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는 사이, 박건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게이트 들어가는 게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믿을 만한 놈들로 데려가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나?”
“박건호 팀장님도 그다지 믿음이 가는 상대는 아닙니다만. 오히려 쉽게 흥분하는 그 성격이 제게는 불안 요소입니다.”
“쉽게 흥분한다라……. 말을 너무 함부로 하네. 내가 정말 그랬으면 우서혁 비서님은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 있지도 못할 텐데.”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제 깊은 인내심을 감사히 여기십시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박건호와 우서혁을 바라보다 슬쩍 뒷걸음질 쳤다. 김우진도 내게 바싹 붙어 오며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저 좀 불편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본격적으로 사이가 나쁘다니. 생각 이상으로 최악이잖아.
“그만.”
시큰둥한 얼굴로 박건호와 우서혁을 지켜보던 천사연이 말했다.
“팀 변동은 없다. 본래라면 S급 한 명이면 충분했을 게이트에 왜 둘씩이나 집어넣는지,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거고.”
“쳇…….”
“예.”
박건호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고, 우서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천사연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이결은.”
“……?”
뭐야. 나는 왜.
“게이트 들어갈 준비해 두도록. N23 구역 게이트다.”
“뭐라고요?”
이게 웬 미친 소리야? 나는 기겁하며 천사연에게 말했다.
“갑자기 제가 거길 왜 낍니까? 전 안 갑니다!”
가뜩이나 박건호랑 우서혁은 눈만 마주치면 싸워 대는데!
황당해하는 내가 웃기는지, 내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천사연이 눈꼬리를 휘며 환하게 미소었다.
“그러게 누가 부른다고 쪼르르 오랬나?”
“무슨…….”
“박건호 팀장이 번호도 알고 있고.”
“아니, 그건.”
“생각해 보니 로헌의 부마스터와 친하다고 기사도 떴던데.”
“그…….”
“마스터. 질투합니까?”
박건호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좀 닥쳐 봐! 나는 박건호의 튼튼한 팔뚝을 밀치며 입을 열었다.
“그거랑 게이트랑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서, 안 간다고?”
“당연히 안……!”
안 갑니다, 라고 대답하려는데 문득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천천히 천사연의 웃는 얼굴을 살폈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 나를 정확하게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 그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시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지하게 거절하면 협력 관계고 나발이고 다 날아갈 것 같은데.
“……갑니다. 간다고요. 됐습니까?”
어금니를 강하게 물며 억지로 대답하자, 천사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개 같은 새끼.
“저도 가겠습니다, 마스터.”
속으로 천사연의 욕을 늘어놓는데, 등 뒤에서 김우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돌아봤다.
“흐음. S급 게이트에? 괜찮겠나?”
“네.”
“뭐, 알아서 하도록.”
“잠깐만요!”
김우진, 이 새끼가 드디어 돌았나? 나는 급히 끼어들었다.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합니까? 김우진, 당장 취소해.”
“싫어. 나도 갈래.”
“본인이 가겠다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혹시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나만 정상인 건가? C급의 몸으로 S급 게이트를 따라오겠다는 김우진도 문제지만, 그걸 허락하는 천사연도 결코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걸 허락해 주시면 어떡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게이트 불안정해서 난리인데.”
“S급 두 명에 한이결, 너까지 가는데 C급 한 명 정도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한이결. 나는 가고 싶어.”
팔을 잡아당기는 김우진을 노려봤다. 내 싸늘한 시선에 김우진은 움찔 몸을 떨었지만,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흠.”
그런 내 모습을 차분히 살피던 천사연이 짝,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정리부터 할까. 우선 김우진. 게이트 가는 건 상관없지만, 팀원의 동의부터 받아 내도록 하고.”
“윽……. 네.”
“한이결. 게이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박건호 팀장에게 듣고 준비해. 이번 게이트도 비정상일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박건호 팀장과 우서혁 비서는 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한 만큼 태도를 확실히 하는 게 좋겠군.”
“물론입니다.”
“예.”
“깔끔하군. 이제 다 나가.”
천사연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밖으로 쫓아냈다.
복도로 나온 나는 한숨과 함께 원인 제공자를 불렀다.
“박건호 팀장님…….”
“하하. 이게 이렇게 되네.”
박건호도 미안하긴 했는지, 어색함을 담아 웃었다.
“게이트는 가겠습니다. 대신, 대가를 받을 겁니다. 나중에 제 부탁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그래, 그래. 뭐든 들어주도록 하지.”
박건호가 항복하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우서혁이 그런 박건호를 밀쳐 내며 서류를 내밀었다.
“N23 구역 게이트 자료입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한이결 씨께서 가져가시는 게 좋겠군요.”
“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출발할 때 뵙겠습니다. 그럼.”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은지, 우서혁은 재빨리 등을 돌려 가 버렸다.
“……그쪽도 가시죠?”
“이왕 만난 김에 같이 저녁이라도?”
“3시에 무슨 저녁입니까?”
“그럼 점심?”
“거절합니다.”
아쉬워하는 박건호를 뒤로하고 23층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고 김우진과 둘만 남게 되자마자 참아 왔던 말을 꺼냈다.
“내가 뭐라고 말할지 이미 알고 있지?”
“나는…….”
단호한 내 눈빛에 김우진이 기가 죽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고 싶어. 물론 도움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는데…….”
“누가 도움이 안 돼서 이러냐? 위험해서 반대하는 거잖아.”
“네 옆에만 붙어 있을게. 마스터 말대로, 안전한 팀이니까 별일 없을 거야.”
“게이트가 정상이어도 안 될 일이야. 위험한 거 뻔히 아는데 거길 대체 왜 따라오겠다는 건데?”
납득하기 힘든 김우진의 모습에 속이 답답했다. 혹여 S+급 몬스터가 등장한다면 지켜 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SS급 게이트 한번 가 봤다고 S급이 우스워 보이냐? 내 옆에 붙어 있겠다고? 들어가면 나라 해도 널 항상 지켜 줄 수는 없어. 몬스터가 몰려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한다고.”
“…….”
“난 절대 동의 못 하니까 그래도 가고 싶으면 네 마음대로 해. 대신 난 너 위험하든 말든 신경 안 쓸 거다. 알겠어?”
김우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 말이 엄청나게 섭섭한 모양이다. 좀 너무했나 싶었지만, 사과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간 봐 온 것 중에 최고로 시무룩해진 녀석은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일부러 딱딱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가지 않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김우진은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나랑 싸운 채로 게이트에 들어가겠다는 건가?’
위험한 장소를 제 발로 찾아가려는 김우진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목 끝까지 차오른 한숨을 억지로 삼켜 냈다.
‘……그래도 안 돼.’
어설픈 마음으로 허락했다가, 정말로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상황이 좋지 않아 치료가 늦어져서 목숨이 위험하거나 장애라도 남으면.
그런 일이 생기게 둘 수는 없지. 나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
“분위기가 좀 안 좋네요.”
일을 끝내고 놀러 온 민아린이 우울해하는 김우진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우진 씨뿐만 아니라 이결 씨도 그렇고.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나는 난감하게 웃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줬다. 흥미롭게 듣던 민아린은 김우진이 고집을 피운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같이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민아린 씨마저 왜 그러십니까?”
“에이. SS급 게이트도 별문제 없었잖아요. 우진 씨는 상황판단력도 좋고 몸놀림도 빠르던데요. 게다가 다친 팀원들 치료하는 거 도와주셔서 편하기도 했고.”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잖아요.”
“전투 능력이 없는 건 힐러나 측정자들도 똑같은걸요.”
“으음.”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차분히 되짚어 봤다.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한데요.”
“박건호 팀장님이랑 우서혁 비서님도 함께 가신다면서요. 그럼 웬만한 B급보다도 쉽게 클리어할 거예요.”
그런가? 막무가내로 고집만 부리는 김우진을 보다가 민아린의 설명을 들어 보니 단단하게 뭉쳤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고민하자 민아린이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진 씨 마음도 이해해 주세요. 이결 씨는 매번 위험한 게이트만 골라 들어가는 데다 심지어 다쳐서 오는데, 혼자 기다리면서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아…….”
그 말을 들으니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 김우진이 갑자기 엄청나게 안쓰러워졌다. 그런 거였나……. 내가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되시면, 저도 같이 갈까요? 그렇지 않아도 내일까지 게이트 일정 잡아야 하는데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거든요.”
“S급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S급 두 명에 이결 씨까지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요.”
“민아린 씨가 가 주신다면 저야 좋죠.”
“좋네요. 그럼 우진 씨 문제도 해결된 거죠?”
“네?”
“우진 씨!”
“미, 민아린 씨?”
내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김우진에게 달려간 민아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결 씨가 게이트 가는 거 허락해 주신대요! 잘됐네요.”
“저, 정말? 허락해 주는 거야?”
“…….”
김우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좀 더 고민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김우진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으응!”
“내가 전투하러 나갔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힐러팀이랑 움직여.”
“그럴게.”
“…….”
“가도 돼?”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허락하고 말 게 뭐가 있냐. 그래도 위험한 건 사실이니까 조심하겠다는 말만 제대로 지켜.”
“알겠어. 걱정하지 마.”
방금까지만 해도 시들시들하던 김우진이 단번에 살아났다. 기분 좋아 보이는 김우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민아린이 입을 열었다.
“잘 해결됐으니까 우리 맛있는 거나 시켜 먹어요! 치킨이라든가, 피자라든가!”
아직 저녁 먹기 전이니까 상관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왕 시킬 거면 둘 다 먹죠, 뭐.”
“내가 주문할게.”
김우진이 핸드폰을 들었다.
“치킨이랑 피자 둘 다 시킬 거면 여기가 좋아요.”
“B 세트?”
“네네. B 세트에다가 콜라 추가로 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김우진과 민아린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민아린의 말처럼 별문제 없었으면 좋겠는데.