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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18)화 (118/394)

118화

  

“으, 깜짝이야. 뭡니까?”

응접실 문이 열리자마자 나타난 천사연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자, 천사연이 입가에 비웃음을 달았다.

“별걸 다 놀라는군.”

설마 이 인간이 문을 열어 줄 거라곤 예상도 못 한 터라 나도 모르게 놀란 건데, 그걸 또 이때다 싶어서 놀린다. 하여간 재수 없는 새끼. 오늘따라 유독 기분 좋아 보이는 천사연을 노려보며 대충 대꾸했다.

“놀랄 수도 있죠.”

“이런.”

짜증을 담아 천사연의 단단한 몸을 밀치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클로에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어서 와요, 한이결 능력자.”

“안녕하세요, 클로에 부마스터.”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을 하나로 단정하게 묶어 올린 클로에가 내 뒤로 보이는 민아린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쪽 분은?”

권정한은 이틀 전에 경호원으로 소개했었으니, 민아린 말고는 모두가 구면인 셈이었다. 나는 슬쩍 민아린의 옆에 서며 말했다.

“에드워드 제작자와 만났을 때 함께했던 제 친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클로에 부마스터. 저는 레퀴엠 소속 힐러, 민아린입니다.”

긴장한 게 무색할 만큼, 자연스러운 미소를 띤 민아린이 클로에와 인사를 나눴다. 자리에서 일어나 민아린과 가볍게 악수를 한 클로에가 흥미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아하, 에디가 말한 힐러가 당신이군요. 만나 보고 싶었어요. 반가워요, 민아린 힐러.”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로에의 얼굴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읽어 낸 민아린이 한결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둘이 인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나는 천사연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에드워드 제작자는요?”

“한국에는 도착했다더군. 공항으로 사람을 보냈으니, 곧 오겠지.”

곧바로 나온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클로에가 새 찻잔을 꺼내 민아린 앞에 놔 주었다.

“어제 잠깐 연락했는데, 에디가 정말 기대를 많이 하더군요. 소식을 항상 궁금해했던 모양이에요.”

“그렇습니까?”

“에디가 워낙에 잔정이 많은 아이라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는데, 유독 여러분이 기억에 많이 남았나 봐요.”

기억에 남는다라. 확실히 김우진의 재각성 문제가 특별하긴 했지. 나 같아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겠다.

“예전에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몰랐지만…. 저도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이해가 되네요.”

클로에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눈만 깜빡이는데, 응접실 문이 짧은 노크 소리 후 살짝 열렸다.

“마스터.”

“뭐지?”

천사연의 수행원 중 한 명이었다. 천사연과 우서혁에 번갈아 가며 시선을 맞춘 수행원이 목소리를 낮춰 보고했다.

“N11 구역 관리인에게서 급한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잠시 눈치를 살피던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아무런 기운이 감지되지도 않았는데, 게이트 입구가 저절로 열렸다고 합니다.”

천사연의 옆에서 설명을 듣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게이트 입구가 저절로 열렸다고? 이 경우, 만약 클리어한 지 오래된 게이트라면 몬스터가 터져 나올 확률이 높았다.

“그게 끝인가?”

“예. 일단 확인된 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천사연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다가 곧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는 천사연의 행동에 고개를 기울이는데, 우서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하시는 이유는 압니다만… 가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마스터. 클리어한 지 일주일도 안 된 게이트라도 S급이라 대비하셔야 합니다.”

고민하는 거였어? 고민할 이유가 뭐가 있지?

우서혁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천사연은 계속해서 나만 응시했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행동에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물었다.

“왜 쳐다보십니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고 있는 거다만.”

“당연히 가셔야죠. 가뜩이나 이상 현상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인데, 위험하잖아요.”

“흐음….”

그가 나지막이 숨을 내쉬며 입가를 매만졌다. 나는 혹시나 해서 덧붙여 말했다.

“저는 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거고, 확인하고 온다 해도 몇 시간밖에 안 걸리지 않습니까? 그냥 빨리 다녀오시죠?”

“하하.”

잠자코 말을 듣던 천사연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다녀오라고?”

“예.”

“내가 없으면 아쉬울 텐데.”

이 새끼가 왜 또 지랄이지. 짜게 식은 눈으로 노려보자 천사연이 알겠다는 듯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래. 한이결, 네가 가라면 가야지. 귀찮지만.”

“아, 진짜 왜 이러십니까.”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자 천사연이 큭큭거리고 웃으며 우서혁에게 명령했다.

“지금 바로 갈 테니 준비해. 응접실 앞에 경호 세워 놓고.”

“예.”

“클로에 부마스터.”

천사연의 부름에 클로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밖으로 안 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응접실 문이 열리며 박건호가 요란한 인사와 함께 들어섰다.

“Hello, guys!”

이틀 전의 멀끔한 정장 차림새는 온데간데없이, 평소처럼 티에 청바지 차림인 박건호가 들어오자마자 내게로 직행했다.

“보고 싶었어, 한이결 능력자.”

“이틀 전에 봤잖아요.”

무성의하게 대꾸하며 어깨에 둘러진 박건호의 무거운 팔을 밀쳐 냈다. 슬슬 이 어깨동무도 익숙해지네. 오늘은 떼어 내 주던 김우진도 없으니, 박건호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이틀 동안 보고 싶었다는 뜻인데?”

“…….”

오늘따라 유독 기분 좋아 보이는 박건호의 모습에 벌써 기가 쭉쭉 빠졌다.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신난 박건호와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를 천사연 사이에 서 있으려니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튼, 갔다 오지.”

“음? 마스터. 어디 가십니까?”

힘을 줘서 억지로 내 어깨를 감싸 안던 박건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이결 관리 잘하고 있도록, 박건호 팀장.”

박건호의 질문을 싹 무시한 천사연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서혁과 함께 응접실을 떠났다. 그보다 왜 내 관리를 박건호한테 맡기는 거지?

“뭐야. 무슨 일인데?”

“게이트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좀 놓으시죠.”

자꾸만 치근거리는 박건호의 가슴팍을 밀며 대신 설명했다. 클로에가 곁에 앉은 민아린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며 손짓했다.

“한이결 능력자 그만 괴롭히고 와서 앉지 그래요, 박건호 팀장.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를 말입니까?”

클로에의 말에 따라 맞은편 소파에 앉은 나와 박건호, 권정한 앞에도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찻잔이 차례로 놓였다. 손수 테이블에 찻잔을 놔 준 클로에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직 에디가 도착하기 전이니까, 잠시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눈꼬리를 접어 웃은 클로에가 박건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온 지… 1년쯤 지났죠?”

“그렇습니다.”

연한 다홍색 찻물이 찻잔을 채웠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하얀 김 사이로 부드러운 향이 퍼져 나갔다.

“혹시 그 1년간, 천사연 마스터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특별한 일이라…. 글쎄요.”

박건호가 영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얼떨결에 같이 듣게 된 나도 마찬가지였다. 천사연에게 특별한 일이라니, 무슨 뜻이지?

“제가 그간 워낙 바빠서 천사연 마스터와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했거든요. 박건호 팀장은 계속 곁에 있었으니, 뭔가 알지 않을까 해서.”

“흠.”

딱히 없다고 대답할 거라 예상했던 박건호는 의외로 입술을 쓸어 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말해 줄 수 있나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던 박건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졌더군요. 이전에도 예민하고 냉소적인 성격이긴 했는데, 좀 더 심해졌습니다. 근래에는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못 보기도 했고.”

거기까지 말하던 박건호의 검은 눈이 잠시간 옆에 앉은 나를 향했다.

“그래도 한이결 능력자와 있으면 조금은 편해 보이긴 하던데.”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갑자기 왜 또 나를 거론하는 건지 모르겠다. 천사연 얘기에 이런 식으로 끼어들고 싶지 않아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정색하는 나를 보며 킥킥거리던 박건호가 클로에를 돌아봤다.

“그런데 갑자기 마스터에 대한 건 왜 물으십니까?”

“그냥 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아서요.”

“뭐. 마스터도 이제 어린 나이는 아니니, 점잖아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이 사람, 저 사람 안 만나고 일만 하고 삽니다. 물론 게이트 이상 현상이 터져서 연애할 시기는 아니긴 한데.”

“그건 다행이네요. 웬만하면 연애 문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박건호 팀장도 아시다시피 천사연 마스터는 좀 심했으니까요.”

“이해합니다.”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클로에마저 저렇게 생각할 정도로 난잡하게 살아온 건가? 천사연 이 자식은 정말 여러 방면으로 대단하네.

“아무튼,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가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1년 만에 본 천사연 마스터의 기운이 조금 달라져서 걱정이 돼서요. 혹시나 해서 물었어요.”

“기운이 달라졌다라. 문제가 될 만한 정도입니까?”

“그건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상대가 천사연 마스터다 보니 염려스럽군요.”

기운이 달라졌다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 민아린을 발견한 클로에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제 능력에 대해서 잘 모르던가요?”

민아린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민아린은 클로에의 능력에 관심이 많아 보였지.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능력이니, 자세히 설명을 들어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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