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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74)화 (74/394)

74화 

“여기가 게이트 내부도 아니고, 그 뜨거운 불을 꺼내면 어쩌겠다고요! 하지 마세요!”

“뭐, 기껏해야 호텔 하나 태우겠지.”

천사연과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이번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날아왔다.

콰직!

“흐흥.”

홍시아가 테이블을 반절로 부숴 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언제 꺼내 들었는지, 새빨간 뱀 가죽 채찍이 들려 있었다.

“대구놈들이 자꾸 우리 쪽으로 뭘 집어 던지는데, 이거 또 무시하면 가오가 안 살지.”

“마스터, 이기고 오세요!”

김나율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홍시아를 응원했다. 콰직! 홍시아의 채찍이 지나간 바닥이 얼어붙으며 깊게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서부터 한기가 새어 나왔다.

“이주하 마스터, 뭐 해? 어서 무기 꺼내!”

“엇, 나?”

“그래. 빨리 따라와. 마스터가 모범을 보여야지!”

홍시아가 얌전히 앉아 있던 이주하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이주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자, 잠깐. 나는 이런 거….”

콰광!

“허억.”

천사연이 등 뒤에서 내 허리를 붙잡아 당기는 동시에, 우리 테이블이 쩌적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거대한 대검을 든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하하, 덤벼라! 재수 없는 서울놈들!”

아무래도 저 사람이 아까부터 의자며 테이블이며 던져 댄 주범인 듯했다. 황당해서 쳐다보는데, 옆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새끼가…….”

사늘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은 이주하가 정장 재킷에 가려져 있던 총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이주하의 능력은 디버프 무한 총알. 자신의 능력에 맞춰 특수 제작한 아이템 총을 쥔 이주하가 남자를 향해 달려들며 총을 난사했다.

타앙! 탕!

정장 바지를 입고 있다고는 하나, 10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힐을 신고서 저렇게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모두 전투를 멈춰 주십시오. 경호 인력을 호출했습니다. 지금 바로 자리에… 하아, 들을 리가 없지.”

짜게 식은 눈으로 경고 사항을 읊던 최미진이 한숨을 내쉬며 마이크를 집어 던졌다. 정말 개판 그 자체였다. 이제야 정신 나간 놈들이 많으니 붙어 있으라던 천사연의 말이 이해가 갔다.

“흐음.”

천사연이 뽑아 든 검으로 날아오는 이런저런 것들을 베어 냈다. 홍시아와 이주하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다른 지역 참석자들이 자꾸만 우리를 향해 도발 행위를 보내왔다.

“레퀴엠 마스터, 무서워서 숨었냐?”

“로헌 부마스터! 정정당당하게 겨뤄 보자!”

하나같이 거대한 무기를 든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도전에 천사연은 들은 척도 안 했고, 하태헌은 아무런 대꾸 없이 샴페인만 마셨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시였다.

“정말 왜 저러는 걸까요.”

김나율이 하태헌에게 시비 거는 이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하태헌 옆으로 바싹 다가서는 게, 혼란한 상황을 오히려 이용하는 그 모습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이 상황, 경호 인력이 오면 정리가 됩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게이트 문제가 중요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싸울 수는 없으니.”

한마디로 경호 인력을 핑계로 끝낸다는 뜻이었다. 이 사람들 정말 싸우고 놀려고 모인 거구나.

“…이런 모임이 자주 있어요?”

“1년에 두세 번 정도. 이 정도로 모인 경우는 간만이긴 하군.”

기어코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조각상이 누군가의 능력에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우르릉, 조각상 무너지는 소리가 바닥을 흔들었다.

이제 파티 홀 내부는 우리 테이블 주변을 제외한 모든 곳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하태헌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태헌은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김나율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치 품행 나쁜 불량 학생을 보는 것만 같다. 왜 저러지.

“……아.”

뻘쭘해서 괜히 눈동자만 굴리던 나는 그제야 허리에 감겨 있는 천사연의 팔을 알아챘다. 아까 공격을 피하느라 붙잡혔던 허리였다. 이것 때문에 그런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겁니까? 이제 놓으시죠.”

“아하. 깜빡했군.”

천사연이 능청스럽게 대답하면서도 허리를 놓지 않았다. 이 자식이.

“놓으라고요.”

그제야 팔이 풀렸다. 나는 살짝 구겨진 재킷을 툭툭 털며 하태헌에게 해명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나 천사연이랑 막 친하고 그런 사람 아니야. 알지? 오해하지 마.

내 마음이 통했는지 하태헌이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 시선을 돌렸다. 다행이다.

“부마스터!”

참석자들 사이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신나게 뛰어다니던 홍시아가 김나율을 불렀다.

“네?”

“내가 아까 맡겼던 아이템 좀!”

김나율이 셔츠에 가려졌던 목걸이를 꺼냈다. 중앙에 호박색 보석이 박혀 있는 바로크 장식의 목걸이에서 표범 무늬 가죽 장갑이 튀어나왔다.

“저 이것 좀 건네드리고 올게요.”

가죽 장갑을 두 손으로 꼭 쥔 김나율이 종종걸음을 하고 전투 현장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저 난장판 속에서 홍시아에게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날아오는 공격을 야무지게 피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인 듯하다.

역시 S급은 S급이구나.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 이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는 김나율을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하는데, 마구 엉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언젠가 봤던 남자 한 명이 보였다.

‘누구였지?’

테라스로 나가는 입구에 몸을 반쯤 숨기고 파티 홀을 지켜보고 있는 남자는 멀리서 봐도 상태가 나빠 보였다.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강승건 마스터?”

“음?”

누군가 했더니. 그래도 마스터라고 파티에 참석한 건가? 근데 왜 테이블로 오지 않고 저기 숨어 있지?

이해 못 할 행동에 고개를 기울이는데, 창백한 얼굴을 한 강승건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왜 그러지?”

“저쪽에 강승건 마스터가…….”

잠깐 천사연에게 시선을 돌린 사이, 순식간에 강승건의 모습이 사라졌다.

“…안 보이는데.”

웃음기가 사라진 천사연이 방금까지 강승건이 있던 곳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살펴봤다.

“분명히 봤…….”

쿠구구궁!

그때였다.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주변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휘청이는 몸의 중심을 겨우 잡으며 주위를 살폈다.

“뭐야?”

“어느 놈이 이딴 능력을…!”

“피해!”

천장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파열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강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리며 기이한 감각이 치솟았다.

“으윽….”

“한이결?”

속이 뒤집히는 느낌에 내가 입을 가리며 헛구역질을 하자, 천사연이 어깨를 붙잡으며 내 상태를 살폈다. 단순한 흔들림으로 이런 매스꺼움이 느껴질 리 없을 텐데.

이 와중에도 지진은 갈수록 심해져, 이제는 호텔 자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벽이 불안하게 끼긱 거렸다.

“젠장. 누구야? 아이템 쓴 새끼!”

“일단 건물 무너지는 것부터 막아 봐!”

“잠깐, 바닥이…!”

참석자들이 헤집어 놓은 바닥 틈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였다. 은하수처럼 검은색과 짙은 푸른색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색. 입을 벌린 게이트와 흡사했다.

“이거 설마.”

쿠구궁! 바닥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며 빛이 점차 커졌다. 미처 바닥을 밟지 못한 참석자들이 무기를 움켜잡은 채로 빛 속에 떨어졌다.

“지금 이거, 설마 게이트가…….”

“한이결, 일단 능력 써.”

후웅, 천사연의 말에 급히 능력을 끌어 올리자마자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검푸른 색의 일렁이는 빛이 커다랗게 드러났다.

‘미친…!’

알 수 없는 힘이 떠오르려는 몸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떨어진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다급히 하태헌에게 손을 뻗었다.

“하태헌 씨!”

바람에 머리가 살짝 흐트러진 하태헌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의 손을 붙잡은 동시에, 몸이 빛 속으로 끌려 들어가며 시야가 어둠에 먹혀들었다.

***

“…이결. 한이결.”

“으…….”

볼을 툭툭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몽롱한 의식 사이로 파티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뭐야.”

“깨어났군.”

눈을 뜨니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한 천사연이 보였다.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여긴….”

“아무래도 게이트 내부로 들어온 것 같군.”

게이트 내부라고?

“그게 가능해?”

“등급 높은 공간 능력자가 벌인 일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그렇다면… 파티에 참석한 모두가 이 게이트로 들어왔다는 거네.”

“그렇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흙바닥과 하늘을 가리는 빽빽한 나무, 희미하게 울리는 벌레와 새소리. 숲 한복판인가. 혹시나 해서 천사연에게 물었다.

“하태헌은?”

“근처를 둘러보고 오겠다는군.”

“다른 사람들은 더 없어?”

“이 근처에는 없어.”

우리 셋만 이곳으로 떨어졌다는 건가?

‘잠깐. 이렇게 셋?’

천사연과 하태헌. 그리고 나라고?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기절했을 때 둘이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다지 재밌지 않은 질문이었는지, 천사연이 삐뚜름하게 웃었다.

“그런 기대를 하는 줄 알았으면 한번 싸우고 나서 깨울 걸 그랬군.”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안 싸웠다면 다행이고. 몸을 일으켜서 바지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 내는데, 정찰하러 나갔던 하태헌이 돌아왔다.

“깨어났군.”

“네. 하태헌 씨, 다친 곳은 없습니까?”

내 질문에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태헌은 답답했는지 넥타이를 빼고 셔츠 단추 두어 개를 푼 모습이었다. 팔짱을 낀 채 나와 하태헌을 보고 서 있던 천사연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나한테는 다친 곳 없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딱 봐도 멀쩡해 보이시는데요.”

“걱정은커녕 싸웠냐고 의심이나 했지. 취급이 이렇게 달라서야.”

“…알았어요, 알았다고.”

진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성가시다는 내 반응에 천사연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 천사연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하태헌이 입을 열었다.

“움직이도록 하지. 게이트 어딘가에 있을 참석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봐야겠군.”

“음, 근데….”

나는 목덜미를 만지며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네요.”

주위는 나무와 수풀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어떤 게이트인지, 길이 어딘지 아는 게 없으니 섣불리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천사연이 위를 가리키며 내게 환하게 웃었다.

“한이결.”

“예?”

“위로 올라가서 확인하고 와.”

“…….”

그 당연하다는 태도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슨 키우는 개한테 ‘물어 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너무 당당하게 부려 먹으시는 거 아닙니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 속으로 재수 없는 천사연을 욕하며 능력을 끌어 올렸다. 후웅, 바람이 몸을 감싸자 나뭇가지가 흔들거렸다.

“보고 올게요.”

파사삭, 무성한 나뭇잎을 헤치고 위로 떠올랐다. 널따란 숲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그 끝에 무언가가 보였다.

“……?”

익숙지 않은 모양새를 한 건물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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