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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94)화 (194/394)

194화 

천사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려는 내 목을 낚아챈 박건호가 나를 소파 위로 강하게 처박았다. 우서혁은 내 두 팔을 등 뒤로 꺾어서 단단히 붙든 동시에 벗어나지 못하도록 종아리로 내 허벅지를 짓눌렀다.

“으윽…!”

피이익! 픽!

기겁한 여우가 있는 힘껏 박건호와 우서혁에게 덤볐지만 둘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목과 두 팔, 다리까지 뒤엉켜 버리니 몸을 아무리 뒤틀어도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나를 박건호가 인정사정없이 내리누르며 달래듯 말했다.

“옳지. 얌전히 있어.”

옳지는 개뿔. 이딴 뻔한 짓을 당했다는 짜증스러움에 이를 갈며 얼굴을 구겼다.

천사연이야 그렇다 해도 박건호와 우서혁이 설마 이럴 줄 몰랐다. 아무리 천사연이 마스터라지만 이딴 어이없는 명령을 따르다니.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좀, 놓으시죠….”

담담하게 사과를 해 오는 우서혁을 노려봐도 온몸에 가해지는 묵직한 무게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천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멋대로 떠났다가 돌아왔으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 않나?”

“좆같은 소리 집어치우시고.”

대화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망설임 없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지금은 김우진 때와는 다르다. 패닉에 빠져서 저도 모르게 실수를 저지른 김우진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이런 상황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후우우웅―!

강한 바람이 내 몸 주변을 마구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끼긱, 긱. 방 안에 가구들이 밀려나며 여기저기 흔들렸다.

“놓으시죠.”

이대로 바람을 날카롭게 바꾼다면 아무리 S급인 박건호와 우서혁이라 해도 어느 정도 상처는 입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자 조용히 지켜보던 천사연이 권정한에게 눈짓했다.

“이결 형, ‘기뻐하세요.’”

“…….”

권정한의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눈썹 한쪽을 치켜올리자 녀석이 그것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예상했던 대로네요. 처음에 통한 건 그저 운이었나 봅니다.”

“흠.”

그건 당연했다. 권정한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권세현’으로서의 기운이 한층 강해지고 안정적으로 된 내게 저런 정신계 능력이 통할 리가 없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나는 사납게 웃으며 기운의 흐름을 바꿨다. 구석에서 걱정스럽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민아린을 제외한 모두를 공격할 기세로 날카로운 바람이 막 생기려는 찰나, 기운이 갑자기 뚝 끊겼다.

“흐윽…!”

심장에 짜릿한 통증이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몸을 움찔 떨며 시선을 내리자 다쳤던 발목이 아닌 다른 쪽 발목을 쥐고 있는 천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잊고 있던 그의 오른손 능력이 떠올랐다. 능력자의 기운을 차단하는 저 사기적인 능력을 나한테 벌써 두 번이나 쓰다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천사연은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얼굴을 들어 올리며 눈을 휘어 웃었다. 그의 반대쪽 손에는 아까 인벤토리에서 꺼낸 은으로 된 족쇄가 들려 있었다.

“기다려, 잠깐…!”

내가 경악하건 말건 천사연은 거침없이 내 발목에 족쇄를 걸었다. 철컥, 이음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발목에 딱 맞게 채워진 족쇄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천사연의 오른손이 떨어져도 여전히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셔터 아이템이 확실했다.

족쇄가 채워지자 박건호와 우서혁도 순순히 물러섰다. 비척거리며 상체를 일으키는 내게 여우가 헐레벌떡 날아와 품에 안겨 왔다.

방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길게 이어진 쇠사슬의 끝을 소파 다리에 연결한 천사연이 팔짱을 끼며 삐딱하게 섰다.

“저 커다란 소파를 끌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 테니 이거로 안심이군.”

“하…….”

그 뻔뻔한 말에 기가 막혀서 두통이 절로 밀려왔다.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자 박건호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한이결. 지금 밖의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아.”

“이런 비인도적인 행위는 저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한이결 씨가 가진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죄송합니다.”

둘의 말에 헛웃음을 내뱉으며 족쇄가 채워진 다리를 휙휙 흔들었다. 족쇄에 이어진 쇠사슬이 절그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헛소리는 그쯤 하시죠. 이유가 뭐든 간에 무슨 권리로 저를 묶어 두겠다는 겁니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억누르며 침착하게 따지자 천사연이 다시 맞은편에 앉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길드에 멋대로 침입한 범죄자를 붙잡은 거로 하지. 경쟁 길드에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 오라고 보낸 스파이일지도 모르고.”

“뭐라고요?”

“왜, 내 말이 틀렸나? 몰래 침입한 건 사실일 텐데?”

“…….”

사실이긴… 하지만…….

“꼴을 보아하니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한국 쪽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있나?”

그것도… 없지만…….

“정신이 반절 나간 김우진이 위층 방에 가 있다고 들었는데. 해결은 어떻게 할 거지?”

“…….”

뜨겁게 달아오르던 속은 천사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파가 찾아온 것처럼 차갑게 식어 갔다. 재수 없지만 다 맞는 소리기는 했다. 하긴, 애초에 기회가 되면 천사연을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했었지. 이렇게 빨리, 한꺼번에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내 기세가 한풀 꺾이자 내내 눈치를 보던 민아린이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미안해요, 이결 씨. 하지만 이결 씨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에요.”

혹여 내게 미움을 받을까 염려로 가득 차오른 둥근 눈동자를 마주하자 딱딱하게 굳은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예, 알겠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서울에서 사고가 정말 자주 일어나서요. 무엇보다 영상이 퍼져서 함부로 나갔다가는 문제가 생길 거예요.”

“영상이요?”

“엇, 모르세요?”

민아린이 핸드폰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화면에 재생되는 영상을 본 나는 눈가를 좁혔다.

“이건…….”

길거리에서 학생 두 명을 위협하던 남자를 제압하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구경꾼이 워낙 많았으니 뭐라도 뜰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이 영상은 어디서 찾은 겁니까?”

“팬카페에 올라온 걸 정한 씨가 발견했어요.”

“팬카페요?”

상상도 못 했던 단어에 당황해서 혀를 살짝 깨물었다. 아니, 그게 아직도 안 망했다고?

“네. 그래서 다 같이 보고 있었는데, 마침 이결 씨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통화 너머로 우진 씨 이름 부르는 게 들려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23층으로 와 본 거예요. 우진 씨는 하루에 몇 번이고 여기를 오니까…….”

“…그렇게 된 거군요.”

이제야 왜 우르르 몰려온 건지 이해가 됐다. 나는 지친 숨을 내쉬며 눈가를 쓸었다. 결국 원인은 나였던 건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혀를 차자 앞에 앉아 있던 천사연이 소파에 느긋이 등을 기대며 말했다.

“상대 면상에 주먹을 제대로 꽂아 넣었던데.”

“일반인을 위협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영상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손쓸 수가 없더군. 그래도 기사가 뜨는 것은 막았으니 영상 외에 뭔가가 더 올라오지는 않을 거다.”

“…….”

당연하게 도움을 주는 천사연의 행동에 머쓱해져서 목덜미를 쓸었다.

“…이런 걸 채우지 않아도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해 줬으면 저도 납득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풀어 주시죠.”

“그건 안 되지. 아까 한 말 못 들었나? 그 족쇄는 여기를 몰래 침입한 죄로 채운 거다.”

천사연이 어림도 없다는 것처럼 단칼에 거절했다. 젠장. 괜히 레퀴엠 길드로 왔나?

‘이럴 줄 알았으면 하태헌부터 만날 걸 그랬네.’

어차피 검도 전해 줘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어이없이 발이 묶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군.”

“또 뭐가 말입니까?”

“하태헌 부마스터에게 가야 했다고 후회하는 것 같은데, 그쪽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뭘 믿고 순진하게 하태헌을 찾아갈 생각을 하는 건지… 웃길 정도군.”

“하태헌 씨는 그런 사람이…….”

반사적으로 반박하려던 나는 하태헌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보여 줬던 행동을 떠올리고 말을 멈추었다.

그런 사람이… 마, 맞나? 하태헌의 색다른 면모 덕분에 고생한 나는 섣불리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내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픽 비웃은 천사연이 발끝으로 쇠사슬을 툭 건드렸다.

“쓸데없는 짓 벌이지 말고 얌전히 있도록. 최소한 영상이 좀 묻힐 때까지만이라도.”

“…….”

강압적인 내용과 달리 말투가 제법 부드러워서 명령이 아니라 부탁처럼 들렸다. 또 무슨 속셈일까, 이건. 삐뚜름하게 천사연을 노려보다가 품에 안긴 여우에게 속삭였다.

“내 부탁 기억하지? 방으로 돌아가. 가서 계속 지키고 있어.”

피이이.

내 얘기를 알아들은 여우가 작게 울더니 곧 사르르 사라졌다. 다행히 침실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서 검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여우가 가서 아까처럼 투명화로 숨겨 주겠지.

품에 있던 여우가 모습을 감추자 박건호와 민아린이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표했고 천사연은 불만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저를 이곳에 가둬 둘 거라면 여우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안 된다고 해도 무시할 거면서 말은 잘하는군.”

“그리고 이렇게 사슬이 연결된 상태로는 지낼 수 없습니다. 옷도 못 갈아입을 텐데.”

“그건 내가 해결해 주도록 하지.”

빙긋 웃은 천사연이 인벤토리에서 자동차 열쇠처럼 생긴 작은 리모컨을 꺼내 들었다. 그가 리모컨 중앙에 박혀 있는 버튼을 누르자 삑, 소리와 함께 족쇄에 달려 있던 쇠사슬이 불투명하게 변했다.

“지금 상태면 물체 통과가 가능하니 옷도 갈아입을 수 있을 거다.”

“미친, 쇠사슬도 아이템이었습니까?”

나는 혹시나 해서 다리를 움직여 봤지만 불투명한 상태로도 쇠사슬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벗어나려면 쇠사슬이나 족쇄를 끊어 내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다시 한번 버튼을 눌러서 쇠사슬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천사연이 내게 리모컨을 던져 주고는 설명을 이었다.

“셔터 기능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창문 밖으로 다이빙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지.”

“그렇게 걱정되시면 그냥 풀어 주시죠?”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한 마디 하자 천사연이 새침하게 대꾸했다.

“싫어.”

“…….”

뻔뻔한 새끼…. 다시 멀쩡해진 쇠사슬과 발목에 채워진 매끈한 은색 족쇄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딴 변태 같은 아이템은 대체 왜 가지고 있는 겁니까?”

“에드워드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해서 받은 아이템이지.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져서 만족스럽군.”

이런 미친. 어린애한테 뭘 만들게 한 거야? 질색하는 내 시선에도 천사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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