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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20)화 (120/394)
  • 120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에드워드에게로 다가가자, 그가 나른하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말이 잘 통해서 좋군요.”

    “…….”

    쓰러진 채로 거친 숨을 내뱉는 권정한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 바닥에 점차 퍼져 나가는 피 웅덩이와 에드워드의 얇은 목덜미를 따라 흐르는 핏줄기가, 점차 내 숨통을 억죄어 오고 있었다.

    “……단검 내놔.”

    땀에 젖어 차가워진 손을 에드워드에게 내밀었다.

    “네 말대로 가까이 왔잖아. 그러니까―”

    “이런, 욕심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제가 이 상황에서 뭘 믿고 단검을 드리겠어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내뱉은 에드워드가 돌연 내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잔뜩 긴장해 있던 몸이 절로 움찔 떨렸다.

    “자, 쓸데없는 행동은 거기까지 하지.”

    에드워드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움직였다. 몰래 핸드폰을 꺼내 든 응접실 앞 경호원과 손 한쪽을 등 뒤로 숨기고 있던 클로에가 그 말에 행동을 멈췄다.

    “기껏 한이결 능력자가 제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다 의미 없게 생겼군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에드워드가 기절하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는 권정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과연 이 불쌍한 경호원이 죽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궁금하긴 한데.”

    “그만해.”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든 그의 시선을 내가 잡아 둬야 했다.

    불길하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 미소에 에드워드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사람 그만 신경 쓰고, 할 일이나 하지? 나를 고작 여기까지 끌고 오려고 이 지랄을 한 건 아닐 텐데.”

    내 말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 에드워드가 잠시간 텀을 두고 하하,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참, 생각 외로 아주…….”

    흥분감이 느껴질 만큼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린 에드워드가 나른한 몸짓으로 내게 안겨 들었다.

    “무슨…….”

    “맞는 말입니다, 한이결 능력자. 더 시간 끌 것 없이 이만 가 볼까요?”

    에드워드가 품에서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구슬을 꺼냈다. 검푸른 색의 기묘한 빛으로 일렁이는 구슬.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소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묵직한 구슬이 에드워드의 손을 떠나 바닥과 부딪히는 그 순간, 끈적한 액체로 변해 나와 에드워드가 딛고 서 있는 바닥으로 넓게 퍼졌다.

    “이결 씨…!”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민아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급히 움직였지만, 액체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빛이 빠르게 에드워드와 내 몸을 집어삼켰다.

    “민아린 씨, 권정한 씨를…….”

    부탁합니다, 라는 뒷말은 어둠에 잠겨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

    “으윽…….”

    눈앞이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심한 매슥거림으로 속이 뒤집혔다. 입가를 가리고 헛구역질을 하자, 안긴 채로 내 몸을 받치고 서 있던 에드워드가 가증스럽게도 등을 두세 번 토닥거렸다.

    “흐으, 치워….”

    “공간 이동 아이템을 많이 겪어 보지 못했나 보군요.”

    공간 이동. 그 단어에 참가자들을 모두 게이트 내부로 이동시켰던 호텔 사건을 떠올렸다.

    “설마 굴업도 섬 게이트도….”

    “이제 아셨습니까?”

    주변을 가득 감싸고 있던 어둠이 주르륵, 흩어지며 밝은 빛이 들어왔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였다.

    눈이 아프도록 새하얀 빛이 강하게 차 있는 홀 중앙에, 몸에 딱 맞는 슈트를 갖춰 입은 남자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

    초승달 모양의 검은 입이 새겨진 매끈한 가면이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는 가면 너머 시선에 차가운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섭습니까? 심장 소리가 아주….”

    내 품에서 가슴에 귀를 갖다 댄 에드워드가 키득거렸다. 그 놀리는 말에도 불안함에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포식자를 마주친 피식자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로 경계하던 나는 남자가 느릿하게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을 발견했다.

    딱!

    깨끗한 장갑이 끼워진 엄지와 중지가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에드워드가 줄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에드워드!”

    뒤로 넘어가는 에드워드의 몸을 급히 붙잡으며 상태를 살폈다. 잠을 자듯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에드워드는 목에 상처를 제외하면 다행히 별문제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겁이 많군요, 한이결 능력자.”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가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눈앞에 남자를 훑어봤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큰 키를 제외하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놈이 에드워드를 이용한 정신계 능력자군.’

    그는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관찰하는 것처럼, 일정 거리에서 가까이 오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한번 깜빡인 후,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당신이 사마엘인가?”

    “오.”

    내 말에 남자가 짐짓 놀란 목소리로 가면의 입 부근을 매만졌다.

    “눈치도 빠르고.”

    “…….”

    “볼수록 기대 이상이네.”

    남자, 사마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대리석 바닥 위로 뚜벅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마엘의 행동에 에드워드를 최대한 품에 감추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목 끝까지 차오른 긴장감을 억지로 삼켜 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능력을 써야 하나?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과연 제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에드워드나 내가 정신 지배에 걸린다면? 차라리 어떻게든 말을 걸어서 시간을 끌어 봐야 하나?

    ‘에드워드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 해야…!’

    급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후웅,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아도 사마엘은 딱히 다른 반응 없이 걸어왔다.

    좋아. 일단 공격해서 시선을 흩트리고, 그사이에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피잉!

    “크윽!”

    날카로운 바람을 사마엘에게 날리려던 그 순간, 무언가 쏘아지는 소리와 함께 숨이 턱 막혔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거칠고 두꺼운 밧줄에 목이 묶여 속절없이 뒤로 넘어졌다.

    쿠웅!

    충격에 놓쳐 버린 에드워드를 미처 다시 붙잡기도 전에, 몸이 어딘가로 쭉 끌려갔다. 쓰라린 고통과 함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헉, 으윽….”

    끌려간 그곳에는 온통 새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까만 가면을 쓴 채로 밧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목을 옥죄어 오는 밧줄에 헐떡이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사마엘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너무 꽉 조이지는 말고. 죽을라.”

    “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밧줄의 조임이 아주 살짝 풀렸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알아챘다. 밧줄을 쥐고 있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새하얀 정장에 검은 가면을 쓴 상태였다.

    대충 훑어봐도 30명이 넘는 인원이 마네킹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 광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이했다.

    기절한 에드워드를 지나쳐 코앞까지 다가온 사마엘이 손짓하자, 밧줄을 움켜쥔 이가 억지로 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팔이 등 뒤로 강하게 꺾이고, 양 손목이 단단하게 붙잡혔다.

    “한이결 능력자.”

    시선에 맞춰 다리를 접어 앉은 사마엘이 내 턱을 붙잡아 올렸다. 가까이 보이는 가면에 등줄기로 소름이 끼쳤다.

    “쓸데없는 짓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함부로 행동했다가 여기 있는 제 아이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저도 모르는 일이라.”

    “…….”

    그 말에 감정을 쉽사리 제어하지 못하던 강승건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강승건처럼 사마엘에게 정신과 감정을 지배당하고 있다는 건가?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에드워드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사마엘에게 절대로 반항할 수 없었다. 그의 경고처럼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상황을 살피는 편이 나았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요.”

    얼굴이 잡힌 채로 얌전히 있자 사마엘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십시오. 쓸 만한 인재가 탐나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 아닙니까? 레퀴엠 같은 지루한 곳보다는 제 품이 더 좋을 겁니다.”

    “…스카우트치고는 꽤 과격한데.”

    “취향이라. 이해해 주시길.”

    “미안하지만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아서. 스카우트 제안은 거절하지.”

    “거절이라.”

    사마엘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샹들리에 빛으로 가득 찬 화려한 홀 내부와 대조되는 음울한 분위기가 새까만 가면을 낀 이들 사이에 감돌았다.

    실수했나? 마른침을 삼키는데, 가볍게 웃음소리를 흘린 사마엘이 장갑이 끼워진 기다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장난스럽게 툭툭 두드렸다.

    “이렇게 겁먹을 거면 왜 그런 말을 뱉어 내는 건지. 귀엽기는 한데.”

    징그러운 소리에 무심코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짜증이 담긴 내 시선을 받아 내던 사마엘이 턱을 놔주며 이어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을 테니까.”

    “……!”

    사마엘이 새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을 내 눈앞에 들어 올렸다. 엄지와 중지가 맞붙은 손 모양. 핑거스냅에 정신 지배가 끝나고 기절해 버린 에드워드의 모습이 생각남과 동시에, 권정한에게서 들었던 설명이 떠올랐다.

    ‘설마 그게 능력을 발동시키기 위한 조건?’

    구역질이 날 정도로 강한 거부감이 치솟았다. 급히 몸을 뒤틀며 붙잡힌 양 손목을 빼내려고 힘을 줬지만, 상대가 나보다 등급이 높은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후웅, 뿜어져 나온 바람의 세기도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

    “이런.”

    내가 반항하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던 사마엘이 한마디 하자, 가만히 서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억지로 입을 벌려 새까맣고 작은 구슬을 밀어 넣었다. 거침없이 들어와 목젖을 누르는 손가락에 구슬이 막을 새도 없이 목구멍 너머로 들어갔다.

    “쿨럭!”

    구슬을 삼켜 내자마자 기운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춰 버렸다. 셔터 아이템이었다. 헐떡이며 기침을 뱉어 내는 나를 바라보며 사마엘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예상보다 너무 구경할 맛이 나서 큰일이네. 원래는 아예 정신을 뭉개 놓으려고 했는데…. 좀 살살 해야겠어.”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최대한 눌러 삼키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사마엘을 노려봤다.

    “엿 처먹어, 빌어먹을 새끼야.”

    “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 사마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음에 정신이 들 때 뵙도록 하죠, 한이결 능력자.”

    딱, 중지와 엄지가 부딪히는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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