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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4)화 (64/394)

64화

  

게이트로 들어온 지 삼 일째. 이상 현상이 발견되기는 했어도, 정해진 일정에는 큰 차질 없이 3층으로 무사히 도착한 팀은 A급 몬스터를 앞에 두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A급 몬스터를 보고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야.”

“S급 게이트 맞냐, 진짜…….”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허공을 떠다니는 A급 몬스터 유적지 망령. 20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새파란 안광을 번뜩이며 달려들었지만, 팀원들은 그저 웃는 얼굴로 신나게 무기를 휘둘렀다.

그어어어, 그어억!

크어어어!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몬스터를 보고 있자니 불쌍한 마음마저 들었다. A급 11.3% 수치로 간당간당하게 본래 등급을 지켜 낸 유적지 망령은 그렇게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느긋하게 전투를 지켜보던 박건호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 속도면 오늘 점심시간 전에 게이트를 나가겠군.”

“빨리 나가면 좋죠.”

“하아. 나가면 인터뷰도 해야 하고 관리 본부에도 가야 하는데. 게이트는 게이트대로 재미없고, 할 일만 많아지고. 완전 손해군.”

“투덜대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팀장님.”

별걸 다 귀찮아하네. 박건호를 타박하던 나는 구석에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우서혁을 발견했다.

“우서혁 씨. 뭐 하십니까?”

그에게 다가가자 우서혁이 날 돌아보며 보고 있던 것을 가리켰다.

“이건… 해골?”

“못 보던 문양입니다.”

입을 벌린 해골이 검은 연기에 휩싸인 생김새였다. 1층과 2층에서는 보지 못했던 문양이라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팀장님.”

잠시 고민하던 나는 박건호를 불렀다. 길드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지?”

“이 문양이요. 이전에도 보신 적 있습니까?”

해골 문양을 본 박건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흠. 아니. 이번에 처음 보는데.”

“1층과 2층에도 없었죠? 저는 못 봤는데.”

“제가 알기로도 없었습니다.”

“이 게이트에서 문양이 새겨진 장소는 문을 여는 장치 말고는 없어.”

“그럼 이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입가를 툭툭 두드리던 박건호는 이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당장 큰 피해가 없으니 일단은 내버려 두자고. 지금으로선 알아볼 방법도 없으니.”

“그렇긴 하죠.”

우서혁도 동의하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문양을 등지는데, 박건호가 내게 어깨동무하며 능청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클리어도 일찍 끝나겠다, 전부터 미뤄 왔던 식사를 오늘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저 피곤한데요. 그리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 관리 본부도 가야 한다면서요?”

“인터뷰야 나가면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바로 하면 되고, 관리 본부는…… 뭐, 늦게 가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니 그쪽에서 기다리겠지.”

“무슨 말이 그럽니까? 제대로 하고 오세요.”

박건호의 헛소리에 대충 대답하던 나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뒤늦게 평소와 뭐가 다른지 깨달았다. 박건호의 집적거림을 쳐 내 주던 김우진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김우진은 힐러팀 사이에 서 있었다. 싸늘한 눈빛으로 박건호를 노려보던 김우진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나랑 아예 거리를 두겠다는 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저 꼴을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짜증이 좀 올라왔다.

“그럼 내일이라도… 왜 그러지?”

“…아닙니다. 그보다 식사에 왜 이렇게 집착하십니까? 저 스카우트 할 것도 아니라면서요.”

내 말에 박건호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대답했다.

“탐나는 마음이야 아직도 있지. 당연한 거 아닌가?”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워낙에 단호하게 거절해서 티 내지 않았을 뿐이라. 혹시 아쉽나? 그럼 한번 열심히 꼬셔 줄 수 있는데.”

“됐습니다.”

“그러지 말고. 식사라도 하면서 느긋하게 대화해 보는 게?”

“나중에요, 나중에.”

글쎄, 천사연 과거 신경 쓸 때가 아니라 그런지 영 끌리지 않네. 시큰둥해진 나는 어깨에 둘러진 박건호의 무거운 팔을 쳐 냈다.

“재촉하지 마세요. 어차피 저한테 대가도 치르셔야 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박건호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졌다. 대표실에서의 일이 아니었으면 여기에 내가 왜 와 있겠…….

쿠구구궁!

“팀장님!”

“으악!”

그때였다. 땅이 크게 울리며 길드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겨우 잡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조심해!”

“피해! 젠장!”

바닥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런 미친! 나는 떨어지는 길드원들을 보며 급히 능력을 끌어 올렸다.

“큭, 한이결! 잡아!”

나와 박건호가 서 있는 바닥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내 몸을 잡아당기는 박건호와 붙으며 김우진과 민아린을 찾았다.

“김우진! 민아린 씨!”

다행히 우서혁이 파편에 부딪히지 않도록 둘을 잡아 줬다. 나는 그 틈을 타 최대한 끌어 올린 능력을 폭발하듯 내뿜었다.

후웅, 아래로 떨어지던 팀원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행히 D17 구역 게이트와 다르게 능력이 정상적으로 발동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던 팀원들이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낙오된 사람 없지?”

“인원 체크 완료! 모두 멀쩡해.”

“젠장, 무기 떨어트렸어.”

발밑은 디딜 곳 하나 없이 어둠만이 가득했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끼며 힘겹게 말했다.

“오래, 못 버팁니다.”

지이잉, 팔찌가 떨리며 기운이 채워졌지만 5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식은땀을 흘리는 날 발견한 박건호가 주변 팀원들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흩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아. 아래로 내려간다. 한이결,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애들 떨어트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바람을 조절하며 팀원들의 몸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어둠 속으로 진입하자 길드원 한 명이 손전등을 꺼내 아래를 밝혀 주었다.

“후우…….”

타닥. 발이 땅에 닿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생했군.”

축 처진 나를 부축한 박건호가 우서혁에게 물었다.

“그쪽은 괜찮나?”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이제부터가 문제군요.”

“이결 씨!”

민아린과 김우진이 내게 달려왔다. 민아린이 신중한 눈빛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기운이…….”

“지금은 좀 낫습니다.”

나는 팔찌를 내려다봤다. 붉은 보석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확실히 A급 아이템이라 그런지 효과가 나쁘지 않네.

“혹시 모르니까 채워 드릴게요.”

“그게 좋겠군.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민아린에게 기운을 받으며 차분하게 상황을 살폈다. 아래로 떨어졌으니 최소한 2층. 아니면 그보다 더 아래일 수도 있겠다.

길드원에게 손전등을 건네받은 우서혁이 양옆을 번갈아 비췄다.

“지형 자체는 유적지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 보려고 했던 1층 숨겨진 장소일 수도 있겠군.”

“3층에서부터 떨어졌으니 가능성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팀장님.”

길드원 중 한 명이 급히 다가왔다. 측정 능력자의 손을 잡아끈 이는 창을 다루던 말총머리 길드원, 심수연이었다.

“뭐지?”

“이분 상태 좀 봐줘요. 갑자기 속이 안 좋다고 하는데.”

“제가 볼게요.”

마침 내게 기운을 다 채워 준 민아린이 나섰다.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린 측정 능력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상해요. 능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부족했을 때처럼 속이 매슥거려요.”

그의 손을 붙잡은 민아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기운 상태는 나쁘지 않아요. 기운 말고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윽…….”

비틀거리는 측정 능력자의 어깨를 심수연이 붙잡았다.

“멀미하는 것 같아요…….”

“큰일이군.”

제정신을 못 차리는 측정 능력자를 심수연이 등에 업으며 물었다.

“어떡할까요, 팀장님?”

“기운 문제가 아니라면 이 공간 자체가 문제겠지. 추가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데, 등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뒤를 돌아봤으나 별다른 게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은 순간, 어둠 너머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사삭. 사사삭.

은밀하게 이동하는 소리. 오싹, 소름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김우진!”

눈앞에 있는 김우진의 팔을 다급히 잡아챘다.

키아아아악! 캬아아악!

김우진의 몸이 내 품 안으로 들어온 그 순간, 녀석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거미 몬스터가 불쾌한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뒤에 몰려오던 다른 거미 몬스터도 일제히 울부짖었다.

키아아악! 키아악!

“뒤로 물러서십시오!”

우서혁이 셔츠를 찢으며 두 팔을 변형시켰다. 그의 말대로 김우진을 안은 채 능력을 사용해서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측정 능력자와 심수연도 마찬가지로 급히 물러섰다.

“원거리팀, 힐러팀 지키고. 근접팀은 대열 갖춰.”

박건호가 명령하는 동시에 쇠구슬을 던졌다. 쿠우웅, 땅이 흔들리며 불꽃이 확 튀었다.

끼아아악!

보라색 피 사이로 쾌쾌한 연기가 퍼졌다. 근접팀이 코와 입을 가리며 외쳤다.

“독입니다!”

“쯧. 대열 변경! 원거리팀!”

“여기 있어.”

나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우진을 힐러팀 사이에 두고 앞으로 나섰다. 손을 휘둘러 우리 쪽을 향해 흘러내려 오는 독 연기를 반대로 몰아냈다.

쿵!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지?”

잔뜩 몰려든 거미 너머에서 묵직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에 길드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춤 물러섰다.

키이익, 키이!

샤아아악!

북소리가 들려오자 거미들은 일제히 멈춰 서서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에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상황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북소리. 무언가를 기다리는 몬스터.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박건호를 돌아봤다.

“팀장님, 아무래도 이거…….”

“그래. 지금은 상대할 수 없겠군.”

“최대한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좋겠습니다.”

긴장 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길드원 모두가 동의했다.

“혹시 모르니까 실드 펼칠게요. 그 틈에 도망가죠!”

실드 능력자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

새까만 촉수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내 팔을 휘감았다. 문어 다리처럼 두껍고 질척이는 그것은 빨판을 이용해 팔에 달라붙으며 강하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크윽……!”

치지지직!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자 몬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발이 쭉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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