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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3)화 (63/394)

63화

“이게 뭡니까?”

“피로를 풀어 주는 사탕입니다. 주무시지 않을 거라면, 먹어 두는 편이 내일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연한 하늘빛의 아이템은, 정말로 사탕과 똑 닮아 있었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눈인사를 보내며 사탕을 입 안에 넣었다.

“……아무 의심 없이 드시는군요.”

피로를 풀어 주는 아이템치고 생각보다 달달했다.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우서혁이 내뱉은 의미 모를 말에 대답했다.

“의심해야 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혹시 단것을 좋아하십니까?”

“네. 그보다 이거 효과가 좋네요.”

하루 종일 게이트 내부를 돌아다닌 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두통이 살짝 있었는데, 사탕을 먹으니 입 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구하기 쉬운 아이템이지만 간혹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더군요.”

꽤 관심이 가는 아이템이었다. 이 사탕만 먹으면 피로가 싹 가신다니. 신체도 A급이겠다, 잘만 하면 일주일은 안 자고 돌아다닐 수 있을지도.

“어디서 구합니까?”

여러 개 사서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서혁에게 출처를 물었다.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었다고는 해도, 부작용이 아예 없는 아이템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질문에 묘한 표정을 지은 우서혁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예, 뭐…… 그렇겠죠.”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나 음료수도 부작용이 있으니, 이 아이템도 당연히 있겠지. 나는 의아함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사탕이야 더 드릴 수는 있지만, 어쩐지 한이결 씨는 과하게 남용할 것 같군요.”

어떻게 아셨대. 나는 머쓱함에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럼 파는 곳이라도…….”

“그것도 좀 그렇군요. 한 20개쯤 사실 것 같아서.”

“하하, 설마요.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저 그래도 A급이라 이런 거 몇 개 좀 먹는다고 큰일 안 나거든요?”

한 번 더 요청해 봤지만 우서혁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

아니, 이럴 거면 아예 주지를 말든가. 괜히 사람 설레게 만들고 진짜 너무하시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생각했다.

‘천사연한테 구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어째 갈수록 천사연에게 시킬 거리만 늘어나는 기분이다.

***

길드원들이 잠자리를 정리하는 사이, 나와 박건호, 우서혁은 다시 한번 모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 옆에 있는 숨겨진 길을 어떻게 할지 정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 가 볼 만하다는 의견이지만 고집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나도 가는 건 상관없는데 책임자로서 너만 보낼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그냥 평소처럼 3층까지 클리어하는 게 좋겠군.”

“같은 의견입니다. 굳이 문제를 찾아서 헤집을 필요는 없습니다.”

상의 끝에 결론은 가지 말자는 쪽으로 정해졌다. 아쉽지만, 나중에 다시 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에이, 재미없게.”

“가뜩이나 몬스터 등급도 낮아져서 지루한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몬스터를 만나고 싶습니다!”

“3층까지 다 깨고 가 보는 건 어때요?”

“맞아. 힘든 사람은 제외하고~”

내려진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오히려 길드원들이었다. 푹 쉰 덕에 활기를 되찾은 전투팀이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비전투팀이 피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기각. 애초에 멋대로 계획을 바꿔서 일정을 늘리는 건 문책감이야.”

“뭐야. 말이 다르잖아요. 어제까지는 팀장님이 먼저 가 보자고 했으면서.”

“배신하는 거예요?”

항의하는 길드원들을 향해 박건호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멍청한 놈들. 그깟 문책이 무서워서 의견을 바꾼 줄 알아?”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어차피 문책 이래 봤자 경위서 좀 쓰고 끝이야. 그건 한두 번 써 본 게 아니니까 자신 있지. 내가 정말 무서운 건…….”

박건호가 목소리를 깔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마스터한테 불려 갈 때다. 이번 건 안 돼. 느낌이 왔어. 멋대로 행동했다가는 대표실에서 호출이 올 거라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끝까지 개소리잖아.

저래 놓고 길드원들을 한심해하는 게 웃겼다. 옆을 보니 우서혁도 경멸의 눈빛으로 박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건호에게 설득당한 길드원들은 군소리 없이 명령에 따라왔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오자 사암으로 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어디 보자.”

문 앞에 소복이 쌓인 모래를 대충 발로 쓱쓱 밀어낸 박건호가 삼각형이 새겨진 돌을 꾹 밟았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숨겨진 장치를 건드려야 했다.

쿠구구궁!

모래가 파스스 떨어지며 문이 입을 벌리듯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날카로운 화살이 박건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흠?”

목을 살짝 숙여 공격을 가볍게 피한 박건호가 쥐고 있던 쇠구슬을 안쪽으로 던졌다.

키에에에엑!

콰앙, 폭발음과 함께 몬스터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수십 개의 화살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물러서세요!”

박건호 앞으로 뛰쳐나간 길드원이 새하얀 장막을 펼쳤다. 티잉! 다행히 화살은 실드를 뚫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몬스터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문 앞까지 나와 있다고?”

박건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몬스터들은 원거리팀이 쏟아붓는 공격에 도미노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실드를 거두고 문을 넘어가자 바닥을 가득 채운 몬스터 시체가 보였다. 새까만 해골 뼈와 낡은 활. A급 몬스터 아처로, 본래라면 이렇게 죽을 정도로 쉬운 상대는 아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아처의 수치를 확인한 측정 능력자가 박건호에게 말했다.

“팀장님. 수치가 1층보다 더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B급이 됐나?”

“네. B급 78.4%입니다. 이전에는 A급 21.54%였고요.”

“등급은 떨어졌는데 문 앞까지 찾아올 정도로 호전적으로 변했다라…….”

박건호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등급이 낮아진 거야 1층에서부터 예상했던 문제니 둘째 치더라도, 우리가 나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을 하는 것은 굉장히 이질적인 행동이었다.

‘그래. 마치…… 우리가 언제 올지 알고 있을 정도로 지능이 생긴 것처럼.’

하지만 S+급 정도 되는 몬스터라면 모를까, 등급까지 떨어져 B급이 된 몬스터가 그 정도 지능이 있다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박건호가 길드원들을 모았다.

“이상한 점 발견한 것 있나?”

“딱히 없습니다.”

“상황이 영 애매하기는 하네요.”

“살아 있었으면 주술 같은 거에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다 죽여 버려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 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결국 우리는 찝찝함을 덮어 둔 채로 움직였다.

“분위기가 묘하네요.”

“조심하세요. 김우진 너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민아린과 그 옆에 김우진에게 주의를 시키며 주변을 살펴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등장한 몬스터는 커다란 애벌레 몬스터, B급 그레이트 라바였다. 느릿한 몸에 비해 등 곳곳에 뚫려 있는 독 구멍으로 사방에 독을 뿌리는, 근접 능력자에게는 처리가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였다.

“뭐지?”

그러나 그레이트 라바는 독을 뿜어내기는커녕, 가만히 멈춘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은 건가 싶었지만 호흡은 하고 있는지 몸통이 작게 들썩였다.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몸집이 크고 통통한 그레이트 라바는 길드원이 근처로 다가오자 등을 둥글게 말며 움츠러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근접팀은 물러서. 독이 튈 수도 있으니까.”

원거리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도 그 사이에 껴서 능력을 사용해 그레이트 라바 한 마리를 공격했다.

몸 중앙이 잘려 나간 그레이트 라바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죽었다. 다른 그레이트 라바도 마찬가지였다. 측정 능력자가 시체에서 등급 수치를 확인했다.

“C급 69.2%입니다.”

“이것 참…….”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고민하던 박건호는 길드원들에게 그레이트 라바 시체를 모조리 태우라고 명령했다.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시체가 되살아난다거나 무언가의 힘으로 조종당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등급이 떨어져 C급이 된 그레이트 라바 시체는 일반적인 불에도 활활 타올랐다. 정리를 끝낸 팀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애초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몬스터를 정리한 팀은 3층 계단을 앞두고 휴식을 위해 짐을 풀었다.

그레이트 라바 이후로도 등급이 떨어진 몬스터의 등장은 꾸준히 이어졌다. 혹여 이상 현상으로 S+급 몬스터가 나타날까 걱정했던 것치고는 시시한 상황이었다.

강한 몬스터와의 화끈한 충돌을 기대하고 들어온 박건호나 특수작전부 팀원들은 김샜다는 반응이었지만, 그 외에 비전투팀이나 우서혁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나로서도 등급이 떨어지는 게 좋긴 했다. 민아린이나 김우진에 대한 걱정을 좀 덜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보다 문제는 등급이 아니라…….’

몬스터의 정상적이지 않은 움직임이겠지. 나만 아니라 박건호나 우서혁도 그 심각성을 느꼈는지, 1층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주변을 예민하게 살폈다.

“이결 씨.”

민아린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건네주었다. 종이컵에 담긴 것은 따듯한 김이 올라오는 보리차였다.

“고마워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잠을 자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A급 몸이 이럴 때는 참 쓸 만했다. 이틀 정도는 안 자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어서.

반면, 비전투 능력자인 민아린과 김우진은 피부가 좀 거칠어졌다. 종일 움직인 데다 잠자리도 편치 않으니 피로가 안 풀리는 것이다.

“많이 지쳐 보입니다, 민아린 씨.”

“좀 그렇긴 한데…… 2층도 끝났고. 내일까지만 고생하면 되니까요.”

“맞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요. 김우진, 너도 괜찮은 거야?”

“응.”

내 질문에 김우진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대화 이후로 김우진은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미묘하게 벌어진 거리감은 여전했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그것을 모른 척했다. 제대로 책임지고 설명해 주지 못할 거라면, 이 정도는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이 상황을 민아린도 어느 정도 눈치챈 듯했지만, 남이 끼어들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굿나잇 인사를 보냈다.

“내일 봐요, 이결 씨. 우진 씨.”

“잘 자요.”

시간이 흘러 불침번을 서는 몇몇을 제외하고 모두가 잠이 들었다. 박건호와 우서혁은 끊임없이 팀 주변을 돌며 몬스터 침입을 대비했다.

나는 잠들지 않고 김우진과 민아린의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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