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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32)화 (132/394)

132화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천사연의 얼굴에 자꾸만 흐려지는 이성을 다잡으며 겨우 대답했다.

“…뭘 해 달라는 건데?”

“귀걸이를 줬으면 착용할 수 있게 도와야지.”

“설마 나보고 귓불을 뚫어 달라는 거야? 지금?”

“그래.”

천사연이 말만으로 그치지 않고 보란 듯이 액세서리 함을 다시 열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귀걸이 한쪽을 빼내어 내민다.

“어서.”

“미친, 내가 이걸 어떻게 해? 나도 한 번도 뚫어 본 적 없어.”

“귓불 중앙에 대고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어려울 게 있나?”

기어코 내 손에 억지로 귀걸이를 쥐여 준 천사연이 어떻게 할 거냐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붉은 보석의 감촉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잘못돼도 난 모른다.”

“탓할 생각도 없으니 안심해.”

이 자식이라면 확실히 그러긴 하겠지만…….

말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빨리 해 주고 나가자. 천사연 고집을 어떻게 이기냐.

어차피 회복 아이템이니 소독 같은 건 할 필요 없었다. 귀걸이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천사연의 귓불을 진지하게 바라보는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면서 날 구경하던 천사연이 갑자기 내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아 번쩍 들었다.

“또 뭐야?”

“자세가 불편해 보여서.”

순식간에 소파가 아닌 천사연의 허벅지 위에 앉아 서로 마주 보게 된 상황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 무슨…….”

코앞까지 다가온 천사연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겨우 잊고 있었던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천사연의 입술로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참아 내며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내려 줘.”

“다 하면 내려 주도록 하지.”

천사연이 뻔뻔스럽게 대답하며 고개를 살짝 틀었다. 확실히 옆에 앉아서 하는 것보다 시야나 자세가 편하긴 했다. 으, 앓는 소리를 내며 귓불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바싹 붙였다.

“……한다.”

코앞에 보이는 천사연의 귓불을 뾰족한 귀걸이 끝으로 누르자, 천사연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속삭였다.

“해.”

손끝에 힘을 강하게 줬다. 천천히 누르는 것보다 한 번에 뚫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귀걸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귓불을 뚫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잘됐나?”

“그런 것 같은데.”

천사연의 귀를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다행히 귀걸이는 삐뚤어짐 없이 귓불 정중앙에 잘 박혔다.

아무리 부위가 귓불이라지만 생살을 뚫는 건데, 천사연은 조금도 아파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고통은 감흥도 없다는 건가?

“다른 쪽도 해 줘야지.”

“알겠으니까 가만히 있어.”

귀찮게 자꾸만 치근거리는 천사연의 팔을 쳐 내며 액세서리 함에서 남은 귀걸이 하나를 빼 들었다.

하나 성공했으니 이제 어려울 것 없다. 연신 신난 기색인 천사연의 얼굴을 억지로 비틀어 왼쪽 귓불에도 귀걸이를 강하게 눌렀다.

“아야. 아픈데.”

오른쪽 귓불보다 거칠게 끼워 버리자 천사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살을 부려 댔다.

“웃기지 마.”

양쪽 다 귀걸이 뒤 마개까지 제대로 끼워진 것을 확인한 나는 혹시 몰라 귀의 상태도 확인했다. 다행히 회복 아이템이라 그런지 붉게 부어오르거나 피가 맺히지 않았다.

“끝났나?”

“그래.”

이게 뭐라고 다 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지친 얼굴을 하고 천사연의 몸에서 내려가려는데, 그가 붙잡은 허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좀 치우지?”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좀 내려가겠다고.”

“왜? 그냥 지금 해.”

지랄하네, 미친 새끼…. 진심으로 노려보자 천사연이 한번 봐준다는 얼굴로 허리를 놔주었다. 재빨리 녀석의 품에서 벗어난 나는 여차하면 도망가기 위해 최대한 소파 바깥쪽에 섰다.

“대화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 아닌가?”

“천사연.”

더는 헛소리에 장단 맞춰 줄 생각 없었다. 천사연의 말을 무시하며 사마엘에게 끌려간 순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뱉어 냈다.

“에드워드 씨가 사마엘의 능력에 당할 거라고… 알고 있었어?”

에드워드가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로 응접실을 오기 직전, 천사연은 N11 구역 관리인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고 우서혁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내가 없으면 아쉬울 텐데.

빨리 가 보라는 내게 천사연이 했던 그 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하던 눈빛.

물론 그저 내 착각일 수 있다. 아무리 천사연이라 해도 사마엘의 움직임을 미리 알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내 기대를 처참히 깨부수듯, 천사연이 귓불에 꽂힌 귀걸이를 매만지며 심드렁히 대꾸했다.

“예상하기는 했지.”

무심코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동요하는 감정을 힘겹게 억누르며 물었다.

“어떻게?”

“흠.”

허벅지를 검지로 툭툭 두드리던 천사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리고 빈틈이 많은 데다 아이템 제작자라 무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게다가 아테나 부마스터의 동생이니 함부로 저지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

“멍청하게 생각하지 마, 한이결. 에드워드를 정신 지배로부터 지켜봤자 의미 없어. 어차피 또 다른 이가 접근했을 거다.”

천사연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사마엘이 약한 에드워드가 아닌, 강승건처럼 강한 공격 능력자를 지배해서 내게 접근시켰다면….

‘클로에의 말대로 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천사연이나 클로에처럼, 도저히 이성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었다. 내게 눈을 빛내며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에드워드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이용했다는 거잖아.”

아무리 좋게 포장해 봤자 결론은 사마엘에게 적당한 미끼를 던져 준 것이다. 그 어린아이를. 참담한 심정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용?”

그러나 천사연은 내 말에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거다.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사마엘의 공격을 한 번 막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뿐이었어.”

“…그렇다면 천사연. 너는.”

천사연은 단순히 에드워드가 사마엘의 정신 지배 능력에 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끌려가서 에드워드를 지키고 끝내 천사연에게 구해지기까지 모든 상황을 계획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마엘의 능력이 내게 통하지 않을 거라고 이미 알고 있었겠네.”

그 모든 계획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내가 정신 지배를 당하지 않고 버텨 내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나도 몰랐던 내 힘을 천사연은 정확하게 알고 있던 거다.

에드워드를 써먹었다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그런 부분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결국 크게 다쳤던 권정한을 포함해서 나와 에드워드, 사마엘까지. 모두 천사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었다. 차갑게 식은 손을 말아 쥐었다. 뜨거운 불길이 뱃속에서 타올랐다.

몇 번이고 울컥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천사연은 끝내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천사연을 더 마주 보고 있다가는 쓸데없는 말을 뱉어 낼 것 같아 급히 몸을 돌렸다. 다행히 놈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도망치듯 대표실을 빠져나와 한참을 정신없이 걷던 나는 불 꺼진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벽을 짚고 거칠게 숨을 내뱉으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좆같은 새끼.”

욕설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서늘한 공기가 머리를 식혀 줬다.

자기 멋대로 남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빌어먹을 놈. 네가 대체 사마엘과 다른 게 뭐냐는, 그런 비난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만하자.’

아무리 몇 번이고 화내고 실망해 봤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감정을 소모해 봤자 내 손해였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이면 김우진이 강승건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줄 것이다. 곧 하태헌도 한국으로 돌아올 거고. 그러면….

떨리는 두 눈을 꾹 감았다.

***

쾅, 거칠게 닫히는 문을 잠시간 바라보던 천사연이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해가 내려앉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곧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확인했다.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붉은 귀걸이가 드러났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천사연이 곧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말해.”

[전화를 받자마자 첫마디가 그거야? 좀 더 예의를 갖춰 주면 좋겠는데, 천사연 마스터.]

클로에가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사연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용건.”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데.]

“쓸데없는 소리 계속할 거면 끊지.”

[한이결 능력자에 대한 거야.]

석양으로 붉게 물든 창문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투둑, 툭.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굵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뚫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응시하던 천사연이 물었다.

[아까 호텔에 한이결 능력자가 다녀갔어.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지?]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한이결 능력자의 기운을 다시 한번 살펴봤어.]

“기운의 문제가 있나 보군.”

[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특별한 건 맞아.]

잠시 말을 고르듯 망설이던 클로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이결 능력자의 기운은…….]

조용히 설명을 듣던 천사연의 검은 눈동자에 묘한 빛이 스쳤다.

“확실한가?”

[확실해.]

“그런 경우가 실존할 수 있는 건가?”

[글쎄. 일단 그 누구에게도 보지 못했던 현상이야.]

“원인은? 파악했나?”

[아니. 파악이고 뭐고, 나도 보고 놀라서 당황할 정도였어. 아마 한이결 능력자도 이상한 걸 느꼈을 거야. 눈치가 꽤 빠르던데. 머리도 좋고.]

“…알아.”

쓸데없이 너무 좋지. 한숨 섞인 대답을 하며 천사연은 한이결의 얼굴을 떠올렸다. 창백하게 질린 채로 자신을 노려보던 눈동자에는 실망의 빛이 짙게 깔려 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좀 더 알아봐 주겠는데, 알다시피 나와 에디는 내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야 해.]

“이 정도로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보지.”

[그렇다면 나도 더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클로에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천사연 마스터?]

“…….”

[나도 이번 일로 실망했지만, 오래 이어 온 인연이니 어떻게든 이해하고 넘어갔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 거야.]

어느새 하늘은 붉은빛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창문에 번진 물기로 모든 것이 흐리게 보였다.

-결국 이용했다는 거잖아.

빗소리 사이로 한이결의 비난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길게 눈을 감았다 뜬 천사연이 뒤늦게 답했다.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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