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한이결의 일상은 굉장히 단조로웠다.
아침 일찍 나가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온다. 쉬는 날은 없다. 그나마 시간이 남을 때는 한이연을 데리고 병원을 갔다.
한이연이 아픈 이유는 매번 달랐다. 약만 받아 올 때도 있고 며칠 입원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면역력이 워낙 약한 데다 혈액 순환도 좋지 않아 가벼운 감기가 고열을 일으키는 독감으로 변하거나 온몸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희멀건 죽을 겨우 먹은 한이연에게 약을 가져다주는 한이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몸이 약하다고 해서 이렇게 집에만 가둬 두는 게 과연 한이연의 건강에 좋은 선택일까? 한겨울이나 한여름이면 모르지만 지금 밖은 화창한 봄이었다. 주변을 가볍게 걷는 것을 꾸준히 해 주기만 해도 상태가 지금보다는 좋아질 텐데.
‘그러고 보니 나이를 알 수가 없군. 학교는 가지 않는 건가? 온종일 집에 갇혀 지내야 한다니….’
병원을 갈 때마다 의사가 한이결에게 환자가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말을 매번 했으니 그도 분명 알고 있을 텐데, 그는 결코 한이연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괜찮아?」
「으응….」
수북이 쌓인 알약을 힘겹게 삼켜 낸 한이연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색과 메마른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것을 본 한이결이 슬픈 낯을 했다.
「불쌍한 내 동생.」
한이결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내가 더 노력해야지.」
다짐하는 행동에 불쌍한 마음보다는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
‘설마…….’
부정적인 추측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한이결이 하는 행동은 마치….
“…….”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속단하기는 이르다. 일단 계속 지켜보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들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한이결은 잠을 줄이고 일을 하나 더 늘렸고 한이연은 혼자 집에 남아 바싹 말라 갔다. 한이결은 결코 한이연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그걸 한이연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아니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건지, 결국 둘이 크게 싸웠다. 한이연은 잠깐이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고 싶다고 애원했고 한이결은 단호하게 막아섰다.
그날을 기점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보며 웃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이결은 한이연이 나가지 못하도록 문에 두꺼운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그 모든 것을 보던 나는 속이 뒤집히는 매슥거림에 헛구역질을 했다.
한이결의 동생을 향한 집착은 사랑이 아니었다. 저것은 결코 사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한이결은 자신의 고단한 삶을 이어 가기 위한 수단으로 한이연을 이용할 뿐이었다.
내가 역겨워하건 말건, 그들의 시간은 계속 지나간다. 한이결이 24살이 되던 해, 한이연은 이제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심하게 나빠졌다. 하루 중에 15시간 이상 잠을 잤다.
하긴. 이 좁은 지하 원룸에서 갇혀 지내는데 잠을 자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정신에 문제가 생겨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이결은 잠든 한이연을 두고 이른 아침 밖으로 나갔다. 문에 자물쇠를 채운 한이결은 서둘러 가파른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자 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 정도는 괜찮다니까?」
「예? 하지만….」
「거참, 말 길게 늘이네. 짜증 나게.」
「죄, 죄송합니다.」
한이결이 걸음을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골목 구석에 서 있는 남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강승건이었다.
「누구지?」
나와 마찬가지로 강승건을 발견한 한이결이 벽에 몸을 바싹 붙이며 생각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강승건은 딴 데에 정신이 팔린 채로 한이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뭐, 계속 내버려 두재? 일주일 뒤에 다시 날 잡자고. 그 정도는 괜찮아.」
「그래도 일주일이면 조금 위험…….」
「어차피 이딴 곳은 그렇게 빡세게 관리 안 해도 돼. 솔직히 귀찮잖아. 어?」
「큼, 바쁘신 거면 그냥 저희끼리 클리어해도 괜찮….」
「어허! 그래도 마스터인 내가 가는 게 낫지. 쯧, 이번에도 클리어에 참여 안 하면 관리 본부 그 새끼들이 얼마나 지랄할지…. 됐고. 오늘은 해산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날 잡아.」
「마, 마스터.」
「그렇게 알고 간다. 시발, 괜히 질질 끌어서 시간만 늦어졌네.」
강승건이 불편한 표정을 한 길드원을 버려두고 허겁지겁 골목을 벗어났다. 한이결도 찝찝하다는 기색으로 몸을 돌렸다.
“…….”
그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느릿하게 시선을 내렸다.
***
그 후 일주일이 지난 당일 새벽, 예상했던 대로 게이트가 폭주했다.
하필 C12 구역 게이트가 판자촌 깊숙이 있어서 입구로 뛰쳐나온 몬스터가 골목 곳곳을 점령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꺄아아악!」
「무, 무슨…! 살려 줘!」
크아악! 캬악!
순식간에 눈앞이 지옥도로 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스 폭발까지 일어나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연아.」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한이결이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들고 있던 약 봉투를 툭 떨구고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봉투 속에는 약과 함께 한이연이 좋아하는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제발, 제발.」
한이결이 다급하게 중얼거리며 집을 향해 구르듯 달려갔다. 낡은 판잣집은 이미 반절이 불에 집어삼켜진 상태였다. 그는 뜨거운 불과 새까만 연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철컹, 철컹!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단단한 자물쇠를 풀어낸 한이결이 비명처럼 한이연을 불렀다.
「이연아!」
가스 냄새가 짙게 퍼졌다. 문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한이연의 양손은 붉게 부어 있었다.
「이, 이연아. 정신 차려.」
쓰러진 한이연의 몸을 허겁지겁 둘러업은 한이결이 불길을 피해 비틀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박쥐 날개를 단 몬스터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키에에엑!
「허억…!」
난생처음으로 몬스터를 마주한 한이결이 공포로 잔뜩 굳어 뒷걸음질 쳤다. 그 짧은 사이에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파악한 몬스터가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흐, 아악!」
가시처럼 날카로운 돌기가 잔뜩 박혀 있는 몬스터의 꼬리에 한이결의 옆구리가 뚫렸다.
한이결이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등에 업혀 있던 한이연의 몸도 거칠게 땅바닥을 굴렀다. 어딘가 잘못 부딪혔는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흐으…….」
크르륵.
진한 피 냄새에 흥분한 몬스터가 목을 울려 으르렁거렸다. 몬스터는 한이결과 한이연, 둘 중에 뭐부터 먹을지 고민하듯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여, 연아… 흑, 연아…….」
한이결이 눈앞에 보이는 한이연을 향해 힘겹게 기었다.
「내가 힘이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는 몬스터를 뒤에 두고도 한이결은 한이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뜨거운 불도, 연기도 모두 다 치워 버리고 너에게 갈 수만 있다면….」
키아아악!
거대한 입을 쩍 벌린 몬스터가 한이결을 삼키기 직전, 날카로운 검에 목이 날아갔다. 몬스터를 죽인 이의 얼굴에 붉은 피가 확 튀었다.
쿠웅, 몬스터 시체가 바닥으로 넘어가며 검을 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느긋한 몸짓으로 볼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한이결에게 다가선 천사연이 그와 눈을 맞추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
「도, 동생. 동생이라도… 제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이결을 바라보던 천사연이 이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몬스터를 죽였다.
내가 C12 구역에서 봤던 과거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천사연에게 구해진 한이결과 한이연은 곧장 판자촌을 벗어났다.
눈앞의 풍경이 휙 바뀌며 새하얀 병원이 나타났다. 흰 침대에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한이연이 누워 있고, 그 앞은 천사연이 서 있었다.
「가스와 연기를 너무 오래 마신 데다 머리도 다쳤고…. 무엇보다 몸이 많이 약해서 회복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흠.」
「이대로는 아마 며칠 버티지 못하고….」
힐러의 말에 천사연이 잠시간 동생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한이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무심하게 답했다.
「이 한 명 빼고는 다른 부상자는 문제없다는 건가?」
「네.」
「지켜보다가 사망하면 가족에게 전해.」
그때, 수행원이 병실로 들어서며 천사연을 불렀다.
「마스터. 길드 관리 본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가지.」
천사연이 미련 없이 떠나갔다. 곧 남아 있던 힐러도 들고 있던 차트에 무언가를 적은 후 자리를 뜨니, 병실엔 심장 박동에 맞춰 울리는 기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한이결은 한이연의 바로 옆 병실이었다. 몬스터 꼬리에 뚫렸던 부위는 힐러의 치료로 금방 완치됐지만, 그도 가스와 연기를 꽤 마신 상태라서 금방 깨어나지 못했다.
한이결이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한이연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고작 그 이틀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한이결은 깨어나자마자 병실을 찾아온 간호사에게 동생에 관해 물었고…….
「지독한 악몽이다.」
한이결이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끊임없이 울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새하얀 손 위로 바람이 일렁였다.
「그 아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어.」
미약하게 모여든 바람은 점차 강해졌다. 공격성을 품은 바람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위험하게 흔들렸다.
「이연아, 내가….」
콰직!
한이결이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두르자, 침대 옆 나무 협탁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중 가장 단단하고 커다란 파편을 집어 든 한이결이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갈게.」
뾰족한 파편 끝이 목을 꿰뚫었다. 끄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피가 훅 뿜어져 나와 새하얀 병실 침대를 적셨다. 파르륵 떨던 한이결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한이결의 죽음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곧 눈앞의 모든 것이 멈춘 것을 알아챘다. 처음 보는 현상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 영상이 되감기 하듯 돌아가고 다시 한이결이 등장했다.
그리고.
「지독한 악몽이다.」
방금 봤던 장면이 다시 시작됐다.
“……뭐야?”
미간을 찌푸린 내 앞에서 한이결이 다시 한번 자살했다. 숨이 끊겨 쓰러지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서 자살한다.
자살, 자살, 자살. 끊임없이 반복된다.
‘대체 왜….’
책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당장 엘로힘에게 확인해 보고 싶어도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도 한이결은 쉬지 않고 죽었다. 몇 번째 죽는 건지 셀 수도 없었다.
어떡하지? 계속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데.
한이결이 다시 협탁을 부쉈다. 죽는 장면을 또 봐야 하나 싶어서 한숨을 내쉬는데, 누군가가 병실 문을 부드럽게 열고 들어섰다.
죽기 위해 파편을 쥔 한이결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갑자기 끼어든 방해꾼이 여유 가득한 미소를 띤 채로 입을 열었다.
「죽으려고?」
「…….」
천사연의 거침없는 말에 한이결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와 시선을 마주한 한이결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이채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