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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5)화 (65/394)

65화

17. 검은 연기에 휩싸인 해골

“한이결!”

놀란 박건호가 달려오기 전에, 우서혁이 날 붙잡은 촉수를 찢어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여섯 개의 촉수가 어둠 속에서 새롭게 나타났다.

“꺄악!”

날 끌고 가는 데 실패한 촉수가 실드 능력자의 몸을 낚아챘다. 우서혁이 급히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날 불렀다.

“한이결 씨!”

말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람으로 우서혁을 감싸 이동 속도를 높여 주자, 우서혁이 끌려가던 실드 능력자를 붙잡고 촉수를 뜯어냈다.

“세 명 다 뒤로 와!”

박건호의 외침에 실드 능력자를 구해 낸 우서혁을 능력으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박건호가 쇠구슬 세 개를 몬스터를 향해 날렸다.

쿠우웅!

폭발로 사위가 번쩍이며 어둠 속에 몸을 가리고 있던 몬스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말미잘처럼 흐물거리는 촉수를 가진 몬스터 여러 마리가 불에 타올라 허우적거렸다. 그 뒤로 북을 두드리는 코볼트 무리가 입을 쩍 벌리며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카각, 카가칵! 캬악!

그 소리에 멈추어 선 채로 움직이지 않던 거미 몬스터가 다시 몰려들었다. 박건호와 원거리팀이 계속해서 몬스터를 견제하며 우리는 뒤로 물러섰다.

“미친, 저딴 몬스터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등급도 높아 보이는데?”

길드원들이 도망치며 투덜거렸다. 쫓아오는 몬스터를 피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던 우리는 복도 끝에 커다란 방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키아아악! 캬악!

등 뒤에서 몬스터가 빠른 속도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돌아본 박건호와 우서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쫓기고 있는 상황에 고민할 여유 따위는 없어서, 결국 팀원들을 따라 방으로 진입했다.

“막을 만한 게 있나?”

“출구부터 확보해!”

“팀장님!”

제일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본 근접팀 한 명이 방 가장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출구로 보이는 문은 있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숨겨진 장치를 발견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몬스터를 막고 있을 테니 비전투 인원은 최대한 뒤로 빠져서 장치를 찾아보도록.”

“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길드원 사이에서 초조함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뭔가 이상하다. 우리밖에 없는 텅 빈 방이,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복도보다 위험하게 느껴졌다. 굳은 듯이 서 있는 내게 김우진이 다가왔다.

“한이결, 왜 그래?”

“아니…….”

말을 아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불안하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출구 문을 열어서 최대한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게…….

무심코 천장을 바라본 나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다가 이내 빠르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

“한이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눈. 스으으읍, 호흡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모두 도망―”

끼이이이이익!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를 찌르는 끔찍하고 기괴한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아아악!”

“끄아악!”

다가올 몬스터를 대비하던 길드원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내 곁에 서 있던 김우진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안 돼!”

급히 붙잡은 김우진의 두 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정신 차려, 김우진!”

오싹한 공포가 등줄기를 내달렸다. 본능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자, 날 바라보는 거대한 눈 아래로 무언가가 쩍 벌어지며 초승달 같은 검은빛이 생겨났다. 고통받는 우리를 지켜보며 웃는 몬스터의 입이었다.

나는 기절한 김우진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결 씨.”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누군가가 내 어깨를 단호하게 붙잡았다. 민아린이었다.

“침착하세요.”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을 한 그녀가 김우진을 빠르게 살펴봤다.

“다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치유할 수 있어요. 몬스터 기운에 제압당해서 기절했을 뿐이에요.”

“아…….”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요. 알죠?”

“몬스터가 도착했습니다!”

쿵! 쿵!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길드원이 외쳤다. 방 너머로 북소리가 울렸다.

“부상자는 힐러팀이 확실하게 케어할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몬스터를 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불안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민아린의 말 덕분에 이성을 차릴 수 있었다. 김우진을 민아린에게 넘기며 박건호와 우서혁에게 말했다.

“팀장님. 근접팀 한 명만 제게 붙여 주실 수 있습니까?”

“이유는?”

심각한 표정으로 거대한 몬스터를 노려보고 있던 박건호가 의아한 눈빛을 했다.

“천장에 붙어 있는 몬스터와 복도로 몰려오는 몬스터. 둘 다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제 능력이 받쳐 준다면.”

“널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군.”

“네. 복도는 팀장님이, 이곳은 우서혁 씨가 맡아 주십시오. 제가 두 분의 능력을 보조하겠습니다.”

두 명을 동시에 봐야 하는 데다, 박건호 같은 경우에는 쇠구슬을 다루기 때문에 한층 더 섬세한 조절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양쪽 상황을 지켜보면서 능력을 써야 하는 내 곁을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 설명을 알아들은 박건호가 비전투팀을 지키던 한 명을 손짓으로 불렀다. 번개가 흐르는 창을 다루는 능력자, 심수연이었다.

“네 말대로 하는 게 좋겠군. 심수연은 한이결 제대로 지키고. 우서혁 비서.”

우서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능력을 끌어 올렸다. 양팔뿐만 아니라, 온몸이 부풀어 오르며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찌이익, 신체 변화를 견디지 못한 옷이 찢어져 나가고, 그 사이에 결 좋은 털이 차올랐다.

쿠웅!

변신을 마친 우서혁이 거대한 앞발로 바닥을 내리치며 꼬리를 흔들었다.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심수연 씨.”

바람으로 우서혁과 박건호의 몸을 휘감으며 말하자 심수연이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창을 한번 휘둘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지켜 줄게요.”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비전투팀을 지키는 인원 몇을 제외하고 모두가 박건호 곁에 섰다. 박건호가 쥐고 있던 쇠구슬 여러 개를 허공에 던졌다. 나는 그 쇠구슬을 공중에 모조리 띄우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를 기다렸다.

그사이, 움직임에 제한이 없어진 우서혁이 천장에 붙어 있는 몬스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단번에 목덜미를 낚아챈 우서혁이 바닥으로 몬스터를 끌어 내렸다.

히힉, 히히힉!

몬스터는 녹아내린 피부를 가진 인간형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눈과 찢어진 입, 하반신은 잘려 나간 것처럼 상반신만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기괴할 정도로 기다란 두 팔을 휘둘렀다. 우서혁은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확실히 내 힘이 더해지자 공중에 있는 몬스터를 상대로도 훨씬 편해 보였다. 나는 안심하며 박건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를 쫓아오던 거미 몬스터부터 촉수, 북을 든 코볼트까지. 꾸역꾸역 밀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박건호가 손짓했다.

그의 전투 스타일은 이미 경험해 봐서 알았다. 선두에 선 몬스터는 근접팀에게 맡기고 공격거리가 먼 촉수부터 해치우는 편이 이득이었다. 공중에 띄우고 있던 15개의 쇠구슬을 촉수 몬스터를 향해 일제히 날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쇠구슬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박건호가 정확한 타이밍에 능력을 발동시켰다. 콰아앙! 땅이 흔들리며 새까만 촉수들이 폭탄에 터져 나갔다. 동시에 근접팀이 거미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다.

“후우…….”

공중에서 몬스터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우서혁과, 박건호의 쇠구슬을 모조리 컨트롤하는 상황에 기운이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우웅, 팔찌가 바르르 떨며 보석이 빛났다.

우서혁의 공격으로 여기저기 다친 거대한 몬스터가 입을 쩌억 벌렸다. 턱이 한없이 내려오며 길게 늘어나는 입 안엔 가시처럼 생긴 새까만 이빨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하아아악!

“아악, 뭐야!”

“으윽!”

거대한 몬스터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자, 눈앞이 일그러지며 몸이 비틀거렸다. S급인 우서혁과 박건호도 머리를 휙휙 내젓거나 이마를 짚으며 휘청였다.

길드원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내게 달려드는 거미 몬스터를 죽이던 심수연도 비틀거렸다.

“허억!”

축 늘어진 채로 가쁜 숨을 내쉬던 측정 능력자가 눈을 부릅뜨며 상체를 일으켰다.

“티, 팀장님! 등급 기운이…!”

“으윽!”

“몬스터의 상태가!”

키이이익! 키이익!

근접팀과 전투를 벌이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배를 까뒤집으며 고통스럽게 버둥거렸다. 미간을 찌푸린 박건호가 측정 능력자에게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지?”

“우윽, 중앙에 있는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측정 능력자가 어지러운지 헛구역질을 하며 힘겹게 대답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B급 길드원의 공격이 통하지 않던 거미 몬스터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A급이었던 등급이 B급 아래로 떨어졌다는 증거였다.

그제야 우리는 1층에서부터 있었던 이상 현상의 원인을 깨달았다. 다른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한 거대 몬스터는 몸집이 더 크게 불어나고 상처가 사라졌다.

“다른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하는 몬스터라니…….”

“1층에서부터 3층까지 죄 그랬잖아. 범위에 제한이 없는 건가?”

“속이 매슥거려…….”

몬스터가 기운을 흡수하면서부터 방 안에 있는 모든 능력자가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중 가장 예민한 측정 능력자는 더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하아, 우서혁 씨. 버틸 수 있겠습니까?”

두통과 매스꺼움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힘겹게 묻자 우서혁도 입을 벌리고 거친 숨소리를 뱉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의 등급 수치가 낮아졌다고는 해도 수가 워낙에 많아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우서혁 혼자 더욱 거대해진 몬스터를 감당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박건호 쪽 상황이라도 정리해야 해.’

꼬리를 거칠게 흔들며 숨을 고른 우서혁이 훌쩍 뛰어오르며 다시금 몬스터에게 덤벼들었다. 히히히힉! 능력을 흡수한 만큼 등급 수치가 올라갔는지, 몬스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나는 울렁이는 속을 참아 내며 박건호에게 다시 바람을 흘려보냈다. 그에 맞춰 쇠구슬을 다시 공중에 띄워 올린 박건호도 속도를 높여 몬스터를 처리해 나갔다.

“한이결!”

몰려든 몬스터의 숫자가 반절 아래로 떨어지자 마무리는 길드원들에게 맡긴 박건호가 급히 달려왔다. 바통 터치하듯 날 지키던 심수연은 박건호의 명령에 전투 현장으로 이동했다.

“저 좀 부축해 주세요.”

내 말에 가까이 다가온 박건호가 허리와 팔을 붙잡아 훌쩍 일으켜 세웠다. 나는 박건호와 내 몸을 동시에 공중에 띄우며 우서혁을 상대하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바라봤다.

남은 기운이 얼마 없었다. 슬슬 결판을 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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