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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87)화 (187/394)

187화 

“아아, 심심해…….”

“팀장님이 대놓고 그런 말씀 하셔도 되는 거예요?”

“안 될 건 뭐냐.”

박건호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그의 팀원인 박민재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팀장님, 우리 진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맞아. 다른 팀은 게이트를 벌써 두 번은 들어갔다 왔는데.”

책상 위에 두 발을 떡하니 올려 둔 채로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던 박건호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뭐, 명색이 특수작전부니까 아무 게이트나 들어갈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요! 마스터께 뭐라 말씀 좀 해 주십쇼.”

“이러다가 몸에 곰팡이 피겠어요.”

“구라 치지 마. 너 어제도 헬스장 가서 기구 하나 박살 냈잖아. 월급을 거기에 죄 쏟을 셈이냐?”

“이게 다 게이트를 안 들어가서…….”

팀원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박건호는 천사연을 떠올렸다.

-해외로 나가는 것은 당분간 조심해야겠군.

잔잔하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냉정하게 느껴졌었다.

천사연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나라 어디든 크고 작은 사고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프라우스 신도단….’

그들이 나타난 후로 능력자와 일반인 간의 감정의 골이 지나칠 정도로 깊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진화된 개체라 믿는 능력자도 문제고 그런 능력자를 괴물로 여기는 일반인도 문제였다.

서로 간의 혐오가 깊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무고한 이들이다. 정부나 길드 측에서도 이 사태를 나름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은 한번 불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으니…….

“팀장님.”

상념에 빠져 있던 박건호를 부른 이는 심수연이었다. 부서로 들어선 그녀는 묘한 얼굴로 문밖을 가리켰다.

“마스터께서 부르셨대요. 밖에 수행원이 와 있어요.”

“헉, 팀장님! 이번이 기회입니다. 제발 일거리 좀 받아 오세요.”

“진짜 성가셔, 너네.”

보통 때라면 귀찮아서 미적거렸을 박건호가 곧장 몸을 일으켰다. 기다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그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번 찔러보긴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요즘 분위기가 워낙 흉흉해서 말이지.”

“팀장님 말씀이 맞아. 마스터께서 이유 없이 일을 안 주겠어? 다 사정이 있겠지.”

“심수연, 넌 얼마 전에 중국이라도 다녀왔잖아. 그래서 모르는 거야. 우리는 지금 3개월이 넘도록 길드에만 처박혀 있다고!”

“C급이라도 좋으니까 게이트 들어가서 신나게 사냥 좀 하고 싶다.”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거든? 중국 가서 한 것도 없어. 그냥 영문 모를 사람 한 명 찾아보고 온 게 다라고. 그마저도 결국 실패했고.”

“엉? 뭐야. 팀장님이 따로 미션 주길래 분명 겁나게 재밌는 일거리인 줄 알았는데….”

“누굴 찾는 건데요, 팀장님?”

심수연의 말에 팀원들이 어리둥절해서 한마디씩 뱉어 내는 것을 본 박건호가 아차 싶은 얼굴로 급히 등을 돌렸다.

“글쎄. 난 대표실 간다.”

“도망가시는 거예요?”

“어차피 여기로 돌아오실 거면서, 내 참….”

투덜거리는 말들을 뒤로하고 수행원의 안내에 따라 최상층으로 올라간 박건호는 대표실 앞에서 홀로 서 있는 민아린을 만났다.

“어머,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민아린 힐러. 잘 지냈습니까?”

“그럼요.”

천사연의 명령으로 일거리가 없어진 박건호와 얼마 전에 지원 인력으로 로헌 게이트를 다녀온 민아린의 만남이었다. 둘은 가볍게 악수를 했다.

“팀장님께서는 요즘 어떠세요?”

“뭐, 한량처럼 놀고먹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좀 쑤시긴 해도 편한 건 사실이죠.”

제 눈치를 살피는 민아린을 알아챈 박건호가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민아린 힐러도 알겠지만, 요즘 상황이 영 좋지 않으니 이 편이 낫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박건호는 민아린이 더 신경 쓰지 않도록 대표실 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표정의 우서혁이 안에서 문을 열어 줬다.

“음…?”

우서혁뿐만 아니라 김우진과 권정한도 보였다. 저 세 명에 추가로 나와 민아린까지 불렀다고? 복도에 경호 인력을 치워 놓은 이유가 있는 건가?

“들어와, 박건호 팀장. 민아린 힐러.”

모두 모였다는 것을 확인한 천사연이 서류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서로 시선을 나눈 박건호와 민아린이 잠자코 대표실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제 앞에 서 있는 다섯 명을 조용히 응시하던 천사연이 곧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두드렸다.

“가져가.”

인벤토리에서 나온 것은 초록빛 보석이 박힌 반지 다섯 개였다. 그것을 각각 나눠 주며 천사연이 입을 열었다.

“일회용 무효화 아이템이다. 쓰는 방법은 이전에 한이결이 있었을 때 들었으니 알겠지.”

한이결의 이름이 나오자 반지를 내려다보던 김우진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흠. 이걸 갑자기 왜 주십니까?”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 보던 박건호가 손가락을 튕겨 공중에 한 번 날리며 물었다.

“모인 멤버도 참 묘하고.”

“SS급 정신계 능력자가 활개를 치고 있으니 최소한의 대비 정도는 해야겠지. 멤버는 내 마음이고.”

빙긋 웃은 천사연이 제일 뒤에 서 있던 권정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특히 권정한은 더 조심하도록. 한이결의 경호로 이목을 한번 끌었으니.”

“명심하겠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요, 마스터.”

반지를 끼지 않고 주머니에 챙겨 넣은 박건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말씀하신 SS급 정신계 능력자가 제가 생각하는 놈이랑 같다면… 그쪽은 한이결을 노리는 것 아니었습니까?”

“…….”

“한이결 능력자가 여길 떠난 지도 2개월이 진작 넘었는데, 찾아볼 계획은 여전히 없으시고요?”

팔짱을 낀 채로 그의 말을 듣던 천사연이 입꼬리 끝을 살짝 올렸다.

“글쎄. 왜 찾아야 하지? 길드 소속자도 아닌데.”

“의외네요.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셨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재미있는 생각을 했군, 박건호 팀장. 잔말 말고 반지나 제대로 끼고 다니도록. 정신계 능력에 당하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그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천사연의 얼굴을 잠시간 응시하던 박건호가 결국 한숨과 함께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좋아. 이제 나가 봐.”

천사연은 용건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를 내쫓았다. 대표실 앞 복도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 그들은 비슷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입가를 매만지던 박건호가 소리 낮춰 말을 이었다.

“마스터는 한이결이 어디 있는지 아는 모양이군.”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드물게 웃음기가 없는 얼굴을 한 민아린이 박건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지금까지 얻어 낸 정보로는 이결 씨가 중국에 있었다는 것 정도예요. 그마저도 로헌 부마스터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는 불확실하고요.”

“휴가를 내고 중국까지 갔다 온 하태헌 부마스터도 잘 모르는 한이결의 현 거처를 우리 마스터가 알고 있다는 건가.”

박건호의 질문에 우서혁이 반지를 검지에 끼우며 대답했다.

“마스터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진작 알아내고도 남았을 테니까.”

“우서혁 비서도 마스터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군.”

“그것뿐만 아닙니다.”

박건호와 마찬가지로 반지를 끼지 않고 재킷 주머니에 넣은 권정한이 끼어들었다.

“한이결 능력자님을 노렸던 납치범은 검은 가면을 쓴 이들을 부린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한창 시끄러운 프라우스 신도단과 동일하죠.”

“맞아요. 길드 관리 본부 습격 영상에도 검은 가면을 낀 이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심지어 강승건 마스터까지 끌고 가고.”

권정한과 민아린의 대화에 우서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영상에 나온 신도단 사이에 SS급 정신계 능력자인 납치범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흠…….”

조용히 대화를 듣던 박건호는 대표실에서 봤던 천사연의 그림 같은 미소와 반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정리해 보면, 한이결을 납치했던 이들은 프라우스 신도단이라는 거군. 무언가 목적이 있는 단체이니 한이결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자를 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마스터가 반지를 준 이유도 그래서고.”

“…….”

“이런 상황에서 마스터가 한이결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굳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박건호의 시선이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고 있지 않던 김우진에게로 향했다.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린 채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김우진에게서는 지친 기색이 짙게 묻어났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여기보다 안전하다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나온 말에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박건호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자연스럽게 알아챈 부분이었다.

“김우진.”

박건호는 그제야 김우진이 중국 정보 이후로는 한이결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우진은 한이결이 레퀴엠에서 지낼 때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다. 그러니 저보다도 먼저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겠지.

“괜찮나?”

하지만 저 피로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였다.

박건호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김우진에게로 향했다. 그 표정 변화 없는 우서혁조차 눈가를 살짝 좁힌 것을 보아, 모두와 마찬가지로 김우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김우진이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이결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마스터가 찾지 않는 것도 모두 이해합니다.”

“…….”

이해한다고 말하는 김우진의 고동색 눈동자는 너무나도 흐릿하고 어둑했다.

“저는 한이결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우진 씨….”

그 불안정한 모습에 민아린이 팔을 뻗었지만, 미처 닿기 전에 김우진이 몸을 돌려 복도를 떠나갔다. 멀어지는 그의 등을 지켜보던 박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무슨 마음인지는 알 것 같다만…….”

확실히 지금껏 봐 온 한이결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 돌아와 봤자 위험한 일에 엮이기만 하겠지. 마스터도 그걸 염려하는 것일 테고.

민아린이 서글픈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저는 이결 씨가 너무 보고 싶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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