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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40)화 (140/394)

140화 

겨우 길드로 돌아와 당연한 것처럼 쫓아오는 박건호와 우서혁을 등에 달고 23층으로 향했다.

“왜 또 따라오시는 겁니까?”

“그래도 같이 하룻밤을 보낸 사이인데, 이렇게 매정하다니….”

“무사히 방에 도착하시는 것만 보고 가겠습니다.”

입만 열면 헛소리를 늘어놓는 박건호와 걱정을 늘어놓는 우서혁을 무시하며 방문을 벌컥 열자, 무언가 커다란 게 품에 힘차게 안겨 왔다.

“한이결!”

“커헉!”

누군가 했더니 김우진이었다. 아니, 김우진 분신인가?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안긴 채로 목덜미에 붉은 머리카락을 잔뜩 비비적거리는 분신을 토닥이며 고개를 들었다.

“한이결.”

분신의 뒤로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우진이 보였다. 찔리는 게 이만저만 있는 게 아닌 터라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김우진.”

“…….”

예상대로 김우진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나와 김우진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박건호가 귓가에 속삭였다.

“살벌해라. 제대로 삐쳤나 본데?”

“조용히 하시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짜증 나서 팔꿈치로 바싹 달라붙은 박건호의 가슴팍을 미는데, 얌전히 우리를 지켜보던 우서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바로 출근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올 생각입니다.”

박건호에게 빌린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있는 우서혁은 자신의 현 차림새가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그다음은 꽤 나중이 되겠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미련 없이 떠나가는 우서혁의 널따란 등을 바라보다 박건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팀장님은 안 가십니까?”

“내가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아, 귀찮아 정말.

“마음대로 하십쇼.”

박건호를 쫓아내는 데 실패한 나는 도끼눈을 뜬 채로 박건호를 노려보는 분신을 달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뚱한 얼굴로 서 있던 김우진이 분신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물었다.

“아침밥은? 먹었어?”

“우리 집에서 끝내주게 먹었지.”

“뭐…?”

내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박건호가 현관문을 닫으며 장난치듯 말했다. 크게 충격받은 김우진에게 얼른 달려가 두 어깨를 붙잡았다.

“그게,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아침밥만 먹었나? 어제저녁에는 같이 술도 마셨는데.”

“술…?”

저 자식이 진짜. 그렇지 않아도 상심해 있던 김우진은 술이라는 단어에 기다란 눈꺼풀을 파르르 떨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난감한 것도 잠시, 설상가상으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결 씨, 저 왔어요!”

“저도 왔습니다. 어제는 푹 쉬셨습니까?”

박건호가 문을 열어 주자 활짝 웃고 있는 민아린과 고급스러운 화과자 박스를 든 권정한이 방으로 들어섰다.

“어머. 우진 씨, 왜 또 울상이에요?”

“오. 여기 화과자는 구하기 힘든 거로 아는데.”

“부모님께서 챙겨 주셨습니다. 형은 단 거 좋아하니까, 입에 맞을 거예요.”

“한이결…….”

주위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사람으로 꽉 차서 북적거리는 방 안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권정한이 가져온 화과자에 차를 곁들여 먹으며 내 설명을 들은 민아린이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럼 박건호 팀장님 집 구경하고 술도 마신 거군요.”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다 함께 놀러 오세요, 민아린 힐러.”

“좋아요! 저도 이결 씨랑 술 마셔 보고 싶네요.”

예쁘게 꾸며진 화과자를 입에 넣으며 슬쩍 주위를 살폈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박건호와 민아린, 차를 더 마시기 위해 잠시 주방으로 간 권정한, 내 접시에 화과자를 옮겨 주고 있는 김우진.

‘대충… 넘어간 것 같네.’

다른 사람들이 있는 터라 C12 구역에서 있었던 일은 일부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만약 김우진과 단둘이 있었다 하더라도 설명하기 애매해서 넘겼을 것이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김우진과 곧 시선이 마주쳤다. 날 정확히 응시하는 고동색 눈동자에 씩 웃어 주자 녀석이 볼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상태를 보아하니 궁금한 게 많은데도 사람들 때문에 묻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포크로 접시를 가볍게 두드리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42분.

“그러고 보니 이결 씨.”

“예?”

행복한 얼굴로 화과자를 먹어 치운 민아린이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팬카페가 있으시다면서요?”

“…예?”

“오. 팬카페?”

머리 저편에 밀어 뒀던 팬카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혹시나 싶어 김우진을 바라봤다.

“나 아니야!”

“저는 이미 가입했습니다.”

김우진이 황급히 고개를 젓는 것과 동시에 권정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카페 이름 알려 드릴까요?”

“헉, 알려 주세요! 저도 가입할래요.”

“나도 가입해 둬야지.”

“이런 미친, 잠깐만요.”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민아린과 냉큼 끼어드는 박건호의 모습에 기겁했다.

“그걸 대체 왜 가입합니까?”

“재밌잖아요.”

“재밌잖아.”

내 물음에 민아린과 박건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재밌다고? 대체 뭐가 재밌는 건데? 황당해서 반박도 못 하고 입만 떡 벌리는데, 김우진이 어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여기입니다. 한이결 팬카페.”

“어머, 우진 씨도 가입했군요!”

민아린 옆에서 팬카페를 들여다보던 박건호가 날 향해 윙크했다.

“걱정하지 마, 한이결. 내가 책임지고 소문내 주도록 하지.”

“필요 없습니다!”

끔찍한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는데, 권정한이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들어 올렸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상입니다. 이렇게 화질 좋은 건 팬카페에서만 얻을 수 있죠.”

그곳에는 딱 봐도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는 내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저게 언제더라? 그러니까… N42 구역 게이트 들어가기 전에 천사연이랑 했던 인터뷰인 것 같은데.

“솔직히 이결 형이 공식적인 활동을 안 해서 사진이나 영상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입이 워낙 많아 카페 분위기는 꽤 괜찮아요.”

“…….”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냥 분위기가 나빴으면 좋겠다. 나쁘다 못해 망하길 바란다. 저런 게 왜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권정한의 말을 듣던 민아린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이결 씨, 혹시 다른 활동 할 생각 없으세요?”

“다른 활동이요?”

“CF 광고나, 잡지 화보나… 그런 활동이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제안 정도는 몇 개 들어왔을 것 같은데.”

“안 들어왔습니다.”

지친 숨을 내뱉으며 녹차를 한 입 마셨다. 잠시간 눈을 굴리던 박건호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한이결에게 들어오는 모든 제안은 마스터가 한 차례 거르고 있다고 듣긴 했지.”

“그렇습니까?”

웬일로 천사연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군. 앞으로도 계속 그래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권정한의 핸드폰을 다소 거칠게 빼앗아 화면을 껐다.

“그런 활동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쉬워라.”

“아쉽네요.”

정말 아쉬운 목소리로 한마디씩 하는 민아린과 권정한, 그리고 말은 안 해도 눈썹 끄트머리를 축 내리는 김우진을 차례로 돌아보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

시간이 흘러 해가 가라앉고 하늘이 어둑해질 때쯤, 한 명씩 떠나간 방에는 평소처럼 나와 김우진만이 남았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식탁을 정리한 김우진이 앞치마를 벗으며 주방을 빠져나왔다.

“…한이결.”

부름과 동시에 내게 안겨 있던 분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에 리모컨으로 TV를 끄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C12 구역에서 별일 없었어?”

“물론이지.”

김우진의 어깨를 붙잡으며 살짝 웃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정보 구해 줘서 고마워. 김우진. 덕분에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조금은 얻어 냈어.”

다는 아니지만.

진심을 담아 말하자 김우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귓가를 발갛게 물들였다.

“그럼 다행인데…. 뭘 알아보려고 갔는지 말해 줄 수 없어?”

“그건…….”

“조금이라도.”

혹여 내가 거절할까 급하게 덧붙인 말은 마치 애원과도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거야. 과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갔어.”

“과거?”

“그래. 지금으로서는 이렇게밖에 설명 못 하겠다.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김우진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약속하듯 말했다.

“나중에 제대로 말해 줄게. 모든 게 정리되면.”

“…알겠어.”

잠시 멍하니 나를 응시하던 김우진이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고 얌전히 답했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

“응. 내일 올게.”

내일이라. 씁쓸함을 숨기며 평소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잘 자, 한이결.”

문을 나서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김우진이 방을 나갔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시끌벅적했던 방 안에는 이제 고요한 침묵만이 남았다. 창문으로 먹구름이 낀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천천히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섰다.

‘미안, 김우진.’

천사연에게 받았던 팔찌를 풀어서 테이블 위에 조심히 내려놨다. 하태헌에게 받았던 핸드폰도 옆에 뒀다.

사실, 김우진과 민아린에게는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은 함께 떠날 하태헌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만약 천사연이 나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면, 권정한의 능력을 이용할 가능성이 너무 컸다.

전등 빛에 반짝이는 팔찌를 매만지며 천사연을 떠올렸다.

‘최대한 조심한다 해도 천사연이 찾겠다고 마음먹으면 소용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을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겠지.

예언자의 위치를 알아낼 때까지 기다린 것도 있지만, 그동안의 시간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김우진은 A급 분신술사로 재각성을 하면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민아린은 홍시아와 차수연, 클로에 부마스터를 만나며 인맥을 넓혔다.

이제는 천사연이 그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니 더는 걱정스럽지 않았다.

팔찌로부터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 놓았던 핸드폰을 꺼내 들고 창문을 열었다. 봄꽃 향기가 가득 담긴 밤공기가 코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줄곧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미련을 느낄 리가 없었다. 천천히 호흡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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