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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8)화 (68/394)

68화 

“…뭡니까?”

“잠깐 대화 좀 하지. 민아린 힐러는 나가 있도록 하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나와 천사연의 눈치를 살피던 민아린이 슬쩍 뒷걸음질 쳤다.

“네. 음, 그럼 조금 이따가 올게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살피던 민아린이 병실을 나갔다.

“뭐야?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김우진을 살릴 만한 사람을 알고 있어.”

생각지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천사연을 바라봤다. 그의 성격상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사연에게 다가갔다.

“확실한 거야?”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확신은 못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가능성이 높긴 하지.”

“누군데?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어?”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찾아볼 가치가 있었다. 급하게 질문을 쏟아 내는 날 내려다보며 천사연이 나긋하게 웃었다.

“내가 대신 연락해 줄 수 있는데.”

“…….”

“그렇게 해 줄까, 한이결.”

미간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대신 연락해 준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해 줄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내 병실을 찾아온 용건이 있다고 했지.

나는 기운에 눌려 고통스러워하는 김우진을 바라봤다.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뭘 원해?”

이번만큼은 대가로 뭘 요구하든 간에 최대한 맞춰 주자. 각오하고 천사연을 바라보자, 그가 눈썹 한쪽을 슬쩍 올리며 입을 열었다.

“흠. 글쎄.”

짐짓 생각하는 척 가증을 떨던 천사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말했다.

“애교 떨면서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하기?”

“개소리하지 말고.”

“개소리라니. 진심인데.”

“제대로 말해. 뭐가 됐건 해 볼 테니까.”

나름 천사연의 기분을 고려해서 한 말인데, 오히려 그는 내 말에 심드렁한 표정이 되었다. 대체 왜지. 하여간 종잡을 수가 없는 놈.

“2주 뒤에 전국에 있는 길드 마스터를 대상으로 파티 하나가 열린다는군.”

“파티?”

갑자기 웬 파티?

“게이트 이상 현상이 지속되면서 관리 본부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야. 각 길드가 맡고 있는 게이트의 정보를 공유하고 단합하자는 취지라는데… 뭐,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는 가 봐야 알겠지.”

확실히 그런 목적이라면 모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특히 지방에 위치한 길드 마스터들은 게이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을 테니.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참석자는 파트너 한 명을 데려갈 수 있다는군.”

오싹,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너 지금 설마…….”

“마침 함께 갈 파트너를 찾고 있던 참이라.”

“이 미친.”

게이트를 들어가라든가, 누굴 납치하라는 것도 아니고.

파티? 파티를 같이 가자고?

“대가가 무슨 이따위야?”

턱 밑까지 올라온 싫다는 말을 겨우 삼켜 내며 따지듯 물었다.

“난 내가 손해 보는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천사연의 새하얗고 날씬한 손가락이 내 볼을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그렇지 않나? 김우진도 살려 줘, 게이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도 데려다줘, 무릎 꿇고 고맙다고 할 정도 같은데.”

“…….”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난감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한데, 나는 그런 곳 한 번도 가 본 적 없어. 차라리 다른 사람을 데려가는 게.”

“억지로 따라온 파트너에게 과한 것을 바라진 않아.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 두는 게 좋겠군.”

“…그러니까 네 말은, 파티에 따라가기만 하면 그 사람을 불러 주겠다는 거지?”

“그래.”

정말 그거면 된다고?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어. 파티든 뭐든 가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연락해.”

“현명한 선택이군.”

천사연이 핸드폰을 꺼내 들며 환하게 웃었다.

***

천사연이 부른 사람이 올 동안 나와 민아린은 김우진이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했다. 딱히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초조한 마음에 길게만 느껴졌던 2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비웠던 천사연이 병실로 돌아왔다. 뒤에는 처음 보는 남자도 함께였다.

“이쪽은 아이템 제작자 에드워드 애스너. 기운 이상자를 직접 만나 보고 싶다더군.”

천사연의 소개에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걸어왔다. 나와 민아린은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한이결이라고 합니다.”

“힐러 민아린입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에디라고 불러 주세요.”

통역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지, 그가 한국말로 능숙하게 대답했다. 내 키에 절반이나 올까 싶을 정도로 작은 에드워드가 곱슬거리는 금발을 만지작거리며 살짝 웃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앳돼 보였다.

“에디는 기운 관련 아이템을 전문으로 제작하고 있지. 김우진의 상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마침 한국에 와 있던 참이라서요. 천사연 씨가 먼저 연락해 올 정도면 꽤 중요한 일이겠다 싶었고.”

천사연과 에드워드는 서로를 꽤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에드워드가 슬쩍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내게 가려진 김우진을 바라봤다.

“저분인가요? 기운에 문제가 생겼다는 분이.”

“맞습니다.”

에드워드가 진지한 얼굴로 김우진을 내려다봤다. 그렇게 한참을 보던 에드워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긴장한 채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다행히 제가 예상했던 상태가 맞네요. 기운만 잡아 주면 금방 회복할 거예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서 확신할 수 있어요.”

처음이 아니라고? 민아린이 놀라서 물었다.

“우진 씨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는 건가요?”

“음, 작년쯤이었죠. 중국 지방에 살고 있던 한 아이가 기운이 증폭되면서 목숨이 위험했었습니다. 마침 제가 봉사차 들린 마을이라 도울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원인도 아시는 겁니까?”

내 말에 에드워드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눈앞에서 가족을 잃었더군요. 회복된 후에 이야기를 나눠 보니 가족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대답에 정신이 멍해졌다.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이라고?

“아마 이분도 비슷한 일이 있으셨겠죠. 확실한 것은 기운이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만큼 강렬한 경험을 했을 때, 기운도 균형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해요.”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삼켜 냈다. 가슴속이 가시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럼 김우진이 이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인 건가. 김우진을 지켜 내려고 했던 행동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에드워드가 큰 보석이 박힌 반지를 툭툭 두드려 아이템을 꺼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둥근 아이템은 환약과 생김새가 비슷했다.

그는 아이템을 김우진의 입 안으로 넣었다.

“굳이 삼키지 않아도 천천히 녹으면서 몸 안으로 흡수될 거예요. 불안하던 기운은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에 에드워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회복까지는 시간문제지만, 앞으로가 중요해요.”

“앞으로라면….”

“이분도 그 아이처럼 기운의 크기가 달라질 겁니다. 등급이 올라갈 거라는 뜻이에요.”

그 말에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천사연마저도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민아린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등급 상승이 가능하다니, 정말요?”

“이 정도 기운이면 아마 A급은 되실 것 같은데. 한국은 능력 측정 시스템이 잘되어 있으니, 회복한 후에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어요.”

대화를 나누는 그 짧은 새에 아이템 효과가 나타났는지, 김우진의 숨소리가 조금 편해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잠시간 김우진을 바라보던 나는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등급 따위, 얼마나 달라지건 상관없었다. 오히려 김우진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능력에 불만이 많던 녀석이었으니까.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편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와 줘서 고맙군.”

“아니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천사연 씨 부탁인걸요. 당연히 와야죠. 덕분에 좋은 분들도 만날 수 있었어요.”

천사연의 말에 밝은 음성으로 대답한 에드워드가 김우진을 바라보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뒤에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건물 앞까지 안내하지.”

“고마워요. 두 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와 민아린은 에드워드와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네에. 두 분 다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에드워드와 함께 천사연이 병실을 나갔다.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한 민아린이 음료수를 따며 입을 열었다.

“우진 씨가 나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진짜 놀랐어요. 이미 정해진 등급이 오를 수 있다니.”

그 말에 공감하며 소설을 떠올렸다. 이런 경우는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일이었다. 심지어 김우진이 처음이 아니라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민아린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생각해 보면 능력자로 각성할 때와 비슷하긴 하네요. 쓸 만한 능력을 갖춘 능력자일수록, 강렬한 사건을 마주하면서 각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다. 살인자를 만나 검에 찔릴 위기에 처한 사람이 신체 강화 계열의 능력자로 각성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이가 회피 계열의 능력자로 각성하고는 했다.

“생각도 못 한 결과라 당황스럽기는 해도… 우진 씨는 우진 씨니까요. 회복만 잘된다면 얼마든지 축하해 줄 수 있어요.”

“맞습니다.”

날 보며 미소 짓는 민아린에게 마주 웃어 주는데, 천사연이 에드워드를 배웅하고 돌아왔다.

“일단 측정 센터에 예약을 잡아 둬야겠군.”

천사연은 김우진이 나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에드워드를 믿고 있다는 거겠지.

“측정을 받으면 능력의 변화도 알아낼 수 있습니까?”

“일단은. 하지만 정확한 판단은 본인이 해야겠지.”

김우진이 A급이 된다면, C급이었던 존재감 흐리기 능력도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어떤 계열의 능력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전투 능력이라 해도 C급에서 A급이 되었으니 키도 더 커지고 체력도 늘어날 것이다.

“길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를 숨기거나 비공개 처리할 수 없어. C급에서 A급으로 등급이 상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한동안 시끄러울 거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열이 내리고 있는지, 김우진은 미간을 구기지 않은 채로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얼굴은 아직 좀 붉었지만 이 정도면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녀석이 깨어나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벌써 피곤해지는 느낌이라 나는 지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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