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77)화 (77/394)

77화

20. 아슬아슬 

상황을 정리한 우리는 안개를 헤치고 몬스터에게로 다가갔다. 몬스터는 우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정면만 바라보며 허공에 떠 있었다.

“엄청나게 크네요.”

“저 정도 크기는 몇 없긴 해.”

고개를 꺾어 몬스터를 올려다봤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온 몬스터 중에서 가장 거대했다. 이렇게 보니 키가 아파트 10층 정도는 훌쩍 넘어 보였다.

흐으으으… 흐으… 히이익…….

목이 눌린 것처럼 힘겹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기괴한 숨소리와 S+급의 기운이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몬스터의 관심을 한 명이 끌어 줘야겠는데…. 누가 할래?”

“제가 하겠습니다.”

홍시아의 말에 하태헌이 나섰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시선을 옮겨 왔다.

“좋아. 그럼 한이결 능력자. 영상 보니까 바람 능력으로 이래저래 활용을 좀 하던데. 지금도 가능해?”

“네. 근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두 명부터는 제가 세세하게 조절해 드릴 수가 없어요.”

“오케이. 걱정 말라고.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을 테니까.”

전투를 앞둔 홍시아는 기분이 굉장히 좋은지 화사하게 웃었다.

“나 S+급 상대 이번에 처음 해 봐. 하태헌 부마스터, 적당히 상대하다가 나한테 넘겨줄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 좀 해 보게.”

하태헌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적당히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둘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후웅, 새하얀 연기가 바람에 흐트러졌다. 공중으로 떠오른 하태헌이 검을 쥔 채로 먼저 날아갔다.

하태헌이 시야 안으로 들어오자 몬스터가 그제야 움직임을 보였다. 스으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목을 기긱 움직인다.

새하얀 빛을 뿜어내던 거울 뒤로 무언가가 생겨났다. 가시처럼 길고 뾰족한 그것은 순식간에 수십 개로 늘어났다.

“조심하세요!”

내가 급히 바람의 흐름을 비틀어 낸 것과 동시에, 하태헌이 능력을 사용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실드를 만들어 냈다.

키이잉!

귀를 찢듯이 지나가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수십 개의 빛의 창이 하태헌과 홍시아를 향해 날아왔다. 쿠우웅, 바람에 흔들거리며 속도가 늦춰진 몬스터의 공격이 실드에 부딪히자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거렸다.

창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하태헌이 실드를 거두고 몬스터를 향해 날아가 검을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이 가만히 떠 있던 몬스터의 목을 정확히 긋고 지나갔다.

“……?”

하태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분명 베어 냈음에도, 피가 튀거나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크륵, 크르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간 살점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원상 복구되고 있었다.

“설마 재생 능력?”

홍시아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재생 능력을 가진 몬스터야 존재했지만, 저렇게 빠르게 재생되는 경우는 없었다.

‘…잠깐. 비슷한 상황이 소설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불현듯 원작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침착하게 기억을 정리했다. 하태헌이 미국 게이트를 들어갔을 때 만났던 몬스터와 흡사했다. 벤시와 비슷한 생김새의 주술계 S급 몬스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었지?’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홍시아도 합세해서 몬스터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홍시아의 채찍이 심장을 파고들고, 팔 한쪽을 날려 버려도 몬스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죽일 수 없다.

기억해 내야 해.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있는 모든 내용을 헤집던 나는 겨우 중요한 단서를 떠올렸다.

“거울.”

그래. 거울이다. 몬스터 머리 위에 떠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재생 능력이 아니야.”

저건 환각이었다. 확신을 가진 나는 급히 소리 질렀다.

“하태헌 씨! 거울이요!”

거리가 꽤 멀었지만, SS급인 그에게는 내 목소리가 닿으리라. 예상대로 하태헌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소설에서 나온 몬스터는 가슴에 거울이 박혀 있었다. 하태헌은 그 거울에 검을 꽂아 넣어,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던 환각을 끝낸다.

“거울을 공격하세요!”

그 몬스터처럼, 지금도 재생 능력이 아닌 그저 환각이라면. 거울을 부쉈을 때 분명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 거울을 공격하기 쉽도록 하태헌의 몸을 더 위로 띄웠다. 내 말을 곧바로 이해한 하태헌이 거울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줄곧 가만히 있던 몬스터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끼이이이이―!

“아악!”

귓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가까이 있던 하태헌과 홍시아도 타격받았는지 크게 휘청였다.

“아, 미친. 무슨… 읏!”

이마를 짚은 홍시아를 향해 몬스터가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홍시아가 가까스로 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제야 싸움할 맛 나네! 한이결 능력자 말대로 거울을 건드리면 안 되는 뭔가가 있나 본데?”

집채만 한 검이 다시 한번 홍시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방금과 달리 여유롭게 피한 홍시아가 새빨간 채찍을 사용해 몬스터의 검을 휘감았다. 마치 뱀이 먹잇감을 감아 죽이듯, 채찍에 감긴 검이 점차 얼어붙으며 이내 쩌적, 금이 갔다.

홍시아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사이, 하태헌은 거울을 향해 다시 한번 몸을 움직였다.

검 끝을 내려 거울에 꽂아 넣자 날카로운 파열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콰아앙!

거울이 강한 충격파를 뱉어 내며 폭발했다.

“하태헌 씨!”

“……!”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린 하태헌이 뒤로 휙 밀려나는 것을 보며 반사적으로 달려가려던 나도 폭발에 휩싸여 몸이 뒤로 날아갔다. 급히 능력을 끌어 올렸다.

“크윽…!”

쿠웅, 묵직한 소리와 동시에 등에서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행히 바람으로 몸을 보호해서 크게 아프진 않았다.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나는 확연히 달라진 눈앞의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하얀빛으로 가득했던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검보랏빛으로 일렁이는 먹구름이 가득 펼쳐졌다. 폭발이 일어났던 몬스터 근처 침엽수는 모조리 쓰러졌고, 흙바닥에서는 검은색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키이이익―!

몬스터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이윽고, 얼굴 부분이 네 갈래로 갈라지며 꽃잎처럼 벌어지고, 지독한 악취가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코트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태헌 씨! 괜찮습니까?”

“쯧….”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하태헌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정장에 묻은 흙을 탁탁 털었다.

“아우. 진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하태헌과 비슷하게 재투성이 꼴이 된 홍시아가 뒤에서 걸어 나왔다. 다행히 그녀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설마 거울이 핵이었을 줄이야. 첫 공격이 거울에서 생겨나길래 생각도 못 했는데.”

투덜거리던 홍시아가 채찍을 힘주어 잡으며 몬스터를 바라봤다.

“거울을 깼으니 환각은 이제 사라졌으려나?”

“아마도요.”

“확인해 봐야겠군.”

하태헌이 능력으로 검을 만들어 쥐며 내게 눈짓했다. 시선을 알아챈 나는 다시 하태헌과 홍시아의 몸을 띄워 주며 뒤로 물러섰다.

“독 조심하세요.”

후웅, 위로 날아오른 홍시아가 날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이 능력 진짜 좋네.”

“쓸 만하시면 언제든 용병으로 불러 주세요.”

이때다 싶어 슬쩍 영업을 시도해 봤다. 다행히 귀여운 애교 정도로 통했는지 홍시아가 킥킥거리며 하태헌을 따라 몬스터에게 날아갔다.

몬스터는 하태헌과 홍시아가 가까이 다가가자, 별다른 미동이 없던 아까와 다르게 파르르 떨며 갈라진 머리 사이로 새까만 연기와 함께 악취를 내뿜었다.

‘대체 저게 뭐지?’

혹시나 해서 입가를 가리고 있던 소매를 치우지 않은 채로 생각했다. 독기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아까 보랏빛 가루와 달리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독기가 아닌 디버프 능력인가. 디버프 능력은 무방비로 노출됐을 때 능력의 힘이 감소한다거나 신체 마비에 걸릴 수 있는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끼이이익!

쿠르릉, 쾅!

몬스터가 소름 끼치는 소리로 울부짖자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새하얀 벼락이 여러 차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태헌은 몬스터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거리를 확 좁혔다.

하아아악!

번개의 형상을 한 몬스터의 검과 하태헌의 검이 맞부딪히려는 그때, 새빨간 채찍이 몬스터의 검을 휘감았다. 이미 중앙 부분에 금이 가 있던 몬스터의 검이 이번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홍시아가 만들어 낸 틈을 하태헌이 순식간에 치고 들어갔다. 후욱, 검이 길게 휘둘러지자 몬스터의 오른 손목이 잘려 나갔다.

쿠웅!

반 토막 난 검을 든 채로 잘려 나간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끼이이익, 절단면에서 검은 피가 쏟아지고 몬스터가 비틀거렸다.

“으윽…!”

홍시아가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갈라진 얼굴에서 뿜어져 나왔던 악취가 검은 피에서 훨씬 더 진하게 퍼져 나갔다. S+급 몬스터의 능력이라 하태헌은 괜찮아도 홍시아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몸이 이상해. 디버프 능력이야.”

“뒤로 물러서십시오.”

홍시아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능력을 좀 더 써서 최대한 악취가 둘에게 닿지 않도록 바람의 흐름을 바꿨다.

하아아악! 하악!

그사이, 고통스럽게 몸을 움직이던 몬스터의 촉수가 일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행동에 긴장하는데, 잔뜩 깨지고 갈라진 거울에서 무언가가 비췄다.

“저건…….”

질척이는 액체에 젖어 있는 둥근 알 속에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개구리알처럼 생긴 수십 개의 알마다 사람이 들어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거울을 본 홍시아가 경악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파티 참석자들이잖아!”

알에 꽂혀 있는 촉수가 무언가를 빨아들이며 새하얗게 빛났다. 그러자 알에 들어가 있는 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중에는 이주하와 김나율도 있었다.

하태헌과 홍시아의 얼굴이 무섭게 굳으며 분노 어린 기운이 넘실거렸다. 홍시아가 말했던, 검은 구멍을 통해 어딘가로 사라진 이들을 포함한 모두가 저렇게 붙잡혀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촉수를 통해 하얀 기운을 흡수한 몬스터의 잘려 나간 손목의 살점이 불룩거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손이 원상 복구되었다.

이번에는 환각이 아닌, 재생 능력이 확실했다.

“짜증 나게!”

홍시아가 다시 채찍을 휘둘렀지만 몬스터를 맞추진 못했다.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몸놀림이 확연하게 느려졌다. 디버프 능력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작전을 바꾸도록 하죠.”

냉정하게 상황을 살핀 하태헌이 홍시아에게 말했다.

“제가 시선을 끌겠습니다.”

몬스터 뒤쪽, 홍시아가 발견했던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그곳을 하태헌이 손으로 가리켰다.

“홍시아 마스터. 가서 촉수를 잘라 내고 참석자들을 구해 내십시오.”

“…괜찮겠어?”

“계속 몬스터만 상대해 봤자 촉수를 없애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홍시아가 이어진 설명에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 상황은 누구 한 명이 촉수를 제거해 줘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알겠어. 잘 버텨 봐. 최대한 빨리 해결해 볼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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