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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 (60)화 (60/394)

60화

게이트 일정 당일은 새벽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하늘이 굉장히 흐렸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뚫고 차 한 대가 길드 앞에 멈춰 섰다.

“좋은 아침.”

평소와 달리 전투복을 갖춰 입은 박건호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내게 윙크했다. 나는 질색하며 물었다.

“운전기사가 온다더니……. 팀장님이었습니까?”

“최고의 운전기사지. 타.”

N23 구역까지 꽤 거리가 됐기에 안 탈 수는 없었다. 나는 박건호를 노려보는 김우진을 질질 끌며 차에 올라탔다.

“어머. 저번이랑 차가 다르네요, 팀장님.”

“이번에 새로 장만했습니다. 어때요?”

“차는 잘 모르지만…… 보기는 멋있네요!”

“그렇죠?”

박건호와 보조석에 앉은 민아린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수다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시종일관 불만스러워 보이는 김우진 입에 막대사탕을 물려 줬다. 아까 민아린에게 받은 군것질거리였다.

1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N23 구역에는 함께 게이트를 들어갈 길드원들과 우서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팀장님 오셨다!”

“팀장니임!”

옹기종기 모여 있던 길드원들이 차에서 내리는 박건호를 발견하고선 눈을 번뜩이며 우르르 달려왔다. 그 박력에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서는데, 박건호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또 뭐야? 게이트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사고라도 쳤어?”

“이동주가 저한테 능력 썼어요! 이것 봐요, 다친 거!”

“박민재 저 새끼가 어제 준비해 둔 간식 가방을 놓고 왔다고요!”

“추하다, 동주야. 사내새끼가 선빵 맞았으면 패배를 받아들여야지.”

“동주가 그렇지 뭐. 근데 간식 가방 놓고 온 건 좀 그렇긴 해. 내 초콜릿도 거기 넣어 놨거든.”

“아, 팀장님. 빨리빨리 좀 다니세요. 저 새끼들 허구한 날 쌈박질하는 거 짜증 난다고요.”

“아까 이동주랑 박민재 싸울 때 힐러팀 분들 표정 봤냐? 진짜 엄청 한심해하더라. 앞으로 3일 동안 게이트 같이 지내야 하는데. 나였으면 쪽팔려서 탈주한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10명의 길드원이 우리를 둘러싸고 엄청난 양의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가히 귀를 공격당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팀장님, 같이 차 타고 오신 분들은 누구예요?”

“어, 나 이분 알아!”

이동주라는 이름의 남자가 나를 보며 외쳤다.

“양손에 SS급!”

“푸핫.”

내 표정이 짜게 식는 것과 동시에, 옆에 서 있던 박건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 A급 용병? 진짜잖아?”

“이야. 한이결 씨 맞죠? 반갑습니다.”

“저랑도 악수해요.”

“아, 네…….”

여기저기에서 밀려오는 악수를 일일이 받아 냈다. 그걸 지켜보던 김우진의 눈꼬리가 점점 뾰족해졌다.

“우리 팀장님하고도 친해요?”

“세상에. 팀장님이 뭔데 한이결 씨랑 아는 사이예요?”

“팀장님 마스터랑 친하잖아. 소개받은 거 아냐?”

질문을 받은 박건호가 히죽 웃으면서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올린 즉시 나 대신 김우진이 쳐 내 줬지만.

“SS급 게이트에서 만났는데.”

“아, 맞다. 팀장님 거기 갔다 오셨죠?”

“깜빡했네.”

“한이결 씨 뒤에 계신 두 분은요?”

“저 두 명도 SS급 게이트를 다녀온 멤버지. 힐러 민아린 씨와 마스터 수행원 김우진.”

“아~ 민아린 힐러님.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봬서 반갑습니다.”

“김우진 수행원님은 팀장님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 같은데요?”

“나도 울 팀장님 엄청 싫은데. 나랑 잘 맞으실 듯.”

떠드는 팀원들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박건호가 그들을 소개했다.

“이놈들은 특수작전부 소속. 다들 좀 시끄럽긴 해도 능력은 쓸 만하니까 걱정하진 말고.”

그 설명에 SS급 게이트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미친놈들 소굴이라고 했던가. 여러 명이 복도에서 피 칠갑한 채 신나게 웃고 있었다고도 했지…….’

분명 민아린도 같이 들었을 텐데,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밝게 웃으며 팀원들과 악수를 했다.

“반가워요. 이번 게이트 잘 부탁드려요.”

맨 앞에 서 있다가 운 좋게 민아린과 악수를 하게 된 남자 팀원이 헤벌쭉 웃었다. 남자들이란.

“인사가 얼추 끝났으면 슬슬 출발 준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우서혁이 딱딱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출발까지 15분 남은 터라 적절한 지적이었다.

“아직 출발 준비 안 한 놈도 있나?”

“팀장님이지 뭐. 방금 오셨는데 준비를 언제 해?”

“팀장님이야 쇠구슬만 있으면 끝인데 준비할 게 뭐가 있어? 그러는 너는 검 어딨냐? 사탕이랑 바꿔 먹었냐?”

“눈깔 없어? 등에 멨잖아.”

“뭔… 검이 기타야? 등에 메게? 웃기는 놈이네.”

“파하학! 이것 봐! 이 새끼 단검 부러진 거 가져왔어!”

“아, 좆됐네. 야, 단검 남는 거 있는 사람?”

“그런 걸 너 말고 누가 들고 다녀? 지금 빨리 길드 가서 가져오든가.”

“12분 남았는데 가능하냐? 시간 내로 못 오면 그냥 버리고 가자.”

길드원들이 시끄러울수록, 우서혁의 표정은 점차 사늘해져 갔다. 와중에 박건호는 말리기는커녕 그 사이에 껴서 같이 히히덕거리기 바빴다.

이렇게 보니 우서혁이 박건호를 싫어하는 이유를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힘내십쇼, 우서혁 씨. 두통이 이는 듯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은 우서혁에게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

결국 우리는 본래 예정되어 있던 시간보다 10분 늦게 게이트 내부로 들어오게 됐다.

“우서혁 비서님은 너무 딱딱하다니까.”

“비서님은 주말에 뭐 하고 노세요?”

“내기할래? 나는 일한다에 한 표.”

“주말에 일한다고? 그런 사람이 실존해?”

“재미없게 사는 우서혁 비서님이라면 왠지 그럴 것 같아.”

“하긴. 남들처럼 영화 보면서 맥주 먹고 게임하고 그런 거 상상이 잘 안 가긴 해.”

“멍청한 놈들. 원래 비서님 같은 사람이 클럽 가서 화끈하게 노는 거야. 얼굴을 봐라. 여자들이 가만두겠냐?”

“네 면상보다야 훌륭하시긴 하지.”

“말 다 했냐, 심수연?”

그 얘기를 듣던 우서혁이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통받는 우서혁은 보이지도 않는지, 책임자인 박건호는 상쾌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출발합시다. 게이트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니 조심들 하시고.”

“이번에도 사막이네요.”

“네. 하지만 SS급과 다릅니다. 우리는 저 유적지 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민아린의 말에 박건호가 정면에 보이는 유적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피라미드와 비슷한 삼각 형태의 유적지는 굉장히 거대했다. 쨍한 햇빛 아래에 홀로 서 있는 유적지는 꽤 멋있었다.

박건호가 거대한 유적지의 문을 힘주어 밀었다. 그그그극, 모래가 위에서 우수수 떨어지며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암으로 된 넓은 복도에는 일정 간격으로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앞을 나아가던 박건호가 오른쪽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춰 섰다.

키륵. 키르륵.

유적지로 들어선 지 5분도 안 돼서 짐승 울음소리가 여기저기 울렸다. 나는 미리 봐 둔 게이트 자료를 떠올렸다.

초반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는 총 세 가지였다. 고블린, 코볼트, 난쟁이 좀비. 그중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는,

키에에엑!

키에엑! 크르륵. 크륵.

코볼트 무리였다. 쭈글쭈글한 얼굴과 삐쩍 마른 팔다리, 불룩 튀어나온 배와 피가 묻은 톱을 들고 녹색 침을 질질 흘리는 코볼트는 꽤 징그러운 생김새였다. 민아린을 포함한 힐러팀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근접팀.”

박건호가 쇠구슬을 손아귀에 굴리며 말하자, 5명이 무기를 든 채 앞으로 나섰다.

“아, 팀장님. 또 우리 싸울 때 구슬 던지려고요?”

“2개월 전에 어느 게이트였더라. 팀장님 능력 때문에 등에 화상 입은 거 누구였지?”

“그거 재혁일걸?”

“그만 떠들고 일 좀 하자. 엉?”

박건호가 손가락 위에 올려 둔 쇠구슬을 튕기듯 날렸다. 키에에엑! 폭발에 화기가 훅 치솟으며 코볼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근접팀이 무기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코볼트는 B급 몬스터지만 그 수가 워낙에 많고 습성이 포악해서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나는 힐러팀 앞에서 달려오는 코볼트를 죽이며 근접팀 전투를 지켜봤다.

‘대단하긴 하네.’

소문의 내용이야 어찌 됐든, 유명한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극악의 환경을 자랑하는 중동 게이트로 출장 가는 특수작전부답게, 그들은 코볼트 포악성에 밀리지 않았다.

“아, 코볼트 피 얼굴에 튀었어!”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이는 기다란 창을 든 길드원이었다. 한이결과 비슷한 키에 말총머리를 한 그녀는, 창을 휘두를 때마다 금빛 전기가 번쩍이고 튼튼한 근육이 도드라졌다.

코볼트의 녹색 피를 뒤집어쓰고 신나게 창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팀원끼리 대화할 때 이름이 나왔던 것 같은데. 심수연이었나.

20마리가 훌쩍 넘어가는 코볼트는 10분 만에 몰살당했다. 녹색 피로 흥건한 바닥을 밟으며 근접팀이 귀환했다.

“아, 이래서 고블린이나 난쟁이 좀비가 낫다니까. 옷 하나 다 버렸네.”

“뿌리면 오물 싹 사라지는 물약 같은 거 개발 안 하나?”

“연구팀이 뭐 아쉽다고 그런 걸 만들어 주냐.”

근접팀이 코볼트 피로 질척해진 옷을 털며 투덜거리는 사이, 측정 능력자가 등급 측정을 마쳤다.

“으음…….”

“왜?”

측정 능력자 옆에서 측정 결과를 기다리던 박건호가 애매한 반응에 의문을 표했다.

“이게 수치가 좀 이상해서요.”

“등급이 올랐나?”

“아니요, 오히려…….”

잠시 머뭇거리던 측정 능력자가 말을 이었다.

“등급 수치가 떨어졌어요.”

“흐음?”

수치가 떨어졌다고? 나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박건호 곁으로 다가갔다.

“어느 정도로 떨어졌지?”

“이전 기록에는 B급 56.8%였는데, 현재는 B급 12.99%입니다. 물론 수치라는 게 매번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이 정도로 떨어진 적은 처음이에요.”

“수치가 오른 것도 아니고 오히려 떨어졌다라……. 이것도 이상 현상 중 하나로 봐야 하나.”

지금까지 수치가 치솟아서 등급이 올라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수치가 하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알겠다.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네.”

측정 능력자가 돌아가자 박건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S+급 몬스터가 나올 줄 알고 기대했는데, 수치가 오히려 떨어지다니…….”

“다행 아닙니까? 위험도가 낮아진 건데.”

“실망…….”

“어른이 되시죠, 박건호 팀장님.”

진심으로 슬퍼하는 박건호를 보며 혀를 쯧쯧 차는데, 우서혁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등급 수치가 이상하다고 해서요.”

“설마 오른 겁니까?”

“아뇨, 반대로 떨어졌습니다. 이상 현상은 맞긴 한데… 특이한 경우네요.”

내 설명에 우서혁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놀라운 결과군요.”

“그렇기는 한데, 저는 오히려 좀 찝찝합니다.”

아무래도 게이트를 들어올 때마다 개고생해서 그런지, 난이도가 낮아졌다고 해도 쉽사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 말에 우서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 현상으로 게이트에 변화가 생긴 것은 맞으니, 한이결 씨처럼 경각심을 가지는 편이 옳습니다. 이 내용은 모두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돌려 길드원들을 향해 걸어가는 우서혁의 등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코볼트 시체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피가 신발창에 달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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