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버틸 수 있겠어?”
“일단은요.”
차가운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웅, 박건호의 손바닥에 놓여 있던 5개의 쇠구슬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날고 있는 나와 박건호의 몸,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는 우서혁, 추가로 쇠구슬의 움직임까지. 매 순간 급격하게 줄어드는 기운에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하아악!
쿠우웅!
또다시 입을 벌리려던 몬스터를 향해 쇠구슬을 날렸다.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휘청인 몬스터가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나와 박건호를 노려봤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노려봤다. 아무래도 내가 박건호와 우서혁을 보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으윽!”
몬스터가 팔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움직임을 눈치챈 박건호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콰가각! 몬스터의 날카로운 손톱이 아슬아슬하게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 벽을 할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서혁이 파고들었다. 입을 쩍 벌린 늑대가 몬스터의 목덜미를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크르릉, 짐승의 울음소리와 몬스터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몬스터가 우서혁을 떼어 내기 위해 몸과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지만, 우서혁은 발톱을 몬스터 몸에 박아 넣으며 버텨 냈다.
그사이 나와 박건호는 우서혁이 폭발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쇠구슬을 날렸다.
키이이익!
아악! 몬스터의 비명에 B급 길드원 몇몇과 힐러팀이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박건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쿠우웅, 쿵!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내부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허억, 헉…….”
숨이 거칠게 새어 나왔다. 축 늘어진 내 몸을 박건호가 고쳐 안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
한계에 부딪혔는지 기운이 날카롭게 심장을 찔러 댔다. 자꾸만 흐려지는 눈에 힘을 주고 버텼다.
겨우 우서혁을 떼어 낸 몬스터는 목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로 상체가 젖어 들었다. 치명상을 입은 몬스터가 입을 벌리고 기운을 흡수하려 했지만, 때마침 길드원이 모든 몬스터를 소탕하는 데 성공하면서 빨아들일 게 남아 있지 않았다.
다친 목덜미와 쇠구슬에 여러 번 얻어맞은 몬스터는 몸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임을 깨달은 몬스터가 그 어느 때보다 집요하게 나를 노리기 시작했다.
히히힉! 히힉!
입을 찢으며 괴이하게 웃은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고는 진득한 체액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새까만 색의 체액은 벽에 묻자마자 연기를 내뿜으며 벽을 녹여 냈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이면 죽일 수 있을 텐데, 끊임없이 체액을 뱉어 내는 몬스터에게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팀장님.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뭐?”
“이러다간 끝이 없어요. 모두가 지친 상태인데 이렇게 계속 끌려가다가는 피해도 커질 겁니다.”
내 말에 박건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체액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몬스터 주변을 맴도는 우서혁을 불렀다.
“우서혁 씨. 팀장님 등에 업고 같이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우서혁이 눈을 번뜩이며 그르렁 울었다. 온몸에서 거부가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팀장님과 우서혁 씨가 한 팀으로 움직이세요. 저는 따로 떨어져서 몬스터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꼬리를 휙휙 흔들던 우서혁이 못마땅한 얼굴로 등을 살짝 숙였다. 우서혁 위에 올라탄 박건호가 쇠구슬을 쥐며 내게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 둘에게서 떨어진 나는 높게 날아올랐다. 내 예상대로 몬스터가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리며 두 팔을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몬스터의 거대한 손에 붙잡힐 것이다.
키이이익! 키이익!
나는 몬스터에게 최대한 혼란을 주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양방향에서 공기를 가르는 몬스터의 두 팔과, 쏟아지는 체액을 침착하게 피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기는 불가능했고, 조금씩 상처가 늘어 갔다.
몬스터가 내게 한눈판 사이, 박건호를 등에 업은 우서혁은 몬스터 시야가 닿지 않는 등 뒤로 이동했다. 높이 뛰어올라 벽을 발판삼은 우서혁이 다리에 힘을 주고 쏘아지듯 몬스터를 향해 덤벼들었다.
“크윽……!”
몬스터의 손톱에 어깨가 크게 베였다. 동시에 몬스터의 머리 위로 착지한 우서혁이 발톱을 몬스터의 이마에 박아 넣었다.
끼이이이익―!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입이 쩍 벌어졌다. 박건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길게 벌어진 입 안으로 쇠구슬을 쏟아부었다.
“허억, 헉.”
불안하게 흔들리는 기운에 나는 능력을 끄고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어깨에서 뜨거운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이윽고.
콰아앙!
새하얀 빛이 번쩍 터지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끼이이이! 쉴 틈 없이 연달아 터지는 폭발은 몬스터의 입안과 더불어 몸 자체를 태웠다. 살점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터지기 직전 뒤로 물러서 있던 우서혁과 박건호도 바닥으로 내려왔다. 1분여 가까이 멈추지 않고 터지던 폭발이 끝나자,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린 몬스터가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몬스터 시체 밑으로 검은 피가 가득 퍼져 나갔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끝이다.
“와아아!”
“이겼다!”
각자 치열한 전투를 치르느라 거지꼴이 된 길드원들이 신난 목소리로 환호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삐죽삐죽 요동치던 기운도 팔찌의 힘으로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 갔다.
“와,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어.”
“팀장님이랑 비서님도 대단한데, 한이결 용병님도 장난 아니다. 확실히 여기저기서 부르는 이유가 있네.”
“고생하셨습니다, 모두!”
우서혁 등에서 내려온 박건호가 길드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변신을 푼 우서혁은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옷을 꺼내 입었다.
“긴장 풀지 말고, 주변 잘 살피도록. 측정 능력자 상태는 어떻지?”
“다행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몸 추스르는 대로 측정 시작하라고 전해.”
“팀장님, 출구 확인 마쳤습니다. 정상적으로 열렸으며, 몬스터나 함정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좋아. 숨 좀 돌리고 바로 이동을 시작하겠다. 그때까지 무기 점검하고 부상자는 치료받도록.”
그 말에 나는 아직도 피가 흘러내리는 오른쪽 어깨를 내려다봤다. 치료받긴 해야 하는데, 기운이 회복되지 않아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이결 씨!”
조금만 더 쉬다가 힐러팀을 찾아가려는데, 민아린이 날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그 뒤에는 김우진도 함께였다.
“세상에, 피 좀 봐!”
“다, 다쳤어?”
나는 가까이 다가온 김우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다행히 안색도 멀쩡하고 귀를 타고 흘렀던 피도 보이지 않았다.
“김우진. 괜찮아?”
그래도 혹시 몰라 물어봤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청각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
내 질문에 김우진이 눈가를 붉히며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당연히 괜찮아. 다친 건 너잖아. 어깨가…….”
“우진 씨 말이 맞아요. 지금 이결 씨가 누구 걱정할 처지예요? 옷 좀 벗어 봐요. 치료해 줄게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주섬주섬 셔츠 단추를 풀었다. 입고 있던 연한 베이지색 셔츠는 어깨에서 흐른 피로 반절이 젖은 상태였다.
상처는 내 생각보다 상태가 나빴다. 겉 살점이 거칠게 찢어진 어깨를 본 민아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완전 걸레짝이 됐네요.”
걸레짝이라니… 너무해.
김우진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녀석의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내가 강했으면… 이런 쓸데없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싸울 힘이 있었다면 네가 다치지 않게 지킬 수 있었을까?”
“…….”
찬찬하게 들려오는 그 말에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김우진의 말은 낯설지 않았다. 한때는, 나도 매 순간 저런 생각을 했다. 혼자 남겨진 새벽이 미치도록 외로울 때면 목구멍까지 치솟은 울분을 삼켜 내고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김우진에게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김우진. 넌 지금으로도 충분해.”
“…….”
“내가 다치면 치료해 주는 민아린 씨처럼, 너도 날 많이 도와주고 있잖아. 그거면 됐지.”
무엇보다 김우진 덕분에 골칫거리였던 정보꾼도 쉽게 얻어 내지 않았나. 위로하려고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동감해요. 이결 씨는 눈 돌리면 다쳐 오는데, 저 혼자서는 케어가 안 된다고요. 우진 씨가 필요해요.”
나와 김우진을 지켜보던 민아린이 새침하게 거들었다. 머쓱해진 나는 괜히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깨를 봤다. 어느새 상처는 민아린의 능력으로 피가 멎고 천천히 아물어 가고 있었다.
“한이결.”
길드원들을 돌아보고 온 박건호와 우서혁이 내게 걸어왔다. 어째 둘 다 힘든 전투를 끝낸 것치고 표정이 밝고 기분도 상쾌해 보였다.
“고생했군.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빠르게 죽일 수 있었어.”
박건호의 말에 우서혁이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쉽단 말이지. 정말 우리 팀에 들어올 생각 없나?”
“안 가요, 안 가. 이 고생을 하는데 가고 싶겠습니까?”
“고생이야 했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잖아.”
나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박건호를 올려다봤다. 재미는 개뿔. 진짜 성격 이상하네.
“팀원들도 다 괜찮지 않나? 함께 활동하면 분명 좋을 거다.”
“거절하겠습니다.”
스카우트 병이 다시 도진 건지, 단호한 대답에도 박건호는 포기하지 않고 팀에 들어오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울적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던 김우진의 표정이 점차 싸늘해졌고, 민아린은 재밌다는 듯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하아…….’
내 팔자야. 한숨을 내쉬던 나는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김우진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죽은 줄 알았던 몬스터의 새빨간 동공이 나를 향해 있었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으며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몬스터가 검은 피로 가득 젖은 입을 길게 찢어 웃었다.
“…….”
주변을 가득 채운 소리가 희미해지고,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불쾌한 직감이 차갑게 식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몬스터가 마치 놀리듯 천천히 입을 벌렸다. 이빨로 가득 찬 틈 사이로 무언가가 뻗어 나왔다.
“안…….”
안 돼.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앞을 가로막고 앉아 있는 김우진의 어깨를 붙잡아 옆으로 거칠게 밀쳤다.
푸욱!
살점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몬스터의 입 안에서 뻗어 나온 새까만 촉수가 옆구리를 관통했다. 김우진을 붙잡느라 앞으로 쏠렸던 몸이 바닥으로 넘어지는 동시에 질척한 무언가를 뱉어 냈다.
“쿨럭!”
내 입에서 나온 거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새까만 피였다. 반사적으로 감싸 쥔 옆구리에서 붉은 피와 함께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독이었다.
“이, 이결 씨!”
“한이결!”
히힉……. 히히히…….
귓가를 메우는 비명 사이로 히죽거리는 몬스터의 웃음이 들려왔다. 심수연이 창을 들고 몬스터의 목을 단번에 베어 냈다. 데굴, 바닥을 굴러가는 몬스터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눈앞이 훅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