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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68)화 (168/394)

168화

  

「멍청한 표정이군.」

한이결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천사연의 생각이 들려왔다.

「그래도 쓸 만한 놈인지 한 번쯤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천사연의 검은 눈동자가 부서진 협탁으로 향했다.

「잘만 구슬리면….」

고민을 끝낸 천사연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껏 살려 줬더니 이제 와서 죽으려고 하면 아무리 나라도 좀 섭섭한데. 그것도 병원에서.」

「……아.」

그제야 천사연이 누군지 떠올린 한이결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긴 속눈썹에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움직임에 맞춰 툭 떨어졌다.

「동생이 죽어서 어지간히 살기 싫은가 보군.」

「…….」

「그래도 장례는 치러 주고 가야 하지 않나? 기록을 보니까 가족이라고는 오빠 하나 남았던데.」

장례라는 말에 한이결이 입을 살짝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당황한 한이결을 향해 천사연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고는 아주 느릿하게 팔을 뻗었다.

털을 잔뜩 세운 어린 동물에게 다가가듯 조심스럽게 내민 손은 한이결이 쥐고 있던 협탁 파편을 가져갔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이결을 살려서 이용하겠다는 천사연의 계획은 실패에 가까웠다.

천사연의 도움으로 한이연의 장례를 무사히 치른 한이결은 천사연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이결은 장례가 끝난 후, 한 달도 채 가지 않아 천사연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이결은 잠깐이라도 혼자 시간을 보내면 어김없이 자살 시도를 했고, 대부분은 성공했다.

「성가시군.」

천사연이 혀를 차며 생각했다. 한이결이 죽는 것을 반복할수록 천사연의 인내심도 점차 한계에 다다랐다.

이쯤에서 나는 한이결의 죽음이 계속 보이는 이유가 책이나 내 문제가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로힘이 한이결에 대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영혼이 마모된 육체.

‘오랜 시간 받아 온 고통이 반복된 자살을 뜻하는 거라면….’

「한이결.」

천사연이 넋을 놓고 앉아 있는 한이결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그 친밀한 접촉에 한이결이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다.

「또 동생을 생각하고 있나?」

「…아, 죄송해요.」

「아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거듭되는 실패에 계획을 수정한 천사연이 한이결을 다정하게 위로했다.

「억지로 잊을 필요는 없지.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울어도 된다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이결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혼자 버티기 힘들다면 우리 길드로 와.」

「네?」

「내가 곁에서 도와줄 테니.」

제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한이결을 번거롭게 여기면서도 위로하는 목소리나 눈빛에서는 그런 기색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과연 천사연이었다. 나조차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완벽했다.

‘SS급으로 각성 안 했어도 저 연기력이면 배우를 해도 충분히 살 만했겠네.’

하여튼 뭐가 이렇게 다 잘났는지. 괜한 짜증이 솟구쳤다.

어째서인지 한이결을 위로하는 천사연의 모습을 볼수록 기분이 저조해졌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내가 봐 온 천사연과 지금의 천사연을 자꾸만 비교하게 됐다.

가슴 한구석이 복잡해진 나를 두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번만큼은 천사연의 계획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한이결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갔다.

「내게 의지해. 넌 혼자가 아니야.」

「…….」

「그러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언젠가 꿈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천사연과 한이결이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처음 이 장면을 꿈으로 꿨을 때는 ‘어비스’에서 나오지 않던 내용이라 당황했었는데. 이제야 뒤엉킨 실타래가 점차 풀려 가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을 떠올리고 우는 한이결의 젖은 눈가를 천사연이 자연스럽게 매만졌다. 그런 천사연을 보던 한이결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로 한이결은 더는 동생 일로 울지 않았다. 대신 온종일 천사연만 쫓아다니며 그의 말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였다.

천사연을 보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행복하게 웃고, 그가 없으면 심하게 우울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연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화를 냈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행동했으면 사랑이라고 여겼겠지만, 이미 한이결이 한이연을 어떻게 다뤘는지 본 나는 도저히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천사연은 한이결이 죽은 한이연 대신 찾아낸 새로운 집착 대상이었다.

하지만 천사연은 한이연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한이결은 한이연에게 했듯이 천사연을 가둬 두고 자신만 보고 싶었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 차이점에 한이결은 점점 미쳐 갔다.

한이결은 천사연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천사연이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조금만 웃어도 그 상대방이 누군지, 어떤 사이인지 자꾸만 캐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천사연은 한이결을 귀찮아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했다.

「이 방법도 실패군.」

당신을 사랑한다며 애절하게 우는 한이결을 앞에 두고 천사연의 생각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좀 거슬리긴 해도 아직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더 두고 봐야겠지. 겨우 저런 놈 하나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에 맞춰 한이결의 병적인 집착도 갈수록 심해졌다. 종내에는 타인을 향해 제 능력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이결에게 습격을 당한 피해자는 천사연과 복도에서 잠깐 얘기를 나눈 힐러, 대표실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수행원, 천사연과 인터뷰할 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자 등 다양했다.

그 뒷수습을 모조리 떠맡게 된 천사연이 결국 한이결을 버려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쯤에 또 모든 것이 되감기 하듯 뒤로 돌아갔다.

「한이결.」

다시 그 병실로 돌아온 이야기는 아까와 달랐다. 한이결이 눈을 뜨자마자 찾아온 천사연은 다정한 태도를 모조리 버리고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동생을 만나고 싶나?」

***

김우진이 대표실로 들어섰다. 다른 수행원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을 입은 C급 김우진은 굉장히 낯설었다.

「말씀하셨던 대로 한이결을 데려왔습니다.」

「상태는?」

「부상이 심해 곧바로 힐러 측에 넘겼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어비스’와 동일하게 진행됐다. 천사연은 죽은 한이연을 인질 삼아 한이결을 이용했다.

한이결을 버릴까 고민하던 천사연이 마음을 바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본 것이다. 고작 감정에 휘둘려 버리기에는 A급 바람 능력은 너무나도 쓸모가 많았다.

한이연의 얼굴 한번 보여 주지 않았는데도 한이결은 천사연의 살아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다. 한이결이 집착하는 상대에게 얼마나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김우진이 떨떠름한 낯으로 천천히 자신이 본 것을 보고했다.

한이결은 천사연이 시킨 대로 차수연을 납치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고, 차수연은 크게 다쳤다.

「폐교한 초등학교로 가는 건 확인했는데,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옥상 아래로 떨어진 것은 1시간쯤 뒤였습니다.」

죽어 가는 한이결을 발견한 김우진은 천사연에게 전화를 걸어 명령대로 그를 길드로 데려왔다. 아마 천사연이 버려두라고 했으면 챙기지 않았을 터였다.

「나가 봐.」

김우진이 대표실을 나가는 것을 확인한 천사연이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쓸 만하지만….」

천사연이 중얼거리며 기존에 세웠던 계획을 조금씩 수정했다. 그가 떠올리는 모든 생각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잔인하군.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겠지.」

「길드에 넣는 것은 보류해야겠어.」

「그래. 길드보다는 차라리…….」

고민을 끝낸 천사연은 ‘어비스’에서 봤던 대로 한이결을 비공식적인 일에 써먹기 시작했다.

하태헌의 시점으로 진행되느라 간단한 서술 몇 줄로만 나왔던 한이결의 행적을 천사연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한이결은 검은 가면을 쓴 자들… 즉, 사마엘의 하수인들과 자주 부딪혔다. 천사연의 명령대로 그들을 죽이거나 정보를 빼 왔다.

하태헌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천사연은 계속해서 사마엘과 싸워 온 것이다. 대부분은 한이결을 이용했지만, 천사연 본인이 직접 움직일 때도 적지 않았다.

워낙 장면이 휙휙 넘어가고 짧게 보여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어도 인명 피해를 여러 번 막아 낸 것은 확실했다. 그걸 천사연의 명령을 따르던 한이결이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즈음 천사연을 보는 한이결의 눈빛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가 자신도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이연이는 이미 죽은 거겠지.」

천사연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됐다. 동생을 만나지 못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이었다.

오로지 동생을 다시 만나겠다는 목적 하나로 살던 한이결은 점차 현실을 마주했다. 한이연은 죽었다. 그리고 천사연은 그것을 숨겼다.

왜? 그 의문에 한이결은 다른 방향으로 답을 냈다.

「이연이가 죽었을 때, 그 얘기를 바로 들었다면 나는 아마 버티지 못하고 자살했을 거야….」

「마스터는 그래서 숨긴 걸까?」

「내가 동생 잃은 슬픔을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아서?」

이성적인 판단을 잃은 한이결은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기이한 미소를 비실비실 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이결의 달라진 태도를 이미 한번 겪어 봤던 천사연 또한 바로 눈치챘다. 하지만 그가 미처 계획을 바꾸기 전에 한이결은 또다시 비슷한 문제를 일으켰다.

천사연을 향한 과도한 집착과 간섭부터 그와 조금이라도 엮이는 이들을 향한 공격적인 질투심까지.

「정말 지긋지긋하군.」

길드 관리 본부에서 업무차 찾아온 여자를 한이결이 공격했다. 피가 흩어진 응접실을 확인한 천사연이 메마른 어투로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실패할 거면 차라리 살리지 말아야 하나.」

한이결이 여자의 피를 잔뜩 묻힌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천사연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등진 채로 그런 한이결을 한심하게 내려다봤다.

「저, 저는 그저… 마스터를 사랑, 사랑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한이결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글쎄.」

「…….」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 그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저는…….」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한이결.」

「마스터….」

「너는 동생을 대신해서 집착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지.」

천사연이 한이결을 버려두고 응접실을 떠나갔다. 멍한 얼굴로 한참을 앉아 있던 한이결이 곧 독기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천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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