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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70)화 (70/394)

70화

  

측정 센터는 길드 관리 본부 옆, 10분 거리에 있었다.

우서혁의 안내를 받으며 측정 센터 1층 홀로 들어가자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여자가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레퀴엠 길드 여러분. 저는 센터 연구팀 부장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싱긋 웃은 박지원이 내게 악수하며 물었다.

“천사연 마스터께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 측정받으실 능력자 분은 누구시죠?”

“이분입니다.”

우서혁이 내 뒤에 서 있던 김우진을 슬쩍 밀며 말했다.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던 김우진이 미간을 구겼다.

“김우진 님, 맞으시죠? 따라오세요. 측정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김우진이 불만스러워하든 말든 박지원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었다.

“C급에서 A급으로 등급이 오르셨다는 소식에 실력 있는 측정 능력자들을 모두 대기시켜 뒀답니다. 천사연 마스터께서 직접 의뢰한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측정 센터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각성 후 측정을 받기 위해 찾아온 능력자들이나, 아이템의 등급과 성능을 확인받기 위한 의뢰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전달 드린 안내 책자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희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경험 많은 측정 연구팀과 첨단 기기를 보유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안전하게 능력 측정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복도를 지나며 시설을 소개하는 박지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위치한 기본 측정실 앞으로 온 박지원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측정받으실 분만 들어오시고, 다른 분들은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본 측정부터 시작해서 심화 측정과 능력치 분석까지 끝내려면 넉넉잡아 2시간 정도 걸리세요. 중앙으로 가시면 카페가 있으니 그곳에서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김우진이 시무룩해졌다. 혼자 검사받으러 들어가기 싫은 눈치였다. 그렇다고 따라 들어가 줄 순 없는 노릇이니 우린 쿨하게 김우진을 박지원과 연구원들에게 떠넘겼다.

“잘 받고 와.”

뭔가를 바라듯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던 김우진에게 간단히 인사하자 녀석이 실망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측정실로 들어가는 김우진을 배웅한 우리는 딱히 할 것도 없던 터라 박지원이 알려 준 카페로 이동했다. 쇼케이스에 비치된 치즈 케이크를 본 민아린이 신난 목소리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케이크! 우리 케이크도 주문해요!”

“케이크 좋죠. 우서혁 씨는 뭐 드실래요?”

“저는 아메리카노면 됩니다.”

“이왕 사는 거 초코케이크도 살까요?”

“예에.”

나는 그간 고생한 민아린에게 뭐든 사 줄 의향으로 카드를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큼이나 단 음식을 좋아하는 민아린은 마치 폭주하는 것처럼 디저트와 음료를 주문했고, 우서혁은 그 모습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지켜봤다. 절대 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다 먹을 수 있을까요?”

주문하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는지 민아린이 살짝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제를 마친 카드를 지갑에 넣으며 그녀를 달랬다.

“뭐 어때요. 이것저것 다 먹어 보고 배부르면 남기면 되죠.”

“이결 씨… 너무 감동적이에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민아린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디저트와 음료가 한가득 쌓인 트레이를 우서혁에게 넘겼다. 얼결에 그걸 받아 버린 우서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뒤를 졸졸 쫓아왔다.

***

“나만 빼놓고…….”

“왔어?”

측정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는지, 2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김우진이 돌아왔다. 테이블에 디저트와 음료를 한가득 쌓아 두고 수다를 떠는 우리를 발견한 김우진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고생했네.”

저러다 삐치겠다 싶어서 김우진을 자리에 앉히고 디저트를 마구 밀어 주었다. 그런 나를 힐끔 본 김우진이 뚱한 표정을 풀고 얌전히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측정 결과는 나왔냐?”

“대략적인 건. 자세한 내용은 내일까지 서류로 보내 준대.”

허기가 졌는지 케이크 하나를 빠르게 먹어 치운 김우진이 결과를 말해 줬다.

“A급 분신술사로 확정받았어. 꾸준히 연습하면 최대 두 개까지 분신을 만들 수 있고, 능력을 사용하면 신체가 강화돼.”

“강화라고 하면, 추가 능력인 건가요?”

민아린의 물음에 김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B급 공격부터는 상처가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C급 아래의 공격으로는 김우진과 분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신체가 강화되기는 해도 분신과 감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투 실력을 갖춰야 한대.”

“확실히 그렇겠네.”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우서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정이 끝났으니 길드로 돌아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저는 마스터에게 보고하고 올 테니, 먼저 내려가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테이블을 치우고 우서혁을 뒤로한 채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침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수십 명의 기자가 센터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봐.”

아무 생각 없이 나가려는 김우진을 급히 붙잡으며 상황을 둘러봤다. 저거 아무래도 방송국 카메라까지 온 것 같은데.

나와 마찬가지로 사태를 파악한 민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런, 벌써 소식이 퍼졌나 봐요.”

“한이결 씨.”

우리를 뒤따라 1층으로 내려온 우서혁이 급히 다가왔다.

“인터넷에 김우진 수행원의 등급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다고 하는군요. 마스터께서 지금 바로 경호 인력을 보내 주신다고 하니, 조금 이따가 출발해야겠습니다.”

우서혁이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를 띄워 내게 보여 줬다. 검색어에 김우진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급상승 검색어

1 A급

2 레퀴엠 김우진

3 등급 상승

4 C급 김우진

5 김우진」

자신의 이름이 검색어에 올랐음에도 김우진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김우진은 그저 이 모든 게 성가시고 귀찮아 보였다.

“이목이 끌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사이 기자들이 더 몰려왔어요. 센터 측에서 어느 정도 막아 주고 있긴 한데, 이러다가는….”

민아린의 말에 우서혁이 밖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에서 보내 준 경호 인력이 아무리 빨리 온다 해도 30분은 걸릴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우서혁 씨, 경호 인력 취소해 주세요. 그냥 날아갑시다.”

“괜찮으시겠습니까?”

“4명 정도는 충분합니다. 여기서 계속 있으면 센터 측에도 민폐잖아요.”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우서혁은 민폐라는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기자들 앞에서 떠나는 게 좋겠어요. 그럼 저 사람들도 더는 여기에 모여 있지 않겠죠.”

“좋은 생각입니다.”

“김우진, 괜찮겠어?”

“난 상관없어.”

상의를 끝낸 우리는 지체할 것 없이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등장하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재빠르게 촬영을 시작했다.

“김우진 능력자!”

“짧게라도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등급 상승에 대해 한마디 해 주세요!”

김우진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새하얀 플래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직접 마주한 기자들의 숫자는 건물 안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세 명 모두 내 팔을 붙잡은 것을 확인하고,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급히 능력을 사용했다.

“어, 어?”

“잠깐만요! 김우진 능력자!”

“비행 능력이다!”

우리의 몸이 높이 떠오르자 기자들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김우진의 이름을 외쳤다. 발아래가 자그맣게 보일 정도로 올라온 나는 길드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다들 저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와, 신기해요. 저도 드디어 이결 씨 능력을 받아 보네요.”

“생각보다 별거 없죠? 많이 높은데, 무섭지는 않습니까?”

“재밌어요. 전 고소공포증 없어서요. 두 분도 괜찮으세요?”

“예.”

민아린의 질문에 우서혁은 담담히 대답했고, 김우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팔을 힘주어 잡아 왔다. 그러고 보니 김우진은 저번에 차수연을 만나러 갔을 때도 긴장했었지. 아닌 척하지만 높은 곳이 무서운가? 나는 고도를 살짝 낮춰 줬다.

레퀴엠 길드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땅으로 내려왔다. 다행히 길드 앞은 천사연이 조치를 해 놨는지, 기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표실로 가시죠. 마스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길드 앞을 지키고 있던 수행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우서혁이 나와 김우진에게 말했다.

“전 이만 힐러팀으로 복귀할게요. 나중에 봐요.”

본래 일정이 있는 민아린을 뒤로하고 최상층에 위치한 대표실로 올라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천사연이 보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왔군.”

“그냥 능력 썼습니다. 김우진에 대한 정보, 어디서 흘러 나간 겁니까?”

“측정 센터 직원으로 추측 중이기는 한데, 이제 와서 따져 봤자 큰 의미는 없지. 어차피 측정을 통해 A급을 확정받는 순간 새어 나갈 건 각오하지 않았나.”

“물밑 찌라시 정도인 줄 알았죠.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좀 골치 아픈데요.”

“공식 발표 이후에는 더 정신없을 거다. 그때는 해외 언론들도 몰려들 테니.”

김우진이 이런 부분은 유독 관심도 없고 귀찮아해서 영 걱정스러웠다.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천사연이 느긋이 말했다.

“김우진은 한이결, 너랑 달리 길드 소속자야. 길드의 관리와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지나친 걱정은 할 필요 없어.”

“그럼… 다행이긴 한데.”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김우진을 바라봤다.

“마스터 말이 맞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 시선에 김우진이 나름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도 되나 모르겠네.

“김우진. 17번 단련실을 한동안 제공해 주지. 널 가르칠 S급 길드원도 미리 선별해 뒀으니 내일부터 6시간씩 능력 연습과 신체 단련에 임하도록.”

“네. 감사합니다.”

6시간이 부담스러울 텐데도, 김우진은 별 불만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나도 어느 정도 연습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6시간은 너무 길지 않나.

“공식 발표는 나흘 후로 잡아 두지. 그때까지 분신 컨트롤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해 두고.”

“예.”

“그리고 한이결은.”

뭐야. 날 보는 천사연의 시선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부르지?

“다음 주쯤에 방으로 선물 하나를 보내지. 중요한 물건이니 꼭 받도록 해.”

“선물…이요?”

갑자기 웬 선물? 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고개를 기울이는데, 천사연은 제대로 된 답을 해 주는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받고 나서 잘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

“……뭐어, 예.”

찜찜함이 느껴졌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주겠다는 걸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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