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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9)화 (69/394)

69화

18. 등급 상승

김우진은 난폭하게 날뛰던 기운이 잠잠해진 이후로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을 잤다. 녀석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꼬박 하루가 지나고 나서였다.

“으…….”

새벽 5시가 되었을 무렵, 김우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물을 찾았다. 자리를 뜨지 않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나는 미지근한 물이 든 컵을 녀석의 입에 대 주었다.

누가 주는지도 모른 채로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물을 받아 마신 김우진은 그제야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한이결?”

“어.”

김우진이 놀란 얼굴을 하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나는 빈 물컵을 협탁에 내려놓으며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여긴…….”

“길드 병실. 너 지금 이틀 만에 깨어나는 거야.”

“이틀이나 됐다고? 어째서…….”

“나 수술 끝났을 때 쓰러졌다며. 기억 안 나냐?”

“기절….”

김우진은 방금 깨어난 탓인지, 아직 정신이 흐려 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녀석은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몸이, 좀 뜨겁기는 했어. 감기인 줄 알았는데…….”

잠시간 멍하니 날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구기며 어깨를 붙잡아 왔다.

“너 다친 곳은? 괜찮은 거야? 피가 계속 안 멈춰서, 나는 너 병원 도착하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멀쩡하니까 진정해.”

김우진의 눈가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내 어깨를 힘주어 잡고 있는 손도 덜덜 떨렸다.

기운의 균형을 잃을 만큼 내 걱정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느껴졌다. 나까지 감정적으로 반응했다가는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며 셔츠 단추를 풀었다.

“자, 직접 봐. 흉터 하나 안 남았지?”

단추를 끝까지 풀어 상처 입었던 옆구리를 보여 줬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집요하게 몸을 바라보던 김우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허리를 쓸어내렸다.

“이제 만족하냐?”

“…응.”

그제야 김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셔츠 단추를 다시 채우며 입을 열었다.

“나보다는 네가 더 문제지.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오히려 전보다 더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기운이 달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김우진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깨어난 애를 붙잡고 복잡한 설명을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우진의 어깨를 꾹 눌렀다. 얼결에 다시 눕게 된 김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봤다.

“더 자. 아침에 민아린 씨랑 다시 올게. 들어야 할 말도 있고……. 아마 조만간 엄청 바빠질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자고 일어나면 설명해 줄게.”

불안정하던 기운은 괜찮아졌지만, 몸에 큰 무리가 왔던 만큼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내 짐작대로 피곤하긴 했는지, 김우진은 반항하지 않고 몸에 힘을 뺐다. 느릿하게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뜬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한이결.”

“왜.”

“내가 잘못했어…….”

갑자기 웬 사과? 뜬금없는 말에 마땅한 대꾸도 못 하고 바라보는데, 김우진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게이트에서 추궁한 거. 미안해.”

“됐어. 네가 사과할 문제가 아니야.”

사과는 오히려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가 실망한다 해도 선택을 바꾸지 않은 것은 나인데.

“이전에는 네가 뭘 숨기는지 알고 싶었는데….”

“…….”

“지금은, 괜찮아. 네가 뭘 하든… 계속 곁에 있을게.”

조곤조곤 하는 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무어라 정의하지 못할 감정에 목이 막혔다.

“그렇게 하게 해 줘, 한이결.”

애원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김우진에게 쓴웃음을 지어 주며 흐트러진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 줬다.

새파란 새벽빛이 김우진의 얼굴 위를 부드럽게 비췄다. 나는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몸을 돌려 병실을 나왔다.

***

“음. 기운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네요.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요.”

김우진의 손을 잡고 기운을 살펴보던 민아린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A급이라고….”

나와 민아린에게 설명을 들은 김우진은 아직 자신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측정 센터 예약이 잡혀 있어요. 자세한 능력치는 측정받아 보시면 알 거예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등급이 변하게 된 케이스라… 아마 언론이 좀 몰려들 거야.”

사실, 좀 몰려드는 정도라기보다 더 난리 날 가능성이 컸다. C급에서 A급으로 2단계나 높아졌는데, 기사 몇 번 나고 끝날 리가 없지.

“이렇든 저렇든 축하할 일이라는 건 맞죠. 축하해요, 우진 씨.”

“그래. 이제는 A급이고, 능력도 바뀔 테니까 쓸데없는 놈들 들러붙을 걱정은 그만해도 되겠다.”

민아린과 내가 한마디씩 하자 김우진이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김우진이 부끄러울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아! 시간도 남았으니까, 어떤 능력이 생겼을지 시험 삼아 이것저것 해 보는 건 어때요?”

민아린이 손뼉을 치며 신나게 말했다.

“기운을 사용하면 능력이 발동되긴 할 테니까요. 궁금하잖아요.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우진도 같은 마음인지, 영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음?”

그러자 김우진 옆으로 무언가 흐릿한 게 일렁였다. 송출 상태가 안 좋은 화면을 보는 것처럼, 지직거리는 그 형체는 대충 보기에 김우진과 꽤 닮아 있었다.

“김우진, 기운 더 써 봐.”

“…이렇게?”

내 말대로 기운을 더 썼는지, 형체가 훨씬 뚜렷하고 선명해졌다. 민아린이 놀라서 외쳤다.

“우진 씨가 두 명이 됐어요!”

김우진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김우진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다. 자신의 복제품을 본 김우진이 당황했다.

“뭐, 뭐야.”

“분신 같은 건가? 아니면 이것저것 다 복제할 수 있다거나.”

어느 쪽이건 눈앞에 만들어진 김우진은 꽤 흥미로웠다.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살펴봤지만, 진짜와 다른 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눈썹 아래에 있는 점까지 똑같네.

“그 부분은 측정을 받아 봐야 알겠네요. 근데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아 보여요.”

민아린의 말을 들으며 가짜 김우진을 바라보는데, 녀석이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은근슬쩍 내 허리를 감싸며 안겨 왔다. 진짜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에 신선해서 내버려 두자 김우진이 펄쩍 뛰었다.

“저 새끼 뭐야!”

이야.

자기랑 똑같이 생긴 상대에게도 거침없이 저 새끼라며 욕하는 김우진의 화끈함에 순수한 감탄이 일었다. 진짜가 경악하건 말건 가짜는 안기는 거에 그치지 않고 내 어깨에 얼굴을 비벼 댔다. 강아지 같네.

“생긴 것만 똑같고 성격은 다른가 봐요.”

“신기하네.”

“이런 미친. 당장 안 떨어져?”

그저 재밌기만 한 나와 민아린과 달리, 김우진은 흉흉한 얼굴로 가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가짜가 무서운지 몸을 살짝 움츠리며 내게 더욱 파고들었다.

쯧쯧. 그 모습이 어째 안쓰러워서 등을 토닥이며 한 소리 했다.

“그러지 마. 얘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혼을 내냐?”

“뭐?”

“우진 씨 얼굴인데도 저렇게 행동하니까 엄청 불쌍해 보이네요….”

그렇게 말입니다. 나는 가짜를 안은 상태로 김우진에게 물었다.

“진정하고, 능력이나 파악하자. 혹시 감각도 연결돼?”

“감각?”

김우진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건 좀 별로인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민아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가짜가 다친다면 우진 씨도 똑같은 고통을 느끼겠군요.”

“조절할 수 있으면 편할 텐데요. 안 된다면 가짜도 조심해서 다룰 수밖에 없고.”

모든 능력은 그에 맞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당장 한이결의 바람 능력만 하더라도, 이래저래 활용도는 높았지만 다른 A급 능력자보다 공격력이 약했으니까.

“아직 확실한 건 없긴 한데, 감각 공유라면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

“으응.”

김우진이 가짜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역시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그에게 손짓했다.

“김우진. 이리 와 봐. 이제부터 네 능력인데, 좀 친해져야지.”

내가 하듯 가짜를 안아 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김우진은 오히려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싫어.”

김우진이 싫다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가짜도 눈썹을 늘어뜨리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이상한 데서 합이 잘 맞네.

“귀엽기는 한데, 이쪽 우진 씨는 말을 안 하네요. 할 수 없는 걸까요?”

“음, 제가 보기에는…….”

나는 어딘가 멍한 눈을 한 가짜를 내려다보며 아까부터 생각해 온 것을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여서. 개와 비슷한 정도? 감정 표현도 더 적나라하고요.”

“뭐야, 기분 나빠.”

김우진의 표정이 부루퉁해졌다. 아무리 가짜가 마음에 안 든다고는 해도 저와 똑같이 생긴 놈이 지능 낮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싫은가 보다.

“제가 듣기로 이런 쪽 능력은 분신을 통제하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우진 씨도 처음이라 그렇지, 연습하다 보면 능숙하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요?”

“일리 있네요.”

결국 지금 분신은 주인 말 안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는 건가.

“그나저나 이결 씨한테서 꼭 붙어서 떨어지질 않네요. 주인 닮아서 그런가 봐요.”

민아린의 말에 가짜가 김우진의 눈치를 힐끔 살피고는 내게 더 붙어 왔다. 김우진의 눈초리가 한층 더 사나워졌다. 이거 참.

“네. 아무래도…….”

쪽.

대답하던 나는 볼에서 느껴지는 묘한 느낌에 말을 멈추었다. 능력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방 안에 귀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라서 옆을 보자 가짜가 날 보며 해맑게 웃었다. 이 녀석이 아기들끼리나 할 만한 볼 뽀뽀를 내게 한 것이다.

“저 미친 새끼가!”

김우진의 분노 어린 외침과 동시에 품 안에 있던 가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우진이 가차 없이 기운을 끊어 낸 것이다. 품 안이 텅 비자 어째 아쉬움이 몰려왔다.

“뭘 그렇게 화를 내냐. 애가 그럴 수도 있지.”

“맞아요. 귀엽기만 하던데.”

“둘 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니야.”

김우진이 두 손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가짜가 저지른 일에 대리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저래서야 어느 세월에 분신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지 말고 좋게 생각해. 꽤 괜찮은 능력이잖아.”

“이 기회에 마스터께 연봉 협상이라도 해 보는 게 어때요? C급에서 A급으로 올랐는데.”“오. 그거 좋네요.”

민아린과 머리를 맞대고 천사연에게 조금이라도 더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는데,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찾아온 이는 우서혁이었다. 무뚝뚝한 음성으로 인사를 건넨 그는 가져온 안내 책자를 김우진에게 넘겼다.

“측정 센터까지 동행하겠습니다. 안내 책자는 가시는 길에 읽어 보십시오.”

“마스터가 보냈습니까?”

“예.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10분 내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야.

별다르게 할 일도 없는 터라 우리는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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