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김우진. 게이트 정보 얻어다 주던 사람이랑 아직 연락 돼?”
“연락 되긴 하는데…. 왜?”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 말에 김우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일단 사마엘이랑, 인형술사에 대해서.”
말뜻을 알아챈 김우진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형술사는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려고 했어. 근데 사마엘은 누구야?”
“인형술사가 몇 번이고 말한 이름이야. 내 추측으로는 강승건에게 정신 지배를 건 능력자 이름이 사마엘인 것 같아. 인형술사랑 한패고.”
“음, 알겠어. 같이 알아볼게.”
“그리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강승건에 대해서도 알아봐 줘.”
“강승건?”
김우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나운 목소리로 냈다. 처음 보는 김우진의 날카로운 모습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자, 녀석이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나 그 사람 싫어.”
“…….”
어, 그래 보인다.
“알고 싶은 게 있어.”
하태헌과 함께 강승건을 상대할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기, 기억났어. 시발. 기억났다고.
광기에 찬 목소리. 핏줄이 올라와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 선명하게 느껴지던 악의.
-너지? 너 맞지? 시발, 그때. 그 냄새나는 판자촌!
냄새나는 판자촌. 천사연을 만나기 전, 힘들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이결의 삶.
대충 짐작 가는 게 있었지만… 확실하게 알아 두는 편이 낫겠지.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김우진.”
“어?”
나는 잠시간 김우진을 바라봤다. 정보가 김우진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분명 강승건에 대한 것도 김우진이 볼 텐데.
그걸 보고 김우진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앞으로도 내 곁에 있겠다고 했지?”
김우진의 고동색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더니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응.”
“그 말 지킬 자신 있어?”
“당연하지.”
고민은 좀 해 보고 대답해라….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김우진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됐어.”
“…….”
김우진이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얘가 오늘따라 정신을 못 차리네.
“언제쯤 구해 줄 수 있어?”
“어, 어?”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김우진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 최대한 빨리… 달라고 해 볼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며칠쯤…….”
“좋네.”
“나, 나는 세수 좀….”
황급히 내게서 몸을 돌린 김우진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쯧쯧,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야. 혀를 차며 핸드폰 전원을 켰다.
우우웅!
“뭐야?”
켜지자마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갖가지 알람이 화면에 떠올랐다.
문자랑 부재중 전화, 메신저까지. 뭐가 이렇게 많이 왔지? 나는 일단 메신저부터 열어 봤다.
「김수환: 이결 씨! 뉴스 봤어요ㅠㅠ~ 괜찮으세요?」
「김수환: 아프지 마세요ㅠㅠ」
「김수환: (이모티콘)」
고양이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서럽게 우는 그림을 본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
「한이결: 안녕하세요 김수환씨 저괜찬습니다」
맞춤법을 맞춰 쓰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곧바로 다음 메신저를 확인했다.
「차수연: 괜찮은 거 맞아?」
「차수연: 일어나면 답 보내!」
「차수연: 우리 같이 피자 먹으러 가기로 한 거, 까먹은 건 아니지?」
「차수연: 꼭! 꼭 보내! 알겠어?」
글을 읽는데 어쩐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차수연은 현장도 그렇고, 기절했을 때 레퀴엠 병실까지 왔었다고 했지. 약속도 못 지켰는데 걱정만 끼친 것 같아서 미안했다.
「한이결: 저 일어났습니다.」
「한이결: 그럼요. 누구 약속인데.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은 홍시아였다.
「홍시아: 안녕, 한이결 능력자. 수연이한테 번호 얻어서 메시지 보내. 괜찮지?」
「홍시아: 한이결 능력자 덕분에 피해가 크게 줄어서 다행이긴 한데….」
「홍시아: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니, 좀 걱정돼서. 일어나면 연락해!」
잠시 고민하던 나는 무난한 답장을 보냈다.
「한이결: 안녕하세요, 홍시아 마스터. 저는 괜찮습니다.」
홍시아는 내가 제이나 소속 구역에서 납치를 당했으니 현장에도 와 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락도 따로 보내올 줄이야. 보기보다 정이 많은 성격인가?
그 외에 쌓인 것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메신저였다. 번호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수십 개의 메신저 목록을 쭉 내리던 나는 피곤함이 몰려와 그냥 꺼 버렸다. 죄다 어디에 기자라느니, 방송국 PD라느니 쓸데없는 내용뿐이었다. 아무래도 번호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문자와 부재중 통화 목록도 알 수 없는 번호가 대부분인 게, 메신저와 상황이 비슷했다. 지루한 표정으로 문자 목록을 내리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번호를 발견했다.
「깨어나면 전화해.」
하태헌이었다. 이쪽 핸드폰으로 전화해도 되나?
‘하긴. 이제 천사연의 시선을 피해서 몰래 연락할 필요는 없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들려오는 핸드폰을 귓가에 갖다 대는데, 화장실을 갔던 김우진이 돌아왔다.
“한이결.”
“잠시만.”
내게 말을 걸려던 김우진에게 손을 들어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자 그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어딘가 ‘기다려!’를 들은 강아지 같았다.
꽤 길게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에 포기하고 끊으려던 찰나, 통화가 겨우 연결됐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 예상대로였다.
[한이결.]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태헌 씨.”
[지금 깨어난 건가?]
“아뇨, 깨어난 건 어제입니다. 핸드폰을 잊고 있었어요.”
[몸은?]
“괜찮습니다.”
[정확히 말해.]
“예?”
뭘 정확히? 어리둥절해져서 되묻자, 하태헌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라고. 몸 상태에 대해서.]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엇… 그냥, 건강합니다? 힐러한테 치료도 받아서 상처도 없고요. 기운도 멀쩡합니다. 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는데도 하태헌은 오히려 만족스러웠는지, 별말 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더군.]
“천사연 마스터가 좀 막아 준 것 같긴 한데, 일단 핸드폰 번호는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보는 눈이 워낙 많기는 했다. 사태가 심각해서 언론이 집중할 거라 짐작했지만, 나한테도 이 정도로 시선이 모일 줄이야.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조용하던 하태헌이 곧 입을 열었다.
[한이결.]
“네?”
[거기 있기 불편하면, 이쪽으로 와도 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천사연 마스터가 어디까지 케어해 줄지 모르겠군. 강승건 마스터를 이용해서 널 납치하려고 했던 범인도 아직 잡히지 않은 거로 아는데.]
“음, 그건 그렇긴 한데요.”
[로헌으로 와. 마스터도 동의한 사항이니 눈치 볼 필요 없다.]
“…….”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은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매만졌다.
“갑자기 로헌으로 오라고 하셔도… 제가 사정이 좀.”
[사정?]
“그…….”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문득 다른 생각을 했다.
‘잠깐. 왜 거절해야 하는데?’
이제 나와 천사연의 상황은 이전과 같지 않다. 당장 내일이라도 레퀴엠에서 내쫓길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알아챈 하태헌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그렇긴 하죠.”
[핸드폰 번호를 포함해서 집 주소도 유출됐을 거다.]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집은 원래 없으니까. 차마 뒷말은 하지 못한 채로 말을 돌렸다.
“아무튼, 지금 바로 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고민해 볼게요.”
[…알겠다.]
“그래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태헌 씨.”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에 하태헌이 마뜩잖다는 투로 대답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지. 마음을 정하면 전화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걸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하태헌이 내게 이 정도로 마음을 쓰다니. 흐뭇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내리는데, 잔뜩 시무룩해진 김우진이 눈에 들어왔다. 얘는 또 갑자기 왜 이래?
“김우진?”
“갈 거야?”
주어가 뚝 잘린 말이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쓰게 미소 지으며 담담히 대꾸했다.
“글쎄.”
“…안 가면 안 돼?”
“내 마음대로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 천사연 마스터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애초에 나는 레퀴엠 소속도 아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천사연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천사연과 관계가 불확실해진 지금, 하태헌이 내민 손을 붙잡는 게 좋아 보이긴 했다.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데,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던 김우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갈래.”
“어딜?”
“로헌…….”
김우진 정도의 분신술사라면 로헌에서도 두 팔 벌려 환영하긴 하겠지만, 굳이 나 때문에 길드를 옮길 필요가 있나? 그래도 국내 1위 길드는 레퀴엠인데.
“뭐, 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재계약만 안 했으면 옮기는 것도 별문제 없을 거고.”
“재, 재계약?”
김우진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한층 더 우울해졌다. 입술을 깨무는 김우진을 바라보는데, 테이블에 내려놨던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뭐야?”
김수환으로부터 온 답장이었다.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메신저와 함께, 웬 링크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김수환: 이건 제가 찾아낸 이결 씨 팬카페예요!」
「김수환: 혹시 모르실 것 같아서 보내 봐요^0^*」
팬카페? 한이결 팬카페라고?
설마 싶은 마음으로 링크를 눌러 보니, 대문짝만하게 실린 내 사진과 그 중앙에 박혀 있는 카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능력자 한이결 팬카페-한이결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
이게 무슨….
넋이 나간 채로 말을 잇지 못하는 내 모습에 김우진도 옆에 바싹 붙어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능력자 한이결 팬카… 팬카페?”
“허….”
어이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능력자들이 일반인보다 인기가 많은 거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팬카페라니. 내가 하태헌이나 천사연도 아니고.
아무래도 영상 파급력이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모양이다. 난감함에 한숨을 내쉬는데, 김우진이 황급히 본인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뭐 해?”
그 모습이 어째 불안해서 물어봤다.
“나도 팬카페 가입하려고.”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