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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16)화 (116/394)

116화

  

클로에를 만난 다음 날, 방으로 놀러 온 민아린이 초콜릿 머핀을 사 왔다며 내게 건네주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결 씨. 그 반지는 뭐예요?”

“아.”

나는 일단 초콜릿 머핀을 옆에 있는 김우진 분신에게 넘겨주며 민아린에게 손을 보여 줬다.

“어제 클로에 부마스터에게 받은 아이템입니다. 공항으로 마중 나간 대가로 주셨어요.”

“우와, 엄청 비싸 보여요.”

“S급 일회용 무효화 아이템입니다. 가운데 보석을 누르고 쓰면 된다고 하네요.”

내 손을 잡고 반지를 꼼꼼히 살펴보던 민아린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무효화 아이템이 있으니 걱정은 좀 덜겠어요. 일회용이라는 게 아쉽지만.”

“같은 생각입니다.”

“될 수만 있다면 이런 아이템을 더 구비해 둬도 나쁘지 않겠어요. S급 정도 되는 건 힘들겠지만, 그 아래 등급 무효화 아이템은 찾아보면 있을 텐데.”

그 말에 입가를 쓸며 고민했다. 확실히, 안전을 생각하면 무효화 아이템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꽤 좋아 보였다. 내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하지만 아이템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으음. 확실히 그렇네요.”

민아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깜빡였다. 때마침 주방에서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오던 권정한이 입을 열었다.

“내일 클로에 부마스터와 동생분이 길드로 찾아오지 않아요? 듣기로 동생분이 아이템 제작자라고 하던데. 그분께 물어보는 건 어때요?”

내 앞에 놓인 접시에는 사과와 딸기, 키위가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음. 딱 봐도 김우진 솜씨로군.

“동생분이라면… 그때 만났던 그 사람 맞죠?”

민아린이 힐끔 주방에 시선을 던지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맞습니다.”

“그럼 정한 씨 말처럼 물어봐도 괜찮겠네요. 내일 오시는 건가요?”

“네. 괜찮으시면 함께 가시겠습니까?”

호기심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고 있던 민아린이 내 말에 반색하며 웃었다.

“그래도 될까요? 사실 클로에 부마스터를 한 번쯤 뵙고 싶었거든요. 능력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요.”

“그럼요. 그쪽에서 먼저 민아린 씨를 보고 싶다고도 했으니, 별문제 없을 겁니다.”

기뻐하는 민아린에게 마주 웃어 주는데, 주방에 있던 김우진이 걸어 나왔다.

“한이결.”

“엉?”

“여기 핸드폰. 메시지 온 것 같은데.”

아까 아침 먹으면서 식탁에 놔두고 까맣게 잊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메시지라고? 고개를 기울이며 김우진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누구지?’

연락할 사람이 딱히 없는데. 의문을 가지며 핸드폰을 켜 본 나는 의외의 인물에게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하태헌: 한이결.」

「하태헌: 대답해.」

메시지의 주인은 하태헌이었다. 지금은 중국에서 한창 바쁠 때 아닌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단 답장부터 보냈다.

「한이결: 예?」

하태헌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줄이야. 성격상 전화가 더 편할 텐데. 해외라서 그런가? 일단 답장을 기다리며 김우진 분신에게 맡겼던 초콜릿 머핀을 다시 가져와 먹었다.

“그래서?”

“음?”

초콜릿 머핀을 맛있게 먹는데, 내 주변을 얼쩡거리던 김우진이 눈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메시지 누가 보낸 건데?”

별걸 다 궁금해하네. 딱히 회피할 질문도 아니라서 대답해 주려는데, 그보다 먼저 권정한이 끼어들었다.

“에이, 선배님. 너무 사적인 질문 아니에요? 누가 보면 한이결 능력자님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마치 놀리듯 생글생글 웃는 권정한의 모습에 김우진의 미간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또 싸워? 아주 쉴 틈이 없구만. 어째 김우진보다 권정한이 더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애인끼리도 그런 거 물어보면 싫어하던데. 그렇죠, 한이결 능력자님?”

“아니, 묻는 건 괜찮은데… 그보다 권정한 씨.”

“네?”

“요즘 이런 게 유행입니까?”

“이런 거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남자끼리 애인이라느니, 결혼한다느니…. 뭐 그런 농담들이요.”

“아아.”

한 번에 알아들은 권정한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아뇨, 전 딱히 농담은 아니었는데요. 요즘 세상에 동성연애가 욕먹을 일도 아니고. 어제 마스터가 한이결 능력자님께 했던 결혼 얘기는 좀 대단하긴 했지만요.”

“예예?”

맞은편에 앉아서 초콜릿 머핀을 맛있게 먹고 있던 민아린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마스터랑 결혼해요, 이결 씨?!”

“아뇨, 아닙니다.”

“하지만 방금….”

“농담이에요. 천사연 마스터가 한 농담입니다.”

농담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해 주자, 민아린이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놀라라. 결혼하신다는 줄 알았어요.”

“천사연 마스터랑 결혼이라니, 꿈에서도 겪고 싶지 않은데요. 아니, 일단 남자끼리는 결혼 못 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마스터는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할 것 같아서요.”

“…….”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도 천사연은 본인이 결혼하겠다 마음먹는 그 순간,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다 해결하고 기어코 결혼에 성공할 인물이긴 했다.

“크흠. 아무튼, 그 정도 질문은 친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잔뜩 시무룩해져 있던 김우진이 고개를 들며 눈을 반짝였다. 엉덩이에 꼬리라도 붙어 있었으면 맹렬하게 흔들었을 만큼 감정이 훤히 보였다.

“그런가요? 전 친구가 그런 거 물어보면 좀 징그러울 것 같은데. 물론 애인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고요.”

권정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 전부터 느꼈지만, 김우진과 성격이 진짜 극과 극이구나. 솔직히 말해서 20살인 권정한이 24살인 김우진보다 연애 경험도 훨씬 많아 보였다.

‘좋은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란 도련님 느낌이라고 할까.’

보고 있자면 골목길에서 뛰어다니는 길고양이가 떠오르는 김우진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둘이 자주 부딪히는 이유도 그래서인가.

권정한이 뭐라 하든 이미 기분이 풀린 김우진은 내 곁에 앉으며 테이블에 놓인 치즈 머핀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하태헌: 마지막으로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어라.」

눈을 깜빡이며 잠시간 멍하니 메시지를 보던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대체 뭐지?

‘아, 설마 내가 공항에 나간 일을 알게 됐나?’

하태헌은 사정을 모르고 있으니 내가 위협받는 와중에 조심성 없이 공항을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오타가 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답장을 작성했다.

「한이결: 별다른 일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이결: 최대한 안전하게 지냈습니다. 진짜입니다.」

「한이결: 어제 공항에 나간 건, 계약이 걸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한이결: 그래도 덕분에 S급 무효화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한이결: 아테나 길드의 클로에 부마스터가 주신 겁니다.」

열심히 핸드폰을 터치하던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입가를 매만졌다. 너무 내 할 말만 썼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한 줄 더 써서 보냈다.

「한이결: 하태헌 씨도 별일 없습니까?」

메시지가 제대로 간 것을 확인한 나는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지친 몸을 소파에 축 늘어뜨렸다.

다른 사람들은 긴 메시지도 순식간에 완성해서 보내던데. 당최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난 이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이결 씨, 메시지 답장이 아니라 상사에게 보낼 보고서 작성하는 직장인 같았어요.”

“…뭐. 비슷합니다.”

상사만큼 어려운 사람이긴 하지. 그나마 조금 친해지긴 했어도.

지친 심신을 좀 쉬게 하려는데,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답장이 바로 왔다. 우리 그냥 통화로 끝내면 안 될까요, 하태헌 씨.

「하태헌: 그렇군.」

나는 눈을 부릅떴다. 답장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짧았다. 이러면 저만치 길게 보낸 나는 뭐가 돼? 굉장히 억울했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그냥 무시하려는데, 메시지가 추가로 날아왔다.

「하태헌: 내일부터 게이트에 진입할 예정이다.」

「하태헌: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나올 거니까,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있어.」

「하태헌: 답장도 본 즉시 하도록.」

새로 온 메시지를 읽은 나는 못마땅한 감정을 사그라트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뭐야. 그냥 평범하게 걱정해 주고 있는 거였잖아.

「한이결: 그럼요. 아주 죽은 듯이 실내에 박혀 있겠습니다.」

「한이결: 저 믿으시죠, 하태헌 씨?」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집요하게 노려보는 날 관찰하던 민아린이 사과를 먹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친한 사람이랑 연락 주고받는 모습 같네요. 음, 좀 많이 친한 사람이요.”

“…뭐, 그것도 비슷합니다.”

너무 핸드폰만 들여다봤나. 머쓱해져서 헛기침을 하며 핸드폰을 슬쩍 치웠다.

“내일 이결 씨와 함께 움직이면 되는 건가요?”

“네. 천사연 마스터가 어제 사용했던 응접실을 한 번 더 비워 준다고 하니, 같이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기대되네요.”

민아린이 신난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클로에 부마스터가 한 인터뷰를 인상 깊게 봤거든요. 그 뒤로 쭉 만나 보고 싶었어요.”

“그렇습니까?”

“사실 클로에 부마스터보다 더 만나 보고 싶었던 사람은 홍시아 마스터인데, 강남 사건 때 이미 만나 뵀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점이 있던 나는 민아린에게 물었다.

“홍시아 마스터뿐만 아니라 차수연 씨와도 연락하시는 것 같던데요.”

“엇,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 전에는 둘이 만나서 파스타도 먹었어요.”

“…….”

나름 안면은 튼 줄 알았지만 저렇게까지 친해졌을 줄이야…. 심지어 차수연은 날 버리고 민아린과 파스타를 먹으러 갔군.

‘뭐, 내가 지금 파스타나 먹으러 다닐 상황이 아니긴 하지.’

민아린의 친화력이 내 예상보다 더 대단했다. 까칠하기로는 김우진 버금가는 차수연과 단둘이 식사할 정도로 단기간에 사이가 좋아지다니.

이러다 클로에와도 하루 만에 친해지는 거 아냐? 클로에가 만만치 않기는 했지만, 민아린도 쉽게 겁먹는 성격은 아니니까.

눈 돌리면 금방 새 친구를 만들어 오는 민아린을 바라보다, 김우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친화력의 반의반만큼이라도 김우진에게 있었으면 지금보다 친구가 훨씬 많았을 텐데.

생긴 것만 멀쩡하면 뭐 해. 권정한의 말마따나 여자가 됐든 남자가 됐든 상관없으니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 24살이면 한창 즐길 나이 아닌가.

‘내가 나중에 누구 소개라도 시켜 줘야겠다.’

굳게 다짐하며 김우진에게 따스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민아린과 권정한이 어째서인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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