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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106)화 (106/394)

106화

  

“다녀올 테니까 싸우지 말고 있어. 금방 올게.”

“나도 같이 가.”

“아니, 됐어. 방에서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한이결은 우서혁을 따라 미련 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김우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한이결의 등을 바라보다,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을 싹 굳혔다.

“가셨네요.”

뒤에서 한이결과 김우진, 분신을 구경하고 있던 권정한이 꽤 친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우진 선배님은 한이결 능력자님과 엄청 친해 보이네요. 한이결 능력자님도 다른 사람에 비해 선배님을 유독 편하게 여기시는 것 같고.”

“…….”

김우진은 자신을 보며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리는 권정한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그대로 지나쳐 걸어갔다. 그러자 권정한이 그런 김우진의 뒤를 졸졸 쫓아왔다. 모양새가 아까 한이결을 따라가던 김우진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저기요, 김우진 선배님.”

“하….”

식탁에 놓인 접시를 치우려던 김우진이 짜증스러운 숨을 내쉬며 머리를 뒤로 살짝 젖혔다. 제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권정한의 태도가 굉장히 거슬렸다.

“야, 꺼져.”

싸우지 말라던 한이결의 말을 떠올리고 험한 생각을 저편으로 밀어낸 김우진이 권정한을 보지도 않으며 한마디 뱉어 냈다. 주인보다 더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분신은 권정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제가 불편하세요?”

불편을 넘어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권정한은 뻔뻔하게 웃으며 물었다. 매끈한 안경알 너머로 살살 접히는 눈웃음을 일그러진 얼굴로 잠시간 바라보던 김우진이 혀를 차며 빈 접시 두 개를 포갰다.

“저는 선배님 마음에 드는데요. 보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아… 골 때리는 새끼네, 이거.”

챙그랑!

들었던 접시를 거칠게 다시 내려놓은 김우진이 권정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꺼지든가, 입 닥치고 조용히 있든가 하지? 사람 신경 건드리지 말고.”

“꺼지는 건 한이결 능력자님 경호를 해야 하니까 안 되고, 입 닥치는 건 싫어서요. 그보다 선배님.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권정한이 김우진과 대비되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분신한테 능력 써 봐도 되나요? 제가 분신술사는 처음이라서요. 분신한테도 감정 제어가 적용되는지 알고 싶은데.”

“이런 시발….”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친 불쾌감에 김우진이 욕설을 내뱉으며 권정한에게 한 발 성큼 다가섰다. 그때였다.

우우웅-

식탁에 올려 뒀던 김우진의 핸드폰이 바르르 떨며 진동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던 분위기의 맥이 끊겼다.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이성을 되찾은 김우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차라리 잘됐다. 김우진은 저딴 새끼한테 휘둘려서 한이결의 부탁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든 김우진이 권정한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헬로.]

상대방은 얼마 전에도 연락했던 하이드였다. 한이결이 부탁했던 일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고, 하이드는 며칠은 걸릴 거라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는지, 들려오는 하이드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밝지 않았다.

“뭐야.”

[흠, 네가 알아봐 달라고 했던 내용 말이야.]

김우진의 예상대로 하이드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무슨 문제인데?”

[일단… 알아봐 달라고 한 게 두 가지잖아. 사마엘과 인형술사. 그리고 강승건. 맞지?]

“그래.”

[사마엘과 인형술사 같은 경우는 네가 정보를 더 가져다줘야 할 것 같다. 최소한 인형술사의 이름 정도는 알려 줘야 사마엘과 관계를 엮어서 찾아볼 수 있어.]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다. 이런 이유라면 한이결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찌 됐든 길드에서 붙여 준 경호도 있으니까. 인형술사와 사마엘에 대한 건 좀 시간을 둬야겠어.’

김우진은 통화하는 저를 대신해서 접시를 치우고 있는 권정한을 흘끔 보며 대답했다.

“알았어. 그리고?”

[그럼 남은 건 강승건인데….]

“강승건은 뒤져 볼 만하잖아.”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하이드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한이결과 한이결 동생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저번에 설명했었는데, 기억하냐? 그때와 상황이 비슷해.]

“…강승건의 정보를, 누군가가 지웠다는 거야?”

[정확한 건 지우려는 작업을 하고 있지.]

“지우려는 작업?”

타닥, 탁.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정보를 한 번에 깔끔하게 삭제하기 위한 밑 작업이 따로 있어. 모든 정보가 모일 때까지 발견해 둔 정보를 타인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잠가 두는 건데, 실력자들만 하는 방법이야.]

“실력자라면…….”

김우진이 하이드의 말뜻을 눈치 빠르게 알아챘다.

“설마.”

[그래. 아무래도 한이결의 정보를 지운 능력자가 또 움직이는 모양인데.]

“대체 왜? 그 둘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심드렁한 대답에 김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없는 거냐?”

[흠. 없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지.]

“얼마나?”

[최소 2주는 줘. 잠가 둔 정보를 뚫고 빼내야 하니까. 이거 쉬운 일 아니다.]

2주라.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지만, 아예 못 얻는 거보다야 나았다.

“알겠으니까 잘 좀 해 봐. 큰소리는 쳐 놓고 게이트 자료 말고 성공한 게 없잖아.”

짜증이 담긴 말에 하이드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어 냈다.

[아니, 뭐 이딴 개떡 같은 것들만 알아봐 달라고 한 게 누군데? 나니까 잠금 풀려고 시도라도 하는 거지, 다른 놈들이었으면 진작 포기하고 나가떨어졌을 거라고.]

“알겠으니까 2주 뒤는 꼭….”

콰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이결이 돌아올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닫아 두지 않았던 문이었다. 급히 현관으로 가 보자, 한이결이 처음 보는 상자를 든 채로 서 있었다.

[여보세요? 뭐야?]

“일단 끊어.”

가차 없이 통화를 끊어 낸 김우진이 한이결에게로 다가갔다. 어느새 주방에서 나온 권정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우진의 뒤를 쫓아왔다.

“한이결? 무슨 일이야? 그 상자는 뭐고?”

“아, 이거?”

김우진의 질문에 한이결이 싱긋 웃었다. 어딘가 분노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신경 쓰지 마. 그냥 쓰레기야.”

“쓰레기?”

한이결이 바닥에 냅다 상자를 집어 던졌다. 달그락! 단단한 무언가가 상자 안에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김우진, 권정한 씨.”

“어?”

“예?”

어리둥절한 표정의 김우진과 권정한을 보며 한이결이 사납게 웃었다.

“우리 쇼핑 좀 하러 갑시다.”

***

레퀴엠 길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아이템 백화점, 로덴 센터. 택시를 타고 그 앞에 내려선 나와 김우진, 권정한은 화려하고 높게 세워진 로덴 센터 건물을 바라봤다.

“한이결 능력자님.”

“네.”

“갑자기 쇼핑하려는 이유가 혹시 있나요?”

“돈을 막 쓰고 싶어서요.”

우서혁에게 받은 딸기 맛 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간단히 대답하자 권정한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김우진은 불안한 얼굴을 했다.

“들어갑시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쯤 와 보고 싶었다. 로비 중앙에 배치된 팸플릿을 펼쳐 든 나는 몇 층부터 가야 할지 찬찬히 훑어봤다. 3층에 일반 의류 매장도 있네. 김우진이랑 권정한한테 옷이나 몇 벌 사 줄까.

“한이결. 괜찮은 거 맞아?”

“엉? 뭐가?”

“대표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라… 있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설명해 주기엔 좀. 게다가 권정한도 옆에 있으니, 일단 모른 체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일은 무슨 일? 내가 천사연 마스터와 일이 있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닌데.”

일부러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는데, 김우진의 눈빛이 아까보다 더욱 불안하게 흔들렸다. 대체 왜냐.

“일단 나온 김에 옷 좀 사자.”

천사연이 옷을 매번 준비해 줘서 부족하진 않았지만, 취향에 맞는 옷을 쇼핑하는 건 또 다른 거니 기분 전환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무조건 비싼 거로, 많이 사야 해. 알겠지?”

“한이결….”

그렇게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김우진과 뭐든 재밌으니 좋다는 권정한을 양쪽에 끼고 의류 매장으로 향했다.

“골라, 골라.”

꽤 가격이 나가는 브랜드 매장에 김우진과 권정한의 등을 떠밀었다.

“와, 사 주시는 거예요?”

“난 괜찮아.”

밝은 목소리로 즐거워하는 권정한과 달리, 김우진은 냅다 고개부터 저었다. 거참, 사 줄 때 받으라니까.

나는 거절하는 김우진을 억지로 붙잡고 권정한과 신나게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왕 사는 거 내 취향에 맞는 옷도 몇 벌 골랐다.

“이렇게 결제해 드릴까요?”

우리가 한가득 옷을 쌓자 직원이 두 번 볼 수 없을 만큼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지갑에서 꺼냈다. 내가 손에 든 것을 본 김우진이 경악했다.

“하, 한이결. 그거…!”

“그래.”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블랙 카드. 이전에 천사연에게 받았다가 미처 돌려주지 못하고 지갑에 넣어 두고 있던 물건이었다.

“오늘 사는 건 모두 이 카드로 결제할 거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함부로 썼다가…….”

“괜찮아. 본인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망설임 없이 결제를 끝낸 나는 다음으로 프리미엄 아이템 매장으로 향했다. 비싼 옷 좀 산다고 천사연에게 타격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아이템 디스플레이에 적혀 있는 가격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이 정도 가격은 돼야지.”

쇼핑백을 줄줄이 든 우리가 디스플레이를 바라보자 직원이 슬쩍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찾으시는 아이템 있으십니까?”

“음, 잠시만요.”

뭐부터 사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김우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김우진, 너 그때 보니까 총을 쓰던데. 길드에서 받은 거야?”

“응. 마스터가 따로 챙겨 주신 아이템 총이야. A급이라서 쓸 만해.”

뭐야. 천사연이 그런 것도 챙겨 줬다고? 그럼 무기는 넘어가고.

“그거 관리 어떻게 하는데?”

“길드에서 기본적으로 B급 최소화 아이템을 지원해 줘. 그럼 갖고 다니기 좀 편해. 이렇게.”

김우진의 지퍼가 달린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손 반절만 한 크기의 총 한 자루가 나왔다. 겉에 붙어 있는 붉은색 스티커가 최소화 아이템인가 보군.

확실히 작은 크기긴 했지만, 무슨 핸드폰도 아니고 무기 아이템을 저렇게 들고 다니는 건 좀 아쉬웠다. 차수연처럼 인벤토리 아이템이라도 얻어 주고 싶은데.

“지금은 경매에 올라온 인벤토리 아이템도 없을 텐데….”

그때, 옆에서 대기 중이던 직원이 내게 말했다.

“고객님. 그럼 아트 인벤토리 아이템은 어떠세요?”

아트 인벤토리? 그게 뭐지?

내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바로 옆 디스플레이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런 식으로 최소화 아이템처럼 스티커로 된 아이템인데, 1개 아이템을 인벤토리처럼 넣어 둘 수 있습니다.”

“오. 사용 방법이 어떻게 됩니까?”

“아트 인벤토리를 원하시는 신체 부위에 붙이시고, 이미지를 두드려서 아이템을 넣고 빼시면 됩니다.”

나쁘지 않은데? 심지어 디자인도 다양했다. 크기는 500원 동전만 하니, 붙이는 데 제한도 딱히 없어 보이고.

“대부분은 손바닥에 붙여서 사용합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쉽게 꺼낼 수 있으니까요.”

“유지는 어느 정도 됩니까?”

“가격마다 달라서, 원하시는 기간으로 고르시면 됩니다. 여기 첫 줄이 1주, 마지막 줄이 7주입니다.”

오래 지속할수록 비싸다는 거군. 아트 인벤토리 아이템이 마음에 쏙 든 나는 진지하게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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