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1)화 (61/394)

61화

16. 심상치 않아

코볼트를 다 해치우기 무섭게, 우리는 1시간 동안 몰려드는 고블린 무리와 난쟁이 좀비를 계속해서 상대해야 했다.

어린아이만 한 키에 기괴할 정도로 가늘고 긴 팔과 손톱을 가진 난쟁이 좀비가 목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윽…!”

급히 상체를 뒤로 빼며 난쟁이 좀비를 해치웠다. 어느새 주변에는 난쟁이 좀비 시체가 가득했다.

“어우, 엄청나구만.”

“다친 분 계시면 손 들어 주세요!”

“천 남는 거 있는 사람?”

휴식 시간을 가진 길드원들이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에 측정능력자와 박건호는 난쟁이 좀비의 수치를 확인했다.

“B급 67.2%에서 11.32%로 떨어졌어요.”

“이쯤이면 이상 현상이 있다는 건 확실하군.”

입가를 툭툭 두드리며 고민하던 박건호가 말했다.

“일단 계속 측정하고… 만약 등급이 떨어진 몬스터가 발견되면 말하도록.”

“네.”

근처에서 둘의 대화를 들은 나는 C급으로 떨어질 뻔한 난쟁이 좀비 시체를 발끝으로 툭툭 치며 생각했다.

‘등급이 떨어지는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이번 게이트는 층마다 등장하는 몬스터 등급이 다른 데다, 한번 위층으로 올라가면 아래로 내려올 수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혼자서 좀 살펴보고 싶은데.’

옆에 앉아 있는 김우진을 슬쩍 바라봤다. 분명 반대하겠지. 그렇다고 얘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뭐, 뭐야?”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내 시선을 느낀 김우진이 몸을 움츠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누가 뭐래? 그냥 본 건데.”

“두 분, 배고프지 않아요? 땅콩버터 빵 먹을래요?”

민아린이 나와 김우진에게 빵 봉지를 건네줬다.

“고마워요.”

허기졌던 참이라 빵을 바로 입에 물었다. 내 옆에 서서 빵을 먹던 민아린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SS급 게이트 갔을 때가 떠오르네요.”

“그렇네요.”

새삼 내가 한이결의 몸으로 들어온 지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충 2개월쯤 됐나.

“생각해 보면 우리 셋 다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는데 이렇게 친해진 게 신기하네요.”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우진과 민아린 둘 다, 천사연이 내 약점을 잡으려고 일부러 엮어 둔 인연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씁쓸한 생각을 밀어내며 일부러 가볍게 대답했다.

“뭐, 친해지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접점이 많아도 성격이 안 맞으면 잘 지내기 힘들잖아요.”

민아린이 내 뒤를 보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저 두 분처럼요?”

“네?”

돌아본 그곳에는 서로를 노려보고 서 있는 박건호와 우서혁이 있었다. 아니,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런 방식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우서혁 비서님을 납득시켜야 할 이유가 있나?”

“팀원 하나 납득시키지 못하는 계획이라는 겁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확인하는 편이 옳다고 보는데. 우서혁 비서는 그렇게 안 봤는데 겁이 참 많으신가 봐.”

“팀이 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이 시점에서 섣부른 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조심할 필요가 있나? 속 시원하게 다 뒤집어엎는 게 오히려 안전해.”

“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예기치 못한 상황은 항상 대비해야 합니다. 괜히 게이트 내부를 건드렸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집니까?”

“당연히 내가 책임지지. 그것도 안 하는 쓰레기일까 봐?”

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으로 싸우고 있잖아…….

“오, 싸운다. 싸운다.”

“우서혁 비서님이 많이 참았지.”

“근데 팀장님 말이 맞지 않아? 이상 현상이면 알아봐야 하잖아.”

“제대로 따지면 비서님 말이 맞지. 괜히 들쑤실 필요는 없어. 대충 깨고 나가는 게 좋지.”

“저러다 멱살 잡겠는데? 내기할까?”

“나는 팀장님이 이긴다에 만 원. 저 사람 고집을 누가 이겨?”

“비서님도 고집 하나는 장난 아니던데. 나는 비서님 이만 원.”

“일단 근접전으로 가면 비서님 이기기 힘들다. 비서님 삼만 원!”

“팀장님이 자폭할 마음으로 쇠구슬 던져 대면 비서님도 쉽게 못 이겨.”

길드원들은 둘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말리려는 기색이 없었다.

저러다 진짜 멱살 잡고 주먹질이라도 하겠는데.

“말려야 하지 않나…….”

“내버려 두면 제대로 싸울 거 같긴 하네요.”

민아린도 내 말에는 공감하지만, 굳이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김우진이야… 언제나 그렇듯 무관심하고.

‘나밖에 없냐…….’

정말 끼고 싶지 않았지만, 나마저 내버려 두면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서로를 노려보는 박건호와 우서혁 사이에 끼어들며 말하자 구경꾼들이 한층 더 열광했다.

“오오, 용병님이 끼어들었다!”

“용병님 만 원!”

“나도 건다. 용병님 이만 원!”

“이만 원 받고 삼만 원 간다!”

“저 당당한 자태를 봐. 나도 건다. 사만 원.”

“뭐야? 용병님 A급 아냐? 판돈이 왜 제일 높아져?”

“왠지 이길 것 같아. 느낌이 그래.”

얼씨구.

나는 길드원들의 대화를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험악하게 대화해서 결론이 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쪽이 먼저 시작했어.”

내 말에 우서혁은 바로 사과를 했고, 박건호는 뻔뻔하게 상대방 탓을 했다. 나는 박건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흠. 대단한 건 아니고. 전부터 신경 쓰이던 곳을 이참에 가 볼까 했는데.”

“어디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숨겨진 길 하나가 있어. 그동안 클리어 시간제한이 있어서 확인해 보지 못했던 유일한 곳이지.”

“……게이트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 상황도 이렇게 됐겠다,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지.”

“우서혁 씨는 반대하시는 거고?”

“이상 현상이 발견되지 않은 게이트였다면 상관없지만, 현재로서는 위험합니다.”

“음…….”

우서혁의 말이 맞긴 하다. 확신할 수 없는 곳을 다 함께 가기에는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 전체가 움직일 때 이야기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의견을 굽히지 않는 뻣뻣한 둘에게 말했다.

“제가 혼자서 팀장님이 말씀하신 곳을 가 보겠습니다.”

“뭐?”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늘해졌다. 이 반응은 뭐지. 나는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다 같이 움직이면 우서혁 씨 말대로 부담이니까, 제가 가서 확인해 본다면 여러모로 좋지 않습니까? 저는 비행도 가능하니 여차하면 도망치기도 쉽고.”

“안 됩니다.”

의외라는 표정을 지은 박건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우서혁이 확연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확인되지 않은 구간을 돌아다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음, 나도 웬만하면 허락해 주겠는데…. 그건 좀 무리지.”

“한이결!”

미묘한 표정의 구경꾼들 사이로 김우진과 민아린이 급히 다가왔다. 특히 김우진은 이제껏 보지 못한 흉흉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혼자 어딜 가?”

“어… 아니, 그게…….”

“이결 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민아린까지 김우진을 거들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다 났다.

“그러지 말고 제 얘기를 들어 보세요. 단순히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단체로 움직이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그러니까 제가…….”

“그렇다고 한이결 씨가 혼자 감당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감당이 아닌데…….’

그렇지 않아도 게이트 내부를 혼자 살펴보고 싶었던 참이라,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팀장님.”

“게이트 내부를 혼자 돌아다니는 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긴 하지. 운 나쁘면 시체도 못 찾는다고.”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안 돼. 허락해 줬다가 나중에 마스터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

갑자기 천사연은 왜? 나는 황당해졌다.

“그것도… 그렇군요.”

우서혁이 박건호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래요, 대체.

“이상한 핑계 대지 마시죠.”

“핑계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야.”

“핑계 아닙니다.”

“확실히 마스터가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할 거 생각하니 좀 무섭긴 하네요.”

나 때문에 잔소리를 한다고? 천사연이? 이게 대체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다.

민아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입을 열었다.

“혼자 가시는 건 저도 반대예요. 심지어 여기는 S급 게이트잖아요. 가뜩이나 이결 씨는 게이트만 들어가면 다쳐서 오시는데.”

“그건…….”

“다들 이결 씨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반대하는 거니까, 이번에는 이결 씨가 이해해 주세요.”

……내 걱정이 아니라 천사연한테 잔소리 들을까 봐 그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저렇게 달래듯 말하는데 계속 고집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의견을 굽히고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더 고민해 보죠.”

“그래. 지금은 상황을 더 지켜보자고.”

“그게 좋겠습니다. 등급 수치가 정상적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내 대답에 박건호와 우서혁이 언제 싸웠냐는 듯 의견을 모았다.

‘아무래도 다른 기회를 노려봐야겠는데……. 천사연한테 부탁해서 나중에 혼자 들어와 본다든가.’

숨겨진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웬만하면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럼… 일단 1층을 마저 클리어하고 다시 얘기해 보는 겁니까?”

그래도 두 번이나 오는 것은 시간 낭비였으니 이번에 해결하면 좋겠는데. 본심을 숨긴 채 웃으며 묻자, 우서혁이 날 바라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한이결 씨를 혼자 보내는 결론은 내리지 않을 겁니다.”

“…….”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었다. 눈치도 빠르시지.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왜 이런 해피엔딩이?”

“이러면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보면 몰라? 힐러님이 최종 승리자잖아.”

“음. 힐러를 이길 수는 없지.”

별문제 없이 끝난 상황을 구경꾼들은 엄청나게 아쉬워했다. 진심으로 박건호와 우서혁이 싸우기를 바랐나 보다.

어떻게 이렇게 박건호와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든 건지 신기했다. 이 정도면 특수작전부가 아니라 재미주의자들 모임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될 정도였다.

“어느 정도 쉬었으면 다시 이동하도록 하지.”

박건호가 우서혁이랑 싸우느라 못 먹었던 빵을 입에 물며 명령했다. 괜히 나섰다가 무모한 짓을 벌이는 사람이 되어 버린 나는 민아린과 김우진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끌려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