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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99)화 (99/394)

99화 

다음 날 아침, 면회 금지가 풀리자마자 김우진과 민아린이 병실을 찾아왔다. 천사연의 수행원이 가져다준 고급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나는 입에 소시지를 넣은 채로 둘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이결 씨… 하아.”

“하…….”

한가롭게 손을 설렁설렁 흔드는 날 마주한 민아린과 김우진이 연달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부터 왜들 저런대. 멀뚱히 바라보자 민아린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이결 씨. 지금 밥이 넘어가요?”

“아… 죄송합니다. 치울게요.”

하긴. 손님을 불러 놓고 밥을 먹는 건 좀 예의가 없긴 했다. 급히 치우려는데, 화들짝 놀란 민아린이 팔을 붙잡았다.

“아뇨, 장난이에요. 드세요.”

“하지만…….”

“저랑 우진 씨는 같이 먹고 왔어요. 그러니까 드세요.”

“그래요?”

둘이 그렇게 친했단 말이야? 얼떨떨한 심정으로 김우진을 돌아보자 녀석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뭐… 나는 다시 도시락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드세요. 어차피 할 얘기도 있으니까요.”

내 옆으로 다가온 김우진이 젓가락을 들고 맨밥만 올려진 숟가락에 나물 반찬을 올려 줬다. 뭐야, 팔이 다친 것도 아니고 이럴 필요 없는데.

“됐어. 앉기나 해, 김우진.”

“너 다 먹으면.”

부담스러워서 살짝 밀어내는데도 녀석은 꿋꿋했다. 그 와중에 손에 느껴지는 김우진의 몸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나는 새삼 대견한 마음으로 김우진을 바라봤다. 능력 연습뿐만 아니라 몸도 단련했구나. 그러고 보니 강승건을 상대할 때도 여러모로 능숙한 모습을 보여 줬었지.

“뭐,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냐.”

내 시선을 눈치챈 김우진이 귀를 발갛게 물들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 좋은데 아직도 저렇게 낯을 가려서야.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낸 민아린이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뭐부터 말해 줘야 할지…. 일단 힐러의 본분에 맞게 이결 씨 몸 상태부터 얘기해도 될까요?”

“예?”

어째 목소리에서 싸늘함이 느껴져 몸이 움찔 떨렸다. 어깨를 움츠린 나를 보며 싱긋 웃은 민아린이 빈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이결 씨. 기운을 함부로 쓰면 몸에 굉장히 좋지 않다는 거, 이미 알고 계시죠?”

“음….”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피했다.

로헌 길드 입원실에서 만난 S급 힐러, 도하석의 설명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목숨이 위험할 때까지 피를 뽑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었지.

“백번 양보해서 내상이나 외상은 의사와 힐러가 치료해 준다 해도, 기운을 함부로 사용한 충격은 누적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요. 앞으로는 정말로 조심하셔야 해요.”

거기까지 말한 민아린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이결 씨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많아요. 다들 이결 씨에게 감사하고 있고…….”

“민아린 씨.”

“하지만 전 이결 씨 친구잖아요. 저랑 우진 씨만큼은, 이결 씨를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아린에게서 진심과 함께, 혹여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도 느껴졌다. 나는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웃음을 참지 않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민아린 씨. 정말로요.”

“이결 씨.”

내 감사 인사에 얼굴을 든 민아린이 안도하며 따라 웃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 곁에 있어 주는 민아린과 김우진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들이 보여 준 호의에 답을 주고 싶었다.

“좋아요. 그럼 기운에 대한 건 여기까지 하고… 강승건 마스터에 대해 좀 알려 드릴까요?”

“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습니다. 어제 뉴스를 좀 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요.”

도시락에 음식이 남았지만 입맛이 싹 가셨다.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묻자, 민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관리 본부 지하에 정신계 연구소가 있어요. 강승건 마스터는 현재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정신 지배 능력에 당한 것은 확실하다는 거군요.”

“네. 치료는 셔터 아이템을 착용한 상태로 진행 중이라 하는데…. 아마 셔터 아이템이 없더라도 능력은 제대로 쓰지 못할 거예요. 과도한 기운 사용으로 몸이 많이 망가졌을 테니까. 앞으로도 이전처럼 능력은 쓰지 못하겠죠.”

나는 피를 토해 내며 능력을 억지로 사용하던 강승건의 모습을 떠올렸다.

“인형을 조종하던 인형술사나, 강승건 마스터에게 정신 지배를 건 능력자의 행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결 씨, 당분간은 조심하세요. 불안하네요.”

“그러겠습니다. 민아린 씨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세요. 김우진, 너도.”

민아린의 말에 동감했다. 인형술사도 위험했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상대는 강승건에게 정신 지배를 건 능력자였다. 어떤 조건으로 능력을 발동하는지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이라, 몸을 사리는 편이 옳았다.

내 당부에 잠자코 서서 나와 민아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우진이 입을 삐죽이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됐으니까 너나 조심해. 연락도 꼬박꼬박 확인하고….”

“내가 애냐?”

연락이라는 말에 핸드폰이 떠올랐다. 어디 있지, 내 핸드폰.

“이결 씨, 왜 그러세요?”

“뭐 찾아?”

“내 핸드폰…….”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의아해하는 민아린과 김우진에게 물었다.

“혹시 제 핸드폰 못 보셨어요?”

“여기. 내가 챙겨 놨어.”

김우진이 걸치고 있던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오, 고마워라.

“잃어버린 줄 알았네.”

“핸드폰 좀 챙기고 다녀. 틈틈이 연락 온 거 확인도 하고. 제발.”

끝에 붙은 제발이라는 단어가 꽤 진지했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는데, 워낙 정신없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잘 안 되네.

“참, 이결 씨.”

꺼져 있는 핸드폰을 매만지는데, 민아린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절한 동안 많은 분이 들렀다 가셨어요. 그분들께 안부 연락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분이 왔다고요?”

날 찾아올 사람이 있나? 천사연은… 어제 만났는데.

“누구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미묘한 눈빛을 한 민아린이 질문의 답을 줬다.

“일단 로헌 길드의 마스터와 부마스터가 제일 먼저 왔다 가셨고, 제이나 길드의 마스터와 함께 차수연 씨도 들리셨어요. 우서혁 비서님도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오셨었고….”

“잠깐, 잠깐만요.”

로헌 길드의 마스터와 부마스터면… 이주하랑 하태헌이 왔다고? 게다가 홍시아랑 차수연도? 우서혁은 왜?

“정말 그분들이 다 왔다 가셨습니까? 여기, 레퀴엠 병실로?”

“네. 저도 놀랐어요.”

“으음.”

생각해 보니 하태헌은 현장에도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기절한 사이에도 들렀었다고 하니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분들 외에도, 이결 씨를 보려고 언론 기자들이나 관리 본부 관계자도 끊임없이 찾아왔어요. 관리 본부 관계자들이야 길드 선에서 쳐 냈지만, 기자들은 정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려고 해서.”

“그랬습니까?”

“네. 이결 씨가 사람들을 구해 낸 모습이 영상으로 찍혔으니까요. 온라인에서도 난리예요. 오죽하면 마스터가 경호 인력을 늘리고 면회 금지를 걸어 놓았겠어요. 그나마 그렇게 하니까 좀 잠잠해지더라고요.”

민아린이 피곤한 낯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뜻밖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천사연이….

‘민아린과 김우진을 못 보게 하려고 금지한 줄 알았는데 그런 이유였나.’

솔직히 경호 인력을 배치해 둔 것도 감금 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부분은 도와주면서, 막상 대하는 태도는 냉정하기 짝이 없는 천사연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던 어제의 천사연을 떠올렸다.

-정말, 실망스럽군.

어쩌면…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내게 실망했다고 했으니, 흥미나 관심도 죄 떨어져 나갔겠지. 협력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한이결?”

내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자 이상하게 생각한 김우진이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냐, 아무것도.”

천사연의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쓰게 웃었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더 쉬시고, 내일 방으로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외출도 당분간은 하지 마. 어디 갈 때는 나랑 같이 가고.”

근심 어린 민아린의 말에 김우진도 한마디 보탰다. 나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며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할 필요 있어.”

“필요 있어요!”

깜짝아. 둘이 맞춘 듯이 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몸이 절로 움찔 떨렸다. 민아린이 보기 드물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부터 느낀 건데, 이결 씨는 위기감이 너무 없어요. 그러니까 자꾸 다치고, 납치도 당하는 거잖아요!”

“예? 아니, 그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어디 가면 우진 씨 꼭꼭 데리고 다녀요. 아시겠죠?”

“…….”

“이결 씨.”

“음, 네. 알겠습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느릿하게 대답하자, 잠시 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민아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요.”

“너무하세요.”

“두고 볼 거예요!”

민아린은 진지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시계를 본 민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저는 일정이 있어서 다녀올게요. 이결 씨, 우진 씨. 이따 봐요.”

“다녀오세요.”

민아린이 병실을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도시락을 치워 주고 있는 김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우진. 너 몸은?”

“나?”

“그래. 그때 분신이… 크게 다쳤잖아.”

분신이라 해도 죽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물음에 눈을 깜빡인 김우진이 볼을 살짝 붉혔다.

“으응, 괜찮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위험하잖아.”

“싫어.”

김우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한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동안 노력했어. 연습할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깔끔했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

“김우진.”

“말했잖아. 네가 뭘 하든 곁에 있겠다고. 네가 아니었으면 A급이 되지도 못했어.”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김우진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 왔다. 긴장한 것처럼 잔뜩 굳은 손이 살짝 떨렸다.

“앞으로도 네 곁에 있으면서 돕고 싶어. 그러면 안 돼?”

안 되냐고? 갑갑함에 숨을 내쉬며 김우진의 뻣뻣한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안 될 게 뭐가 있냐. 너 다칠까 봐 하는 소리지.”

이런 말에 면역이 없는 김우진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절부절못하던 김우진은 슬쩍 잡힌 손을 빼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럼, 그렇게 할래. 할 거야.”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는 거지. 나도 좀 더 조심할 테니까.”

“으응.”

좋아.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렇지 않아도 김우진에게 부탁할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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