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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30)화 (130/394)
  • 130화 

    내게 했듯이, 권지훈이 각설탕이 들어간 커피를 민아린과 김우진에게 건네줬다. 따듯한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든 채로 민아린이 내게 물었다.

    “이결 씨, 혹시 에드워드 제작자를 보러 갈 건가요?”

    “그럴 생각이긴 한데, 연락도 없이 가기가 조금 그렇네요.”

    “저 클로에 부마스터 번호 아는데. 전화해 볼까요?”

    클로에가 연락처를 줬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클로에 부마스터께서 먼저 주셨어요. 한국에 있을 때만 쓰는 번호라고 말씀하시던데. 아마 이결 씨가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신 거 아닐까요?”

    클로에라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민아린 씨.”

    “좋아요. 잠깐 다녀올게요.”

    민아린이 핸드폰을 든 채로 병실을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 김우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우진, 내 핸드폰은 네가 갖고 있지?”

    “챙겨 두긴 했지.”

    천사연 몰래 만든 핸드폰이니, 내가 소지하는 것보다 김우진에게 맡겨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김우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민아린을 기다렸다.

    “이결 씨.”

    대략 5분간 이어진 통화를 마친 민아린이 병실로 돌아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클로에 부마스터가 지금 바로 와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다행이에요.”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나는 혹시나 해서 권정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권지훈 마스터도 계시니, 우리끼리 갔다 올게. 쉬고 있어.”

    지잉, 민아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 화면을 켜 본 민아린이 이어 말했다.

    “문자로 호텔 주소도 받았어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럼 날아갑시다.”

    간단히 대답하며 병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봄날의 따듯한 미풍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이결 형.”

    “…….”

    얌전히 나를 지켜보던 권정한이 나를 불렀다. 간지럽게 느껴지는 호칭에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자, 그가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 뒤로 장난스럽게 손을 흔드는 권지훈도 보였다.

    “그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권지훈 마스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먼저 창밖으로 날아오른 나는 민아린과 김우진의 손을 잡았다. 클로에 부마스터와 에드워드가 묵고 있는 호텔은 레퀴엠 길드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니, 날아가면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

    호텔 앞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호텔 직원이 우리를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무장한 경호원이 이상하게 생긴 작대기로 몸을 훑었다.

    “들어가십시오.”

    그 모든 일이 끝나자 경호원이 한 걸음 물러서며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저게 뭐지?”

    “감지 기능이 있는 아이템이에요. 에드워드 씨처럼 정신 지배를 당한 상태로 무기를 소지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내 물음에 민아린이 작게 속삭였다. 괜찮은 판단이긴 한데, 그와 별개로 클로에가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문 앞에 도착하자, 옆에 서 있던 경호원이 노크한 후 문을 열어 줬다. 러그가 깔린 거실과 새하얀 아일랜드 식탁이 보였다. 메이플 시럽 향 사이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이결 씨!”

    “에드워드 씨.”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 에드워드가 내 품에 안겼다. 나도 그를 마주 안아 주며 그 마음에 답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한이결 능력자.”

    앞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에드워드를 안기 위해 낮췄던 몸을 다시 들자, 베이지색의 숄 카디건을 걸친 클로에가 미소를 띤 채로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클로에 부마스터.”

    “어서 와요, 한이결 능력자. 뒤에 두 분도.”

    내 뒤를 따라 방을 들어온 김우진과 민아린이 짧게 묵례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살에 클로에의 금발이 화사하게 빛났다.

    “티? 커피? 뭐로 드릴까요?”

    “음, 티로 부탁드립니다.”

    “와서 앉아요.”

    그 말에 에드워드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 응접실로 이끌었다. 연둣빛 차가 찻잔에 가득 채워지고, 메이플 시럽이 뿌려진 와플이 중앙에 놓였다.

    “한이결 능력자. 그곳에서 있던 일은 에디에게 다 설명 들었어요.”

    차를 한 모금 마신 클로에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많이 다쳤었다고 들었는데, 제대로 치료는 받은 건가요?”

    “물론입니다.”

    내 대답에 클로에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에드워드와 똑 닮은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정말 감사해요, 한이결 능력자. 당신이 우리 에디를 지켜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들었던 찻잔을 급히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드워드 씨에게도 말했지만, 애초에 제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글쎄요.”

    딱딱한 대화에 클로에 옆에 앉아 있던 에드워드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무슨 뜻입니까?”

    “이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건.”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하죠. 칼에 찔렸던 경호원도 살았고, 에디와 당신도 무사히 돌아왔어요. 추가로 범인에 대한 정보도 얻어 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괜찮은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냉정하게 따지면 클로에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아무 손해 없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사마엘의 능력과 그가 가진 힘, 어떤 식으로 사람을 휘두르려고 하는지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설마 클로에가 이런 식으로 말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해서 놀랐나요?”

    “솔직히 대답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럴 만하죠. 저는 에디의 누나니까.”

    클로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에드워드의 눈동자를 보며 손을 잡아 줬다. 그렇게 에드워드를 잠시간 바라보던 클로에가 말을 다시 이어 갔다.

    “사실 저도 한이결 능력자, 당신을 원망했어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죠. 미안해요.”

    “아닙니다.”

    클로에에게 에드워드는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이다. 그러니 원망 그 이상으로 나를 증오하게 된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으니까.

    “그런 제게 천사연 마스터가 알려 주더군요. 당신은 악당이 아니라, 에디를 구해 준 영웅이라고.”

    “…….”

    천사연이 나를 옹호해 줬다고? 믿기 힘든 말에 쓰게 웃었다. 하긴. 천사연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지 알 수 없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튼 정리하자면, 저는 고마운 마음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저나 에디의 눈치는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한이결 능력자, 당신처럼 뛰어난 인재와 어색해지고 싶지도 않고.”

    마지막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도 그에 맞춰 몸에 힘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짝, 가볍게 손뼉을 친 클로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에디가 한이결 능력자와 할 얘기가 있다고 하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 줍시다. 민아린 힐러, 방 구경을 시켜 줄게요. 그 옆에 분도 함께 가죠.”

    김우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괜찮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클로에와 민아린의 뒤를 따라 응접실을 나갔다.

    방에 나와 단둘이 남자, 에드워드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채로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 한이결 씨.”

    “예?”

    작고 하얀 손을 마주 잡고 한참을 고민하던 에드워드가 곧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서,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요.”

    “선물요?”

    “네. 혹시 필요하신 아이템 있으신가요? 무기도 좋고, 보조 계열도 좋아요. 제가 만든 아이템이 꽤 많거든요! 그중 하나를 드릴게요.”

    “음…….”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입가를 매만졌다. 다른 상황이었으면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나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한 어린 에드워드에게 아이템까지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웃으며 딱 잘라 거절하자, 에드워드가 두 눈을 부릅뜨며 입을 떡 벌렸다. 설마 내가 거절할 줄 몰랐는지 충격이 꽤 커 보였다.

    “제가 딱히 필요한 아이템이 없어서요.”

    “그, 그래도요! 엄청 좋은 아이템도 있어요! S급도 있고, A급도 있고… 혹시 무기로 총은 어떠세요? 그때 보니까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던데!”

    갑자기 에드워드가 절박할 정도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테이블 너머에 있는 나한테 달려들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에 내심 놀란 나는 소파에 등을 바싹 붙이며 난감하게 웃었다.

    “제발요, 한이결 씨. 아무거나 골라도 좋으니까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절 구해 주셨으니까, 그 보답을 하고 싶어요…….”

    내가 계속 거절만 하자, 결국 에드워드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급히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뽑아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줬다.

    “울지 마세요, 에드워드 씨.”

    “흑, 제가, 선물 드리려고, 아이템도 다 정리, 히끅. 해 놨는데, 진짜로, 좋은 아이템 많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받겠습니다.”

    에드워드가 서러운 목소리로 훌쩍거리는 말에 나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받겠다는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는 금세 울음을 뚝 그치며 활짝 웃었다.

    “정말요? 무슨 아이템 드릴까요? 말만 하세요!”

    “으음.”

    적당한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대충 골라 봤자 에드워드 성에 찰 것 같진 않고….

    “아.”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손바닥을 가로질러 흐르는 붉은 피와 몸 여기저기에 새겨졌던 상처들이.

    ‘하지만…….’

    만약 생각한 아이템을 받는다고 해도, 전해 줄 만한 상황이 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며 한참을 고민하다, 에드워드에게 조심히 물었다.

    “에드워드 씨, 혹시 지혈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에드워드가 끼고 있던 반지를 툭툭 두드리자, 허공에 작은 액세서리 함이 나타났다. 녹색 벨벳으로 감싸진 액세서리 함을 열자 붉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가 보였다.

    “S급 회복 아이템이에요. 상처나 독을 회복하는 속도를 높여 주고,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해 줘요.”

    에드워드가 건넨 액세서리 함을 받아 들며 쓰게 웃었다. 하필 붉은 보석이라니. 이렇게 잘 어울리면, 안 줄 수가 없잖아.

    “저, 한이결 씨.”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아이템…. 제가 생각하는 그분께 드릴 건가요?”

    “죄송합니다. 저는 필요한 아이템이 없어서.”

    “아니에요. 감사의 마음으로 보답하는 거니, 어떻게 쓰셔도 전 좋아요. 그보다 제 걱정은…….”

    잠시 말을 멈춘 에드워드가 내 반응을 살피며 이어 말했다.

    “그, 천사연 씨가 받으실까요? 한이결 씨도 아시겠지만, 천사연 씨 능력과 아이템이 아무래도.”

    “어울리지는 않죠.”

    떠올리고도 고민했던 이유였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템이 마음에 들었다.

    “고마워요, 에드워드 씨.”

    액세서리 함을 손에 쥐며 인사를 전하자, 에드워드가 한결 편안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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