 받으면서 심문에 도움이 될 만한 말로 제어를 해야 했다.
“으, 흐으…….”
감정 제어 능력의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이명수는 공포에 떨며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던 아까와 달리 한결 차분해 보였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그 누구보다 우리를 신뢰하십시오.”
무슨 사이비 교주 같네. 권정한이 능력을 쓰면 쓸수록 이명수는 긴장을 풀고 한결 편해 보였다.
“이제부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세세하게 짚어 보겠습니다.”
“네? 하, 하지만 그건…….”
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리는 이명수에게 권정한이 재차 말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마음 편해지고 싶지 않나요? ‘우리를 신뢰하세요.’ 당신의 힘든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우리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밑 작업을 끝낸 권정한이 천사연을 돌아봤다.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던 천사연이 말문을 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하도록.”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접근해 왔습니다.”
그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와 같이 있던 다른 세 명 말하는 건가?”
“아니, 아닙니다. 그 새끼들은 나중에 명령으로 만난 겁니다. 한 팀으로 움직이라고 해서요. 성공하면 5천을… 준다고…….”
싸한 느낌에 옆에 서 있는 천사연을 힐끔 바라봤다. 새하얀 형광등 아래로 보이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무겁게 빛났다.
“하,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돈이… 돈이 필요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나는 그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뭘 시킨 거지?”
“능력자를… 잡아다가 술을 먹이고 풀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냥 먹이기만 하면 된다고…. 열 명 이상 성공하면 도, 돈도 더 준다고 했습니다.”
“어느 술이지?”
“그…그건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페트병에 담겨 있어서…. 소주보다 독한 향이 나긴 하지만…….”
“술은 그들이 제공해 주는 건가?”
“네, 네. 하지만 받으려면 직접 가야 했습니다.”
“어디로?”
신경이 날카롭게 치솟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크, 클럽, 클럽입니다. 논현동에 있는 에이튼 클럽으로 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잘…….”
“클럽…….”
최악이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클럽 내부에서도 술을 풀었을 텐데. 과연 몇 명이나 중독됐을지 상상만으로도 피곤했다.
태블릿PC로 정보를 찾은 우서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이튼이라면 제법 규모가 큰 클럽 중 하나입니다. 지하 4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VIP룸과 시크릿 룸이 나뉘어 있어서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제도 자주 이용한다고 하는군요.”
“마, 맞습니다!”
이명수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권정한의 능력으로 차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제, 제가 몇 번이고 봤습니다. 딱 봐도 돈 많아 보이는 새끼들이 그 술을 사 가는 모습을! 자기들 노는 데 쓰겠다는 둥 헛소리를 해 가면서…….”
뭐, 그렇겠지. 일단 마약이라면 재미 삼아 사 갈 놈들이 널리고 널렸다. 다만 이번 같은 경우는 본인이 마시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써먹겠지.
“따로 팔기도 한다는 건가?”
“거, 거래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파는 건 확실합니다! 시팔, 누구는 개고생하면서 뺑이나 치는데 그 새끼들은…….”
악의에 가득 찬 중얼거림이 길게 이어졌다. 중요한 내용은 얻을 만큼 얻었다고 판단한 천사연이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정확히는… 모릅니다. 저는 무슨, 이상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여자가 ‘그들’이라고 표현했어요.”
“여자? 겉모습이 어땠지?”
“몸에 딱 맞는 검은 정장에…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묶은 여자였습니다. 꽤 예, 예뻤고… 그것 말고는 모르겠습니다.”
“수상하게 생긴 가면을 쓰거나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한 말은 없었나?”
“그런 건, 없었… 없었지만…….”
기억을 떠올리듯 더듬거리던 이명수가 고개를 한쪽으로 툭 기울였다.
“독, 특한 귀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위아래가 뾰족한…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형태의 반절 정도가 새까맣게 칠해진, 이상한… 모양이었어요.”
슬슬 권정한의 능력이 끝나 갈 타이밍이었다. 나는 이명수의 말에 끝까지 집중했다.
“안쪽 손목에도 귀걸이와 같은 문양이… 새까맣고 작게… 크윽!”
설명을 이어 가던 이명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눈을 가린 검은 천 아래로 드러난 피부가 창백하게 질리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감정 조절이 끝난 것이다. 나는 일단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복도로 빠져나와 훈련실 문을 닫자 이명수가 흘리는 비명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나는 곧장 천사연에게 물었다.
“마지막 문신 설명에 관해서 아는 거 있습니까?”
“그래.”
그가 조금의 웃음기도 띠지 않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나는 그의 마음을 알아챘다.
“프라우스 신도단이 사용하는 문양이다.”
“…….”
역시 그런가. 우려했던 결과였다.
“하태헌 씨에게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로헌에게 오늘 얻은 정보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세우죠.”
나를 바라보는 모두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술을 얻으러 직접 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